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8] 바벨의 참뜻[2] - 하나님이 왜 모이게 하셨나?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해 오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통하여 영존하는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셨던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가 너희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너희를 모든 선한 말씀과 일 안에 세우시니라.'
(데살로니카후서 2:16-17 / KJV화중광야역)


글/ 정재선 목회자


2. 모으심(부르심을 받은 갈릴리인들=회심을 통한 '모임'의 시작)

1) '바벨'의 이중성 의도

무척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이 '그 아담'의 후손들을 '70개 민족들'로 흩으신 주목적은 바로 그들을 모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한 언어에 속했던 그들의 언어들이 나누어진 세대들로서, 다가 올 그 세상, 곧 하늘의 그 왕국 안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믿지 않는 자들'(unbelievers)인 것이다. 그런데 흩으셨던 하나님이 그들을 모이시게 하셨다. 왜 모이게 하셨는가? 퍼부어 주시려 함이었다. 무엇을 퍼부어 주시려 했는가?

2:1And when the day of Pentecost was fully come, they were all with one accord in one place. 2:2And suddenly there came a sound from heaven as of a rushing mighty wind, and it filled all th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2:3And there appeared unto them cloven tongues like as of fire, and it sat upon each of them. 2:4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Ghost, and began to speak with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Acts 2:1-4/ KJV)

2:1그리고 오순절의 날이 이르자, 그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었다. 2:2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한 소리가 났고, 그것이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을 가득 채웠다.2:3그리고 거기에 갈라진 혀들이 그들을 향하여 나타났고, 그것이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있었다.2:4그리고 그들 모두가 그 성령으로(위로부터 임하신 그 능력으로) 가득찼고, 그 성령님(예수님의 영)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2:1-4/ KJV화중광야역)

위 본문에서 다시 한번 '바벨'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창세기 11장>에서의 경우와는 다르다. 위 본문에서 '성령으로 가득찼고'에서의 '성령'(the holy ghost)은 '퓨뉴마 하기온'(πνευμα αγιον)으로 '위로부터 임하신 그 능력'(the power from above) 즉 베푸시는 자(성령님=Giver)께서 은혜로 내려주신 선물인 것이다. 이것은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언해주신 그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24:49And, behold, I send the promise of my Father upon you: but tarry ye in the city of Jerusalem, until ye be endued with power from on high. (Luke 24:49/ KJV)

24:49그리고 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그 약속을 너희를 위하여 보내니, 다만 너희가 높은 곳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을 때까지, 너희는 예루살렘의 그 성읍 안에 머물라. (누가복음 24:49/ KJV화중광야역)

위 오순절 사건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지신 후'(부활하신 후),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올리브산 안에 모인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확신시켜 주신 바로 그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1:4And, being assembled together with them, commanded them that they should not depart from Jerusalem, but wait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 which, saith he, ye have heard of me. 1:5For John truly baptized with water; but ye shall be baptized with the Holy Ghost not many days hence. (Acts 1:4-5/ KJV)

1:4그리고 그들과(사도들과)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다만 그 아버지의 그 약속을 기다려야 한다고 분부하셨으니,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너희가 내게서 들은 바다. 1:5실로 요한은 물로 밥팀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지나지 않아 그 성령으로 밥팀례를 받을 것이다.' 하셨다. (사도행전 1:4-5/ KJV화중광야역)

다시 <사도행전 2장>으로 돌아간다. 하나님 '그 아버지의 그 약속'(the promise of the Father)은 예수님이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드려지시고 난 지, 7주 곧 49일이 지나고 바로 다음날 50일째 되는 날, 바로 오순절(칠칠절 혹은 초실절) 날에 성취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퍼부어진' 또 하나의 '바벨'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퍼부어졌는가? 바로 혀들이었다. 언어들이란 뜻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지게 된다:

2:5And there were dwelling at Jerusalem Jews, devout men, out of every nation under heaven. 2:6Now when this was noised abroad, the multitude came together, and were confounded, because that every man heard them speak in his own language.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하늘 아래 각 민족 중에서 온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인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 때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무리가 몰려왔고, 혼란에 빠졌으니, 이는 각자가 그 사람들이 자기네 말로 전하는 것을 들었음이라. (사도행전 2:5-6/ KJV화중광야역)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120명의 갈릴리인들 위에 '퍼부어진' 것은 '언어들'이었지만, 몰려 온 무리들은 다시 한번 '바벨' 즉 '혼란'에 빠지고 만다. <창세기 11장>에서 흩어졌던 '70개 민족들'이 오순절 날에 '16개 민족들의 언어들로'(사도행전 2:9-11) 모이게 된 것이다. '톰슨성경'(기독지혜사, 1987)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모르는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구원의 도리(복음)을 전하기 위한 '언어의 기적' 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바벨'의 목적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자기들 멋대로 세우려던 '한 도성과 한 탑'을 무너뜨리시고(혼란/창세기 11:8), 결국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교회를 세우시는 의도에(퍼부음/사도행전 2:4)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벨의 이중성을 지닌 참뜻'이요, 여기에 하나님의 신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2) 왜 갈릴리인들인가? : 예수님의 전도 중심지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갈릴리'도 그 주제 중 하나이다. 지금 오순절 날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드디어 대망해 오던 '그 성령'(The Holy Ghost)을 은혜의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이 현장을 목격하던 무리들이 바로 그들이 '갈릴리인들'임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자가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네 방언으로 듣고 있는가?' 하였다. (사도행전 2:7-8/ KJV화중광야역)

구약에서 갈릴리는 멸시의 땅이요,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으로 취급받아 흑암에 있던 그들이 큰 빛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빛이 되었으며, 따라서 유대인들에게서 택함과 빼냄을 받은 자들은 '갈릴리인'이 될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한 것이다:

그 분이 스불룬의 땅과 납달리의 땅을 처음에는 가볍게 괴롭혔다가, 그 후에 요단 건너 민족들의 갈릴리 안에 있는 바다의 길에서 더욱 가혹하게 괴롭히셨을 때,그 침침함이 괴로움을 당하던 때 만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둠 안에서 행하던 백성이 한 큰 빛을 보았으며, 그 빛이 죽음의 그림자의 땅 안에 거주하는 자들 위에 비췄도다. (이사야 9:1-2 / KJV화중광야역)

예수님이 손수 갈릴리 바다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셨고, 예수님이 손수 갈릴리인이 되사, 전도 사역을 하신 기지(베이스 캠프)가 바로 갈릴리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예배의 중심지요, 서기관, 바리새인, 장로가 모이는 곳이요, 성전이 있는 데도 주님이 계시지 않는 종교의 중심지였다. 반면, 갈릴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곳이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되, '두려워 말라. 거기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 안으로 가라 전하여라. 그리하면 그들이 거기서 나를 만날 것이다.' 하셨다. (마태복음 28:10/ KJV화중광야역)

여기서 '갈릴리'는 부활한 자가 가야 할 장소요, 부활한 자가 만나야 할 장소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할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오순절 날 무리들이 증언했던 말, 즉 '전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한 그 말의 의미를 깊이 새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창세기 11장> 시날의 땅 안에서 세우려던 '한 도성과 한 탑'을 허물어 버리시고 흩으셨던 하나님은 '갈릴리'에서 다시 불러 모으사, '모임'(교회 용어는 성경적이 아님) 세우신 것이니, 이 심오한 비밀을 깨닫기 바란다. 이 비밀은 '바벨' 사건으로 인하여 흩으신 목적이 밝히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을 흩으신 주목적은 바로 '열두 별자리'라고 부르는'12궁'(The Zodiac)과 '황도'(The Constellations)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계시를 보존하기 위함이었다고 앞에서 밝힌 바 있다.


3. 구속하심(마지막 대환란중 돌아온 남은 자들)

(9)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그리고 메소보다미아 안에서, 유대 안에서 ,갑바도기아 안에서, 본도와 아시아,(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안에서, 애굽 안에서, 그리고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 여러 지방들 안에서 사는 거주자들과, 로마에서 온 나그네들,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 (11)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인 우리가 그들이 우리네 방언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 하니, (12)그들이 모두 놀라고, 의심하며 서로 말하기를,'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였다. (13)다른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였다.' (사도행전 2:9-13/ KJV화중광야역)

한편, 이상의 16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강림하심을 목격하고는 '언어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놀라면서도 의심을 버리지 못하였고, 오히려 '새 포도주에 취한 자들'이라고 조롱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들이 바로 <창11장>에서 하나님이 흩으셨던 '70개 민족'을 대변하게 된 것이며,<Henry Aintsworth, Annotations Up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1616)>/ <John Lightfoot, A Few, And New Observations Upon The Book Of Genesis, London, 1642>, 바로 이들이 이방인들로서, 주님이후에 사도 바울을 세우사 전도의 표적들로 삼으신 그 예표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예배의 중심지요, 종교적인 율법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요, 성전(건물로서)이 있는데도,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이 종교적인 율법주의자들을 만나지 아니하신 곳이었다. 그러니 '언어의 기적'이 일어난 후 예루살렘은 온통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다시 한번 '바벨' 즉 '혼란'이 일어난 곳이었다. 예수님이 '그 나무'에 달려 죽으신 후 부활하셨고, 40일 후엔 승천하셨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는 그 소식이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해서 갈릴리인들이 목숨을 걸고 전도하기에 힘쓰니, 교회는 급속히 더해져 나가기 시작했다(행2:14-47).한편, 사탄이 이것을 묵과할 리 없다. 그는 계속 교회를 핍박해 나가기 시작했다(행3-6장). 끝내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임과(행7:59,60)<오른쪽 그림>, 교회에 밀어닥친 큰 박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선교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안티옥으로 이전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그 교회에 대한 한 큰 핍박이 있어,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의 전 지역으로 흩어졌다.('디아스페이로=G1289'와 히브리어 '푸츠=H6327'과 동일어임)' (사도행전 8:1/ KJV화중광야역)

그렇지만 예루살렘에서의 이 '바벨' 즉 '혼란'은 <창11장>의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이것도 '혼란'의 '흩어짐'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그 주목적은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회심'(Conversion)에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들의 후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심'이 그 특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 첫째는, 함의 후손인 에티오피아의 내시의 회심이다 <사도행전 8장> :

(26)그 때 주님의 천사가 빌립을 향하여 전하여, 말하기를,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한적한 곳인 가자로 내려가는 길까지 남쪽을 향하여 가라.' 하셨다. (27)그러자 그가 일어나서 갔다. 그런데 보라, 에티오피아의 한 사람, 곧 에티오피아인들의 여왕 간다게의 휘하에서, 모든 그 여자의 재정을 담당하는 큰 권위를 지닌 한 내시가, 예루살렘으로 예배드리러 왔다가, (28)돌아가고 있는데, 그의 마차 안에 앉아서 선지자 에사이아스(이사야)의 글을 읽었다...(34)그리고 그 내시가 빌립에게 대답하여, 말하되, '당신께 청하오니, 선지자의 이 말씀은 누구에 관한 것입니까? 자신에 관한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 관한 것입니까?' 하였다. (35)그 때 빌립이 자기의 입을 열었고, 바로 그 성경기록에서 시작하였고, 그를 향하여 예수님을 선포하였다. (36)그리하여 그들이 그 길을 가다가, 그들이 물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 내시가 말하되, '보소서, 여기 물이 있습니다. 내가 밥팀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습니까?' 하였다. (37)그러자 빌립이 말하되,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믿었다면, 당신은 밥팀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가 서슴없이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그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하였다. (38)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빌립과 그 내시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갔고, 그리고 빌립이 그에게 밥팀례를 베풀었다. (39)그리고 그들이 그 물에서 올라왔을때,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려가시니, 그 내시가 빌립을 다시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는 기뻐하면서 자기 길을 갔다.'  (사도행전 8:26-38/ KJV화중광야역)

위 본문은 빌립 사도를 통해서 에티오피아의 내시가 예수님의 제자화되는 사건이었다. 그 과정이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유대인의 경우에는 먼저 '회개' 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반면, 이방인들의 경우는 '말씀'부터 들어야 한다. 본문은 후자에 속한다:


(
1) 말씀(λογοζ):(35절)빌립이 내시에게 먼저 말씀, 즉 예수님을 선포함 (사53:7 인용)

<이사야서>는 구약의 모든 책 중에서 왕관 보석에 해당된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총 66장 중에서 <제53장>을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메시야의 유년기, 전도 사역, 희생적 죽음, 그리고 부활을 생생하고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특히 <제53장>은 <창3:15> 속에 묘사된, 즉 모든 인류의 구속에 대한 한 가지 그림으로서, 첫 번째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이다.<Yacov Rambsel, The Genesis Factor: The Amazing Mysteries of the Bible Codes, San Antonio: Messianic Ministries, 2000, p.135>

빌립 사도가 내시에게 읽어 준 성경구절은 <이사야 53:7>이다:

'그 분이 압제를 당하셨고, 고난을 당하셨어도, 그 분은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그 분이 한 어린 양처럼 살육장으로 끌려 가시며, 그 털 깎는 자들 앞에 한 양 같이 말없이, 그 분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신다.' (이사야 53:7/  KJV화중광야역)

본절 속에 담겨진 비밀은 이렇다. 예수님이 이 세상 이후로 모든 남자와 여자를 대신하여 그리고 다가오는 세대를 대신하여 구속의 값을 치루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자께서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셨지만, 영존하는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그 분을 불러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Yacov Rambsel, p.153>

2) 밥팀례(βαπτισμα): (36-38절)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그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심을 온 마음으로 믿음

(36)그리하여 그들이 그 길을 가다가, 그들이 물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 내시가 말하되, '보소서, 여기 물이 있습니다. 내가 밥팀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습니까?' 하였다. (37)그러자 빌립이 말하되,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믿었다면, 당신은 밥팀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가 서슴없이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그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하였다. (38)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빌립과 그 내시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갔고, 그리고 빌립이 그에게 밥팀례를 베풀었다. (사도행전 8:36-38/ KJV화중광야역)

이처럼 밥팀례(세례, 침례 만으로는 의미 표현이 절대 부족함=자세한 것은 필자의 <제3차 킹제임스성경 세미나>를 참조바람)의 목적은 삶을 주님을 위해 바치겠다는 순종인 것이다.

3) 제자화(μαθητηζ): (39절)기뻐하며 돌아감

 
'그리고 그들이 그 물에서 올라왔을 때,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려가시니, 그 내시가 빌립을 다시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기뻐하면서 자기 길을 갔다.' (사도행전 8:39/ KJV화중광야역)

그리하면 제자된 된 누구나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다(행1:8). 이렇게 해서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이 회심하였고, 구원을 얻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바벨의 참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


2) 둘째는, 셈의 후손 사울(후에 바울)의 회심이다 <사도행전 9,22장> :

'(2)그리고 그가(사울) 다마스커스에 있는 회당들에게 보낼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가 이 길에 속해 있는 남자들이든 여자들이든 눈에 띄면, 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었다. (3)그리고 그가 길을 떠나 다마스커스에 가까이 왔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한 줄기의 빛이(초하르) 그를 둘러 비추는 것이었다...(7)그리고 그와 함께 떠나 온 사람들은 한 음성을 들으면서도 아무도 보지 못한 채, 말을 못하고 서 있었다. (8)그리고 사울이 땅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두 눈들이 열렸을 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그의 손을 이끌고, 그를 다마스커스 안으로 데려갔다. (9)그리고 그가 사흘 동안을 보지도 못하였고,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였다. (사도행전 9:2,3,7-9/ KJV화중광야역)

여기서 '한 줄기의 빛이(초하르) 그를 둘러 비추는 것이었다'는 헬라어로는 '페리아스트랍토' (περιαστραπτω=4015)이다. '두루비추다'라는 의미다. 이것은 '페리'(περι=관련되다 =4012)와 '아스트랍토'(αστραπτω=번쩍이다=797)에서 유래된 복합어이다. 그리고 '아스트랍토'는 '아스테르'(αστερ=797), 즉 '별'에서 유래되었고, 이 '아스테르'는 그 어간이 '스트론뉘미'(στρωννυμι=4766)에서 유래되었다. 즉 '펼치다. 마련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정도면 사울이 다마스커스<왼쪽그림/사울이 예수 추종자들을 잡으러 통과한 다마스커스문> 도상에서 겪은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핍박자인 사울을 복음 전도자로 쓰시기 위하여 '하늘의 것들인 별들을(창1:16,시19편, 사13:10) 한 곳으로 모아, 빛으로 마련한 자리'에서 역사하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인가 말이다!!! 여기서 이해가 안 된다고 푸념하거나 단념해서는 안 된다.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묵상하고 상고하기 바란다.

우선 어둠(고난과 역경)을 접해 본 자만이 이 '초하르' 즉 '광채'인 빛을 체험하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신다. 그런 자가 바로 위로부터 사랑받는 주님의 참자녀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시적인 빛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교를 앞지를 수 없는 기독교의 한계다.

 

◆사울이 회심하게 된 다마스쿠스에서의 한 줄기의 빛은 '초하르'(창세기 6:16)였다.

 

◆사울(핍박자_을 바울(전도자)로 바꾸신 다마스쿠스의 '초하르'는 구원의 '광채'였다.



바울이 이 '초하르'(화중광야 홈피 '영성칼럼'에서 <하얀 눈의 신비>를 참조바람)인 '광채'인 '그 빛'으로 옷입힘을 받아, 진리를 깨닫고는 <롬11장>에서 '원올리브나무'(유대교)와 '야생올리브나무'(기독교)가 결국은 하나임을 선포하였는데, 기독교계는 방어선(신학)을 구축하고서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이다. 그리고 이 '초하르'는 사울이(바울이 되기 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상에서 눈을 멀게 한 바로 그 광채인 빛이다. 이 때의 상황을 <행22장>에서 사울은 이렇게 회고한다:

'(9)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실제로 그 빛(초하르)을 보고 놀랐으나, 내게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다...(11)나는 그 빛의 영광으로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어,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커스 안으로 들어갔다...(14)그가(아나니)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그 하나님이 너를 택하사, 그 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의로우신 분을 보게 하시며,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다. (15)이는 네가 보고 들은 일에 관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그 분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16)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서 밥팀례를 받으라. 그리고 주님의 그 이름을 부르고 의지함으로써 네 죄들을 씻어버리라.' 하였다...(21)주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떠나라, 이는 내가 여기서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낼 것임이다.' 하셨다.'(사도행전 22:9-21/ KJV화중광야역)

여기서도 주님은 다시 '바벨이라고 하는 혼란'을 일으키신다. 결국은 '사울'을 뽑아내사, 회심시키고, 주님의 증인으로 쓰시고자 함이었다.


3) 셋째는, 야펫의 후손 로마군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이다 <사도행전 10장> :

 '(9)그 다음 날, 그들이(고넬료 사람들) 계속 길을 갔고, 그 성읍(욥바)을 향하여 가까이 왔을 때, 베드로가 제육시 경에 기도하려고 지붕 위에 올라 갔다. (10)그런데 그가 심히 배가 고팠고, 먹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집 사람들이 음식을 마련하는 동안, 그가 한 황홀경 속에 빠졌고,(11)하늘이 열려 있고, 큰 보자기 같은 한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이 달려, 땅 아래로 향하면서 자기를 향하여 내려오는 것을 보았더니, (12)그 안에는 땅의 갖가지 네 발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었다. (13)그런데 한 음성이 그에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 먹으라.' 하였다. (14)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되, '주님, 절대로 안 됩니다. 나는 결코 속된 것이나 부정한 것을 먹은 적이 없음입니다.' 하였다. (15)그러자 그 음성이 또 다시 두 번째 그를 향하여 전하되, '하나님이 정결케 해놓으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였다. (16)이런 일이 세 번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릇이 다시 하늘 속으로 올리워 받아졌다. (17)그 때 베드로가 자기가 보았던 이 환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속으로 궁금해 하고 있는데, 보라, 고넬료로부터 보내진 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왔고, 그 문 앞에 섰고, (18)불러냈고, 베드로라는 시몬이 거기에 묵고 있는지 물었다.' (사도행전 10:9-18/ KJV화중광야역)

끝으로, 하나님은 노아의 세 아들들 중 야펫의 후손의 회심을 이루시는 계획을 실행하신다. 그것이 로마군 백부장인 고넬료였다. 그는 지원병으로 구성된 로마군 백명을 거느린 백부장으로서 카이사랴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경건한 자로서 종교적인 마음과 순수한 열정은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구원은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마치 종교적인 열성은 있었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던 에티오피아의 내시와 같은 상태에 있었다(행8:27).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서 구원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파헤쳐서 풀면서 깨달아야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딤후 3:15. 벧전1:10). 결국 그 내시는 빌립의 성경풀이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태에 있었던 고넬료가 '환상'을  보게 되었고, 이런 상태에 있는 고넬료를 향하여, 주님은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그를 구원시키라고 명하신다.

고넬료의 환상(행10:1-6)

 

  • 고넬료의 환상='호라마'(οραμα)=가공적인 상황이 아니라,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짐. 고넬료가 무감각해짐. 오후 3시였음. 세 사람을 욥바로 내려보냄.
  • 고넬료 환상의 내용=베드로를 청하여 복음을 듣고 깨달아라.

베드로의 환상(행10:9-18)

 

  • 베드로의 환상='엑스타시스'(εκστασιζ)=객관적인 환상 '호라마'와는 달리, 주관성에 치중된 무아의 황홀경임.
  • 고넬료가 사람을 보낸 다음날 정오에 환상을 봄.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할 시간임.
  • 베드로 환상의 내용=이방인들과 교제하라.


한편, 카이사랴에 도착한 베드로와 그의 일행은 코넬료와 그의 가족이 이미 복음의 말씀을 들으려고 갈급해 있음을 발견하고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사도행전 10:34-43):

'그 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들도 증언하기를, '누구든지 그 분을 믿는 자는 그 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용서함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 (사도행전 10:43/ KJV화중광야역)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중에, 또 다시 고넬료의 가정에 '바벨'이라고 하는 '혼란' 이 일어난다:

'(44)베드로가 아직 이런 말들을 하고 있을 때, 성령이 그 말씀을 들은 모두에게 임하였다. (45)그러자 베드로와 함께 온 모든 할례에 속한 믿는 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의 그 선물을 부어주심을 인하여 깜짝 놀랐으니, (46)이는 이방인들도 다른 언어들로 말하며, 하나님을 높임을 들었음이다.' (사도행전 10:44-46/ KJV화중광야역)

이처럼 이방인 아니 야펫의 후손으로서 고넬료와 그의 가족은 회심을 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 받음의 증표로서 밥팀례를 받기에 이른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 지도와, 그 다음 도표와 같다:




에티오피아의 내시=빌립

다마스커스의 사울=아나니아

가이사랴의 고넬료=베드로

말씀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한 내적 혼란(바벨)

다마스커스 도상에 임한 그 빛으로 혼란(바벨)

성령님이 임하사 다른 언어들로 말함으로 혼란(바벨)

빌립이 내시에게 이사야53:7을 읽어줌으로깨달음

다마스커스 도상에 임하신 예수님을 아나니아가 증언함

베드로가 고넬료 가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 선포함

빌립으로부터 밥팀례받음
(행8:38):

아나니아로부터 밥팀례 받음(행9:18)

베드로 동행자로부터 밥팀례받음(행10:48)



4) '언어들'의 참뜻?=예수님의 복음을 증언하는 자(차후 상세하게 풀이 예정)

<창세기 11장>의 '바벨'이라고 하는 '혼란'은 '한 가지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께 도전한데 대한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주목적이었다:

'자, 우리(성삼위=창1:26참조)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입술을 혼란시켜, 그들이 서로의 말(話)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세기 11:7/ KJV화중광야역))

<사도행전 2,8,9,10장>의 '바벨'이라고 하는 '혼란'은 '16개 언어들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언의 영을 통해서 그 분의 입에서 전하는 복음을 증언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가 주목적이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이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낼 것이요, 그들이 새로운 혀들(16개 언어들)로 전할 것이다.' (마가복음 16:17/ KJV화중광야역)

이 표적은 이미 앞에서 살펴 본대로, 사도들을 비롯한 믿는 자들 모두가 '새로운 혀들' 곧 <행2:4-11>에 임한 그 능력으로 '16개 언어들'이 드러났으며, 이 사건은 구약에서 예언된 <욜2:28,29>의 성취이기도 한 것이었

<요한계시록 7장>의 '바벨'이라고 하는 '혼란'은 '언어들'이라고 하는 한 큰 무리, 곧 대환란을 이겨내고 '남은 자들'(144,000인)로서, 마지막 목적지인 본향에 입성한 자들로 볼 수 있다:

'(9)이 일 후에 내가 보았는데, 보라, 모든 민족들과, 족속들과, 백성들과 언어들에서 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한 큰 무리가 흰 예복들을 입고, 그들의 손들에는 종려 나무들을 들었고, 그 보좌 앞과 그 어린 양 앞에 섰고, (10)그리고 한 큰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구원이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에게와, 그 어린 양을 향하여 있도다.' 하였다.' (요한계시록 7:9-10/ KJV화중광야역)

이것이 우리의 영광인 것이다. 따라서 위 구절에서의 '언어들'은 막연한 의미가 아닌 것이다. '한 가지 언어'에 대한 심판이, '16개 언어들'로서 복음을 전할 능력인 은혜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언어들'이라고 하는 셀 수 없는 한 큰 무리인 '물들'(히브리어 '마임'=창1장), 즉 남은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하게 되노니, 이것이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파노라마적인 '구속의 계획'(GOD'S PLAN OF REDEMPTION OR GOD'S REDEMPTIVE PLAN)인 것이다.

차후에 '물들'에 속하는 '민족들, 족속들, 백성들, 언어들'에 대한 기초 주제어들을 풀을 계획이다. 이것들이 깨달아지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한결 쉬워진다.

이상에서 풀어온 바와 같이 '언어'는 분명 주님이 찾으시는 '잃은 자'로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로의 입성이 예비되어진 성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을 방해함이 존재의 목적이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갖은 책략과 묘략으로 '그 세상'을 혼란시켜 오고 있으나, 결국 승리는 주님께 속해 있음을 다시 한번 주지하길 바란다. 샬롬.

<Created/20030307> <Modified/20071030> <Updated/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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