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돌은 지난 수 백년의 역사를, 그리고 장인들이 하루에 15개씩의 연장을 바꿔 써가며 하나하나 쪼고 다듬었던 새 돌들은 앞으로 숭례문과 함께 쓰여질 새로운 역사를 증명할 것이리라.' <복원된 숭례문 현장에서>

'3차원 실측장비를 가지고 손상 정도를 조사했습니다. 정밀 실측결과 2층은 90%를 잃었지만 1층은 90%가 살아 있었습니다.'(숭례문복구팀증언). 1층 기초기둥 세울 때 주춧돌과 기둥 그 틈사이로 햇빛이 비추인다. [이미지제작제공/화중광야]

[편집자주] 옛서울 도성 4대문 중에서 이젠 돈의문(서대문) 복원만이 기다리고 있다. 관심가지고 복원한다면...해체된 설계도면...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판단된다. 왜놈들이 헐어버릴 때 무턱대고 헐어버릴리 만무하다. 설계도면이 일본 안에 없으면...바티칸서고 안에 있을 것이다. 한국에 관한 중요한 자료는 없는게 없다는 순교자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님의 증언이시다. 따라서 친일파(뉴라이트=프리메이슨 앞잡이)가 정권잡는 일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온 국민이 참담함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2008 2 10일의 그날 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생활의 바쁨 속에 망각의 강 저편으로 건너 가 잊혀져 있던 얼마 전...아빠에게서 특별한 소포가 배달되어 왔다. <숭례문 화재 피해현황 및 수습 보고서>와 <2010 숭례문 복구 현황>을 담은 두툼한 책 2권과 5년 전 내가 올렸었던 글이 프린트된 파일이었다. ...맞다. 숭례문...

사실, 바로 닥친 아이들 중간고사 준비로 눈코뜰새 없던 터라, 그냥 그렇게 흘려 넘기고 정신없이 아이들 시험을 치르고 나니, 54..이미 숭례문 개막식이 진행된 날이었다.

매일매일 수업과 생계만 돌보다 보니, 미처 숭례문까지 신경 쓰고 있었을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 될까...

여하튼 오랜만에 심적인 여유를 갖고, 아빠가 추천해주신 '숭례문 1191일의 기록'이라는 KBS다큐 2편을 보게 되었다. 배우 안성기씨의 친숙하고도 차분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다큐는 앉은 자리에서 2편을 내리 보게 만들었다.

5
년 전 그날부터 숭례문 복구에 관한 모든 기록들을 짧게나마 엿볼 수 있는 수작이었다. 나무 한 그루, 돌 한 덩이 정말 어느 하나 허투루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숭례문의 일부분으로 탈바꿈해나가는 과정들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추위고 더위고 상관없이 목장, 석장, 와장, 단청장 등 숭례문을 되살리기 위한 각계의 고문들과 각 부분의 장인들을 필두로 한 수천여 명의 고귀한 노고는 정말 고개가 절로 숙여질 정도였다.

도구와 기법 모두 옛 전통 그대로의 것으로 일일이 베고, 자르고, 다듬고, 두드리고, 구워내고...이제는 백발이 되신 노()장인 분들부터 청년 장인들까지 굵은 땀방울을 흘리지 않은 분들이 없었고, 그 분들 모두 우리나라 국보 1호를 되살려 내기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려 왔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번 새삼 느끼게 된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의 놀라운 건축기법...못 하나 쓰지 않고,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계산적으로 조립되어 가는 숭례문을 보며 그저 혀만 내두를 뿐이었다.

사실, 다큐만 보고 이 글을 쓰려고 했었는데, 다큐를 모두 보고 난 후에 마음이 바뀌었다. 직접 가서 눈으로 꼭 보아야겠다고...그렇게 다음날 오후, 집을 나섰다. 5년 전 당시에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던 지라, 숭례문은 수도 없이 많이 지나치곤 했었지만 그해 여름 서울을 떠나 경기 외곽으로 이사온지라, 5년간 숭례문 근처에 가본적은 두어 번이나 될까 말까...

어차피 그 동안은 가림막으로 가려져있었으니...그 가림막을 벗은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니 새삼 긴장되고 떨려왔다.

마침, 어린이날인지라 남산부터 인파가 꽤 많았다. 드디어 남대문 시장에서 내려 보니, 다큐에서 본 모습 그대로 새로운 위용을 당당하게 뽐내고 있는 숭례문...그리고 그 주위에 몰려드는 인파들...괜시리 가슴이 벅찼다.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숭례문으로 향했다. 마침내, 숭례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가슴이 벅차 오르고, 코끝이 찡했다.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던 5년 전 처참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 다시 되돌아와준 모습이 그저 장하고 뿌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갔었더라면 지나쳤을 부분들이 다큐를 본 덕분에 세심하게 눈에 들어왔다.

새 돌과 옛 돌이 섞여 축조된 성곽은 현재의 숭례문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옛 돌은 지난 수 백년의 역사를, 그리고 장인들이 하루에 15개씩의 연장을 바꿔 써가며 하나하나 쪼고 다듬었던 새 돌들은 앞으로 숭례문과 함께 쓰여질 새로운 역사를 증명할 것이리라.

돌에 새겨진 장인분들의 이름이 숭고하게 여겨졌다. 숭례문 초입의 안내비는 5년 전 그날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안내하고 있었고, 많은 어르신들이 한탄을 하시며 읽고 계시기도 하셨다.

옛 모습대로 지반을 낮추고, 성곽을 새로 축조한 숭례문은 한층 위용이 크고 당당해 보였다. 예전에는 숭례문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면, 이젠 부분적으로나마 복원된 성곽이 외롭지 않게 숭례문과 함께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부드럽고 멋스럽게 다듬어진 성곽의 돌들, 오동유로 마감되어 칠해진 단청들, 숭례문의 자존심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추녀와 용마루,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기왓장 한장 한장이 어떻게 새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과정을 보고 나니, 마음이 더욱 뿌듯하고 벅차올랐다.

마침,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현장에는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비롯하여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숭례문 현장을 찾고 있었다. 5년 전 그날에 찾았던 현장의 분위기는 침통 그 자체였었다. 여기저기서 그저 눈물과 한숨뿐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 역시 속상한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일이 생각난다
.

그러나, 5년이 지나고 다시 찾은 숭례문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 눈물과 한숨은 감탄과 웃음으로 바뀌었다. 어르신들부터 아이들까지 그 동안 잃어버렸었던 우리 모두의 보물을 새로 찾은 순간이기에 기쁨이 가득했다. 물론, 여전히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자국의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해, 불명예스러운 방화로 인하여 이렇게 새로 복구하게 된 사실은 결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과오이다.

그러나, 2013년 오늘의 숭례문과 그 현장에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이다. 나무 한 그루, 돌 한 덩이, 기와 한 장...어느 것 하나 장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 오늘의 새로운 2013년의 숭례문은 후손들에게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 옷을 입고 다시 우리 곁에 우뚝 선 숭례문...그와 함께 2013년도 우리 대한민족 모두가 새로운 기운으로 힘차게 웅비하며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기를 거룩하신 예호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해본다.

<2013
5 5일/숭례문 현장을 다녀와서...예미마정 쓰다>


'5년전 눈물과 한숨은 오늘 감탄과 웃음으로 바뀌었다!!'
(예미마주제곡-연주/정동윤)


◆아빠가 보내주신 책.


◆5년전 숭례문 화재현장에서


◆5년후 숭례문 복원현장에서


◆새로 발굴된 성벽기단


◆옛돌은 숭례문의 지난 역사를...새돌은 앞으로의 역사를...


◆대한민족의 정신적 중심의 상징

 




◆[편집자주] 충남 부여 소재 전통기와 가마터에서 구워진 기와들이 기와장이 손에 전해져 2만여장이 새로이 얹혀진 숭례문을 기억하라!! 오른쪽 저 기와굽는 장이의 눈빛을 보라. 우리 조상들의 장인정신이 끊이지 아니하고 자손대대로 이어지기를 간구한다. [이미지제작제공/화중광야]

 
<Created/20130506> <Updated/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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