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범접함을 허용치 않았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전하는 자, 예언하는 자는 항상 음악과 동행 하였음을 성경에서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귀를 만족해 주고, 음악을 하는 자 자신이 만족을 하고,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음악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열을 가릴 뿐...그런데 우열을 가린다고 더 못하는 사람의 음악을, 그 사람 인생 자체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아있기에 나는 것이 소리이기에, 너무 최고, 완벽한 것만 추구하는 것은, 차가운 건물 같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음악에 답답증을 느낄 뿐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피아노를 곧잘 치곤 합니다. 때론 보는 것 조차 음악을 연주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건반을 쳐다 보지 않아도 건반이 익어서 그렇게 어둠 속에서 치곤합니다. 그러나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어두운 학교에 혼자 남아서 연습을 하건, 내 방에서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건 말입니다.

저는 피아노를 치며 기도를 하곤 합니다. 피아노 치는 것 자체가 기도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기도를 할 때마다 제 스승이신 '다니엘 정' 선생님이 작곡하신 '화중광야'(花中曠野)를 칩니다.

아무리쳐도 질리지 않는 그런 멜로디를 30분만에 지으셨다고 하는 후문을 들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좋은 곡을 지어놓으시고, 제가 그 곡만 친다고 가끔씩 뭐라고 하십니다. 제가 다른 곡은 안쳐서 그렇지만... ㅎㅎ

클래식을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곡을 완성해서 뭘 얻을 것인가? 그래서 싫증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클래식이 더 좋아졌습니다. 다니엘 정 선생님으로부터 작곡과 화성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배운다고 다 잘하는 거 아닌거 다들 아시지요? ^^;

이제는 무턱대고 연습하기 보다, 클래식 작곡가들이 무슨 화성을 어떻게 전개시키고, 무슨 색의 화성을 썼는지 조금씩 눈에 보이면서 옛날 음악가들의 창의성과 틀에 매이지 않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단순히 반복하는 재즈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클래식 음악가들은 틀에 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한날 선생님이 그러셨습니다. 재즈는 '스윙'이라는 리듬에 갇힌다고...(그 비슷한 말... 기억이... 가물....)

저에게 그래서 선생님은 재즈는 따로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재즈도 공부하라고 하셨지...음악을 창조하고 만져보고, 느끼게...그렇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모든 학문은 다 통하듯이, 음악이란 것은 기본이 탄탄하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은 안하려 하고, 손가락만 돌리려 하니 '원숭이 제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피아노 학원'에서는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진도만 빨리 빼려고 하고, 부모도 못기다리고, 학생도 못 기다리고 말입니다.

저도 그런 교육에 젖어 왔던 사람이었기에, 다니엘 정 선생님의 가르침에는 도무지 적응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주신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냥 '곡 만들어와' 하셨거든요.

블루스 마디 형식만 적어주시고 익히라고 하시고, 클라비노바 데이터도 알아서 만들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은 하나 하나 가르쳐 주시면서 말입니다.

완전히 눈보라속에 숟가락만 줘서 내보내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한날 제가 하도 답답해서 선생님께 요청했드랬습니다.

'클래식화성학 좀 기초부터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저에게 그런게 필요없다고 말입니다. 그대신 자신만의 화성적 개념을 저에게 차곡, 차곡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 제가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는데...계속 반복해서 듣다보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화성을 잡고 치고 있었습니다. 사실 베토벤도 즉흥연주의 대가였고, 모짜르트도 왼손 리듬이 벗어나지 않는 한 '오른 손'의 변주를 허용한 악보도 나와 있을 정도로 클래식 작곡가들은 자유분방한 창작가들이었습니다.

'모짜르트'도 그 당시 선배 음악가들과 충돌이 있었고, 그들은 그의 음악을 색안경을 쓰고 봤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음악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비록 '프리메이슨'이었다고 하나, 그가 완전히 매어있지 않았음을 그의 음악을 접하고, 특히 그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비밀결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음악적 색을 버리지 않았음을 말입니다.

만약에 그가 진정 그들의 하수인이었다면, 죽기 직전에 그렇게 힘들게 살고, 그렇게 빨리 생을 달리 했을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음악은 음악인의 인생이기에...어느 누구도 범접함을 허용치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프리메이슨의 심볼이 그의 소나타에 여기 저기 나타났다고 하나, 그는 그것을 단지 이용하였을 뿐, 그것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음악을 인생을 해치도록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뇌했나 봅니다. 그래서 그토록 힘든 인생을 살았나 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젊은 천재는 그렇게 일찍 자신의 음악을 거둘 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쇼팽도 어느 이름 모를 병원에서 폐병으로 쓸쓸히 혼자 죽었다죠?

슈베르트는 평생 자신의 피아노도 가져보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과연 유명해 지려고 음악을 했을까요?

음악가들은 자신이 살아있으니, 그저 음악을 했을 뿐입니다.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어느 누구의 삶이 더 가치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서바이벌 음악프로그램'을 보며, 귀는 즐겁지만 마음은 무지 아픕니다.

뒤에서 고통스럽게 자신의 음악을 갈고 닦으신 분들일 텐데, 그저 한낮 장미처럼 탈락시키는 그 모습에서 씁쓸한 뒷맛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오디션' 바람이 불어서 젊은 혈기들이 미친듯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누가 인정해줘야만 음악을 하는 건가요?

누가 내 음악을 들어줘야만 내 음악이 존재하는 건가요?

내가 내는 소리 인정 안해줘도, 내가 살아있는 거 누가 인정안해준다고 투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저 살아있음에, 살아있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거지요...

그저 따라하는 사람에서 무언가 저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다니엘 정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완벽하지만, 그 완벽을 넘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언제나 제게 귀감이 됩니다.

<2011.10. 28/밤/디안>

 
<Created/20111028> <Updated/20111028>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