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힘을 닮아가는 버릇과 엘로힘의 그 말씀을 담는 그릇

글/ 안연숙

'비를 담는 그릇... 엘로힘의 그 말씀을 담는 그릇...그 그릇의 겉과 밖을 깨끗케 하라는 예호슈아의 그 말씀을 떠올립니다.' (본문중에서)


Having therefore these promises, dearly beloved, let us cleanse ourselves from all filthiness of the flesh and spirit, perfecing holiness in the fear of God. (2 Chorinthians 7:1, King James Version)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들아, 우리가 이러한 약속들을 가지고 있음이니, 예호바를 두려워함으로써 우리의 몸들과 영들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순결을 완전케 하자. (코린토후서 7:1,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성경만 펴면 이 구절을 항상 펴곤 했습니다. 그냥 읽어야지 하고 여는 순간 항상 이 구절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살과 영의 모든 더러움으로 부터 깨끗케 하자.'

목욕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일단 피곤하거나 정말 더러운 줄 알면서도 일단 목욕탕에 가기가 귀찮아 집니다. 엄마 손에 붙잡혀 가지만 덥고 힘든 목욕탕이란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목욕을 다 하면 항상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들고 마음까지 깨끗한 기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깨끗케 하자'라는 말이 그렇게 좋게 다가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깨끗케 하는 것은 귀찮고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차갑던 뜨겁던 물이 필요하고 더러운 것을 닦아내야 하는 수고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더럽고 싶고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반항심이 생기는 말이었습니다.

예전에 정재선 목회자님의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워딩을 하고 있는데, 맨정신에 아무 일도 없었고 다만 속사람의 음성과 상상으로만 제 손이 깨끗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잠시 연상되는 저의 손엔 피가 가득했었고, 속사람이 이렇게 말씀하시며 닦아 주셨습니다 ㅡ '에이 더러워 닦자.' 그 짧은 경험 후에 맘이 많이 편해짐을 느꼈습니다. 홀로 복수심에 불타오르며 항상 앙심을 품고 있던 저의 손에는 이미 많은 피가 묻어져 있었습니다. 저도 그 연상되는 제 손을 바라보며 놀랬습니다 ㅡ '어머 내 손에 피가 많이 묻어져 있네... '

    Having therefore these promises...

    우리가 이러한 약속들을 가지고 있음이니...

무슨 약속을 가졌길래 깨끗해 져야 할까요? 무엇으로 부터요? 바로 아래의 구절들을 잠시 살펴보려 합니다:

    And what agreement hath the temple of God with idols? for ye are the temple of the living God; as God hath said, I will dwell in them, and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예호바의 그 성전과 마귀들(우상들)과 어찌 일치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계신 그 알로하의 그 성전임이라, 말씀하시길, '내가 그들과 함께 살겠고 그들과 함께 거닐겠고 그들의 알로하가 되겠으며, 그들은 나의 백성들이 되겠도다.

    Wherefore come out from among them, and be ye separate, saith the Lord, and touch not the unclean thing; and I will receive you,

    예호바가 말하노니, 그들 중으로부터 나와 너희들이 따로 있거라, 그리고 불결한 자 어느 누구에든 집착하지 말거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겠도다.

    And will be a Father unto you, and ye shall be my sons and daughters, saith the Lord Almighty. (2 Corinthians 6:16-18, King James Version)

    그리고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겠으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겠도다.'고 그 전능자 주인이 말하는도다. (코린토후서 6:16-18,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는 'for ye are the temple of the living God'(이는 너희가 살아계신 그 알로하의 그 성전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겪는 <108 번뇌>를 벗기 위하여 수행을 하고 스스로 깨끗케 하려고 노력한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호슈아를 만나지 않으면 스스로 깨끗해 질 수가 없습니다.

어릴때부터 죄에 대해 들어오고 그것을 피해야 하며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수도 없이 들어왔기에, 항상 <그 죄>에 눌리면서 살아왔습니다. 깨끗케 되기 위해 성경말씀을 매일 읽어도 죄를 이길 방도가 없었고, 저는급격한 두려움 속에 빠져서, 매일 은혜받는 곳을 찾아다니며 말씀을 듣고 변화받으려 애를 썼었습니다. 그러면서 돈도 집회때마다 다 내버리고 밤늦게까지 밖에 나도는데도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것이 은혜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그 생활을 한지 6개월째부터 어지러움 증세가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찾지 못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광맥>을 말입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하는 가운데 저의 피아노 스승이신 '다니엘 정' 선생님의 아버지와 선생님 카페 채팅에서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4>을 풀어주셨는데 킹제임스성경에는 'love'가 아니라 'Charity'라 한다셨습니다.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오래참고, 친절하냐고, 질투 안하고...<그 사랑>은 사랑의 본체이신 '예호슈아'님을 의미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눈에서 불이 났습니다. 아!! 그래 그렇지. 이 목회자님에게 말씀을 배워야 겠다. 그때부터 목회자님의 가르침으로 엉덩이에 뽄드 붙히고 공부하라는 말씀에 귀에 못이 박혔습니다. 더이상 집회에 돌아다니지 않자, 몸이 한결 건강해 졌습니다. 그리고 방황하던 제 마음도 잡히는 듯 했습니다. 전 <그 사랑>이 <예호슈아>님이시라는 <그 예호슈아>를 그 때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딴 사람에게도 이 구절을 그렇게 푸는 것이 저한테 만큼 충격으로 다가올지 말입니다. 그때의 감격은 농부가 첫곡식을 거두는 것보다 더 기쁘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그 구절을 그렇게 시원하게 푸시는 분이 없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별되는 것입니까? 예호슈아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목자를 따라가느냐에 따라 유리바다로 향하느냐, 아니면 영벌 지옥으로 가느냐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우상을 따라가느냐? <예호슈아>를 따라가느냐?

<예호슈아>는 오래참으시고 친절하시게 우리 앞 못보는 양떼를 인도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108번뇌 속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 댈 때에도, 그 분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찾아내 구해내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진흙탕 속을 헤매던 우리의 더러움을 친히 닦아 주십니다. 우리가 그 더러움에서 깨끗해지기 싫어도 목욕탕으로 자식을 끌고가는 어미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 더러움에서...<그 108 번뇌> 속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하고 깨끗함을 유지하는 한 송이 '연꽃'처럼...스스로 그 번뇌 속에 구르더라도 아이를 씼기는 어미의 열심으로 <예호슈아>는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속해 주시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아니시라, 우리를 그 분의 목숨으로 사신 그 후로도 항상 우리를 깨끗케 닦아주신 다는 것입니다:

    네 마음에 미움이 가득해서 네 손에 피가 가득하다. 아이고 더럽다 씻어줄게.

사랑의 본체이신...그 빛의 본체이신 밝음이 <예호슈아 크리스투> 그 분의 성전인 우리안에 거하시면, 흑암의 모든 마음들과 우상들은 함께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엘로힘>과 함께 함을 선택함이 필요한 것 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함께 하지 않으며 우상을 멀리하는 것...그것이 <엘로힘의 그 성전>이 갖추어야 할 깨끗함의 요건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살은 무엇입니까? 영과 혼을 담는 그릇인 것처럼, 만약에 이 살의 그릇에 나의 혼이 빠져나가고 다른 나쁜 잡귀가 들면 그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그릇의 주인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우리의 아버지는 우리를 만드신 <엘로힘 하나님>이시기에...우리는 다른 어떠한 사상과 다른 우상들을 담을 수 없습니다. 만약 담게 된다면 잡귀에 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겠죠.

그래서 그런 약속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나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그 약속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신사람, 담은 사람, 닮은 사람...말입니다!!

    And will be a Father unto you, and ye shall be my sons and daughters, saith the Lord Almighty. (2 Corinthians 6:18, King James Version)

    그리고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겠으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겠도다.'고 그 전능자 주인이 말하는도다. (코린토후서 6:18,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하늘 말씀 '가림다 한글'>에서 나온 글에 감동되어 이렇게 서론을 길게 쓰게 된 것입니다. 짤막하게 그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버릇= 그릇

    -> -하늘

    -> 얻다. 안다. 받다. 지다. 지니다. 품다. 갖다.

    -> 살아움직임-하늘삶

    -> 되다. 쓰다. 살다.

    -> -목숨

    몸버릇(사람,천지인)-그릇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

    세살은 삶의 비롯(낳음)

    여든은 삶의 마감입니다.

    81=9×9=3×3×3×...

    81자의 천부경

    하늘(머리) () 사람(다리)

    81 글꼴은 하늘 따앙 사람의 버릇을 뜻함이 아니랴. 낳음과 죽음의 삶인데 삶은 하늘버릇으로 하나되게 하라는 뜻이겠죠.


    <'가림다 한글' p.469>.


비를 담는 그릇... 엘로힘의 그 말씀을 담는 그릇...그 그릇의 겉과 밖을 깨끗케 하라는 예호슈아의 그 말씀을 떠올립니다.

<마태복음 23>으로 가봅니다:

    But be not ye called Rabbi : for one is your Master, even Christ; and all ye are brethren. (Matthew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림을 받지 말라, 이는 너희 주인은 한 분이시니 곧 크리스투(메시야)이시요, 그리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기 때문이도다. (마태오복음 23:16, 킹제임스 정재선역)

여기에서 <코린토전서 13:4>을 다시금 상기합니다. 사람의 사랑은 오래참지 못하고 친절하지 못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양떼와 같은 사람들을 이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끄는 사람 그 사람도 양과 같이 앞을 보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Woe unto you, ye blind guides... (Matthew 23:16, King James Version)

    너희 눈먼 자들아, 너희를 향하여 화가 임하리라... (마태오복음 23:16, 킹제임스 정재선역)

'그 사랑은 오직 <예호슈아> 밖에 없고, 그 사랑이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고백한 '카도쉬'(성도) 파울로(바울)처럼 자신을 우상화시키는 모든 교만함을 내려놓고, 겸손히 우리의 목자이신 <예호슈아의 그 말씀>을 우리 몸에 버릇으로 새겨 그 분을 닮은...그리고 그 분을 담은 아들ㆍ딸이 되어야 겠습니다.

우리의 버릇이라는 것은 <예호슈아 그 분의 그 말씀>을 우리 안에 새겨, 그 분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오래참고 친절하심으로 우리를 우리 본래 고향인 유리바다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르빠우오/바울의배 - 유리바다> (작시/ 화중광야가족 작곡ㆍ연주/ 다니엘 정) <자세히보기>.

[성도의 일생] 주님 지신 '그 나무'를 나눠지고/ 그 분을 따라 그 길을 걸으며/ 세상의 수 많은 유혹과/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우리의 속한 것이 아닌 영적전쟁/ 고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현장입니다/ 40년간 광야를 지나며 환난을 겪고(화중광야-花中曠野)/ 카나안에 입성하여 인내를 낳았고/ 저 본향 유리바다로 떠나며 소망을 품습니다/ 유리바다는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할 소망의 바다입니다/ 함께 유리바다로 떠나는 르빠우오(Lepauo/바울의 배)에 승선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004.02.12/다니엘 정)



(서막-시편90편)

외로웠어도 지쳤어도 40년 그 광야의 길

주님 진노 거두사 우릴 기쁘게 하셨네

모세의 지휘봉 넘겨 주셨도다

(출항전 배에 싣는 물건-킹제임스성경)

종려나무배 선장 바울!

너희 믿음의 선원들아!

참말씀 생명의 물을 채우라

참진리 생명의 닻을 세우라

(바울의 항해여정-사도행전27장)

방해역풍 불어도 요동치 말고

미혹순풍 불어도 속지 말고

죽음광풍 불어도 두려워 말라

우리의 항해사 주 예수 그리스도

(종막-화중광야의 르빠우오 순교적 사명)

순교의 닻을 올리라 믿음의 노를 저어라

저 멀리뵈는 본향 유리바다 유리바다로

르빠우오~ 르빠우오~ 바울의 배여!

<작시/화중광야 가족/ 작곡·연주/다니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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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의 배음의 원리같이 말입니다.

1도 ()에서, 엘로힘으로 부터 말미암은 우리는 5 4도의 세상을 지나 다시 1, 엘로힘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다. 이 때 5도와 4도는 세상의 108 고뇌와 같이 우리를 괴롭히고 불안하게 만드는 몽학선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우리 본래의 자리로 안정된 곳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 예호슈아께로 가지 않는다면 그 108번뇌는 끊임이 없을 것이요, 그 번뇌 속에 살아갈지라도 예호슈아와 함께라면 그 어디라도 하늘나라일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무섭지 않게 안고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2015.5.16/Beth-dian>

 
 
<Created/20150516> <Updated/201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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