[아빠가 아들에게...]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영원한 '민족적 울분'이 표출된 노래가 있다...1970년 영화 주제가로서 잘 알려졌던 노래다...한참 월남전이 치열한 중에 제작된 일종의 국위 선양의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였다...<타향살이>...<황성옛터>...<목포의 눈물>...일제 강점하에서 민족의 울분을 달래던 노래였다...해방후 건국의 소용돌이 격동기를 거쳐서 1960년에는 나애심, 현미, 한명숙 등에 의해 주도되던 탱고 유행을 <트로트>(도롯또) 리듬으로 바꾸어 놓았다...계속 조국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1967년에 <기러기아빠>가 등장하였고...급기야 이 노래는 TBC(동양방송/오늘의 종편 JTBC 참고)의 1969년 1월 신년 라디오드라마 연속극의 주제가로 선정되었다...그리고 1970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기간 중에 아빠도 월남전에 참전 중이라서...이 영화를 보진 못했고...특히 이 노래는 멜로디가 꺾일 때마다 짙은 애환과 가슴 뭉클한 한(恨)의 정서를 도출한 작곡가 박춘석의 대중감각이나, 가수 이미자 씨의 끊어질듯 이어지는 절절한 창법이 그 당시 어느 곳에서나 대중들의 애창곡으로 부각되었단다 (하단 신문기사 참조)...게다가 시장 골목 등 한 밤중에 지나치노라면, 선술집으로부터 솓가락과 젖가락 장단에 맞춰서 곧잘 불려지던 노래였단다...<동백아가씨>와 <섬마을선생> 노래도 단골 메뉴였단다...너무도 애처럽고 슬픔을 가져다 주었기에...옛 시절을 회상하는 중에...이 노래가 무척 그리웠다...듣고 싶었다...너의 연주를 통해서...<기러기아빠>를...샬롬!! (201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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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화중광야제작 제공] 대한민족(大桓民族) 대중가요사상 오랜 기간을 콤비로 이룬 박춘석 씨와 이미자 씨. 특히 1959년에 가수로 데뷔한 이미지 씨는 아주 순박한 시골 처녀의 모습에다, 이 무렵에는 가수 고복수(명곡 '타향살이') 씨가 운영했던 <동화예술학원>(東和藝術學院)에서 노래를 배우던 시기였다고 전한다. <이동순, '번지없는 주막 - 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 서울: 도서출판 선, 2007, p.407>. 1958년에 은퇴공연 후 1959년에 고복수 씨가 한국 최초의 가요학원인 '동화예술학원'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자리) 5층에 개설하였고, 이미자, 오기택('아빠의 청춘'), 안정애('대전부르스') 등이 수학중이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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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소리의 혁명'이요 '장르의 다양화'로 '대중가요의 르네상스시대'가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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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화중광야제작 제공] <동화백화점> 5층(가건물)이 '대한민족'의 대중가요의 흐름을 바꿔놓는 산실이었다. 이미자는 이곳에서 고복수 선배가수로부터 꾸미지 않는 순수 그대로의 창법을 익혔던 것이다!! 그러다가 진방남(작곡가 '반야월'의 예명)의 소개로 라화랑(화신백화점 전속)에게 발탁되어 일약 스타의 반열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한국음원제작자협회, '기록으로 보는 한국대중음악사', 2011, p.46, 52>.
참고로, 본 <동화백화점>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일본 미쓰이 재벌의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 건물로 지어졌다. 해방 뒤 <미군 피엑스>로 사용되다가, 1955년 <동화백화점>이 되었다. 1963년에 삼성으로 넘어가면서 <신세계백화점>으로 바뀌었으며, 1964년 이 건물에서 <TBC>(동양텔레비전방송)이 개국하였다. |
이 귀한 노래는 제5공화국 중에 <월난참전 용사나 투옥된 반체제 인사와 연관시켜 1984년에 금지시켰다가 (동아일보/1999년 6월 4일자 참조), 1987년 8월에 186곡이 해금된 곡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경향신문/1987년 8월 19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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