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왕후(王后)의 서신(書信)을 알현하다!!

글/ 정동윤

명실상부 궁중문화는 우리 민족이 일구어 온 문화 중 가장 그 격이 높은 문화이다. 사대부가 '언문'이라 비하했던 한글은 제왕이 창제하여 반포하고, 수대에 걸쳐 왕실의 수 많은 한글편지와 궁서체가 증명하듯 '왕실문자'였다. 어디 문자만 그러한가? 궁중어는 그 상대에 따라 "하오소서, 하소서, 하시오, 하오, 하게, 해라" 등 6개의 종결어미로 그 말끝을 달리 했으나, 지금은 반말과 존댓말 이렇게 양분화 되어가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천은으로 명백이 끊겨 사라질 뻔한 궁중문화가 이어졌으니 오늘은 그 숨은 공로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이미지/동아일보/ 1974.10.8] 조선조 23대 순조의 셋째딸 '덕온공주'(德溫公主)의 외증손녀요, 1894년(甲午)에 6조판서를 지낸 청빈했던 관료 윤용구(尹用求)의 딸 사후당(師候堂) '윤백영'(尹佰英/1888-1986) 여사는 1960년대 초 궁중관련 문화재 고증과 보전활동에 소리없이 공헌하신 분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총기가 대단하고, 눈이 밝아 문화재 관련고증에 많은 자료(정보)를 전해주셨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의 영손녀이신 '고 윤백영'(1888-1986) 여사. 덕온공주의 궁가 '저동궁'을 따라 궁중에서는 윤여사를 '저동궁 할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매국노 이완용에 의해 저동궁을 뺏기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할머니이신 덕온공주의 유물들을 온전하게 보관하셨고, 그 유물들을 궁중복식 연구가였던 '고 석주선'(1911-1996) 여사께 물려주셨다. 하여 단국대학교 석주선박물관에 가면 저동궁의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윤여사는 <조선조궁중풍속연구>의 저자이신 김용숙 교수(1921-2003)와도 활발하게 교류하신 듯하다. 김교수는 자신의 저서 머릿말에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안경도 없이 창경궁 장서각의 고문서들을 술술 읽어나가셨다고 윤백영 여사를 회상하였고, 인생의 철학까지도 윤여사로부터 영향을 받았노라 술회하였다.

이완용의 탄압 속에서도 궁가의 유물들을 '온새미'로 후손에게 전해주신 윤백영 여사, 그 유물을 바탕으로 평생을 궁중복식 연구에 전념하신 석주선 박사, 궁중의 모든 풍속들을 연구하여 집대성한 김용숙 교수. 마지막 수랏간 상궁을 찾아가 30년간 궁중음식을 전수 받은 황혜성 교수.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망조의 격랑 속에서도 궁중풍속은 진멸되지 아니하고 그 명맥을 이어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묻는다. 왜 이런 일들을 나라가 아닌 개인이 해야만 했을까?? 나라는 그 동안 무얼 했는가?? 더 이상 전통문화는 도제식이 아닌,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2016.9.20/이른오후>


◆[이미지] [조선시대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막내 딸 덕온공주(德溫公主)에게 보낸 서신] (국립한글박물관전시) <Updated/20160919>


[부록] [오랜 만에 아버지와 함께 '국립한글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화중광야제작][BGM/02:48] 곡목/아리랑 ㅡ 연주/정동윤(2007)

 
 
<Creatrd/20160914> <Updated/20160917><20160919><201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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