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 가정예배가이드 12] 행위의 탯줄을 끊어라!!

글/ 정재선 목회자

[요약] 구원의 간증은 무엇인가? 죄 문제로 인하여 자기 자신이 처절하게 죽었던 체험이 있는가? 자기 자신이 죽었던 체험이 없다면, 어찌 구원의 복음을 간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있었는가? 입으로만 확신했는가? 그게 아니다. 행위가 종교적인 것에 이어진다면, 과연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게 아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행위의 탯줄을 끊어야 한다!'

그렇다면 행위의 탯줄을 끊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같이 <킹제임스성경> 구약성경 [에스겔 16:1-5]을 읽는다:

16:1Again 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me, saying,
16:1다시 주님의 그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16:2Son of man, cause Jerusalem to know her abominations,
16:2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자기의 가증함들을 알게 하여,

16:3And say, Thus saith the Lord GOD unto Jerusalem; Thy birth and thy nativity is of the land of Canaan; thy father was an Amorite, and thy mother an Hittite.
16:3말하기를, '주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같이 말하노니, '너의 근본과 너의 출생은 카나안의 그 땅이요, 너의 아비는 한 아모리아인이요, 너의 어미는 한 힛인이다.

16:4And as for thy nativity, in the day thou wast born thy navel was not cut, neither wast thou washed in water to supple thee; thou wast not salted at all, nor swaddled at all.
16:4그런데 네가 태어난 그 날 안에 너의 출생에 관하여는, 너의 탯줄이 잘라지지 않았고, 너는 물 속에 깨끗이 씻김을 받지도 않았고, 너는 전혀 소금으로 문질러지지도 않았고, 전혀 포대기에 싸지지도 않았도다.

16:5None eye pitied thee, to do any of these unto thee, to have compassion upon thee; but thou wast cast out in the open field, to the lothing of thy person, in the day that thou wast born. (Ezekiel 16:1-5/ KJV)
16:5이것들 중 어느 하나도 너를 위하여 행하고, 너를 불쌍히 여겨줄 어떤 눈도 네게 없었으니, 오히려 네가 태어난 그 날에 너는 꺼림을 당하여 들판에 버려졌도다.' 하셨다. (에스겔 16:1-5/ KJV화중광야역)

만일 아돌프 히틀러가 마틴 루터가 번역해 놓은 독일어 성경(사진/1541판 속표지)을 읽었더라면, 그는 어떤 인물이 되었을까?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복음 전도자 내지는 순교자가 되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사람이 모태에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서(시편 51:5), 무덤으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바로 두 길이다. 한 쪽 무덤은 '영존하는 형벌'(everlasting punishment)이 예비된 '지옥'(Hell)에로의 길이요, 다른 한 쪽 무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부활을 예비해서 잠들어 있는 '하늘의 그 왕국'(the Kingdom of Heaven)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래서 죄인이었던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 그 자체가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바로 그 분이 '나를' 죄로부터 건져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 분을 알게 됨으로써, '내게' '영존하는 생명'(everlasting life)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도 두 마음이다. 한 쪽은 연약한 마음이요, 다른 한 쪽은 강한 마음이다. 그 실례가 바로 야콥의 마음이다. 하란에서 20년만에 아버지의 고향 헤브론으로 귀향하는 도중, 육체의 한계 속에서 갖은 번민과 고통 속에서 자신과 싸우면서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 즈음, 그는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겨루게 된다. 어쩜 하란으로 가기 전 도중에 돌베게 베고 자다가 한 의미있는 꿈을 꾸고 난, 바로 그 벧엘에서 하나님께 가장 엄숙하게 맹세하였던 것이,  즉
'십일조'(창세기 28:22)를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이 허물어지기 직전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 십일조는 절대로 물질이 아님을 필자가 정리 중에 있다.)

<창세기 32:22-28>을 읽어보자:


32:22그리고 야콥이 그 밤에 일어났고, 그의 아내 둘과, 그의 두 여종 둘과, 그의 아들 열 하나를 취하였고, 얍복 나루를 건너 보냈다.
32:23리고 그가 그들을 취하였고, 그리고 그들을 그 시내를 건너 보냈고, 그의 소유도 건너 보냈다.
32:24그리하여 야콥이 혼자 남았다. 그런데 날이 샐 때까지, 한 사람이 거기서 야콥과 씨름하셨다.
32:25그리고 그 분이 자기가 야콥에게 이겨내지 못함을 아셨을 때, 그 분이 야콥의 넓적다리 우묵한 곳을 해치셨다. 그런데 야콥이 그 분과 씨름하는 동안에, 그의 넓적 다리가 탈골되었다.
32:26그 분이 말씀하시되, '날이 새니, 나를 가게 하라.' 하였다. 그러자 야콥이 말씀드리되, '당신이 내게 복을 주지 않으시면, 당신을 보내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32:27그러자 그 분이 그를 향하여 말씀하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셨다. 그리하여 야콥이 말씀드리되, '야콥입니다.' 하였다.
32:28그러자 그 분이 말씀하시되, '네 이름이 다시는 야콥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요, 이스라엘이라 불리울 것이니, 이는 한 통치자로서 네가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과 힘을 겨루었고, 이겨냈음이다.' 하셨다. (창세기 32:22-28/ KJV화중광야역)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냄이란, 비록 '넓적 다리'(환도뼈/고관절)가 탈골되었을지라도, 야콥이 지금까지 죄인의 모습인 육체의 자고(교만)가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순종하겠음을 자복한 것이다. 육체의 지배를 벗어나서, 하나님은 그 분의 의도하신대로 하나님이 다스리시겠다는 계획을 선포하신 것이, 바로 '야콥에서 이스라엘'로 바뀐 원인인 것이다. 이 성경적 가르침을 잘 깨닫자. 과연 구원을 받은 후 지금까지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믿고 따른다 하면서, 아무도 모르고 본인만이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야기되는 어떤 갈등과 빗나감이 있지 않은 것인지, 그 원인을 속히 찾아내야 한다. 이것을 찾아내는 최선의 가장 빠른 방법은 '행위의 탯줄을 끊는 것이다'.

위 본문 중에 요절은 <에스겔 16:4>이다:

네 탯줄이  잘라지지 않았고, 너는 물 속에 깨끗이 씻김을 받지도 않았고, 전혀 소금으로 문질러지지도 않았고, 전혀 포대기에 싸지지도 않았도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을 의인법으로 표현한 것이요, 예루살렘이 우상숭배의 본거지로 변질되어 버린 사실을 '간음'이라고 하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에스겔 16장>은 <요한복음 8:1-11>의 '간음한 여자'와 직결되고 있으니, 이것은 후에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풀어보기로 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의 본래(本來)가 전혀 정상적인 출생이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아기가 출생하면, 제일 먼저 탯줄(배꼽줄)이 끊겨야 하고, 다음에는 물로 깨끗이 씻겨야 하는데, 전혀 포대기에 싸여지지도 않은 채 들판에 내동댕이 쳐 버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소금으로 문지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실은 오늘의 본문은 이 소금이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우선 성경에서 언급되어 있는 소금에 관해서 알아보자:

1. 소금의 용도=정복한 땅에 뿌려짐(사사기 9:45). 예물에 뿌림(레위기 2:13. 에스겔 43:24). 향제조에 사용(출애굽기30:35).
탄생한 아이를 닦아냄(에스겔16:4).

관련이적=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됨(창세기 19:26). 엘리사가 소금으로 물을 정결케 함(열왕기하 2:19,20).

1)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레위기 2:13)=소제물에 넣었으니, 이는 제물이 모든 부패와 불결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
2) 영원한 언약(민수기 18;19)=변하지 않는 굳센 언약을 의미.
3) 소금의 언약(역대하 13:5)=다윗 언약의 영원성을 의미.
4) 소금기둥(창세기 19:26)=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음으로 저주를 받아 소금기둥이 되어버림. 저주받은 땅을 의미.

2. 성결=향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을 만드는데 반드시 소금을 넣어 성결하게 했다(출애굽기 30:35).

3. 탯줄(배꼽줄)을 끊은 자=에스겔 16:1-5. 본문의 핵심이다:

네 탯줄이  잘라지지 않았고, 너는 물 속에 깨끗이 씻김을 받지도 않았고, 전혀 소금으로 문질러지지도 않았고, 전혀 포대기에 싸지지도 않았도다.

<에스겔 16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선지자 에스겔의 책망을 의인법으로 묘사한 것이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1) 3-34절=죄(하나님을 배신). (2) 35-52절=징벌(하나님의 보응). (3) 53-63=회복(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본문은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지은 죄,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이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신실치 못하고 성결치 못한 간음한  아내'(요한복음 8:1-11)로 묘사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카나안 땅 안에 거주하면서, 아모리아인(아비)과 힛인(어미) 등의 원거주민의 사상과 전통 내지는 풍습을 좇아 행함으로써,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 아니라 오히려 이교도들의 자손인 것처럼 행하였기에, 선지자 에스겔이 이것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바빌론에로 '70년간 사로잡혀가게 되는' 하나님의 징벌의 당위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탯줄을 끊지 아니하면, 맛 잃은 소금이 되므로, 반드시 탯줄을 끊은 자라야,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탯줄을 끊고서 물로 씻음 받고 소금의 뿌림을 받아야 함은, 카나안의 원거주민들의 우상숭배에 동화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성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상숭배의 행위를 마치 탯줄을 끊지 아니한 아이에 비유한 것이다. 정상적인 아이로서 성장할 수 없음이니, 이것이 신약에 와서 어찌 나타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둘째, 신약에서의 소금(할라스=αλαζ)은 다음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1. <마태복음 5:13>이다:

5:13너희는 그  땅의 그 소금이다.' (Ye are the salt of the earth).

<한글개역성경>에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라고 번역되어 있다. 필자가 직역한 <킹제임스성경> 번역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해오고 있다: '그리스도인 역할이다. 소금과 같이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 부패하는 물질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서, 또한 무미건조한 사회에 맛을 주는 양념으로서, 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자신의 유용성을 보존하기 위함이다.'(톰슨성경, 1987, 신약 p.70.)

이와 같이 해석해 놓으니까, 당연히 행위가 강조될 수 밖에 없으니, 가히 주님의 의도하심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다. 이에 대한 기초를 풀어 놓은 것이 있으니, 참조하면 이해가 수월해진다.
<필자의 '제1차 킹제임스성경연구 세미나'(1998)를 반드시 참조>.

왜 이것을 언급하느냐 하면, 신약의 복음서를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몇 가지 기초 용어를 알아야 한다.
그 중에 '너희들'(Ye)과 '그들'(They)이 있다. 예수님께서 양자를 그 대상으로 하시면서, 말씀을 선포하신다.

간단하게 말하면, '너희들'은 '제자들'이며, 곧 '말씀으로 성취되어진 자들'을 말함이다(마태복음 5:1). 그리고 '그들'은 '무리들'이며, 오직 '병고침과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추구하는 종교인'을 말한다(마태복음 4:23-25). 자,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그저 무관심하게 넘길 주제가 아니다.

2. 그 다음으로는 신약성경 안에 언급된 '그 세상'(the world)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는 네 가지 용례가 있다.
<필자의 '제1차 킹제임스성경연구 세미나'(1998)를 반드시 참조>.

1) 코스모스(κοσμοζ)=(1) 선한 것으로 되돌려 받을 자. (2) 악한 것으로 되돌려 받을 자.
2)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η)=(1) 하나님(그리스도)의 영 안에 거주하는 자, (2)죄 안에 거주하는 자.
3) 게(γη)=말씀으로 결실을 맺는 자. (2)말씀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자.
4) 아이온(αιων)=항상 육체(율법) 안에 속해 있는 자. (2) 항상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자.

3. '너희는 그  땅의 그 소금이다.'(Ye are the salt of the earth)의 헬라어 번역이다:



5:13휘메이스 에스테 토 할라스 테스 게스

헬라어 원어상으로도 필자의 직역이 맞는 것이다. 이 구절을 풀어보면, '너희는 말씀으로 결실을 맺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 속하는 자로서의 소금이다' 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소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약의 의미를 연장해서 보면, 소금이란,

1. 새 언약의 사람=어떤 언약도 피흘림 없이는 세워지지 아니함(마태복음 26:28. 누가복음 22:20. 히브리서 8:10, 10:16,19,20):

26:28이는 이것이 죄들을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흘려지는 나의 새 유언의 피 때문이다.' (마태복음 26:28/ KJV화중광야역).

10:16이것은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그 언약이다.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법들을 그들의 마음들 속에 주어, 그들의 생각들 속에 그것들을 기록할 것이다. (히브리서 10:16/ KJV화중광야역).

2. 물로 씻어 성결되어진 사람(누가복음 11:24)= 말씀을 찾아 나서는 자.

11:24부정한 영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을 때, 물 없는 곳(말씀이 없는 곳)을 두루 다니면서 쉴 곳을 구하되, 찾지 못하자 (누가복음 11:24/ KJV화중광야역)

3. 탯줄(배꼽줄)을 끊은 사람(마태복음 18:6-8)=실족케 하는 자가 아님.

18:6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단 채, 깊은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18:7실족케 하는 일들로 세상에도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여도, 실족케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18:8그러므로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그것들을 잘라서, 네게서 던져 버리라. 두 손이나 두 발을 가지고 영존하는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차라리 불구자나 절름발이로 생명 속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마태복음 18:6-8/ KJV화중광야역)

이 말씀은 엄청난 주님의 경고이다. 여기에서 '실족'이란 진리의 말씀을 받았어도, 여전히 자신의 합리화를 내세우면서, 종교적인 곳에 앉아 있는 자로서, 이 행위의 탯줄을 찾아내어, 과감하게 잘라내라는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13:3-13>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1)길가도 아니고, (2)돌밭도 아니고, (3)가시덤불도 아닌, (4)좋은 땅 속에 뿌려져서,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다.

<고린도전서 15:45-53> '부활'에서 (1) 첫 아담은 흙의 성분이며, '살아있는 한 혼'으로서, 육체에 속하며, 종교적인 행위에 그치는 자이지만, (2)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시기에, 이 영에 속하는 자가 되어, 진리 즉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너희가 소금인 것이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속죄의 새 유언(언약)을 맺는 너희는 소금이다.
둘째, 진리의 말씀으로 성결되어진 너희는 소금이다.
셋째, 종교적인 유대에서 나와(요한계시록 18:4), 자신의 행위의 탯줄을 잘라낸 너희가 소금이다.

이제 풀이를 맺고자 한다.

1. 구원의 간증은 무엇인가? 죄 문제로 인하여 자기 자신이 처절하게 죽었던 체험이 있는가? 자기 자신이 죽었던 체험이 없다면, 어찌 구원의 복음을 간증할 수 있겠는가?

2.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있었는가? 입으로만 확신했는가? 그게 아니다. 행위가 종교적인 것에 이어진다면, 과연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3. 말씀은 왜 배우고, 살피고 상고하는가? '성경을 파헤쳐라' (디모데후서 3:15-17 참조).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자세히보기>. 여기서 파헤침(search)이란 마치 사냥개가 냄새를 따라 추적함을 의미함인데(요한복음 5:39), 이 말씀 때문에, 참그리스도인들(사도행전 11:26)은 핍박을 받았고, 순교하지 않았던가? 자기 자신은 입으로 핍박받고, 입으로만 순교하는가? 성경이 그렇게 전하고 있는가?

4. 그래서 성경을 '카논'(CANON) 즉 '척도(자)'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측량하는 그 주체가 성경, 즉 '하나님의 그 말씀'인 것이다.

5. 아무리 예수님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 해도(요한복음 1:12), 예수님이 분부하신 '그 복음'의 선포를(마태복음 28:19-20) 통해서 구원의 말씀을 전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즉 '너의 첫 사랑'(요한계시록 2:4)을 떠나면, 무익한 것이다.

6.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그 말씀의 초보에 매여있는 자'는(히브리서 5:12), 죽음의 행실(히브리서 6:1)의 선봉자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요(히브리서 6:6),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자요(히브리서 6:6),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자라서, 그의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는 것이다(히브리서 6:7. 요한계시록 1:7). 왜 그러한 종교적 행위를 끊지 못하고, 종교 속에 발을 디딘단 말인가?

7. 그냥 적당히 타협하면서, 자기 자신의 환경과 조건을 합리화시킴으로써 혼돈주의에 빠진 신앙인의 현실이다. 그토록 종교적 행위를 원치 아니하시는 주님의 경고(육체에 종노릇하는 자, 헛된 수고자, 즉 하나님의 그 왕국에서 받을 상급이 없는 자)를 어찌 방관할 수 있는가?(갈라디아서 4:9-11).

8. 하나님은 거듭난 그 분의 자녀들에게 적당한 것, 타협적인 것을 절대로 원치 아니하신다. 왜 그런가? 탐심, 곧 우상숭배 때문이다(골로새서 3:5).

9.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행위의 탯줄을 끊어야 한다!' 과감하게 종교행위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요한계시록 18:4). 그러나 '나의 행위의 탯줄을 끊자'가 아니라,
'나의 행위의 탯줄을 끊었다' 확신하는 자만이 <고린도전서 2:13-16>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13우리가 또한 그것들을 전하되, 인간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님이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사람들에게 분별되는도다. 2:14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니, 이는 그 일들이 그를 향하여는 어리석음이다. 또한 그 일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 그가 그것들을 알 수 없음이라. 2:15실로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들을 분별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분별받지 아니함이다. 2:16따라서 누가 주님의 그 마음을 알아서, 그 분을 이해시키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마음을 가졌도다. (고린도전서 2:13-16/ KJV화중광야역)

성경은 저자이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풀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듣고 배운 것과는 판이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심하지 말고, 제대로 기초를 잘 다져서,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성경을 파헤쳐 나가기를 권하는 바이다. 샬롬! (2003.3.2)


[부록1] 본문 <에스겔 16:1-5>의 주제 '행위의 탯줄'이 풀리면, 다음의 관련된 성경기록들이 풀린다. 특히 <2절>의 '예루살렘의 가증함'이 무엇을 의미함인지 깨닫게 되면:

16:2Son of man, cause Jerusalem to know her abominations,
16:2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자기의 가증함들을 알게 하여,

<다니엘 9:24-27>이 풀린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다!:

9:24Seventy weeks are determined upon thy people and upon thy holy city, to finish the transgression, and to make an end of sins, and to make reconciliation for iniquity, and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and to seal up the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

9:24너의 백성 위에와 네 거룩한 성읍 위에 칠십 주간들이 정해졌나니, 그 반역을 끝마치고, 죄들을 밀폐하고, 죄악을 대속하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그 환상과 예언서를 보증하고, 그 가장 거룩한 곳을 기름붓기 위함이라.

'그 가장 거룩한 곳'(the most Holy) 지금까지도 번역상 가장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그러나 본 구절은 '지성소'(A Holy of Holies)로서 사람에 대하여 전혀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이것은 <다니엘 8:14>의 성소의 'cleansing'(바르게 됨, 원상복구, 성별됨)을 이룩함으로써, 즉시 '그 끝'(the end)을 이루는 것에 대한 그 해답인 것이다. 이 구절을 '거룩한 분'(메시야)으로 해석하면, 이미 '큰 환란'이 다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세대론주의자들(특히 구원파)에게 속는다. 조심하기 바란다!!

그리고 <마태복음 24:15-16>이 풀린다. (차후에 풀기로 한다.)


그리고 <누가복음 23:27-31>이 풀린디. (차후에 풀기로 한다.)

그리고 <호세아 9:1-17>이 풀린다. (차후에 풀기로 한다.)


이렇듯 성경은 기록말씀들이 서로 얽힌 채 직결되어 있어서, 마치 엉킨 실타래 끈이 하나가 풀리면 전체가 풀려나가듯, 이것이 성경의 묘미인 것이다. 아울러 다음과 같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용어들이 존재한다.



[부록2] 성경이해의 기초는 하나님의 두 가지 시간의 개념을 아는 것이다:


1. 크로노스 시간 / 완성단계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하심의 시간이다. 어제, 오늘 영원토록 불변하는 동일한 시간이다(히브리서 13:8). 사탄은 종교, 곧 '혼돈의 대명사인 네필림'으로 이 시간을 방해해오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카나안인을, 신약시대에는 유태인을, 그리고 현재 이 복음시대에는 뉴월드오더(New World Order) 곧 글로벌리즘(세계화/구조조정 대형화)을 주도하고 있는 자칭 소수의 '엘리트'에 의하여 다수가 억압당하고 있다. 그래서 단 한번에 이것을 해결하시려고(창세기 6:5-7) 하나님이 독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의 그 나무'에 달리게 하사 그분의 피를 받으셨다! 사탄이 지금도 벌벌떨고 있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2. 카이로스 시간 / 종말단계

하나님이 흘려보내시는 역사적 시간이다. 여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뚜렷이 구분되어 실존한다. 이 시간은 흘러 버리면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시간이다. 이 시간의 개념을 오해한 나머지 시한부 종말론들이 각 시대마다 나왔지만, 성취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오히려 반성경적이고 비성경적인 교단들과 신흥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허우적대고 있다.

사탄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자, 소수의 엘리트를 귀합하여서 이른 바 '전쟁'이라고 하는 피흘림을 지금까지 다수에게 자행해오고 있다. 마지막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이 피흘림에 대한 대가는 어찌 받을런지? 그래서 이런 소수 엘리트들의 종말이 비극적이고 비운으로 마감하는 것을 역사적 시간에서는 체험하고 있다.

하나님이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음을 이겨내셨고 부활을 보여주셨고, 마지막 심판주로 다시 오심을 믿고 의지함은 '개인의 선택적 의지'(델렘마)이다. 여기에는 권력, 명예, 재물도 다 필요없다. 오로지 참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그 말씀'(호로고스) 안으로 들어와야 만이, 감히 사탄이 방해하지 못하는 보증받은 안식을 누리게 된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하여, 미움과 비난을 받는 것이니(마태복음 24:9), 이것은 개인의 결단에 달려 있다. 그리하여 사도 베드로께서는 끝까지 믿음으로 참고 인내함이 절실하다고 선포한 것이다(베드로전서 1:3-7).

그런데,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대배도'(Great Apostasy)의 물결이 성행한다 하였으니, 더 이상 축복타령, 구원타령, 거듭남타령, 부흥회타령, 영성훈련타령, 경배찬양타령, 헌금/십일조타령, 건축타령, 취직타령, 사업타령, 생일잔치타령 등을 과감하게 떠나자. 언제까지 이 짓거리들을 하려나...사탄은 점점 '테러위협'의 핵전쟁 올가미로 다수를 죄어 오고 있는데...(2005.12.10)


<Created/20030302> <Modified/20051210> <Updated/20080907>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