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정동윤에게 전하는 아빠의 새벽기도] 1960년대 라디오 인기 정치 다큐멘터리 <광복20년>과 1970년대 영화 <광복20년 백범 김구>

글/ 정재선 목회자


1960-70년대에 우리네 문화권은 <영화-방송-가요> 이 세 가지 장르가 주종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지난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만치 우리네 생활권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비중이 막중하였다는 애기가 된다.

◆거장 '조긍하' 감독의 대작 <광복 20년 백범 김구> 포스터이다!! 이 시대는 주류를 이루던 멜로드라마에 신선한 도전의 '정치사극'이 성행하였던 때였다. 이 영화는 1973년 6월 28일 '국도극장'에서 개봉, 46,791명의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 당시로서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화중광야제공>.


[필자의 회상의 여울목에서]

아래 이미지의 신문광고에서 왼쪽 노인의 얼굴을 주목하시기 바란다. 이 당시 이 분은 공모로 픽업되신 '최용한' 씨로 78세이셨다. 이승만 대통령과 너무 닮았다 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셨던 분이다. 필자가 이 분을 알게 된 연유가 있다. 그 당시 이 분은 <흑석시장>(중앙대학교 앞) 안에서 지물포를 운영하셨다. 이 영화에 출연하고 난 후로, 일약 '노스타'가 되셨다. 필자가 어린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흑석시장>에 가노라면, 이 분의 지물포(도로가에 위치) 앞을 지나칠 때가 있었다. 우리 애를 보고는 '귀엽고 이쁘게 생겼다'고 하시면서 어루만져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1975년 가을로 기억된다...

본 이미지 제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에 보이는 붉은 글씨의 <광복20년>은 영화 <영화20년 백범 김구>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이다. 바탕의 짙은 갈색의 이미지는 그 중에 한 페이지를 음영으로 스캔하여서 올려놓은 대사이다. 그 아래 영화감독 '조긍하' 씨이다. 이 분이 찍은 영화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관람하였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등>. 필자는 어려서부터 영화관람을 무척이나 즐겼다. '학생입장불가'라고 극장 매표구 벽에 걸려 있어도...십대의 반항기질이 폭발하곤 하였다. 학생이니 무슨 돈이 있었겠나...극장가에 몰려든 10대들 몇몇이 '빠빵'도 틀었었고...'기도'(문 앞에 표받는 분)이 잠시 비운 사이 몰래 들어갔다가 들켜서 벌을 받은 적도 있었고...정이나 보고 싶은 영화이면...<영한사전>(민중서관/민중서림의 전신)을 헌책방에다 <200원>에 잡혀 돈을 빌렸다가 이자를 주고 되찾는 등...학생단체 관람은 보통 <50원>이었다...참으로 그 <영한사전>은 필자의 손때가 묻은 것인데...그만 필자가 입대한 사이에...어머니가 아버지 병환으로 '정황없이' 서울로 이사가시는 바람에...필자의 책들이 많이 없어져 버렸다...지금 노년에 이르러 입수하는 책들은...특히 본 <화중광야>에 올려지는 책들은 필자가 애지중지하면서 입수한 귀한 책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입수한 책값만 해도 10만원이상 들었다. 여기에는 아무런 '이득조건'이 없다. 너무도 '한민족'(桓民族)의 왜곡된 역사 속에서...아직도 살아남아 있기에...노병의 갈구를 전하는 바이니...읽는 분은 이 글을 읽으시고 난 후에도 '지인들'에게 읽어보도록 알려주심이 필자의 작은 바램임을 고백하는 바이다...<2012.9.28/깊은밤> (화중광야제공).

라디오 드라마 전성시대였던 1960년대 멜로드라마와 사극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 다큐멘터리 정치드라마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가 등장하였다. 생소한 형태의 드라마 역시 서로의 이해 갈등 속에서 어려울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정치드라마로서 첫 선을 보인 것은 1967년으로 동아방송(DBS)의 '한운사' 작 연속극 <잘 되갑니다> 이었고, 곧이어 나온 드라마가 동양방송(TBC)의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정치드라마였던 '이영신' 작 <광복20년>이었다.

[광복20년 라디오드라마 종영 리셉션] 1967년 8월 7일 첫 방송을 탄 이후로 1977년 9월 30일에 막을 내린 10년 1개월 23일간 방송되었다. <왼쪽부터>이승만 역을 제대로 해낸 성우 '구민' 씨, 한 사람 건너 뛰어 해설자 '장민호' 씨, 바로 그 옆이 주제가를 부른 가수 '최희준' 씨, 그리고 바로 그 옆이 작가 '김교식' 씨이다. 본래는 작가 '이영신' 씨였는데...불과 1년 반 정도 집필하고서 김교식 씨로 바뀌었다!! <이미지제공/춘하추동방송>.

◆곡목/ 광복20년 ㅡ 작사/ 이영신 ㅡ 작곡/ 김광수 ㅡ 노래/ 최희준 <화중광야제공>

    [가사]
    어둔 밤 가시면/ 별빛도 빛나는데/ 20년 그 세월에/ 묻고 묻힌 사연들/ 영욕도 무심해라/광복 20년

본 주제곡은 1960년대 동양방송(TBC) 인기라디오 장편 정치 다큐멘터리 <광복20년>의 주제가이다. 그 내용은 1945년 8·15해방부터 1961년 5·16이 일어날 때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었다. 동양방송(삼성그룹)은 제5공화국의 언론통폐합으로 1980년 11월 30일 문을 닫았고, 거의 KBS로 흡수 통합되었다!! 당시 장안에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작사자 이영신]
본 정치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시작은 '이영신'(李榮信) 씨가 집필하였고, 1년 반 정도로 끝냈는데 정계와 주변의 압력이 예사가 아니었다고 전한다. 그 후에는 '김교식'(金敎植) 씨가 바턴을 이어 받았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 역을 맡았던 성우 '구민' 씨와 '조병옥' 박사 역을 맡았던 성우 '유기현' 씨의 특이한 연기는 45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가수 최희준 씨가 부른 정감있고 박력있는 본 주제가의 가사는 처음에 여덟 줄을 써서 방송작가이자 시인인 고 '김민부'(金敏夫)씨에게 보이니 여덟 줄은 길다며 여섯 줄로 줄여 준 것이라고 전한다.

[작곡자 김광수]
6·25 피난 시절 KBS라디오 악단장을 역임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광수(金光洙) 씨는 동경 메이지대학(明治大學)시절부터 탱고, 바이올린 주자로 일본인 사쿠라이(櫻井淨)와 쌍벽을 이루었다. 김광수와 그의 탱고밴드는 서울환도 후 퇴계로 입구 무학성이라는 댄스홀 캬바레의 명물이었으며, 그는 1960년 대 중반 KBS에서 MBC악단장으로 이적하였다. 1964년 동양TV와 라디오서울이 합쳐지면서 줄곧 악단장의 자리를 지켰다. 그가 작곡한 작품으로는 다큐멘터리 〈광복 20년> 주제가(최희준 노래)와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가 있다.


[동양방송 <광복20년> 라디오드라마 녹음현장]

◆해설/장민호 (화중광야제공)

[통일의 꿈과 남북협상] '언론의 자유를 권장하고 일제의 차별적 법률을 폐쇄시킨 미군정이 막 3년째로 접어든 1948년 4월, 국토양단의 비극을 안고 소위 남북협상이란 정치곡예가 연출되었으니, 김구, 김규식 등은 '민족자결원칙'에 따라 <단일민주중앙정부수립>을 위해 돌연 평향을 향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불행하게도 당초 의도와는 달리 남북의 간격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민족의 영도자로 지칭받던 김구, 김규식 등 소위 남북협상파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동양방송편/계몽사간/광복20년 LP> (화중광야제공).


[1967년 격렬했던 한일수교 반대데모]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풍운의 꿈을 안고 고향 공주(公州)에서 서울로 유학을 갔을 때는 자긍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1967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5월이 되자, 교정이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임영신' 총장님이 데모를 만류하셨다. 별로 효과가 없었다!! 대여섯 명씩 어깨동무를 한 채, 우리들은 교문을 박차고 나갔다. 버스종점(84번 동아운수) 좌측 대로를 끼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흑석동 성모병원 앞길을 지나고 있었다. '야, 피해...최루탄이다!!' 우리 위로 빨갛고 둥근 사과 모양의 '최루탄'이 날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당해보는 필자는 숨이 막히고 눈물이 비오듯하였다. 교우들과 함께 아무데나 집안으로 들어가서 수돗물을 튼 채로 얼굴을 씻어내야만 했다. 그리고나서 다시 어깨동무를 한 채로, 대로변으로 나왔다. '제1한강교'를 건너 시내로 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대로변에서 좌측 내리막길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엄청난 양의 최루탄이 비오듯이 퍼부어댔다. 앞길을 가누지 못하는 교우들은 교복을 입은채로 한강물에 뛰어 들어 최루가스를 씻어내는 등...우리 데모 일행은 흩어지고 만 것이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필자의 학생데모 체험이었다!! 그리고 6월에 접어들자, 학교측은 조기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2개월 후, 여름방학을 마친 8월 초에 개강을 하였고, 마지막 주에 기말고사를 치루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2학기 개강에 들어갔다. 필자가 본 라디오 드라마를 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그해 8월 7일에 첫 방송을 타기 시작하였으니...학교 정문 앞 하숙집에서였다. 그 당시만 해도 필자의 고향 공주의 경우에는 라디오 송신전파가 약해서 서울의 '동양방송'(TBC)나 '동아방송'(DBS)나 '기독교방송'(CBS)은 라디오에 잡히질 않았다. '한국방송'(KBS)와 '문화방송'(MBC)은 대전에 지국이 있어서 곧잘 수신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간간이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가수 '최희준' 씨의 구성진 목소리의 주제가 <광복20년>이 끝나면...나레이터 '장민호' 씨의 해설이 시작된다...그 무렵 이미 '동아방송'에서는 '정계야화'라는 정치성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정동윤의 '광복70년환상곡']

◆1960년대에 대한민국 건국의 과정을 소상하게 다큐멘터리로 구성하여 방송하였던 작가 '이영신' 씨의 <광복20년>이었다면...한민족의 '하나됨'이 되는 그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터...그때를 대비해서 정동윤의 <광복70년 환상곡>이 온무리에 울려퍼지기를 아빠가 기원하면서...(2012.9.28/이른새벽).


[사랑받는 아들 동윤이에게 전하는 아빠의 기도]

어느 정권부터서인가...'민족'이란 용어가 '국민'(UN아젠다로서 NGO가 실행)이란 용어로 융합되고 나서부터는 혼란의 연속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사탄은 성경을 모방하여 '가짜' 유태인(카자르인)을 조직하여서...'민족'이라는 엄연한 용어를 '이방'이란 용어로 살짝 바꾸어 버렸다. 지금도 유태교를 신봉하는 그들은 '민족'이란 개념을 배제하고 있다. 오로지 자기들 만이 '하나의 민족'(One Nation)을 고집하고 있다. 많은 세계인들이 그 '속임'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적인 흐름이다.

주 예슈아 크리스투는 자신을 배척한 그 유태인들의 조상들을 '마귀의 조상이요...시작부터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셨다. 유태교의 하나의 새로운 분파가 세계인들을 자기네 우리(fold) 안으로 몰아세우려는 목표를 지향하였던, 곧 '이방인들'(본래는 '민족들')을 다스리고자 하였던 '시나고그'(회당)가, 유태인과 1960년대에 태동된 '이방인들' 간의 분리를 유지해오고 있고, 그로 인하여 그후로부터 오늘날까지 세계인들이 '그 마법'에 걸려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2차대전 동안, 유태인들이 죽은 '600만명'을 기초로 하여서 태동된 신앙이 바로 '홀로코스트론'(Holocaustianity)이다. 이 신앙을 내세우면서...세계인들(서구인들)이 낸 세금으로 예루살렘 안에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세운 것이다.

이것을 빌미로 해서, 사탄은 예슈아 크리스투의 부활하심을 부정케 하고, 오직 이방인들로 하여금 유태인 죽은자들을 숭배토록 하기 위함이 바로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세운 목적인 것이다!! 자, 이 정도가 되었으니, 이방인들 다수가 유태교로 개종하지 않았겠는가??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유태인들이 독점하고 있는(이미 한국 안에도 유태인들이 점령한 방송국이 있음) 미디어를 통하여 세계인들의 '마인드'를 주조(鑄造)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을 가르켜서 '유태인화'(Jewfication)라 칭힌다. 이 용어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마치, 왜놈들이 우리 한민족을 강제로 아니 억지로 '일본인화'(창씨개명/황국신민화 등) 하려 했던 것과 너무도 동일하다. 이는 멸망당한 '카자르국'의 카자르인들이 동방으로 도피해오면서...중국 안에서 우리(fold)를 틀려고 하였다.

그러나 12세기에 '타타르인'의 공격을 받은 후, 배를 타고 건너 온 것이 바로 왜구의 나라였던 것이다. 저들이 한반도로 몰려들어 오지 않았음은 예호바 하나님의 섭리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저들은 일본인들과 혼혈을 이루었고..일본을 동양의 '비밀결사'의 온상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증오와 잔인함'의 피가 섞인 일본이 메이지시대 이후로 엄청난 살육을 자행한 것이니, 일본 자기네 '대죄악'을 '자복'(??)한다는 것 자체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마귀의 조상이요...태생적으로 거짓말장이'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미 일본 안에는 '가짜' 유태인들이 심어놓은 '정체'(政體)가 깊숙히 뿌리내려 있음인 것이다.

그러나 예호바 하나님의 허락하신 역사의 시간 곧 <카이로스>가 점점 <텔로스> 시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종말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는 <완성의 시대>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류의 마지막 구원자이신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이 머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받는 아들 동윤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이 결코 무익함이 아니요...유익이라고 성도 파울로스의 외침을 깊이 새겨보자꾸나!! 다가오고 있는 <한민족의 하나되는 그 날>을 대비하여서 너의 열손가락으로 <한민족의 구원의 파노라마> 곡이 연주되기를 기원한다. 이름하여 <정동윤의 광복70년환상곡>이다!! 샬롬!!
(2012.9.28/이른 아침/아빠)

5:11Of whom we have many things to say, and hard to be uttered, seeing ye are dull of hearing. 5:12For when for the time ye ought to be teachers, ye have need that one teach you again which be the first principles of the oracles of God; and are become such as have need of milk, and not of strong meat. 5:13For every one that useth milk is unskilful in the word of righteousness: for he is a babe. But strong meat belongeth to them that are of full age, even those who by reason of use have their senses exercised to discern both good and evil. (Hebrews 5:11-14, King James Version).

5:11이제부터 멜키세덱에 관해서, 우리가 할 말이 많은데 설명하기 어려우니, 이는 너희가 듣는 것이 더디니라. 5:12지금쯤은 너희가 배움에 보낸 모든 시간대로라면 너희는 선생들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희는 예호바의 말씀기록들의 첫 장의 첫줄부터 시작하면서, 다시 배움을 받아야 한다! 너희에게는 단단한 음식 보다는 젖이 필요하도다. 5:13젖으로 살아가는 자는 누구든지 의(義)의 그 가르침들에 능숙하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이 아기들이기 때문이다. 5:14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곧 (예호바의) 말씀기록들을 사용함으로 스스로 단련하여 악으로부터 선을 분별하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5:11-14, 예슈아유언 화중광야역).

 
 
<Created/20120925> <Updated/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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