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바로알기]

구약 속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훗날에 성취된 구전 예언!!
'그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
<마태복음 2:23>

풀이/ 목회자 정재선



[본문] <마태복음 2:23>

2:23And he came and dwelt in a city called Nazareth: that it might be fulfilled which was spoken by the prophets, He shall be called a Nazarene.

2:23그리하여 그가(요셉이) 나사렛이라 부르는 한 성읍 안에 이르러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해진 그 말씀, '그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 함이 이루어지려 함이라.


[질문] <마태복음 2장 23절> '그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고 말씀하신 성경구절이 구약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나오질 않습니다. 나사렛과 나자렛 --> 나실인 모두 어근이 같은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엔 성령께서 분명히 <마태>를 통하여 생각나게 하시고 기록하셨을 텐데요... <권승홍 목회자 드림>


[답변] '그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 ㅡ 어떤 의미에서는 '악한 이름'(evil name)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사렛인'(Nazarene)은 비난의 용어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창세기 49:26), 그리고 <민수기 6장>에서 맹세한 삼손에게 적용된 '분리된 자'(나실인/Nazarite)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비록 구약 속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전해져 오는 '구전 예언'(口傳豫言)이 훗날에 성취되었고, 그 성취된 예언을 성도 마태가 훗날에 입증한 '기록 예언'(記錄豫言)인 것입니다!!


[용어상 어원이 다르다!!]

우선 '나사렛'의 용어는 헬라원어상 '나자레드'(Ναζαρετ/G3478)로서, 그 어원이 불확실한 고유명사이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24; 10:47. 누가복음 4:34>에서는 '나사렛의' 형용사인 '나자레노스'(Ναζαρηνος/G3479)로 불리운다. 그리고 <누가복음 18:37>에서는 '나사렛인' 고유명사인 '나조라이오스'(Ναζωραιος/G3480)로 불리운다.

이 용어들은 그리스도교 밖의 세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예수님과 그 분의 제자들에게 적용될 때는 '경멸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성도 바울은 이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으며, 그대신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이/Χριστιανοι/G5546)가 이방 세계에서 통용되는 호칭이었다 (사도행전 11:26 참조).

그런데 '나사렛' 용어가 구약에 인용되는 '나지라이오스'(나실인/사사기 13:5,7)과의 유사성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킷텔'의 용어풀이에 대체로 공감하는 경향이다. [게르하르트 킷텔 & 게르하르트 프리드리히, '신약성서 신학사전', 서울: 요단출판사, 1986, p.701].

그 이유로는 히브리원어 '나실인'이 '나지르' '구별된 자 곧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라는 의미를 지는데, 그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준수사항이 있었다. (민수기 6:1-21):

    1. 그들은 포도주나 독주나, 달거나 신포도즙이나, 생것이나 말린 포도를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었다.

    2. 그들은 머리를 깎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

    3. 그들은 죽은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했는데, 이는 자신을 부정케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상의 특징을 지닌 '나실인' 용어상 '어원이 같다는 설'(?)에 대하여는 필자는 이에 공감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그 이유가 밝혀질 것이다.


['나사렛' 용어 속에는 '경멸'과 '멸시'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릴리지방 안에서 '메시야'가 '나사렛' 안에 거주하신다는 것은 당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22:7But I am a worm, and not a man; the reproach of men, despised of the people. (Psalm 22:7, Aintworth 1639)

    22:7그러나 나는 한 벌레요 사람이 아니니, 곧 사람들의 한 비방거리요, 백성들에게 멸시거리입니다. (시편 22:7, Aintworth 1639 화중광야역)

    [참고] <킹제임스성경>은 <시편 22:6>이다!!


'한벌레'=연약함, 곧 비참하고 발로 밟힘을 의미함(욥기 25:6. 이사야 41:14 참조). 위 <시편22:6>은 '살을 입으시고 인간으로 이 땅 위에 오실' 메시야께서 참기 어려운 극도의 고통에 빠져 있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본 <시편22편>은 하나님의 인류 구속사적 파노라마 계획 속에서(크로노스) 고난받으시면서도 '그 아버지의 그 뜻에 순종하시는'(요한복음 17장 전체 주제임) '양들의 그 선한 목자'를 예표한다. 결국에 가서, 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그 땅' 위에서 죽으신다:

    10:11나는 그 선한 목자다. 그 선한 목자는 그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다. (요한복음 10:11, KJV)


['나사렛' 용어 속에는 '가지'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11:1And there shall come forth a rod out of the stem of Jesse, and a Branch shall grow out of his roots: (Isaiah 11:1, KJV)

    11:1그러나 이새의 그 줄기에서 한 싹이 날 것이요,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 (이사야 11:1, KJV화중광야역)


'한 가지'=히브리원어 '네체르'(netser/H5342)='나무가지, 자손'. '나차르'(natsar/H5341)='보존하다, 지키다'에서 유래되다.

위 본문에서 '가지'는 <마태복음 2:23>의 용어 '나사렛'(Nazareth)과는 무관하다:

    2:23And he came and dwelt in a city called Nazareth: that it might be fulfilled which was spoken by the prophets, He shall be called a Nazarene. (Matthew 2:23, KJV)

    2:23그리하여 그가(요셉이) 나사렛이라 부르는 한 성읍 안에 이르러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해진 그 말씀, '그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 함이 이루어지려 함이라. (마태복음 2:23, KJV화중광야역)


'그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 하는 본문이 구약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입으로 전해진'(口傳/spoken) 것이요, 구약 성경 속에 '기록된'(written)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나사렛인'(Nazarene) 용어와 '가지'(Branch)를 의미하는 히브리원어 '네체르'(netser) 양자간에 한 가지 연관성을 가정(假定)해 볼 수 있다. 이같은 연관성은 한낱 추정(推定)에 불과하다는 사실과는 별도로 하고, 양자간에는 불일치가 성립된다. <마태복음 2:23>의 예언은 '그 선지자들'(the prophets) 곧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입으로 전해진 반면, <이사야 11:1>의 용어 '네체르' 곧 '가지'는 <이사야>를 통해서 '그리스도'에만 사용된 것이었다. 그 외에 이 용어는 구약에서 3회 인용되는데 (이사야 14:19, 60:21. 다니엘 11:7), 이 세 가지 용례에서는 '그리스도'와는 무관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제 전체가 우리가 읽는 구절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사실에서 '꾸며낸'(CREATED) 한 문제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성경기록이 말하기를, '그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 하는 그 예언은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해진'(SPOKEN) (헬라원어 '레덴'(ρηθεν/G4483) 반면 (마태복음 2:23),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그 예언이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된'(WRITTEN) (헬라원어 '게그라프타이'(γεγραπτα/G1125) 사실인 것이다. (마태복음 2:5).

그런데 성경 본문이
'전해진'(SPOKEN) 것이면, 그것은 기록된 것이 아니라, 입을 통해서 '구전된' 것임을 의미한다. 일부 성경기록들은 '전해진' 것이 아니라, '기록된' 것이 있으며, 또 다른 성경기록들은 동시에 '전해지기도 하면서 기록된 것도'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신약성경 속에서 '기록되었으되'(as it is written)라는 인용구절을 읽으면, 그 구절은 100% 구약성경 속에 있음을 보증받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단순히 '전해진' 것이라는 구절이면, 우리는 그 구절을 성경 속에서 찾아내려 할 것이나, 그것이 성경 속에 기록된 바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 말씀>이 기록된 사실을 보증하지 않기 때문이니, 다만 '전해진' 것임을 보증받는 것 뿐이다.

신약성경 속에는 이같이 '전해진' 구절들이 15회 인용되어 있다: <마태복음 2:15, 17, 23, 3:13, 4:14, 8:17, 12:17, 13:35, 21:4, 22:31, 24:15, 27:9, 27:35. 마가복음 13:14>.


['예수님이 한 나사렛인 ㅡ 한 종으로 불리리라'는 예언이다!!]

본 예언의 성취는 <마태복음 2:23> 속에 제시되어 있다. 이 예언은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구전되어 오다가'(
SPOKEN), 훗날에 성도 마태에 의해서 '기록되어진'(WRITTEN)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수사법'이 내재하고 있다. 일종의 비유법인 셈이다. 따라서 본절은 수사법상 '히스테레시스'(Hysteresis/본래 역사 속에서 빠진 부분을 훗날에 보충하는 방법) 혹은 '연속화법'(Subsequent Narration)이라고 불린다. 이 수사법은 성령님이 그 후에 이어지는 성경기록들 속에다 역사 자체 속에는 제공되지 않은 보충적인 내용들을 부가시키신다. 때로는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들인데도, 이전에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경우이다. 이러한 사실들 중 그 한 가지가 바로 '메시야가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서, '메시야'가 '살을 입고 이 땅위에 이르신다'는 예언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한 가지'로서 비유된 것이었다:

    11:1And there shall come forth a rod out of the stem of Jesse, and a Branch shall grow out of his roots: (Isaiah 11:1, KJV)

    11:1그러나 이새의 그 줄기에서 한 싹이 날 것이요,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 (이사야 11:1, KJV화중광야역)


위 본문은 그리스도가 '거룩한 그 씨'로서 '숨겨지신 채'로 오신다는 예표인 것이다:

    3:8I will bring forth my servant the BRANCH (Zechariah 3:8, KJV)

    3:8그러니 보라, 내가 나의 종 , 곧 을 내겠노라. (스카랴 3:8, KJV화중광야역)


위 두 구절의 영어 표현은 'BRANCH'로서 동일하다. 그렇지만 히브리원어상, 위 구절은 '네체르'요, 아래 구절은 '체마흐'(tsemach/H6780)이다. '체마흐'는 '줄기가 잘린 상태의 밑둥에서 돋아난 싹'을 의미한다. (예레미야 23:5 참조).


◆'
보라, 내가 나의 종 , 곧 을 내겠노라.' (스카랴 3:8) <화중광야제공>


다윗 왕가의 끊김과 이스라엘의 '사로잡혀감'(CAPTIVITY)에서 한 구원자'가 나오신다는 예표이다. 이것은 예호바의 새로운 택하심이 아니라 옛적 선택을 실제 체험 속에서 다시 드러내신 것이다. 이 예언은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록한 <마가복음>의 주제가 된다. 이에 관한 상세한 것은 1999년에 전한 필자의 신학원강해 '숨겨진 자'와 '그 거룩한 씨'에서 풀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들은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 속에서 숨겨진 채로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지 않았다가, 성도 마태의 때에 이르러서, 그 예언의 성취와 함께 기록된 것이다.

    '예수님이 한 나사렛인으로 불리리라'는 이 구전예언이(마태복음 2:23)...

    '예수님이 하나님의 한 종이 되셨도다' 곧 '메시야'로서 성취된 것이 아니겠는가!! (마가복음 10:45. 빌립보서 2:7).


[맺는말]

구약성경에서 인용된 신약성경의 구절들은 두 가지 부류로 이루어져 있다: '전해진'(SPOKEN) 구절과 '기록된'(WRITTEN) 구절이다. 신약성경 속에 인용된 구절들의 대부분이 '기록된'(WRITTEN) 것들에 속한다. 그 말씀이 보증한다. 그래서 '기록된' 구절들이 구약 속에서 찾아지지 않는 예는 없다.

반면, '전해진' 구절들에 관해서는 구약성경 속에서 찾아진다는 보증이 없다. 이러한 구절들은 '전해진' 것들이 또한 '기록된' 것들일 경우에만 구약 속에서 찾아진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전해진' 모든 예언들이 '기록되기도' 하였다고는 그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된 신약 속에 인용된 15가지 예언들은 '전해진' 것들로서 13가지는 '기록되어' 우리는 구약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나머지 두 가지 예언 만큼은 구약 속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본문 <마태복음 2:23>과 <마태복음 27:9-10>이다.  후자는 다루지 않았다. 성도 마태는 이 두 가지 예언들을 수사법상 '히스테레시스'(Hysteresis/본래 역사 속에서 빠진 부분을 훗날에 보충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구전된' 후로 오랜 동안 '격언'으로 존재해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예언들에는 문제가 존재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꾸며낸'(CREATED) 것이 아닌 이상은 진실이다. 샬롬!!



<Created/20100313> <Updated/201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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