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윤의 史觀筆跡]

푸르미르, 하날을 나르샤

 

왕의 상징, 용


얼마 전, 배우 '현빈'주연의 영화 <역린>이 개봉되었다. 조선왕조 제22대 임금, 정조 즉위 초 '정유역변'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제목은 용의 목에는 거꾸로 난 한 장의 커다란 비늘을 중심으로 하여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49장의 비늘이 있다. 즉 '군주의 노여움'을 뜻한다. 역린(逆鱗)에서 보듯이 용은 오래도록 왕의 상징이었다. 그 흔적은 궁중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의 얼굴 ㅡ 용안(龍顔)
    왕이 흘리는 눈물 ㅡ 용루(龍淚)
    왕이 입는 옷 ㅡ 용포(龍袍)
    왕의 수염 ㅡ 용수(龍鬚)



용은 왜 왕의 상징이 되었을까?? 여기 아주 오래되고 간절한 기도가 있다:

    '영험하신 삼용신이 비를 몰고 오는구나!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온누리에 비가 온다.' -가야 용신제 지신밟기 중에서


기도의 대상 용, 순우리말 이름 '물'을 뜻하는 '미르'(일본어로 '물'이 '미즈'인 것이 어디 그냥 우연이겠는가??). 물을 다스리고 구름과 바람과 비(환웅님이 천부인 운사, 풍백, 우사를 대동하시고 박달나무 도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심과 연결됨), 나아가 천둥과 벼락까지 주관하는 존재. 한해 농사가 만백성의 목숨이던 시절, 때를 맞춰 나리는 비는 만백성의 밥줄이자, 생명줄!! 물을 다스리는 것이 절대 힘, 절대 권력인 사회, 그래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용을 찾았다!!

원단에 기우제를 지내다:

    '삼가 산천에 제사와 간절한 정성을 다하오니, 바라옵건대 신명하게 허락하시어 단비를 흐뭇하게 나려주옵소서!' -세종실록 1425년 7월 5일

    '성안의 물길이 넘쳐 백성이 편히 살지 못하므로, 준천사를 설치하여 돌을 캐다 높이 쌓고, 도량을 쳐서 물을 잘 흐르게 하였다.' -영조대왕 묘지문 중에서


한해에도 몇 번씩 치러지는 기우제나 각종 치수사업, 정치를 통해 물을 다스리는 국가 최고 권력자, 물을 다스려 백성의 삶을 구원하고, 물을 다스려 살길을 마련해주는 존재.
그러하기에 용이 왕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왕과 왕후의 침전에는 용마루가 없다. 왕과 왕후가 용이신데, 다른 용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황제의 상징은 발톱이 다섯 개 달린 '오조황룡'(五爪黃龍)이다. 황룡은 오행에서 땅을 주관한다. 중국 역시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황룡을 황제의 상징으로 삼고, 땅의 소산인 황금을 사랑했으리라!!

조선이 건국되었음에도 명에서는 '이성계'를 국왕으로 봉하지 않고 '권지고려국사'(權知高麗國事)라는 직분만을 내렸다. 이후에 번왕으로 봉하면서 발톱이 네 개 달린 '사조청룡포'(四爪黃龍袍)를 하사한다. 이후에 조선의 사신들이 명의 황태자가 황제와 동일한 '오조룡포'(五爪龍袍)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고해 조선국왕도 '오조룡포'(五爪龍袍)를 입었다.

'세종대왕' 이후에 조선왕실의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는데 왕과 왕후, 그리고 왕의 모후인 왕대비전을 대전(大殿), 곤전(坤殿), 자전(慈殿) 이렇게 삼전(三殿)이라 하여 신을 상징하는 '마마'의 경칭을 받쳤다. 상감마마는 '왕 위에 군림하는 신'이라는 뜻이 되는 셈이다. 이들 '전마마'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으로, 옛 중국 사람들이 본 하늘과 땅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 사상에 의거하여 원형의 오조룡보(五爪龍補)를 달았다.

차대에 용상에 앉을 동궁(왕세자)과 곤위에 오를 빈궁(왕세자빈)은 전마마 보다 격이 낮은 '궁마노라'의 경칭을 받쳤고, 원형의 '사조룡보'(四爪龍補)를 달았다. 왕과 왕후의 적자인 무계(품계를 초월한 고귀한 존재)의 '대군'조차, 고종의 사친(私親)이요. 500년 왕조사에서 유일무일한 살아있는 '대원군'인 '흥선대원' 조차 사각의 '기린흉배'(麒麟胸背)를 달아 상복(常服)으로 군신의 예를 지켰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흥선대원왕(대원군)의 일상복에 수놓은 <기린흉배>. <서울역사박물관,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2007, p.18-19>.


桓民足(한민족)의 <푸르미르>


중국에선 조선은 제후국이므로 황기와(黃瓦)를 쓰지 못하게 했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청룡을 상징하는 고혹한 빛깔을 자랑하는 청기와(靑瓦)를 만들어 왕의 정전인 창덕궁 선정전(宣政殿)에 올렸고, 이것이 오늘날 청와대의 기원이 된다. 청와대(靑瓦臺)'선정을 베푸는 집'이라는 뜻인 것이다. 주로 왕실 최고의 어른인 대왕대비전의 전각으로 쓰였던, 지금은 없어진 인왕산 자락의 '인경궁'의 모든 전각들이 청기와였다고 하니, 그 아름다움이 오죽했으랴??

◆[필자의 추천곡/아이야 나랑 걷자/최백호-아이유 콜라보레이션] ㅡ [이미지/화중광야제작] 궁궐에서 청기와를 보셨나요?? 창덕궁의 <선정전>(宣政殿)은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집입니다. '선정'이란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뜻으로 임금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입니다.


한편, <엘로힘>은 홍해에 막혀있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동풍을 불게 하사, 홍해의 물을 흩으셨고, 뭍이 드러나게 하사 <마른 땅> 위를 걷게 하셨다.
<마른땅/하라바/자세히보기>.

    14:21And Moses stretched out his hand over the sea; and the LORD caused the sea to go back by a strong east wind all that night, and made the sea dry land, and the waters were divided. (Exodus 14:21, King James Version)

    14:21그리고 모세가 그 바다 위로 그의 손을 뻗쳤고, 그리고 예호바가 밤새도록 한 강한 동풍(東風)으로 그 바다를 뒤로 물러나개 하셨고, 그 바다를 마른땅이 되게 하셨고, 그 물들이 갈라지더라. (출애굽기 14:21, 정재선역)


예호바의 절대적인 주권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곳, 동쪽. 그 동쪽의 수호자가 바로 '청룡'이다. 오행에서는 청룡이 나무를 주관하는데, 조상들은 황룡이 주관하는 흙의 정기를 나무가 빨아들임으로 청룡이 황룡을 제압한다고 생각했다.

'광해군' 때에 이복동생인 '정원군'의 궁가를 경덕궁(지금의 경희궁)으로 높였는데, 수많은 풍상을 겪고 경덕궁의 정전인 '숭정전'이 지금은 동국대학교 내로 옮겨져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사찰로 남았다.

숭정전 천장에는 일곱 발톱을 가진 칠조청룡(七爪靑龍)이 새겨져 있다. 중국의 오조황룡(五爪黃龍)칠조청룡으로 제압하려고 했던, 광해군의 이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제국 황제의 상징이 된 칠조청룡이다. 서구의 용은 사탄을 상징하며 불을 뿜는다.  반면, 순수한 우리말 일곱발톱의 청룡, '푸르미르'는 중국의 황룡을 제압하고, 물을 다스려 백성을 살리기에 선정의 상징이 되었다.
국운이 위태로운 이 때, 우리의 '푸르미르'가 저 창공을 날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Created/20140705> <Updated/201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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