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바로알기]

오직 '하나님의 의(義)의 흉패' 곧 '하나님의 가슴막이 거울'을 통하여
<질문: 이사야 59:17과 에베소서 6:14의 연관성?>

답변풀이/ 정재선 목회자

출애굽기
25:7

Onyx stones, and stones to be set in the ephod, and in the breastplate.

얼룩마노들과, 그 에봇 안에와, 그 흉배 안에 달 보석들이니라.

이사야
59:17

For he put on righteousness as a breastplate, and an helmet of salvation upon his head; and he put on the garments of vengeance for clothing, and was clad with zeal as a cloke.

따라서 그 분은 의를 한 갑옷으로써 붙이셨고, 구원의 한 투구를 자기의 머리 위에 쓰셨으며, 복수의 그 의복들로 옷입으셨고, 한 겉옷을 열심으로(하나님의 분노의 질투로) 입으셨도다.

에베소서
6:14

Stand therefore, having your loins girt about with truth, and having on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그러므로 서서, 진리로 너의 허리띠를 두르고, 의의 흉배/흉갑을 입고

위 본문에서 보듯이, 'breastplate'는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출애굽기 25:7>=성경에서 최초로 'breastplate'가 언급되며, '가슴을 덮어주는 주머니'(bag covering on the breast)로서, 히브리원어(H2833/호셴) '내포하다'는 뜻이다. 아래 이미지에서 보듯이 '12지파'를 포용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 Paul Carus, The Oracle of Yahveh: Urim and Thummim, the Ephod,
the Breastplate of Judgment,
Chicago: Open Court Publishing Co., 1911, p.21.


<출애굽기 28:30>을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출애굽기 28:30 (KJV)

 

출애굽기 28:30 (화중광야역)

And thou shalt put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the Urim and the Thummim; and they shall be upon Aaron's heart, when he goeth in before the LORD:

 

And thou shalt put under the breastplate of judgment the Urim and the Thummim, and they shall be above the heart of Aaron, when he comes before the LORD.

너는 심판의 흉배 안에 우림과 툼밈을 넣어, 아론이 주 앞에 들어갈 때에, 그것들이 아론의 가슴 있게 하라.   그리고 너는 그 우림과 그 툼밈을 심판의 그 흉배 아래에 둘지라, 그리고 그것들이 아론이 예호바의 그 얼굴 앞에(문자적) 나올 때, 그의 가슴 위에 있을 것이라.

우선, 위 본문의 번역은 왼쪽의 기존 번역(한킹)과 필자가 번역한 것과 무척 달라 보인다.

<이사야 59:17>=본절에서 'Breastplate'는 '갑옷/갑주'(coat of mail)을 의미하며, 히브리원어(H8302/쉬르욘)이며, '자유롭게 하다'(H8281)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본절은 앞의 <16절>과 더불어 성경에서의 수사법의 하나인 'Anthropopatheia' 즉 '겸손/겸양'을 나타내며, 인간에게 속해 있는 모든 특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기인된 것임을 나타낸다. <16절>에서 '자기의 팔'(his arm)은 '자기의 권능/능력'을 내포한다.

본 <17절>에서 '그 분은 의를 한 갑옷으로써 붙이셨고' - 어찌하여 예호바는 갑옷을 입으셨는가? 중국어 성경에는 '갑복'(甲服)으로 번역되어 있다. (新舊約聖經, 上海大美國聖經會, 1912). 마침 '한글개역'에는 '호심경'(護心鏡)이라고 번역하였다. 필자는 이 용어를 찾아나섰다:

■'新舊約全書', 中國基督敎協會, 南京愛德印刷有限公司. 1993..

■'新舊約聖書' (文理譯本), 2006.


필자가 예상한 대로, 중국어 성경 속에서 '호심경'(護心鏡)을 찾아냈다. 왼쪽 성경구절에서는 '鎧甲'(개갑)'갑옷'이라 번역해놓고, 그 아래에다 '或作護心鏡'(혹은 '호심경'이라고도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필자가 소지한 중국어 성경들이 거의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이 성경은 필자가 1993년 큰 형님의 주선으로 중국선교 여행 중 동북 3성에서 '예수셩교전셔'가 번역되고 발행된 바로 그 현장을 답사하는 중에,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님이 세우신 '동관교회'(東關敎會) 구내서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런데 오른쪽을 보자. 필자가 아끼는 중국어 성경이다. 이 성경은 '문리역본'(文理譯本)으로서 바로 한글 첫 성경인 '예수셩교젼셔'의 저본으로 받아들이는 성경이다. 이 사실을 입증하려면 스코틀랜드를 다녀와야 한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주님께서 아직 열어주지 아니하시니, 더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 성경은 2007년 필자의 녀식이 해외에서 구해다 준 것이다. 이 성경 본절을 보면, '護胸'(호흉)으로 번역해 놓았는데, 이는 '구리조각으로서 갑옷의 가슴쪽에 붙이는 호신용 가슴막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왼쪽의 성경구절 '호심경'(護心鏡)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옛날에는 '거울'을 '동'으로 만들었던 것이니, 양자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에베소서 6:14>=본절에서 'Breastplate'는 '흉갑'(cuirass)을 의미이다. 헬라원어(G2382/도락스)는 상징적으로 흉패로 가리워진 가슴을 지칭한다(요한계시록9:9).

왼쪽 중국어 성경에서는 <이사야 59:17>과 동일한 의미로서 '護心鏡'(호심경)이라 번역해 놓았다. 그런데 오른쪽 '문리역본'(文理譯本)은 '誠胸護'(성흉호)라고 번역해 놓았다. '정성껏 가슴을 보호하다'란 의미를 지닌다. 한글개역성경 번역위원이셨던 게일 선교사님은 자신의 개인번역본 '신역 신구약전서'(1925)에서 '護心鏡'(호심경)으로 번역해 놓으셨다.

한편, 로스 선교사님의 '예수성교젼셔'에는 본절을 '획심'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번역 당시 평안도 출신의 젊은이들이 '獲心'(획심) 곧 '가슴을 붙잡다'라는 의미로서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은 사탄 마귀와 싸워서 필히 이겨내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혼을 위한 영적 싸움'의 전모를 제시해준다. 그 중에서 인간을 정죄하려는 마귀의 공격을 '하나님의 의(義)' 만이 '흉패'(가슴막이)로서 보호해주신다. 다시 말해서, 이 '하나님의 의'는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최상의 선물'(거울)인 것이다!!

혹여 옛날 1960년대 마카로니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를 기억하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총잡이 블런디(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적이 쏜 총에도 죽지 않고 살았다. 어찌된 일인가? 항상 먼지가 뒤덮힌 망토를 두르고 있던 그의 가슴에는 동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스라엘/시온의 대적으로부터 공격해옴을 방어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이스라엘/시온의 대적이 무엇을 공격해 온다는 것인가? 바로 예호바 하나님의 '그 말씀'을 혼돈시키러 온다는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본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초림하시여 이루어 놓으셨다. 그리고 사도 바울께서 이를 증거해 주신다:

    5:8But let us, who are of the day, be sober, putting on the breastplate of faith and love; and for an helmet, the hope of salvation. (1 Thessalonians 5:8, KJV)

    5:8그러나 그 낮에 속하는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그 흉배/흉패를 붙이고, 구원의그 소망의 투구를 쓰자. (데살로니카전서 5:8, KJV화중광야역)

사도 바울은 이렇게 복음선교 이 시대에서 최선을 다하여 '혼의 갑옷'(The Breastplate of Soul)을 입어야 이 어둠(무지)을 깨달아 이겨낼 수 있다고 고백하신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공통적인 풀이를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갔다. 성경기록은 파고들어가면 갈 수록 '별미'가 예비되어 있음을 필자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그 위로를 얻는다.

마침 권승홍 목회자님이 <이사야 59:17과 에베소서 6:14의 '흉배/흉패'의 연관성>을 질문해 오셨기에, 문득 떠오르는 필자의 글이 있었다. 2001년에 잠잠이 써 놓았던 일종의 '신앙 에세이'이다. 원제목은 '바울의 거울'이다. 이 글이 본 주제에서 '하나님의 의(義)'로서 '하나님의 가슴막이 흉패'가 곧 '하나님의 거울'이라는 말에 적합하다 판단되었기에 약간 보완하여 보았다:

    13:9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13:10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i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shall be done away. 13:11When I was a child, I spake as a child, I understood as a child, I thought as a child: but when I became a man, I put away childish things. 13:12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shall I know even as also I am known. (1 Corinthians 13:9-12, KJV)

    13:9이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우리가 부분적으로 예언하지만, 13:10완전한 것이 오면, 그 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사라지게 되리라. 13:11내가 한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한 아이같이 말하고, 한 어린 아이같이 이해하고, 한 어린 아이같이 생각하였으나, 한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어린 아이들의 일들을 나는 버렸노라. 13:12따라서 지금은 우리가 한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보나, 그 때에는 얼굴를 맞대고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내가 알려진 바와 같이 나를 완전하게 알게 되리라. (코린도전서 13:9-12, KJV화중광야역)


사도 바울은 한 과감한 인물이었다. (참조='다메섹 길 위에서',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바울의 3차 전도여행','아데네에서의 바울'). 그는 자기 당대에 자기가 행한 '그 일들'(그 말씀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가 말한 '그 일들'(그 말씀들)을 위해서 평생 동안 기록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과감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하나님의 그 말씀들'(The Words of God)은 완전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다. 성경도 완전하시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완전치 못하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에게서 기록된 모든 말씀에 대한 우리의 번역들과 이해가 완전치 못한 것이다. 만약 그 기록된 말씀에 대한 번역과 이해가 완전하다면, 누구든지 각 구절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개인적인 인간의 이성(理性)이 그 부족함을 자주 메워오기 때문에, 각양의 해석(주석)들과 그로 인한 신앙들(교리들/교파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성령님을 통하여서, 그렇게 많은 성경기록들을 쓰도록 허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가 말한대로, 알려지고 이해되어야 하는 모든 말씀에 대해서는 '한낱 미흡한 거울에 비춰진 반영'(but a poor reflection)이었다고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이해하고 있음을 충분히 잘 알게 되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바울의 그 손을 통해서 기록하고 계신 바를  바울 자신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고 했는데, 대체로 어찌 감히 인간들이 더 잘 알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우선 하나님께 순종하고, 우리의 최선의 가능한 노력(성경기록의 번역)을 진실되게 쏟는다면, 우리는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부름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목적대로, 하나님이 우리 때에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모든 말씀)을 이해하도록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한 부모의 어른 마음을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밖에 없는 바로 그런 어린 아이들 같이, 우리도 우리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멀은 것이다.

위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말씀'에 대한 이해를(깨달음을) 거울에 희미하게 비춰진 모습에 비유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완전하고 뚜렷하게 거울에 비춰진 그 모습으로 갈망하는 바울의 겸손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우리도 오직 '하나님의 의(義)의 흉패' 곧 '하나님의 가슴막이 거울'을 통하여 티없는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하게 반영/투영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저 위를 바라보자. 샬롬.


<Created/20090811> <Updated/20090811>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