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번역풀이>를 끝내면서

'이제는 나를 따라오너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연합의 절정'이요 곧 '순교'이다!!

주님, 이 시간까지 무탈히 <요한복음>을 마치도록 살펴주시고 보호해주신 그 손길에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하오니, 주 예수님, 속히 오시옵소서. 주님 오실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화중광야 가족의 감사기도)

 

◆Give Thanksㅡ정동윤 편곡연주(고교1/1994)


2007년 8월 23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John 1:1, King James Version)

    1:1그 시작 안에 그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이셨느니라. (요한복음 1:1, KJV화중광야역)

    [번역풀이]
    1:1그 시작 안에=<창세기 1:1>의 '시작 안에'(in the beginning)가 예표하는 실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 것이다. 본절은 <창세기 1:1>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기에, '그 시작 안에'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는 2011년 1월 24일은 이렇게 끝이 났다:

    21:25And there are also many other things which Jesus did, the which, if they should be written every one, I suppose that even the world itself could not contain the books that should be written. Amen. (John 21:25, King James Version)

    21:25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다른 말씀들이 이 밖에도 많으니, 만일 그 말씀들이 낱낱히 모두 기록된다면, 그 세상 자체 만으로는 그 기록된 책들을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요한복음 21:25, KJV화중광야역)

    [번역풀이]
    21:25아멘=다른 사본들에서는 본 '아멘'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진실로, 진실로'(verily, verily)라고 이중으로 강조되어 있는 것이 또한 특징어이다. 그리고 본 <21장>은 <20:31>에 결말이 나 있는 지고의 가치에 대한 보충인 것이다. 평소에 겸양하여 나타내지 않았던 자신을, '나'(I)라고 표현함으로써, 본장을 과연 성도 요한이 기록하였는지 의문을 지니게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필사본들과 역본들을 비롯해서, 본장의 <24절>과의 공유로 볼 때, <19:35>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고로, <21장>의 성도 요한의 기록에 대하여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시간상으로는 3년 5개월이 걸린 셈이다. 뭐 그리 오래 걸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단순 성경기록의 번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픈 '내적 사명감'이 분출되었고, 성령님의 강한 이끄심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번역+풀이>로서 오늘에 이르러서야 마친 것이다.


<2003년>에 발행한 <킹제임스성경 창세기 한글번역>에 비하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맞다. 물론 본 <요한복음>도 <창세기> 스타일로 번역했더라면 벌써 발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고,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그 길을 밟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령님을 통한 <요한복음>의 주제 또한 다른 세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구유언>(Old Covenant) 속에서 찾아진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너희 하나님을 바라보아라'(BEHOLD YOUR GOD)이다:

    O Zion, that bringest good tidings, get thee up into the high mountain; O Jerusalem, that bringest good tidings, lift up thy voice with strength; lift it up, be not afraid; say unto the cities of Judah, Behold your God! (Isaiah 40:9, KJV)

    오 시온,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여, 너는 높은 산 속으로 오르라. 오 예루살렘,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여, 힘써 너의 음성을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너희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하라. (이사야 40:9, KJV화중광야역)

이렇듯, <요한복음>은 <이사야 40장>과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그 상호관련성에 대하여는 <요한복음번역풀이> 발행에서 밝히기로 한다. 이제는 본 <번역풀이>를 편집해서, 발행하는 일이 남아 있다. 이 또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외주에 의뢰하면, 편하겠지만, 제작비가 엄청나니, 손수 우리 <화중광야가족>이 하기로 하였다. 예상했던 것 보다도 분량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편집은 우리가 한다 해도, 인쇄 제작비가 많이 들 것이다. <자비량 복음문서선교>는 이렇게 힘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198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주님이 반드시 인도해주시리라 확신한다. 지난 날 역시 그리 해 왔으니까 말이다. 정말이지, 마지막 관문이 이럴진대...

끝으로, <요한복음 21장>을 번역풀이하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 베드로를 향하여 '이제는 나를 따라오너라'고 분부하신 그 말씀이 곧 '신비적연합의 절정'이요 곧 '순교'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13:37>에서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 어찌하여 내가 지금 당장 주님을 따라갈 수 없나이까?'라고 물었던 그 말씀의 비밀이 마지막에 와서 풀림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21장 번역풀이] ㅡ '이제는 나를 따라오너라' ㅡ> 예수님과의 신비적연합의 절정=순교

21:19이제는 나를 따라오너라=헬라원어 '아콜루데오'(ακολουθειω/G190='길'(켈루도스/κελουθος='함께 같은 길에 있다'=연합을 나타내는 불변사='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다' ㅡ 마가복음 10:28 참조). ①문자적으로, '뒤따라가다, 함께 가다'(마가복음 11:9. 마태복음 9:19. 요한복음 10:4; 11:21. ②상징적으로, 군사, 종, 제자로서 따르다'(마태복음 9:9. 마가복음 8:34. 누가복음 11:27). 일반적으로, '따르다, 복종하다'(사도행전 12:8). <요한복음 1:37>에 최초 인용. <요한복음 13:37>의 '주님, 어찌하여 내가 지금 당장 주님을 따라갈 수 없나이까?'와는 대조적이다. (마태복음 8:22. 요한복음 21:22) 비교.

이상의 우리의 구원자의 말씀들을 미루어 보면, 이때쯤 베드로는 이미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닌 중년, 곧 인생의 절정기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나이가 들어 늙게 되면, 그도 예수님 처럼 '그 나무'에 달려 죽는일이 일어날 것이었다. 그가 늙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에게 띠를 두를 것인데, 그리고 그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 갈 것인데, 곧 '그 나무' 위에서 순교(martyrdom)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텐데, 지금은 아직도 '그 살'(the flesh)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하나의 본능적인 움츠림'(a natural shrinking)이 있는 것이다.

모든 초기 기록자들은 성도 베드로가 로마의 네로(Nero) 통치시대(주후 55-69년) 중에, 주후 69년에 '그 통나무/그 장대'(the wood)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데, 그리고 같은 해에 로마에서 성도 바울 역시 '목베임'(beheaded)을 당했다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성도 베드로는 본인이 자원하여 자기 머리를 거꾸로 땅으로 향하여, 주님/선생님이 당하셨던 그 고통을 당하면서 죽었다고 전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제는 나를 따라오너라'(Follow me)고 하신 말씀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말고, 열의를 다하여 목회직(pastoral office)을 감당하며, 순교에 자원하라는 의미로서 푸는 사람들도 있다. 이밖에도, 예수님이 갈릴리 그 바닷가 모임 자리에서 일어나셨고(요한복음 21:12), 베드로가 그분을 따라가면서, 그분이 방금 말씀하신대로 행동으로서 보여준 것이라고 풀이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 풀이가 한결 설득력을 갖는데는, 바로 다음 <20절>에서의 베드로의 행동과 일치하기 때문인 것이다.

[요한복음 21장 번역풀이] ㅡ '내가 올 때까지' ㅡ> 순교적 사명을 안고서

21:23내가 올 때까지=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follow thou me)고 말씀하신 후에, 그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베드로가 그분을 따라 나섰으며, 요한과 나머지 제자들은 약간 거리를 멀리한 채 뒤 따른 것이요, 베드로가 뒤를 돌아보고는,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님을 향하여 물어 본 것이다.

본 <요한복음 기록자> 요한은 예수님의 '내가 올 때까지'(till I come)라고 하신 말씀에 대하여 그 의도하심을 기록하지 않았다. 요한의 목적은 그 형제들을 향하여 잘못 전해졌고, 아울러 성도 요한은 결코 죽는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러한 일에 대한 예수님이 전하신 그 말씀들에 관한 진실된 해명을 남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도 요한이 자신에 관하여 지금 전해진 그 소문을 동의한다는 억측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 방금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내가 올 때까지'라고 하신 말씀에 관해서는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풀어 볼 수 있겠다:

    ①심판의 그 날 안에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②그 유태인 민족이 예수님을 그 메시야로서 거절하였고, 예루살렘이 멸망당했고, 그들의 성전이, 그들의 예배가, 그리고 한 민족으로서 그들의 존재가 파괴당했던 그 죄과를 심판하러 오실 때까지.



두 번째의 원인이 고대 및 현대 성경연구가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다. 그 이유는 차후에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별도주제에서 상세하게 알아 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올 때까지' 이 말씀들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다 할지라도, 사실상 예루살렘이 멸망당하였고, 그 유태인 민족이 흩어졌고, 그 유태인 예배가 멈춰졌어도, 성도 요한은 살아 남았지만, 성도 베드로는 순교의 죽음을 당하였던 것이다. 성도 요한의 죽음에 관한 때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주후 101년 설이다. 예수님이 '그 나무' 위에 죽으신 지 68년이 지난 성도 요한의 나이 아흔 세 살(93세)의 때이다.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로서는, 성도 요한이 '그 사도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으며, 주후 70년에 로마의 장군 티투스 베스파시아누스(타이터스/티투스/디도/Titus Flavius Sabinus Vespasianus/9-79=후에 6대 로마 황제가 됨)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후에도 유일한 생존자였기 때문인 것이다.

◆<위쪽> 주후 69년에 '그 나무'에 거꾸러 달린채로 순교당하는 성도 베드로. <아래쪽> 주후 97년에 바트모스(밧모) 섬으로 유배당하는 성도 요한. (Thieleman J. van Bracht. Martyrs Mirror, Ontario:Herald Press, 1994, pp.80, 97) <화중광야 소장).

그러할진대, 만일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 참다운 '성경신자'이면, 이 우주계 안에서 '목숨'을 담보로 해서 살아가는 당신으로서는, 다음의 두 가지 고난이 수반하고 있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①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양하게 변한다는 피할 수 없는 총체적이요 포괄적인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요,

    ②현재 있는 것 보다도 더 바라고 더 성취하고자 노력을 쏟아붓는데는, 피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과 그 해결을 위한 투자(물질과 돈)이 수반되는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느 고난'에 동참하고 계시는가?? 어떻게 '순교의 그 나무'를 메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계시는가??

<Created/20110124> <Updated/20110124>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