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파 자비량 부흥사] <김상준>(金相濬/1881-1933)의 앞날은 순탄치만 않았다. 특히 <정빈>과 함께 일본 유학을 마치고 2007년에 서울 종로소재 염곡동 12번지(현 무교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OMS)을 세워 동년 5월 30일부터 복음전도에 헌신하였다고 전한다. (하단이미지)...그런데 귀국 7년후 2014년 4월 21일 최초로 있었던 성결교단의 <목회자임직식>에서 참석은 했지만...목회자 임직을 받지 못하였다고 전한다(일부 자료에서는 4월 22일 목회자임직을 받았다고 하고)...결국에 가서는 <정빈>도 타교단으로 떠나갔고... <김상준>도 다른 교단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이유를 필적(筆跡)하고자 본 붓을 든게 아니다. 다만, 기존의 한글용어 <음녀>(淫녀)를 <음부>(淫婦)로 대체해 버린 그분의 과담성(過膽性)을 높이 평가하고픈 것이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정동윤 작곡연주>


<음녀>(淫女)인가?? <음부>(淫婦)인가?? [4]

글/ 정재선 목회자

[이방인 ㅡ 무얼 보고 '이방인'이라 하는가?? <이방인>이란 <우상숭배>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칭한다. 따라서 '이방인의 때가 차다'란 구언약의 <외적 우상>으로부터 시작되어 신언약의 <내적 우상> 곧 <탐심>을 버리고(행위 탯줄)을 끊고 <예호슈아 그 메시야>가 찾고 계시는 <그 잃어버린 자>의 반열에 들어오는 자를 칭하는 마지막 때인 것이다!! 아울러 <예호슈아 다시오심> 전에 천년왕국의 심각한 오해에 대해서(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역사적전천년설)...이 전부가 거짓이다!!

17:1And there came one of the seven angels which had the seven vials, and talked with me, saying unto me, Come hither; I will shew unto thee the judgment of the great whore that sitteth upon many waters: (Revelation 17:1, King James Version)

17:1και ηλθεν εις εκ των επτα αγγελων των εχοντων τας επτα φιαλας και ελαλησεν μετ εμου λεγων μοι δευρο δειξω σοι το κριμα της πορνης της μεγαλης της καθημενης επι των υδατων των πολλων (ΑΠΟΚΑΛΥΨΙΣ ΙΩΑΝΝΟΥ 17:1, 1550 Stephanus New Testament/TR1550)

17:1그리고 그 일곱 대접들을 가진 그 일곱 사자들 중 한 분이 내게로 오셔서 나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리로 오거라, 내가 너에게 많은 물들 위에 앉혀진 그 큰 음부(淫婦)가 받을 그 심판을 보여주겠도다.' 하셨도다. (요안계시록 17:1,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미니풀이]
많은 물들=비유적은 '많은 사람들'(many peoples)을 계시하는데 사용된다. 구체적으로 'over a flood of people' 곧 '사람의 군당'(群黨=群像/群滿)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에스켈 36:38 참조)

 

[한글번역은 '음녀'(淫女)를 선택하였다!!]

오늘날 한국 크리스투교계에서 다분히 사용해 오고 있는 성경 소위 <한글개역>은 애당초 번역시작부터
<음녀>(淫女)로 못을 박았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신약전서', 조선경성:대영성서공회, 1912, p.788-789>.


위 성경에서 보면 <요안계시록 17:1>에 <음녀>(淫女)로 번역되어 있다. 애당초 이 용어 <음녀>(淫女)
<음부>(淫婦)로 번역되었더라면...참으로 오늘의 세태 곧 <인류의 2/3 축소음모>로 3차 세계전쟁인 핵전쟁으로 유도중인 사탄의 꼭두각시들의 행태와 너무 부합된다 판단되었기에...지금도 정확한 자료 입수를 위해서 필적(筆跡) 중이다. 혹자는 너무 무리한 필적(筆跡)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음부>(淫婦)로 번역해 놓으면, <사탄>과 <적그리스투>의 정체가 한결 성경적으로 접근이 가능해진다고 판단된 것이다!!

우선, 한글 첫성경 <예수셩교젼셔>의 <요안계시록 17:1>을 본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한글 첫성경 <예수셩교젼셔>는 <요안계시록 17:1>을 <음부>로 번역하였다. 이는 번역 저본인 중국어 <문리역>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화중광야소장).


다음, 한글 첫성경 <예수셩교젼셔>의 번역 저본인 <문리역>의 <요안계시록 17:1>을 본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한글 첫성경 <예수셩교젼셔>는 <요안계시록 17:1>을 <음부>로 번역하였다. 이는 번역 저본인 중국어 <문리역>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七天使執鼎, 其一語我曰, 來, 我以坐水上之大淫婦, 將受之刑示爾' ㅡ <文理貫珠 新舊約聖書, 臺灣聖經公會, p.276-277>.



위 중국어 <문리역> 곧 <대표자역본>(The Delegates Version/1854)은 <킹제임스성경>을 번역저본으로 한 것이요, <명성태황후 암살>에 가교 역할을 하였던 영국의 밀정 주한 영국 총영사 <월터 C. 힐리어>(Walter C. Hillier)의 외조부인 <월터 H. 메드허스트>(Walter H. Medhurst/1796-1857)가 주도하였다. <하단이미지 참조>.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1782.1.5 -1834.8.1) 선교사는 영국 '런던선교회'(프리메이슨 하부조직)가 중국에 파송한 첫 개신교 선교사로 중국명은 '마리쑨'(馬禮遜)이다. 그는 중국에서 25년간 사역하며, 10여명의 개종자밖에 얻지 못했지만 선교 열의는 누구보다 뜨거웠다.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의 유지에 따라서 '메드허스트'(Walter H. Medhurst/麥都思/1796-1857), 오른쪽하단) 선교사는 모리슨 선교사의 아들 '존 로버트 모리슨'(John Robert Morrison/오른쪽상단)과 '귀츨라프'(Charles Gutzlaff/왼쪽), '브리지맨'(Elijah C. Bridgman/오른쪽중간)과 함께 <모리슨역본>을 공동으로 개정 번역하였다. 이 성경이 지금까지 중국어성경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성경 <대표자역본>(委辦譯本/ Delegates Version)이다. <필독관련자료>불어라, 삼파람! [5] 한국 복음화의 그루터기 ㅡ 우리의 간도!! <자세히보기>.


그 다음, 일본어성경은 <요안계시록 17:1>을 어떻게 번역하였는가 본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일본어성경도 <요안계시록 17:1>을 <음부>로 번역하였다. 본 일본성경은 1916년에 발행된 것이다. 이 성경의 영어성경 저본도 위 중국어 문리역 <대표자역본>(委辦譯本)과 같이
<킹제임스성경>이다.
<ジ・ピ・ピヤソン編 三浦徹・和泉きぬ子校訂, '略註 舊新約全書', 東京:敎文館, 1927(1916초판발행), p.2164-2165>. (자세히보기).


이처럼 <음부>(淫婦)로 번역된 일본어성경은 이 중국어역 <대표자역본>의 용어 <음부>가 그대로 차용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왼쪽> 김상준, '묵시록강의', 기독서원, 1918, p.245. ㅡ <오른쪽> 일본어성경도 <요안계시록 17:1>을 <음부>로 번역하였다. 위 자료는 매우 귀중하다!! 이 자료 외에도 일제 강점기 중에 발간된 <요안계시록>인 <묵시록강해서> 10여종이 남아 있다. 그런데 너무 고가라서(영인본일지라도) 아직 입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본 자료는 1910년대 한국 성결교의 교단 지방회 조직 창설에 참여한 일꾼이면서 주로 감리교와 장로교 교회들을 찾아가서 강해한 <김상준>(金相濬) 목회자가 일본 유학 중에 스승인 <나카다 주지> 목회자를 만났고, 그와 다른 교수들의 가르침을 배운 것을 한국에 귀국해서 저술, 발행한 <종말론> 교리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김상준> 목회자의 이 저서가 <성경예언에 대한 미래적 해석에 기초하여, 문자적 성경해석과 역사에 대한 세대주의적 구분 그리고 전천년설적 천년왕국설등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재림사상>으로서, <사중복음>(중생ㆍ성결ㆍ신유ㆍ재림)과 함께 성경교의 핵심교리라고 평한다. 그러나 필자가 필적(筆跡)해 보니, 19세기 말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던 이른바 <세대주의>가 그 핵을 이루고 있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세대주의는 필자가 이미 밝혀 놓았듯이 <예수회의 걸작??>이 아닌가 말이다!!


위 본서(왼쪽이미지) 저자 <김상준>(金相濬) 목회자는 솔직하게 미국의 '사이스'와 '조지 왓슨'(George D. Watson)의 저서 <Soul Food>(혼의 양식)(하단 4번째이미지 참조)를 일본인 스승 '사사오 데쓰사부로'(笹尾鐵三郞) 목회자가 번역풀이한 것을 주본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하단이미지).

◆[이미지/화중광야제작] 1937년에 촬영한 <버클레이 벅스톤> 목회자의 마지막 일본방문 기념사진이다.(위키피디어제공) ㅡ  '사사오 데쓰사부로'(笹尾鐵三郞) 목회자가 번역 풀이한 <요안계시록>은 기존의 일본어 번역성경과 중국어 번역성경에서의 용어 <음부>(淫婦)를 그대로 따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김상준> 목회자는 난제에 부딪쳤던 것이다. 이미 1912년에 완전판으로 발행된 한글개역 <성경전서>의 용어
<음녀>(淫女)가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자기네 교단 일본의 성결교에서는 <음부>로 번역되어 있으니, 그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다가는 국내에서 심한 저항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여, 중용책을 썼던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요안계시록> 본문번역에서는 한글개역 용어 <음녀>(淫녀)를 따랐고...사경회용 <요안계시록강해> 교재에서는 일본어 번역인 <음부>(淫婦)를 차용했던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성결교 자체의 묘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차제에 성결교 자체에서 한글성경을 번역해 발간하였더라면, 성경용어상 많은 '갈등들이 해소되었을 것'(??)이라고 조용히 예단해 본다!!


다음은 우리가 자주 부르고 있는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잠시 소개한다. 위의 이미지에서 보듯이 이 곡은 <김상준>의 스승 <사사오> 목회자가 작사한 것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왼쪽이미지> 이 일본 목회자 '사사오'(하단이미지 참조) 바로 우리가 즐겨 부르고 있는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1897년에 작시하셨으며, 한국에서 박재훈 목회자가 1967년에 곡을 붙인 것이다!! ㅡ <오른쪽이미지> 이 주본을 입수할 수 없었고...해서 필지가 이미 소장하고 있는 1880년에 발행된 <요안계시록강해>를 인용하게 된 것임을 알려드린다!! 이 책은 일본의 <도시샤대학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신학원에서 미국 선교사가 가르치고 풀이한 것을, 그의 일본인 제자가 정리한 것이다.

<김상준>이 귀국해서 자신의 저서에다도 <왓손>의 영향을 받았음을 실토하는 것은 지당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이러한 <세대론자들>이 일본 요코하마에다 <선교총부>라고 하는 일종의 '아지트'를 개설하여, 일단 미국으로부터 <한국ㅡ일본ㅡ중국>으로 가는 선교사들을 일단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여장을 푼 뒤에...일정 기간 '재교육'(??) 과정 같은 것을 받은 후, 일본 본토 혹은 한국 혹은 중국으로 '재파송되는 형식을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요코하마의 <선교총부>라는 곳은 영국의 <런던선교회>와 일맥 상통하는 동양 프리메이슨의 하부조직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된 것이다!! 이곳에서 한국으로 파송되는 속칭 서양 '선교사들/사업가들/교육자들' 태반이 서울 <정동>(貞洞)에다 아지트를 튼 것이요, 이곳이 바로 한국 프리메이슨의 활동무대였으며...본격적으로 프리메이슨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였으니...이 주제는 별도로 다루게 될 것이다!!



1903년의 봄에 김상준은 '나카다 쥬지'(中田重治/1870-1939)의 안내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일본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였고, 그가 공부하고 있을 때, 한국인 <정빈>(鄭斌)이 1905년 7월에 입학하였다. 이들은 일본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공부하였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김상준은 박스톤(Barclay F. Buxton/1860-1946), '사사오 데쓰사부로'(笹尾鐵三郞/1868-1914), '카우만'(C.E.Cowman), '킬보른'(E.A.Kilbourne), '레티 카우만',  그리고 '나카다 주지' 등 여러 교수들로부터 말씀중심적인 삶과 혼의 구원을 위한 열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왼쪽상단/동경성서학원의 광고> <왼쪽하단/영어로 직접 강의한 갓비 교수의 노년모습. <오른쪽/동경성서학원의 정문과 이 학교를 다녔던 한국 유학생 정빈과 김상준> (검색자료) ㅡ 유학생 김상준(金相濬)과 정빈(鄭斌) 등이 이 신학원에서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자, 1907년 종로 소재 염곡(鹽谷/현 무교동)에 <동양 교회 복음전도관>을 마련한 것이 한국성결교의 효시로서 전해 온다.


그렇지만, <김상준>의 앞날은 순탄치만 않았다. 특히 7년후 1914년 최초로 있었던 성결교단의 <목회자임직식>에서 참석은 했지만...안수를 받지 못하였다고 전한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 위 사진(왼쪽)에서는 <김상준>과 <정빈>의 모습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서...그러나 <김상준>과 <정빈>이 일본 유학시절 <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할 동안, <왓손>의 저서 <Soul Food>(혼의 양식)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수강하였다고 전하는데...이 외에도 <White Robes>(白衣), <Love-Abounding>(넘치는 사랑) 등등 번역했다고...필자가 필적(筆跡)해보니, 이 신학자는 <세대주의적 오순절파>임이 드러났다. <성결>과 <성령세례>와 그리고 <성령의 불/불의 혀>와 관련된 저서를 냈는데...저자 개인의 간증록이었다고 전한다:

    1. '예수' 사역 영화롭게 하고 '영혼'에서 그의 기이한 사역을 선포하는 주 집행자 성령 하나님과 연관시키라.

    2. 성결은 우리 영혼안 하나님 사역의 실상과 그 필요성을 각성시킨다.

    3. 친교적 필수적인 우리 삶과 체험과의 관계에 내주시키라.



 
따라서 '예수'를 믿고 중생한 신자들이면 '성령 불의 혀'를 받아 성결하게 살고 성결을 전하라.


<왓슨>은 성결 즉 성령세례와 동반내지 후속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교회들'의 오순절신학에도 일보하였다. 순복음 방언 도식의 길을 터 주었다고 전한다. 대체로 이러한 교리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필자가 한 마디 풀어 놓는다: <성령은 절대로 불이 아니다!!>. 이 주제 역시 시간이 허락되면, 풀을 것이다!! 우리가 전에 <심령부흥회>같은 집회를 통해서, <문제해결/병고침> 등을 강조할 때...강사들이 <불로...불로...불로...성령의 불로...성령의 불로...믿습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필자 역시 초창기(교수시절) 간증집회 때에 이같이 따랐던 것을 고백한다...그 때는 그렇게 해야 하는 줄로 알았던 것인데...훗날...성경을 번역하는 동안...<성령은 절대 불이 아니다!!>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왓손>의 <세대론적 오순절교리>를 사전에 한국 안에다 심어 놓은 자들이 바로 일본에서 <김상준>을 보살펴 준 스승 <나카다 주지>와 그의 동료 <혼다 요이쓰> 이 두 목회자들였다고 판단되었다!!

<동양선교회> 곧 성결교의 한국선교는 1907년에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의 복음의 접촉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나카다 주지>는 <혼다 요이쓰>(本多庸一/1849-1912)와 함께 일본 <복음동맹회>(Japan Christian Alliance)의 파송으로 1904년 5월 11일 동경을 출발하여 부산, 목포를 거쳐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본문번역/예미마정]

    1904年5月に、大日本福音同盟会は、本多と中田重治を委員として、韓国にある諸教会を訪問するという内容の書状を韓国基督教会に送った。大日本福音同盟会日露戦争は韓日両帝国(韓国と日本)の安全と東洋進歩平和の戦争であるが、韓国の領土で開戦したので、日本が委員を派遣して慰問すると主張した。
    1904년 5월 대일본 복음 동맹회는 혼다와 나카타주지를 위원으로서 한국에 있는 여러 교회를 방문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한국 기독교회에 보냈다. 대일본 복음 동맹회는 러일전쟁은 한일 양제국(한국과 일본)의 안전과 동양 진보 평화의 전쟁이지만 한국 영토에서 개전했으므로 일본이 위원을 파견해 위문한다고 주장했다.


    本多はメソジスト・エピスコパルの日本年会の任命した韓国伝道委員会の委員長を兼ねて、中田重治を同行者にして、韓国を訪問することになった。5月14日に筑後川丸に乗船して、16日に釜山に上陸して、木浦、仁川を経て、18日に京城(ソウル)に到着して、歩兵第24連隊第1大隊(連隊長山本悌二郎大佐)で中田と一緒に説教をした。その後、各地を訪問して、6月10日には黄州に行き、14日に平壌に行き、義州に向かう中田重治と一旦別れて、順安に行った。その後、元山に向った。
    혼다는 감리 및 에피스코팔의 일본 연회가 임명한 한국 전도 위원회 위원장을 겸해 나카타주지를 동행자로서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5월 14일 지쿠고강에서 승선해 16일 부산에 상륙해 목포 인천을 거쳐 18일 경성(서울)에 도착해 보병 제24연대 제1대대(연대장 야마모토 테이지로 대령)에서 나카타와 함께 설교를 했다. 그 후 각지를 방문해 6월 10일에는 황주에 가서 14일 평양에 가서 의주로 향해 나카타주지와 일단 헤어져 곧바로 갔다. 그 뒤 원산에 갔다



    [필자미니풀이] 歩兵第24連隊第1大隊(連隊長山本悌二郎大佐)=1904年(明治37年) - 日露戦争に従軍。第1軍隷下/ 2月5日 - 衛戍地出発/ 2月8日 - 仁川上陸, 京城に到着. 한국에서 주둔하고서 1905년 12月12日 - 福岡凱旋、13日復員完結. 필자가 세밀하게 찾아보았더니, 연대장은 <原田輝太郎>(하라다 데루타로/HARADA Terutaro) 중좌(중령)이었고, <山本悌二郎>(야마모토 테이지로) 중좌(대좌 아님)는 24연대가 일본으로 철수 귀대한 후, <하라다>의 그 후임 연대장이었다.  ㅡ <일러전쟁기의 한국과 일본/한국주차군을 중심으로/자세히보기>. 이 때 한국에 강제로 주둔하였던 일본육군 보병제24연대는 <福岡連隊>라는 별칭이 있었고, 일본군 병참시설과 경부철도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この時の韓国諸教会訪問は、日露戦争を白人対黄色人種の戦いであるようにみなす世界の世論に対して、日本の立場を弁明して、韓国にいた白人宣教師らに日本人にもクリスチャンいることを知らしめるためであったと言われる。中田重治はその時の本多のことを『先生は武官や役人に対して非常に鄭重に礼儀正しくし、「彼らはこうしておけば喜んでいる」と言われた。』宿に就き床に横たわれば、直ぐ寝入ったと』言った。
    이때의 한국 제교회 방문은 러일 전쟁을 백인-황색 인종 싸움인 것으로 보는 세계 여론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변명하고 한국에 있던 백인 선교사들에게 일본인도 기독교인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카타주지는 그 때 혼다를 『 선생님은 무관과 관리에 대해 매우 정중하게 예의 바르게 하고"그들은 이렇게 해두면 기뻐하고 있다"라고 했다. 』 숙소에서 잠자리에 들면 곧 잠들었다 라고 』 말했다.
    <위키피디어제공>

    ◆[이미지/화중광야제작] <'혼다 요이쓰'와 '나카다 주리'는 같은 '히로사키교회'(弘前教会/위사진 35주년기념식에 함께 참석) 출신들이다. 이들은 당시 <오사카상선>(大阪商船/1890년준공/오사카ㅡ인천 정기운항)을 타고 방한하였다.> ㅡ 공식적인 통역원이 없이 1904년 5월 14일 <고베항>을 출발, 16일 한국 부산에 도착, 2개월반 동안 전국을 방문하고 7월 21일 부산을 출발, 7월28일에 도쿄에 도착하였다는 기록을 보니, <大日本福音同盟会>라는 단체가 주도한 것인데...이 단체명으로 미루어 보건데, <WCC의 하부조직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들의 방한 목적이 '한국의 여러 교회들을 방문코저 한다'(韓国にある諸教会を訪問する)는 내용의 서한을 <韓国基督教会>에 발송했다는데...그 당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회>라는 곳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리송'(??)할 뿐이다!! 게다가 '통역원'이 없어서 부산에 도착하자, 선상에서 한문을 써가면서 전도하였다는데...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것이 공식방문이었다면, 한국교회측에서 얼마든지 통역원을 협조해줄 수 있었을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한반도 내에서 타국끼리 일으킨 전쟁 중에 말이다...<청일전쟁>도 예외가 아니었잖은가?? 영국이 한국에다 <거문도사건>을 일으켜서 주도 면밀하게 심어놓은 <월터 힐리어> 총영사인 밀정을 이용해서...급기야는 영국 왕실의 밀정 <이사벨라 비숍> 여사를 한국에 파견시킨 것도 <청일전쟁>을 취재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그 내막에는 <명성태황후 암살>을 위한 <사전공작??>이었음이...필자가 이미 앞의 글들에서 여러 차례 밝혀 놓은 바 있다. 특히나 영국의 한반도 정복의 음계(淫計)는 얼마나 주도 면밀하였던지...<힐리어>의 외조부 <월터 메드허스트> 선교사의 사진이 한 장도 보이질 않는다. 다만, 스케치해 놓은 이미지 서 너장 정도만이 보일 뿐이다. 자신의 모습이 '흉상'(兇像??)이었다고 판단해서 그랬을까?? 그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의 사진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나카다 주지>와 <혼다 요이쓰> 이 둘이 1904년 5월에 한국에 들어와 뿌려놓은 이 <세대주의적 오순절운동 씨앗>이 발아되어서 한국교계에 물밑으로 파고들었고, 급기야는 1907년 <평양대부흥>을 일으키는 하나의 견인차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하였듯이, 1907년에 <평양대부흥회>가 일어나자, 급기야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초대통감에 오른 <이토 히로부미>가 1907년에 사직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2년후 1909년에 <백만인 구령운동>이 번져나가기 시작하자, 일본제국에게는 하나의 큰 위협이 되었다고 판단된 것이었고, '억지공사'(??)로 1910년에  <한일병탄>을 감행한 것이었다고 판단되었다!!

이 연대장 <原田輝太郎>(하라다 데루타로)의 얼굴 역시 <명성태황후>의 어진을 소지하고 있었던 <미야모토 다케타로>(宮本竹太郞) 소좌와 같이 사진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주 치밀했던 일본제국 군부(참모본부)의 <음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대목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러나 오늘  <미야모토 다케타로>에 대한 사망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참한 말로였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어쩜 대만에 가서 세밀하게 뒤져보다 보면, 그의 얼굴(사진)이 찾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특히 하급도 아닌 헌병대위였으니...찾아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한국에서 후비대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는 헌병 대위로 집급, 일본으로 귀국치 않고, 대만에서 토벌 중에 죽었다!!] [본문번역/예미마정]

    中塚「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で、元文書が公開されています。これを丹念に読むと、川上操六(※12)と、三浦梧楼(※13)がやり取りをした文書がある。川上は、朝鮮にまだ日本軍の残存部隊がいるとき、それを自由に動かせる権限を自分に与えてくれ、と外務省を通さずに三浦に頼んでいる。そういう記録が出てきている。要するにあれは、真夜中に日本軍が訓練した朝鮮の兵隊と乱闘して、閔妃が殺されたことにしようとした。
    나카즈"아시아 역사 자료 센터에서 전 문서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를 정성껏 읽으면, 카와 카미 소로크(※12)와 미우라 고로(※13)가 교환을 한 문서가 있다. 카와 카미는 조선에 아직 일본군의 잔존 부대가 있을 때 그것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자신에게 주겠다고 외무성을 통하지 않고 미우라에 의지하고 있는. 그런 기록이 나오고 있다. 요컨대 그것은 한밤중에 일본군이 훈련한 조선 군인과 난동해 민비가 살해당한 일로 만들려던



    計画では、大院君(※14)を引き出そうとした。日清戦争の王宮占領のときに引き出され、さんざん日本軍にこき使われていた人物を、もう一度利用しようとしたのです。しかし、大院君が立ち上がらないまま、夜が明け始めた。南大門に朝市が立ち始めた。そういったところに、血のついた刀を下げた日本軍が帰ってきた。それで、乱闘の中で殺されたということがなくなってしまった。
    계획에서는 대원군(※14)을 끌어내려 했다. 청일 전쟁의 왕궁 점령 때에 나타나 신나게 일본군을 부리던 인물을 다시 한번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일어나지 않은 채 밤이 밝기 시작하다. 남대문 새벽 시장이 서기 시작했다. 그런 곳에 피가 묻은 칼을 찬 일본군이 돌아왔다. 그래서 싸움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 없어졌다.



    さらに、王妃事件についていうと、宮本竹太郎という陸軍少尉がいる。この人は、実際に閔妃を殺したのは誰かという話をするときに名前が挙がる人物です。東学の鎮圧にも行っています。この宮本が寺内正毅(※15)に宛てた書簡が1通だけあります。一少尉が、なぜ参謀次長に手紙を宛てているのか。
    이어 왕비 사건에 대해 말하자면, 미야모토 타케 타로라는 육군 소위가 있다. 이 사람은 실제로 민비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얘기를 할 때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동학의 진압에도 갔습니다. 이 미야모토가 데라우치 마사타케(※15)에게 보낸 서한이 1통만 있습니다. 한 소위가 왜 참모 차장에 편지를 보내고 있는가.



    この宮本、どこで死んだと思いますか? 宮本は、朝鮮から連れ戻され、特に何も処分されず、そのまま除隊したはずです。しかし、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にある資料によると、台湾で死んでいる。憲兵大尉になって、台湾討伐に行っている。なぜ、宮本が台湾に行ったのか。日本国家として台湾に行かせ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思いがある」
    이 미야모토, 어디서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미야모토는 조선에서 돌아와, 특히 어떤 처분도 받지 않고 그대로 제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아 역사 자료 센터에 있는 자료에 따르면 대만에서 죽었다. 헌병 대위가 돼 대만 토벌에 갔다. 왜, 미야모토가 대만에 갔는가. 일본 국가로서 대만에 보낸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다"<전쟁의 대가와 역사 인식/조선 침략의 진실 나라 여자 대학 명예 교수 나카즈 아키라 씨 인터뷰>
    <戦争の代償と歴史認識/朝鮮侵略の真実 奈良女子大学名誉教授 中塚明氏インタビュー/2013.2.18/자세히보기>.




결국에는 미국이 필리핀을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다는 <나눠먹기 밀약> 곧 <태프트-가쓰라밀약> 각본대로 움직였던 것임을 직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전쟁을 이용한 <세대주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한 노구가 여생을 간구와 눈물로 전하는 메시지ㅡ<제2의 태프트-가쓰라 밀약> 음모/자세히보기].

다만, 이 글을 필적(筆跡) 중에 한 가지 놀라운 <역사적 진실>을 찾아낸 것이다!! 이 순간 지난 8일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쉬지도 못하고...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긴장의 순간들이 사르르 녹아버림 말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왼쪽이미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3남 <아서>(Arthur William Patrick Albert) 왕자와 그의 가족이다. (위키피디어제공) ㅡ <오른쪽이미지> <아서 왕자>(코넛과 스트래선 공작/1850-1942)는 영국의 왕족이자 육군 군인이다. 1890년, 1906년, 1912년, 1918년의 네번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1906년에 친형 <에드워드 7세>를 대신해 방문하여 메이지 천황에게 <가터훈장>을 전달했다. <內田茂文, '世界情勢と躍進日本外交史', 京城:朝鮮新聞社, 1940, p.57>


<음녀>(淫女)인가?? <음부>(淫婦)인가?? ㅡ 본 주제 용어 정리 및 풀이를 마치면서...

아직도 고가(高價)로 있는 10종의 <묵시록강해서들>을 입수하지 못함은 아쉬울 뿐이다. 19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일제의 무단정치가 극도로 심하였던 그 기간 동안, <예호슈아>가 속히 오시기 만을 고대하였음은 천손(天孫)이 갈구하는 당연한 <대한민족의 정기>에서 표출되었던 것이다!! 이는 국내를 벗어나서 주변 인접 땅 안에서 분투하던 <독립투사들>의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는 <소원>과도 일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전통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상준>은 <예호바의 그 말씀>에 갈급하였고, 급기야는 부친을 설득해서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렇지만, 허허벌판 같은 일본땅에서 자신을 보듬어 줄 일본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후견인이 바로 <나카다 주리> 목회자였다. <김상준>은 <나카다> 교수의 수족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체류하는 동안 열심히 배웠다. 늦게 입학한 <정빈>과 함께 1907년에 귀국하여, 열심히 <예호슈아 그복음>을 전도하였다.

그렇지만, <김상준>의 앞날은 순탄치만 않았다. 특히 7년후 2014년 최초로 있었던 성결교단의 <목회자임직식>에서 참석은 했지만...안수를 받지 못하였다고 전한다...결국에 가서는 <정빈>도 타교단으로 떠나갔고...<김상준>도 다른 교단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이유를 필적하고자 본 붓을 든게 아니다!!

다만, 기존의 한글용어 <음녀>(淫女)를 <음부>(淫婦)로 차용한 그 과담성(過膽性)을 높이 평가하고픈 것이다!! 지난 번 <회중/교회> 대신에 <교중> 용어를 선택하지 않은 한국교회의 <대실수>에 이어서 이번에는 또 하나의 <대실수>였던 <음부>(淫婦) 용어로 회복해야 함이 참다운 성경적인 용어임을 전하면서...
필자의 이러한 판단은 기존의 관련서적들(교회역사서/선교역사)에서는 좀처럼 읽을 수 없을 '차원이 다른 주제'일 것이지만...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구준하게 필자가 필적(筆跡)해서 올리는 글들을 잘 섭렵하시기 부탁드린다!! <2014.7.6/깊은밤)

지난 7월 21일에 착수해서 오늘에서야 마지막 풀이가 되는가 보다. 그 사이에 <교황방한>과 <물들>이라는 주제를 정리하느라고 이렇게 밀려 버렸다. 아직도 성경용어에 '무관심' 내지 '전통'을 내세워 가면서 '아집'을 내세우고 있다면, 이는 속히 벗어버려야 할 <우상숭배의 가면>임을 통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귀한 자료들...마지막 때라서인지...<뉴라이트>(사보티안 마피안團) 잔당들이 한반도 강토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통감하였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직수입해서 '인간성'(휴매니티)를 초토화시켜 가고 있는 저 <가진자들의 폭력>(강부자)...이는 반드시 <대바빌론>의 멸망과 함께 사라질 것임을...<요안계시록>에는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기에...성경예언 그대로 믿고 의지하면서...이제는 또 남아있는 <그 길>...<우기>(雨器/비를 담는 그릇)과 아니 아직도 밟아보지 못한 <그 길>...곧 <남아 있는 성경용어 풀이>를 향하여 필자는 순교자 <손양원> 목회자님이 지으신 [주님고대가]를 부르면서...<나그네의 그 길>을 떠날 것이다!! 샬롬!! (2014.9.6/이른밤)

[BGM/04:21] <곡목/주님고대가-작사/손양원ㅡ편곡/백승남ㅡ노래/전용대>.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상기 이미지는 <위키피디어>를 통해서 입수한 것임을 밝혀둔다!! ㅡ <나카다 주지>(中田重治/1870-1939)는,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초기를 걸쳐 활약했던 일본의 교회 감독, 대중전도자, 순회전도자, 목회자(목사), 신학교(카시와기 성서학원) 교수 및 교장, 설교가, 번역가, 찬송가 작곡가, 실업가, 저널리스트, 신학자이다. 메이지 시대의 감리교의 목회자 <나카다 히사키치>(中田久吉/1859-1905)는 친형이요, 일본을 대표하는 교회음악가 <나카다 우고>(中田羽後/1896-1974)는 그의 차남이다. <찬송가 178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ㅡ 이 찬송은 이 차남이 미국의 <마가렛 해리스 부인>(Mrs. Margaret J. Harris/1865-1919)이 작사・작곡한 <The Old-Time Religion> 곡조에 맞춰 작사한 성령은사 찬송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나카다 목회자는 일본의 '무교회주의'의 창시자 <우찌무라 간조>(위이미지 오른쪽 중간)와 함께 <예호슈아 재림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이 <예호슈아 재림운동>의 근간은 예수회의 작품인 <세대주의>로부터 태동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42] 납치당한 '크리스투교' <자세히보기>.



[부록] 참고로 <카톨릭교 한글번역>을 소개한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요안계시록 17:1> 같은 성경구절인데도, 개신교쪽에서 <음녀>(淫女)와 <음부>(淫婦)로 번역하였는데, 카톨릭교(덕원수도원) 번역에서는 <창부>(娼婦)로 번역하였다!! 판단은 각자 하시기 바란다!! <'신약성서:서간-묵시록', 원산:덕원수도원, 1938, p.2, 694>.
 

 

<Created/20140830> <Updated/20140906><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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