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바로알기] 성경의 두 뿌리의 혼란 현장

동일 구절에 해석이 두 가지 [2]
<이사야 64:4-5>

번역풀이 / 정재선 목회자

[이사야 64:4-5]

    64:4For 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men have not heard, nor perceived by the ear, neither hath the eye seen, O God, beside thee, what he hath prepared for him that waiteth for him.

    64:4그러기에 오 하나님, 당신 이외는, 주님이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것을, 그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사람들은 들어 본 적도 없고, 그 귀로 깨달은 적도 없으며, 그 눈으로 본 적도 없나이다.

    64:5Thou meetest him that rejoiceth and worketh righteousness, those that remember thee in thy ways: behold, thou art wroth; for we have sinned: in those is continuance, and we shall be saved. (Isaiah 64:4-5, KJV)

    64:5당신은 의를 기뻐하며 행하는 자를 만나셨으니(창세기32:1), 저들은 당신의 길들 안에서 당신을 기억하나이다. 보소서, 당신은 진노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를 지었음이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그 길들은 옛적부터(지금까지) 있기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나이다. (이사야 64:4-5, 화중광야역)


    [미니풀이]

    (그러나 당신의) 그 길들은 옛적부터(지금까지) 있기에

    1. <맛소라사본> 관점에서 <이사야 64장>은 <63장>과 연결된다. 그 이유는 <63장>의 화자(話者)가 '메시야'이기 때문에, <64장>에서 'Thou'는 '주' 대신 '당신'으로 번역해야 한다!!

    2.
    본절은 풀이가 좀 까다롭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죄들로 인하여 그들은 오랜 동안 예호바의 그 분노 아래 있어 왔다. 즉, '70년 사로잡힘'(seventy captivity)이라고 하는 그 긴 여정 안에 있었다. 결국은 '죽음'이라고 하는 불안한 떨림과 두려움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사야 59:19 참조).

    그러나 그들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소망이 있다. 바로 그것은 '그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곧 '옛적의 모든 날들로부터'(이사야 63:9,11,16,19 참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 동안 그 광야 땅 안에서와 같이, 때로는 징계하는 보응자로서, 때로는 친절한 친구로서 베풀어주신 '주님의 그 길들'(The Ways of the Lord)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제라도 회개하고 주 예호바에게로 돌이키는 자는 구원시킬 것이라는 한 가닥 소망이 있는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 필연성이 예시되어 있다.

    3. 그런데, 아래 이미지에서 보듯이, <개역>(RV/Revised Version) 본절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64:5Behold, thou wast wroth and we sinned: in them have we been of long time. Shall we be saved?

      64:5보소서, 당신은 분노하셨고 우리는 죄를 지었나이다. 그 죄들 속에 우리는 오랜 동안 있어 왔나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요? (RV, 화중광야역)

      Interlinear Bible,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06, p.945.


    그리고 하단의 여백주(붉은색)를 보면,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이 '변질된 것일 가능성'(the text is probably corrupted)을 언급해 놓았다:

      in those is continuance, and we shall be saved.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제네바>성경도 변질된 성경이란 말인가?

      Thou diddest meete him, that reioyced in thee, and did iustly: they remembred thee in thy wayes: beholde, thou art angrie, for we haue sinned: yet in them is continuance, and we shal be saued. (Geneva Bible 1587)


    위 <개역>을 번역한 자들은 앞의 성경풀이 '동일 성경구절에 번역이 두 가지'<이사야 59:19>(자세히보기)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웨스트콧트와 홀트이다.


    웨스크콧트
    (Brooke Foss Westcott (1825-1903)


    홀트
    (John Anthony Hort /1832-1892)

    영국 출신의 이들은 예수회가 키워 놓은 학자들이다. 예수회(바티칸)가 <킹제임스성경>을 거역하는(지금까지)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하여 굳이 저 두 학자들을 동원시켜서 <킹제임스성경>을 난도질하였는가? 우리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이렇듯 성경은 <두 뿌리>를 중심으로 하여 지금까지 양산되어 오고 있다. 이 <개역>(신약 1881/ 구약 1885)을 중심으로 해서 20세기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변질된'(corrupted) 성경들이 양산(量産)되어 오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이를 '모조성경'(Counterfeit Bible)이라 명명하였고, 일부 관련 자료들을 이미 홈페이지에 실어 놓았다. 이러한 영향 하에서, 우리 <한글개역성경>이 저 <개역>을 저본으로 한 이유도 필자로서는 이해하지 못하겠고, 다만 언더우드 '목사'가 독단적인 판단(?)에서 결행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미 1887년에 만주에서 발행된 최초의 한글신약성경 <예수셩교젼셔>가 있었고, 이를 보완, 재발간 하려고 진행 중이었는데...돌연 그 번역사역을 폐기하고서, 이 변질 투성이의 <개역>을 저본으로 한데서, 필자는 언더우드 중심의 당시 번역자회의 배경(?)을 심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존 로스 목회자님과의 교제를 갑자기 끊었을까? 잘만 협력하였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엉터리 <한글번역>(한글개역/현대인의성경/쉬운성경/현대어성경/새번역성경)은 양산되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과연 누구의 공작(?)이었을까? <예수셩교젼셔>의 저본은 <킹제임스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성경이었는데...말이다.

    이제 필자는 이러한 '변질된' 번역에 의해서 귀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한 변질된 성경들을 과감하게 끊어 버리고, '참다운 하나님의 그 말씀'으로 돌아오라는 권면이다!! 샬롬!!


    <Created/20090820> <Updated/200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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