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바로알기]

성경구절의 오역의 현장 [1]
<이사야 60:5; 61:3; 62:11>

번역풀이 / 정재선 목회자

[질문] 왜? 킹제임스 번역성경은 이런 분위기가 전혀 나질 않는지요? 그저 영어를 기계적으로 번역해 놓고 말았습니다.

    <한글킹제임스역>
    그때에 네가 보고 함께 휩쓸려 네 마음이 두려워하고 커지리니, 이는 바다의 풍성함이 네게로 전향될 것이요 이방인의 재물이 네게로 올 것임이라.

    <킹제임스흠정역>
    그때에 네가 보고 함께 흘러 들어가며 네 마음이 두려워하되넓어지리니 이는 바다의 풍요함이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인들의 강한 군대가 네게로 올 것임이라.

'함께 흘러 들어가며'(flow를 번역한듯)...'두려워하되'(왜 두려워해야 하는지?)...'넓어지리니'(enlarge를 번역한 것인데, 무엇에 대하여 넓어진다는 것인지?)...번역자의 각주가 없이는 도무지 성경 본문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번역풀이]

1. 이사야 60:4-5

      60:4Lift up thine eyes round about, and see: all they gather themselves together, they come to thee: thy sons shall come from far, and thy daughters shall be nursed at thy side.

      60:4사면으로부터 너의 두 눈을 들어, 보라. 그들이 모두 함께 모이고, 그들에 네게로 오나니, 너의 아들들은 먼 곳으로부터 올 것이요, 너의 딸들은 네 팔 위에 안길 것이니라.

      60:5Then thou shalt see, and flow together, and thine heart shall fear, and be enlarged; because the abundance of the sea shall be converted unto thee, the forces of the Gentiles shall come unto thee.

      60:5그 때에 너는 볼지라, 그리고 함께(너도) 비추임을 받을지니, (예호바의 그 영광스런 구원으로) 너의 마음은 감격하여 놀랄 것이요, 기쁨으로 열릴 것이라. 왜냐하면 (사해) 그 바다의 그 풍요함이 너를 향하여 돌이켜질 것이요, 이방인들의 그 재물이 너를 향하여 올 것이기 때문이라.


    [미니풀이]

    함께(너도) 비추임을 받을지니=히브리원어(H5102/나하르)=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 ①'흐르다/모여들다'(flow/이사야2:2). ②'빛나다/찬란하다'(이사야60:5)='너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이 나다(be radiant/활기를 띄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함께(너도) 비추임을 받을지니'라고 해야 옳은 번역이 된다. <이사야서> 전반에 걸쳐 수사법(修辭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어느 경우에는 '한 성읍'(a city/60:14)으로, 어느 경우에는 '한 여자'(a woman/54:6)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로잡힘'중에는 '온 민족'(whole nation/44:1)로도 묘사된다.

    감격하여 놀랄 것이요(fear)=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 ①'두렵다'(신명기28:66. 욥기23:15) ②'기뻐하다'(praise/이사야60:5. 호세아3:5). '기쁨으로 마음이 고동치고/두근거리고, 고마움으로 벅차 오르다'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기쁨으로 열릴 것이라=70년간 억압당해 있다가 풀려남으로 새로운 해방을 맞으니, 마음의 고통들로부터 벗어남은 '시편27:17'에 대한 다윗의 기도의 응답이기도 하다.

    왜냐하면=일반적은 KJV에서는 원인/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for'(등위접속사)가 오는 것이 보통인데, 'for'는 이미 말한 바에 대하여 이유설명 등을 나중에 생각난 듯이 첨가하며, 추가적으로 덧붙이는데 사용하는 경우이다. 필자는 '~이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because'(종속접속사)가 왔다. '왜냐하면'으로 번역해야 된다. 본 히브리원어 '키'(H3588)는 '앞 뒤 문장의 모든 인과적 관계를 가리키는 불변사'이기 때문에, 본절에서는 앞절에서의 '감격하여 놀라다'의 목적절을 나타내려고 'because'를 채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아, 네가 왜 감격하여 놀라게 되는지 아는가?' 그 이유는...하면서 논리정연하게 '무엇이 어떻고 어떠해서...'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엄청난 우상숭배로 인하여, 예호바의 보복의 차원에서 타국들의 침범으로 많이 죽었고, 결국에는 바빌론에로 '70년간 사로잡힘'으로 갇혀 있다가, 다시 고토(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니...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쁨'(joy/60:15)과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받는 가시적인 즐거움'(pleasure/60:3,13)...이스라엘/예루살렘의 회복의 여명이 밝아오는 장면인 것이다.


    [시놉시스]

    선지자 <이사야>는 지금까지 전하였던 메시지 보다 더 구체적으로 새로운 시온/예루살렘에 대한 그 영광을 묘사한다. 고통과 슬픔의 긴 밤은 끝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그 자손들에 의해서 오랜 동안 버려져왔고 잃어 버렸던 예루살렘 위에 여명이 비추인다. 예루살렘에로의 그들의 귀환을 약속받는다. 성전도 다시 건축될 것이다. 예호바의 은총 아래 예루살렘의 찬란한 번영이 지속될 것이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세상을 향한 의로운 다스림의 중심지가 되어 간다. 예루살렘의 기진해 버린 길고 긴 암울함으로부터 '일어나라'(Rise)(이사야 60:1)라는 용기넘치는 새로운 생명의 말씀이 들려온다. 이는 '내려오라'(이사야 47:1)는 바빌론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미래적 실재'(아직 미완료상태)로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언약'(예레미야 31:31)으로 이방민족들이 예호바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것이요, 믿음으로 '참이스라엘'(참십일조)라 여김을 받으며, '새로운 예루살렘'이 이들을 위하여 예비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새로운 예루살렘'은 70년간 황폐되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크로노스시간' 안에서 의도하심이 있었으니 '예루살렘의 안식'이요, 이것의 목적은 70년 동안 연단/시험받은 후에 돌아오게 되는 이스라엘은 70년전의 이스라엘과 다른 '하나님의 것'(참십일조)로서 돌아옴이니, 바로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한 '그 거룩한 씨'(THE HOLY SEED)의 보존에 있는 것이다. 엄청난 영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어, 기회가 주어지면 별도 '참십일조' 주제에서 상세하게 풀릴 것이다.


    2. 이사야 61:3

      61:3To appoint unto them that mourn in Zion, to give unto them beauty for ashes, the oil of joy for mourning, the garment of praise for the spirit of heaviness; that they might be called trees of righteousness, the planting of the LORD, that he might be glorified.

      61:3시온 안에서 슬퍼하는 자들을 향하여 (위로와 기쁨을) 내려보내 주시려 함이요, 재(災)들 대신 화관(華冠)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근심의 마음 대신 찬송의 의복을 주시려 함이니, 그들로 주님이 심어 놓으신, 곧 의(義)의 나무들이라 불리워, 주님이 영광을 받으려 하심이라. (화중광야역)


    [미니풀이]

    본 구절은 선지자 이사야가 무엇을 'appoint'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았기에, 완전치 못하다. 그리하여 다음 절에서는 'appoint' 보다 더 정확한 말 'give'가 사용되었다. '시온 안에서 슬퍼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의 영구적이고 취소될 수 없는 것'(a permanent and irrevocable thing)으로 '위로와 기쁨'을 'appoint' 즉 '하사(下賜)하신다'(H7760)는 예호바의 은총이다.

    [시놉시스]

    <60장> 속에 묘사된 시온/예루살렘의 영광스런 미래가 이제부터 예호바의 의지와 즐거움을 그 분의 백성에게 전해 줄 그 사자(使者)로서 '예호바의 그 종'(The Servant of Yehovah)의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3. 이사야 62:10-12

      62:10Go through, go through the gates; prepare ye the way of the people; cast up, cast up the highways; gather out the stones; lift up a standard for the people.

      62:10나아가라, 그 문들로 나아가라. 너희는 그 백성의 그 길을 예비하라. 수축(修築)하라, 그 대로(大路)를 수축하라. 그 돌들을 골라내고, 그 백성을 위하여 한 깃발을 세우라.

      62:11Behold, the LORD hath proclaimed unto the end of the world, Say ye to the daughter of Zion, Behold, thy salvation cometh; behold, his reward is with him, and his work before him.

      62:11보라, 주님이 그 세상의 그 끝을 향하여 선포하시기를, '너희는 시온의 그 딸들에게 말하라, 보라, 너의 구원이 (주님의 인격으로) 이르느니, 보라, 그 분의 상급이 (가까이) 이르렀고, 그 분의 보상(삯)이 그 분의 면전에 이르렀느라.' 하셨느니라.

      62:12And they shall call them, The holy people, The redeemed of the LORD: and thou shalt be called, Sought out, A city not forsaken.

      62:12그리고 사람들이 그들을 '그 거룩한 백성'이라, '주의 구속받은 자들'이라 부를 것이요. 그리고 너는 '찾아진 자요, 버려지지 아니한 한 성읍'이라 불리리라. (이사야 62:10-12, KJV화중광야역)


    [미니풀이]

    그 분의 상급이 (가까이) 이르렀고
    ='그 분의 상급이 그 분 가까이에 이르렀다'는 의미인데, 차라리, 전치사 'with' 대신에 'beside'(~곁에) 혹은 'near'(~가까이에)라고 했으면 쉽게 풀릴 것을...'with'로 인하여 여간 혼돈이 일지 않는다. <킹제임스성경> 번역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 분의 보상(삯)이 그 분의 면전에 이르리라'=한 정복자(느부갓네살) 앞에 사로잡혀간 백성이 70년간 모진 고난과 시험/연단을 거쳐서, 정금같이 되어서, '새로이 회복된 백성'(newly-recovered people) 곧 '참십일조'가 되어 돌아온다는 의미이다.(이사야 60:4-5 시놉시스 참조). 마치 사도 바울의 '하나의 새로운 창조'(a new creature) 외침이 들려온다:

      5:17Therefore if any man be in Christ, he is a new creature: old things are passed away; behold, all things are become new. (2 Corinthians 5:17, KJV)

      5:17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하나의 새로운 창조이니, 옛것들은 사라져 버렸음이요, 보라, 모든 것들(만물/모임)이 새롭게 된 것이니라. (코린도후서 5:17, KJV화중광야역)

    <이사야62:11>의 시발점은 <이사야 40:10>이다:

      40:10Behold, the Lord GOD will come with strong hand, and his arm shall rule for him: behold, his reward is with him, and his work before him.

      40:10보라, 주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오시겠고, 그 분의 팔이 친히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그 분의 상급이 (가까이) 이르렀고, 그 분의 보상(삯)이 그 분의 면전에 이르렀느라.

    본절은 예호바의 바빌론까지의 진행과 자기 백성을 고토로 다시 데려오시기까지의 보살핌을 묘사한다. '사로잡힘' (captivity)동안에 예호바에게 충실한 자들에게는 '그 분의 상급'(his reward)과, 그리고 '그 분의 보상'(his work/recompense/wages)도 주시겠단다.


    [시놉시스]

    예루살렘이 다시 한번 그 미래의 행복을 확증받는다. 예호바가 예루살렘을 계속 지켜 보신단다. 예루살렘의 백성이 그 한 가운데에서 거주할 것이다. <이사야40:3>에서는 메시야를 위하여 '그 길'(The Way)이 예비되어야 하는 것이고, <62:10>에서는 예호바와 '바빌론의 사로잡힘'(The Babylonian Captivity)으로부터 해방된 자들이 통과하게 될 '그 길'(The Way)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Created/20090816> <Updated/20090816><200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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