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정동윤에게 전하는 아빠의 저녁기도] 흘러간 노래 속에는 '대칸족'(한조선)에 대한 예호바 하나님의 섭리적 사연이 담겨져 있구나!!...

영화 <에밀레종> ㅡ '봉덕아, 울지 마라!!'

글/ 정재선 목회자


[흘러간 가요 속에 담겨있는 예호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적 묵시]

[사랑받는 아들 동윤에게]
인류 역사가 출발한 이래 오늘까지 반복되고 있는 우여곡절은 '크로노스시간' 속에서 '에덴의 그 정원'으로부터 쫓겨난 <그 아담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인생로정이 '카이로스시간'을 통하여 환경과 사람만 바뀌어진 상태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카이로스시간' 속에서 재연반복되는 예호바의 특별하신 '섭리적 묵시'(攝理的 默示) 속에서 어떠한 시대적 사연을 배경으로 해서 표출되어 '대칸족'(桓民族)의 가슴 속에 남겨져 온 노래들(가곡/가요) 속에는 <성춘향전>이나 <심청전>이나 <흥부놀부전> 처럼, <그 아담의 가정>의 속사정이 너무도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 본다면, 인류의 조상 가정에서 천진스럽기만 하던 <하와/해와>(웅녀)가 <뱀>(유사인간숫컷)의 정체 때문에, 정절(貞節)을 지키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에는 화를 자초하였기 때문에, 이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예호바 하나님의 묵시로 엮어진 것이 <성춘향전>(成春香傳)인 것이라고 전한다.

여기서 잠시 몇 노래 그 실례를 들어본다:

김문웅 선생이 작사한 <방랑시인 김삿갓>의 노래가 '한웅천왕'(桓熊天王/그 아담)이 본향에 이르지 못하고, 긴긴 세월동안 임시영계(臨時靈界)에서 방랑하고 있는 '영적 방랑신세'를 뜻하는 노래라는 것이다!!

반야월 선생의 작사인 <울고넘는 박달재>는 애끓는 사연을 하소연이나 하듯, 가슴 태우며 부른다는 것이요, 이흥렬 선생이 작곡한 <바우고개>는 옛님을 홀로 두고 '윤회환생'(輪廻還生)하는 <그 아담>의 심정을 드러낸 노래라는 것이다!! 

추미림 선생의 작사인 <번지없는 주막>이나, 한산도 선생의 작사인 <울어라 열풍아> <동백아가씨>와 <여자의 일생> 등은 6천년 긴긴 세월동안 석고대죄(席藁待罪)를 드리며 세월을 보내는 <하와>(해와/熊女)의 애끓는 사연을 표출시킨 노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인도 선생의 작사인 <고향무정>이나 또 반야월 선생의 작사인 <가거라 슬픔이여>는 일찍부터 고향을 떠나서 살았던 형 <카인>(창세기 4:12-14)의 심정의 노래라면, 하중희 선생 작사인 <기러기 아빠>는 동생 <아벨>(창세기 4:2)의 사연이 담겨진 노래라고 할 수 있고, 반야월 선생 작사인 <가는 봄 오는 봄>은 아벨이 죽은 후 낳은 <셋>(창세기 4:25)의 사연을 담아놓은 노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건호 선생의 작사인 <잃어버린 30년>은 남북한의 일천만 이산가족이 분단 30년 만에 상봉하기에 앞서서 6천년 동안 갈라져 살아야 했던 <그 아담의 가정>이 후손들의 <그 살>(肉)을 빌려쓰고, 서로 만나는 상봉의 정을 그려놓은 노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슨 노래나 예호바 하나님의 묵시적인 <한민족>(桓民族)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 속에는 필연코 예호바 하나님이 <카이로스시간>을 통하여 밝히 보여주시는 그분의 '섭리적인 사연'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밀레종>은 무엇인가??

'윤회환생'(輪廻還生)은 동양사상을 밑받침하는 '불교철학사상'(佛敎哲學思想)이다. 1961년에 영화 <에밀레종>을 연출하신 감독 '홍성기'(洪性麒) 씨는 <에밀레종>을 촬영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주인공 '참마루'의 예술가적 정열은 석굴암 안에서 그 위대한 환상(幻想)에 부딪쳤을 때 솟구쳐 오르며, 기구한 인연으로 공주를 만나서 그 옥중에서 사로성 팔백팔십 사찰에서 울려 올때의 그 주인공의 비련(悲戀)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에밀레종>에 흐르는 주된 사상은 동양사상을 밑받침하는 '불교철학'(佛敎哲學)인데, 불교철학은 '인과윤회(因果輪廻)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기가 지은 업적(業跡)은 억겁(億劫)을 돌아서 면(免)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참마루'(鐘匠)가  '금아'(琴娥)와 더불어 파계(破戒)한 그 업(業)인 '봉덕'(奉德)이는 어느새 그가 만든 종(鍾) 속으로 돌아와 들어간다는 줄거리가, 다시 말하면 '인과윤회'(因果輪廻)의 철학일 것인가 합니다.

    <최금동, '에밀레종', 국제영화뉴-쓰사, 1961, p.5> (화중광야 소장).


영화 <에밀레종> 역시 <그 아담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환상을 그려낸 것이다. 불교의 계율을 파계하면서까지 범죄한 그 업보(業報)가 결국에는 종장 '참마루' 자신이 만든 종 속으로 환생됨으로써...그 종이 제대로 만들어지고...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 제일가는 <범종>(梵鐘)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이 <에밀레종> 사건을 통해서 <창세기 2-3장>이 한눈에 깨달아진다고 필자는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글을 처음 접하는 너에게는 약간 이해가 안가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으나...짬짬이 불서(佛書)들도 읽어두면, 이해가 한결 잘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성경 자체가 인본주의에 입각해서 태동된 <신학>(神學論)에만 의존해서는 '편파적이고 독선적인 해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양지해 가면서...예호바 성령님의 간섭하심으로 <정동윤의 광복70년환상곡>에 반드시 참고되어야 할 거이라고 판단되어, 이렇게 올려본다. 샬롬!!
(2012.10.20/저녁)

[영화 '에밀레종' 시놉시스]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 주조된 봉덕사(奉德寺)의 신종(神鐘)에 얽힌 애절한 전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여범(女犯) 파계의 백제승 '참마루'(眞宗/김진규 분)는 신라 제26대 혜공왕 시절의 서라벌 종장(鐘匠) '김정문'(金正門/최남현 분)을 찾아가서 제자가 된다. 종 만들기에 실패한 스승이 자결하자, '참마루'(眞宗)는 스승의 뒤를 이어 봉덕사 성종 주조의 중책을 맡는다. 만족할 만한 종을 만들기 위해 국고를 탕진해가면서 여섯 차례씩이나 종을 만들지만 제대로 된 종은 나오지 않는다. 한편. '연화공주'(蓮花公主/김지미 분)는 종장 '참마루'(眞宗)에게 애정을 보내나, 종장은 이미 사랑하는 아내 '금아'(琴娥/조미령 분)과 딸이 있다. '금아'(琴娥)와 딸은 '참마루'(眞宗)를 찾아 멀리 백제에서 신라로 찾아온다...





◆곡목/ 에밀레종 - 작사/ 김영일 - 작곡/ 김성근 - 노래/ 이미자 (에밀레종 주제가) (화중광야구입)



◆곡목/ 에밀레종 - 작사/ 김영일 - 작곡/ 김성근 - 노래/ 신영균 (화중광야구입)

<위 이미지(포스터)는 제공자로부터 '비상업적 사용'으로 제공되는 프리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본 두 음원을 구입해준 그 손길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샬롬!!>


[영화 '에밀레종' 제작] 자료를 검색해보니...본래 처녀작 <에밀레종>(반도영화사/감독 이익/李翼)은 1956년에 상영되었고, 두 번째 작품이 본 영화였고, 세 번째 작품이 1968년에에서 제작되었다. 특히 1961년의 본 영화와 1968년 작품은 시나리오 작가가 동일한 <최금동>(崔琴桐) 선생님이셨다.

위 이미지는<에밀레종>의 시나리오(각본)와 작가 '최금동' 선생님의 <에밀레종> 집필변이다. 본 영화는 1961년 9월 24일 서울 '국도극장'에서 추석프로로서 개봉, 10만명의 관객이 동원된 흥행 성공작이었다. 필자는 그해(중학교 1학년) 가을에 <호서극장>(공주)에서 본 영화 <에밀레종>(국제영화공사 제작)을 보았다. <최금동, '에밀레종', 국제영화뉴-쓰사, 1961> (화중광야 소장). 최금동 선생님은 1950년대-1990년까지 한국영화 발전에 많은 공로를 기여하신 분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 1938년에 '경성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불교에 관한 작품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셨다. <다정불심> <에밀레종>(1961) <팔만대장경>(1972), 그리고 1995년에 별세하시기 직전에 탈고한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산은 산 물은 물>에 이르기까지 불심(佛心)을 표출시키셨다. 특히 필자가 초등학교 6힉년 시절 <공주극장>에서 본 그분이 각색하신 영화 <흙>(이광수 원작)은 어린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영화로서 기억된다.


[필자의 애석함 한마디] 필자가 이토록 <불교>에 관심을 보이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필자는 1984년에 도서출판 <홍법원>에서 헤르만 헷세의 작품 <태자 싯달다>를 번역 출간하였다. <싯달다>는 <붓다>께서 출가하시기 전의 속명(俗名)이다. 지금도 간간이 기억에 남는 것은 <태자 싯달다>의 '흐르는 물들'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다. 이 책은 어려운 시절에 필자가 소중하게 모아왔던 전공(영문학) 서적 1천여권과 함께 망실되어 버렸다. 지금은 절판(판금)되어서 중고서적을 찾아 헤매었으나...구하지 못하고 있다...<다음서적/자세히보기>...이제는 '중앙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스캔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Created/20121020> <Updated/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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