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바로알기]


'다리우스/다리오 히스타스피스'는 누구인가?
<베히스툰 비문의 증거>

풀이/ 목회자 정재선


'베히스툰 비문'(The Rock Of Behistun) (비시툰 또는 비수툰/ 현대 페르시아어: بیستون : 고대 페르시아어: 바가스타나 '신의 땅')은 이란의 케르만샤 주의 베히스툰 산에 위치한 다국어 비문이다.

비문은 같은 글의 ①고대 페르시아어, ②엘람어, ③바빌로니아어 세가지 설형 문자로 기록된 세가지 버전을 포함한다. 동인도회사 소속의 영국의 군장교 헨리 롤린슨(Henry Rawlinson)은 1835년과 1843년 두 부분으로 전사시켰다. 롤린슨은 1838년 고대 페르시아 설형문자를 번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람어와 바빌로니아어 글은 롤린슨과 다른 이들에 의해 1843년 이후에 번역되었다. 바빌로니아어는 아카드어의 후기 형태로서 둘 다 셈어이다. 그 후 이 비문은 실질적으로 '페르시야 로제타석'(The Persian Rosetta Stone)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베히스툰 비문은 고대의 글 해독에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가 되었다.

비문은 거의 높이가 15미터에 폭이 100m의 석회암 절벽에 있다. 해당 절벽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의 수도 바빌론과 엑바타나를 잇는 고대 도로에 있다. 여기는 접근하기 어렵게 아래의 산측이 제거되었는데 완성 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페르시아어 글은 5칼럼에 414줄로 되어있다. 엘람어 글은 8칼럼에 593줄 분량이며, 바빌로니아어 글은 112줄이다.


◆'베히스툰 비문'(The Rock Of Behistun) ㅡ 구약성경의 기록들 특히 <다니엘서>에 나오는 이방민족들의 '왕들'의 이름이 진실임을 입증해준다. (이미지프리제공/Wiki).


다음은 고대페르시아어 <1칼럼 11줄>까지의 내용으로서, <다리우스 왕>의 통치 중에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과 그의 계보가 새겨져 있다. <Old Persian Texts/자세히보기>.

◆'베히스툰 비문'(The Rock Of Behistun) ㅡ <1칼럼 15줄>까지의 비문이요, 아래는 그 <1-11줄>까지의 번역이다. (이미지프리제공/Wiki).


(1.1-3.)

페르시아어

1 adam : Dârayavaush : xshâyathiya : vazraka : xshâyatha : xshâyathiy  2 ânâm : xshâyathiya : Pârsaiy : xshâyathiya : dahyûnâm : Visht  3 âspahyâ : puça : Arshâmahyâ napâ : Haxâmanishiya : thâtiy :

번역

I am Darius the Great King, King of Kings, King in Persia, King of countries, son of Hystaspes, grandson of Arsames, an Achaemenian.

나는 대왕이요, 왕중 왕이요, 페르시아의 왕이요, 만국의 왕이요, 히스타스페스의 아들이요, 아케메네스인 아르사메스의 손자인 다리우스(다리오)라.

(1.3-6.)

페르시아어

4 Dârayavaush : xshâyathiya : manâ : pitâ : Vishtâspa : Vishtâspahyâ : pitâ : Arsh  5 âma : Arshâmahyâ : pitâ : Ariyâramna : Ariyâramnahyâ : pitâ: Cishpish : Cishp 6 âish : pitâ : Haxâmanish : thâtiy : Dârayavaush : xshâthiya : avah

번역

Darius the King says: My father was Hystaspes; Hystaspes' father was Arsames; Arsames' father was Ariaramnes; Ariaramnes' father was Teispes; Teispes' father was Achaemenes.

다리우스(다리오)
왕이 말하다: 나의 아버지는 히스타스페스요, 히스타스페스의 아버지는 아르사메스요, 아르사메스의 아버지는 아리아람네스요, 아리아람네스의 아버지는 테이스페스요, 테이스페스의 아버지는 아케메네스였다.

(1.6-8.)

페르시아어

6 âish : pitâ : Haxâmanish : thâtiy : Dârayavaush : xshâthiya : avahyarâ 7 diy : vayam : Haxâmanishiyâ : thahyâmahy : hacâ : paruviyata : âmâtâ : ama  8 hy hacâ : paruviyata :hyâ :amâxam : taumâ : xshâyathiyâ : âha : th

번역

Darius the King says: For this reason we are called Achaemenians. From long ago we have been noble. From long ago our family had been kings.

다리우스(다리오)
왕이 말하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아케메네스인이라 불린다. 예전에 우리는 귀족이었다. 예전에 우리 가문은 왕족이었다.

(1.8-11.)

페르시아어

9 âtiy : Dârayavaush : xshâyathiya : VIII : manâ : taumâyâ : tyaiy : paruvam 10 xshâyathiyâ : âha : adam navama : IX : duvitâparanam : vavam : xshâyathi 11 yâ : amahy : thâtiy : Dârayavaush : xshâyathiya : vashnâ : Auramazd

번역

Darius the King says: there were 8 of our family who were kings before me; I am the ninth; 9 in succession we have been kings

다리우스(다리오)
왕이 말하다: 내 앞에는 8대 왕이 있었으며, 내가 아홉번째 왕족으로서 9대 왕이다.


다음 도표는 '다리우스(다리오)'의 왕족 계보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적합한 이름들에 대하여 통칭(명칭)들에 혼돈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것 이외에는 혼돈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파라오'(Pharaoh)와 '아비멜렉'(Abimelech) 같은 통칭들은 왕의 계열에서 불리우는 총칭들로서, 근대에 이르러서는 '차르'(Czar), '슐탄'(Sultan), '샤'(Shah) 등으로 불리웠던 것이다:


1. '아하수에루스'(아하수에로/AHASERUS)
'the Mighty'(强者) 의미로서, 4개 메디아와 페르시아 왕족 계보의 총칭이다. 따라서 이 명칭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2. '아르타세르세스'(아닥사스/ARTAXERXES)
'대왕'(Great King) 혹은 '왕국'(Kingdom)을 의미하며, '아르타크샤스트'(Artachshast/Arta=Great=大. Kshatza=Kingdom=王國)와 동의어요, 오늘의 '샤'(Shah)에 해당된다.

3. '다리우스'(다리오/DARIUS)
'억압자'(Restrainer) 혹은 '관리자'(Maintainer)라는 의미를 지닌 이 용어는 본래 '왕'(King), '통치자'(Ruler)라는 총칭이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이 용어는 '억압자'(Coercer) 의미를 지닌다. '세르세스'(XERXES)는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 있는 자신의 비문 속에 자신을 '다리우스'라고 부른다.

한 비문은 '세르세스 대왕'(XERXES the great king)으로 시작하며, 그 다음 옆에는 '다리우스 왕'(DARIUS the king)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다리우스 히스타스피스'(DARIUS HYSTASPIS)를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다리우스/다리오'(DARIUS the son of HYSTASPES)라고 지칭하였으니, 이는 자신의 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ASTYAGES) 곧 '메데인 다리우스/다리오'(Darius the Mede)와 자신을 구별시키기 위함인 것이었다.


◆현재 이란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에 있는 페르시아 역대 왕들의 암벽동굴군묘(岩壁洞窟群墓) ㅡ '시라즈'(Shiraz)에서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가는 길에 있다. (왼쪽부터/ 다리우스(다리오) 1세, 아르타세르세스(아닥사스), 아하스에루스(아하수에르), 다리우스(다리오) 2세).  
<자세히보기>.


[다니엘서에 기록된 왕들의 이름]

1. '메디아인 다리우스/다리오'(Darius the Median) <다니엘 5:31>:

    5:31And Darius the Median took the kingdom, being about threescore and two years old. (Daniel 5:31, KJV)

    5:31그리고 메디아인 다리우스(다리오)가 그 왕국을 취하였더니, (그가) 약 육십이세였더라. (다니엘 5:31, KJV화중광야역)


1) '다리우스'(다리오)가 '관리자'라는 총칭을 의미하고, '세르세스'와 기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된 사실을 벗어나서, 현대 비평가들은 그런 왕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2) '아스티아게스'가 '다리우스'(다리오)라 불리웠다. '코레스'(고레스)는 '아스티아게스'의 아들로서 제2인자 즉, '부섭정'(副攝政/Co-regent)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고레스의 장군 '고브리아스'(GOBRYAS)가 코레스의 이름으로 바빌로니아의 성읍을 취한 것이다(이사야 45:1 참조. 예레미야 50:30-31 참조).


2. '다리우스/다리오'(Darius) <다니엘 6:1>:

    6:1It pleased Darius to set over the kingdom an hundred and twenty princes, which should be over the whole kingdom. (Daniel 6:1, KJV)

    6:1다리오는 자기가 좋을 대로 그 왕국 위에 일백 이십명의 통치자들을 세웠고, 그 온 왕국을 다스리게 하였더라. (다니엘 6:1, KJV화중광야역)


1) <다니엘 5:31>의 '메디아인 다리우스/다리오'(Darius the Median)가 바로 <느헤미야 2:1>과 <에스라 6:14>의 '아르타세르세스'(아닥사스)와 <에스더 1:1>의 '아하스에루스'(아하수에로)와 동일한 호칭인 것이다. 이 호칭들은 모두 한 사람 및 동일인을 총칭하는 것이었다.


'코레스'(고레스)의 계보를 입증해주는 '원통 점토판 비문'(Cuneiform Cylinder)이다. (대영박물관 소장/이미지프리제공/Wiki)


2) '코레스'(고레스)의 계보를 '코레스 원통 점토판 비문'(Cuneiform Cylinder)을 통하여 메대인 왕들과 비교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이 '다리우스'(다리오)가 '아스티아게스'임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베히스툰 비문'(The Rock Of Behistun) 속에 기록된 '아르사메스'와 '코레스 원통점토판 비문' 속에 기록 '캄비세스'라고 하는 호칭들은 한 사람, 즉 동일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

    1:4And whosoever remaineth in any place where he sojourneth, let the men of his place help him with silver, and with gold, and with goods, and with beasts, beside the freewill offering for the house of God that is in Jerusalem. (Ezra 1:4, KJV)

    1:4그리고 그가 거주하는 어느 곳에서든 남아있는 자는 누구든지 예루살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그 집을 위하여 자원하는 제물 이외에는, 은으로, 금으로, 물건들로, 짐승들로 그를 돕게 하라. (에스라 1:4, KJV화중광야역)

    (30) ... From [Babylon] to Aššur and (from) Susa, (31) Agade, Ešnunna, Zamban, Me-Turnu, Der, as far as the region of Gutium, the sacred centers on the other side of the Tigris, whose sanctuaries had been abandoned for a long time, (32) I returned the images of the gods, who had resided there [i.e., in Babylon], to their places and I let them dwell in eternal abodes. I gathered all their inhabitants and returned to them their dwellings. (Cyrus Cylinder LL.30-32)

    코레스 내가 그들의 모든 거주인들을 모았고, 그들을 그들의 고토 거주지로 돌려보냈도다
    . (32행, 코레스 원통점토판 비문 화중광야역)


위 '코레스 원통점토판 비문'(30-32행)이 구약성경 <에스라 1:1-4>과 일치함을 증거해준다. 본 비문이 유다 및 그 유태인들을 정확하게 지칭하지 않지만, <제32행>의 마지막 구절은 코레스 왕이 사로잡혀 왔던 그 유태인들을 그들의 고토(古土)로 돌려보냄을 허락하는 코레스의 정책으로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아스티아게스'는 '메디아인 다리우스/다리오'와 동일인임이 일치하므로 모든 난해는 사라진다. 이처럼 성경기록은 위에 언급된 그 세 가지 출처에서 밝혀진 진술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코레스 대왕'의 혈통 계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4) 만일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메디아인 다리우스/다리오'는 역사는 물론 연대기록에서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게 되므로, 그는 역사의 장 속에 들어갈 위치를 얻을 수 없게 된다.


3. '페르시아인/바사인 코레스/고레스'(Cyrus the Persian)
<다니엘 6:28>:

    6:28So this Daniel prospered in the reign of Darius, and in the reign of Cyrus the Persian. (Daniel 6:28, KJV)

    6:28그리하여 이 다니엘이 다리우스(다리오)의 그 통치 안에서와, 페르시아인(바사인) 코레스(고레스)의 그 통치 안에서 번영을 누렸더라. (다니엘 6:28, KJV화중광야역)


1) 여기서 '페르시아인(바사인) 코레스(고레스)'는 '메디아인 다리우스/다리오'의 아들이다. 그는 '젊은 다리우스/다리오'(young DARIUS)요, 그의 아버지 '아스티아게스'(아하수에루스/아하수에로)는 '늙은 다리우스/다리오'(old DARIUS)라 부른다. (이사야 45:1 비교).


4. '아하수에루스/아하수에로의 그 아들 다리우스/다리오'(Darius the son of Ahasueru)=코레스/고레스 <다니엘 9:1>:

    9:1In the first year of Darius the son of Ahasuerus, of the seed of the Medes, which was made king over the realm of the Chaldeans; (Daniel 9:1, KJV)

    9:1메데인들의 그 씨, 곧 아하스에루스(아하수에로)의 그 아들 다리우스(다리오)가 칼데아인들의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던 첫째 해에, (다니엘 9:1, KJV화중광야역)


1) 여기서 '아하수에루스의 그 아들 다리우스'(아하수에로의 그 아들 다리오)는 바로 '코레스'(고레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다니엘 5:31>에서는 '아스티아게스'를 '다리우스/다리오'라 불렀다.

2) '아하수에루스'(아하수에로)도 한 호칭으로서 훌륭한 왕 '아스티아게스'와 동일인 총칭이요 곧 '코레스'(고레스)의 아버지이다.



'코레스'(고레스) 2세 통치시대의 영토. (이미지프리제공/Wiki)


이 '코레스 원통점토판 비문'의 <제21행>에는 코레스의 부친과 조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자세히보기>:

(제21행)

페르시아어

DUMU mKa-am-bu-zi-ia LUGAL GAL LUGAL URU an-ša-an DUMU DUMU mKu-ra-áš LUGAL GAL LUGA[L U]RU an-ša-an ŠÀ.BAL.BAL mši-iš-pi-iš LUGAL GAL LUGAL URU an-šá-an

번역

the son of Cambyses, great king, king of Anšan, grandson of Cyrus, great king, king of Anšan, descendant of Teispes, great king, king of Anšan,

나는 대왕이요, 안산의 왕 캄비세스의 아들이요, 대왕이요, 안산의 왕 코레스의 손자요, 대왕이요, 안산의 왕 테이스페스의 후손이다.


'코레스/고레스 대왕'의 부친은 '캄비세스 1세'로서, '안산의 왕 코레스/고레스'(Cyrus, king of Ansan)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안산의 왕 코레스'는 '코레스/고레스 대왕'의 조부요, 일부 역사가는 '코레스/고레스 1세'라 칭하고, '성경에 나오는 '코레스/고레스'를 '코레스/고레스 2세'라 칭한다. 참고로 구약성경에 '코레스'(고레스) 이름이 23회 이상, 그리고 <외경> 속에 인용되어 있다: [구약성경인용] <역대기하 36:22-33. 에스라 1:1-8: 3:7; 4:3,5; 5:13-17, 6:3,14. I이사야 44:28; 45:1,13; 다니엘 1:21; 6:28; 10:1> [외경인용] <에스드라 1서 2>.


'다리우스 히스타스피스'는 누구인가? ㅡ <베히스툰 비문의 증거>

'다리우스 대왕' 혹은 '다리우스 1세'(기원전 549년경–기원전 485년)
은 기원전 522년부터 기원전 485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한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ds Dynasty)의 황제이다.

그는 뛰어난 행정가로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제도를 개선하고 법률을 제정했으며, 대규모 건축사업을 벌여 위대한 건축물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본토를 침공했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패했다.

'다리우스 1세'는 파르티아의 총독이었던 '히스타스페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그는 '코레스/고레스 2세'(구약에 인용)에게 반란 의혹을 받았고, 이집트에서 황실의 근위대로 복부했다. 기원전 522년 '코레스 2세'(코레스 대왕)의 아들로 황제였던 '캄비세스 2세'가 죽자, '다리우스'는 이집트에서 '메디아'로 갔고, '캄비세스 2세'의 뒤를 이어 황제로 자처한 '바르디야'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제위 초기 그는 끊임없이 '코레스/고레스 2세'의 정식 후계자를 자처하는 많은 반란자들의 반란에 시달려야했다. '바빌로니아'에서 2번, '수시아나'에서 3번에 걸친 반란이 일어났고, 다른 곳에서도 '코레스/고레스 2세'의 후계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는 단호하게 반란을 진압하면서 왕권을 강화해갔고,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들 반란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군대에 봉급을 지급하는 등 군대를 개혁했고, 효과적으로 군대를 지휘할수 있었다. '수시아나'에서 일어난 세번째 반란을 진압하고 그는 비로소 키로스의 진정한 후계자로 권력을 장악했다.

국내의 정권이 안정되자 그는 외부로 눈을 돌려 제국의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기원전 492년 다리우스1세는 사위인 장군 마르도니우스에게 그리스 원정을 맡겼으나 그의 함대가 아토스 산 근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파괴되어 실패했다. 기원전 490년에는 다티스의 페르시아 군대가 에레트리아를 점령하고 아테네로 침공해 들어가는 중에 마라톤에서 아테네 군에게 패배하여 퇴각했다. '다리우스 1세'는 다시 3번째로 그리스 원정 준비를 했으나, 때마침 기원전 486년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10월에 죽었다.

'다리우스 1세'는 정력적으로 대규모 건축사업을 추진했는데, 그의 페르시아 건축양식은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기원전 521년 '수사'를 새로운 행정도시로 삼아 요새와 궁전을 재건했다. 이전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이던 '파사르가다에'가 예전의 왕들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절하고, 그는 자신의 고향에 '페르세폴리스'를 새로이 세우고 수도로 만들었다. 이 도시의 성벽은 거의 18m에 달하고 두께는 9m 정도 되는 대규모의 공사였다. 비록 그의 생전에 대규모의 궁전과 보물창고등이 건설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뒤를 이어 완공했다.

'다리우스 1세'
'코레스/고레스 2세'가 시작한 '사트라프'(총독)제도를 완성하여 전 제국을 20개의 속주로 나누고, 각 속주의 세금을 확정해 공평히 부과했다. '다리우스 1세'는 공평한 한 정책으로 제국의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는데 성공했는데, 각 민족의 고유한 종교, 관습, 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각 지역의 총독(사트라프)들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피지배 민족들에게 맞는 법률을 정해 법전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또한 독립적인 재정과 어느 정도 군사적 자율권도 보장해 주었는데 이렇게 각 지방간의 권력을 분산함으로 인해 반란의 가능성을 낮추었다.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519년에 바빌로니아로 '사로잡혀온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4:4Then the people of the land weakened the hands of the people of Judah, and troubled them in building,4:5And hired counsellors against them, to frustrate their purpose, ①all the days of Cyrus king of Persia, even ②until the reign of Darius king of Persia4:6And ③in the reign of Ahasuerus, in the beginning of his reign, wrote they unto him an accusation against the inhabitants of Judah and Jerusalem. 4:7And ④in the days of Artaxerxes wrote Bishlam, Mithredath, Tabeel, and the rest of their companions, ⑤unto Artaxerxes king of Persia; and the writing of the letter was written in the Syrian tongue, and interpreted in the Syrian tongue. (Ezra 4:4-7, KJV)


①페르시아의 왕 코레스/고레스의 모든 날들(all the days of Cyrus king of Persia)
<에스라 4:5>:

    코레스/고레스 왕은 '아스티아게스'왕과 '에스더'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모계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코레스'(고레스)는 유태인이요, 메시야의 뿌리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의지'인 '크로노스' 안에서의 계획인 것이다. 이 '코레스'를 한 때는 '다리우스/다리오'라고 칭하였다(다니엘 9:1 참조).


②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다리오의 통치 때까지(until the reign of Darius king of Persia)
<에스라 4:5>:

    '다리우스 히스타스피스' 즉 '다리우스/다리오 1세'이다.


③아하수에루스/아하스에로의 통치 안에(in the reign of Ahasuerus) <에스라 4:6>:

    '위엄한 왕'이란 의미를 지닌 '아하수에루스'(아하수에로)는 ①의 '코레스/고레스' 왕이나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아스티아게스'를 지칭한다.


④아르타세르세스/아닥사스의 그 날 들에(in the days of Artaxerxes) <에스라 4:7>:

    '대왕'이란 의미를 지닌 '아르타세르세스/아닥사스'는 ①의 '코레스/고레스' 왕을 지칭한다.


⑤페르시아의 왕 아르타세르세스/아닥사스를 향하여(unto Artaxerxes king of Persia) <에스라 4:7>:

    '대왕'이란 의미를 지닌 '아르타세르세스/아닥사스'는 ①의 '코레스/고레스' 왕을 지칭한다.


[맺는말]

1. 앞장에서는 ['코레스'(고레스/Cyrus) 왕은 누구인가?]를 풀어 놓았다.
<자세히보기>
. 그리고 본장에서는 '다리우스 히스타스피스' 즉 '다리우스 1세'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그는 '코레스'(고레스) 대왕의 아들이 아니다. 다니엘이 '코레스'를 한 때는 '다리우스/다리오'라고 칭하였다(다니엘 9:1 참조). 그러나 그 총칭이 '다리우스/다리오 1세'와는 다른 인물임이 밝혀졌는데, 그 근거는 '베히스툰 비문'(The Rock Of Behistun) ㅡ <1칼럼 15줄>까지의 기록이었다. 그 비문 속에서, 그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7대 황제인 '코레스'(고레스) 대왕의 후계자로서 9대 황제임이 밝혀졌다.


2. '코레스'(코레스) 이름은 구약에 인용된 '코레스 대왕'의 조부 '코레스 1세' 와 '코레스 2세'인 '코레스 대왕' 이외는 더 언급된 자료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차후에 확실한 관련 자료가 입수된다면, 숙고하여서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코레스 2세'와 '다리우스/다리오 1세' 두 대왕이 70년간 '사로잡힌 그 유태인들을 해방'시켰고, 예루살렘 고토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그 성전'을 재건토록한 역사적 실존 인물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이로써 성경의 기록들이 정확한 진실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안티-그리스도교' 무리들이 성경기록을 헐뜯고 부정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얄팍한 인본주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매도하는 그러한 종류의 글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 준엄한 교훈을 얻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보았다. 본 자료에 관하여 혹여 '잘못 기록된' 자료와 부족한 자료가 필요시에는 보충할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샬롬.


<Created/20100316> <Updated/201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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