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리다!!

글/ 안연숙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한 공간과 한 시간에서 함께 있음을 뜻합니다. 제가 제 연주한 것을 들으며 다른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면 뭔가 제가 연주한 것만 들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제 연주는 아직 멀었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연주를 할 때는 혼자지만 그것을 녹음을 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연주 할 때 물론 자신의 연주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온갖 치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시간과 장소의 공간을 모두 다 독점하려 합니다. 오직 나에게만내 연주에만 귀 기우려 달라고 말이지요.

다른 아무런 행동도 생각도 허용치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독재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한 시간 내내 선생님 혼자 강의하고 모든 학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듣다가 졸 수 밖에 없는 그런 거 말입니다. 아무런 의사표현을 못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이야기하는데 한마디도 못 끼어 들다가 결국 이야기 듣다가 졸게 되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저를 2002년부터 가르쳐 주셨고, 몇 년간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셔서 가르쳐 주시고 여전히 지금도 녹음된 연주로써 가르쳐 주시는 '다니엘 정'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면서, 특히 피아노로만 연주하실 때, 전 그 음악을 들으면서 대선율(對旋律/대위법에서, 작곡의 기초로 사용되는 가락에 새로 붙여지는 가락을 이르는 말)을 자유롭게 흥얼거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연주들을 들을 때도 아무리 화려하게 많은 악기 음색들을 사용하셔서 연주를 하셨을 때도,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만 들으며 글을 쓸 수 있었고, 하기 싫은 영어문법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공부라는 것이 혼자 있는 시간이 쓸쓸해서 하기 힘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혼자서 공부할 때 선생님 음악을 들으면 외롭지 않고, 하기 싫은 공부와 글쓰기 같은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게 그리고 글을 쓸 수도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면서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에 대선율(對旋律)을 흥얼거릴 수도 있었고...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대단히 음악성 있는 사람도 아니고, 천재 음악가도 아니지만 '다니엘 정' 선생님의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었습니다. 다른 사람 곁에서 조용히 위로해 주는 그런 음악이었으니까요.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 해야 되나요. 같이 있는 사람,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동참하게 만드는 그런 거 말입니다.

클래식 연주장에서의 연주가 대단히 좋고그렇지만 지루하게 되는 이유는 그런 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소리를 조금만 줄이고 같이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 말입니다. 그 음악 연주로 인해서 공부가 더 잘 되고, 일의 능률이 오르고, 심장이 뛰어서 잠이 오지 않을 그런 불면증의 밤 중에서 편안한 맘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잘 수 있도록 하는 거 말입니다.

완벽히 음악의 공간을 비우지 않고 빼곡히 넣어서 연주하는 거화려한 기교와 어려운 화성으로 자신의 잘남을 과시하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조성이 변했는지도 어려운 화성을 썼는지도 어려운 테크닉을 쳤는지도 모르게 한다는 것은 유식한 학자가 자신의 아는 것을 편하게 풀어서 유치원생에게 말을 해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참 '다니엘 정' 선생님께 배우고 있을 때, <주님의 시간에>라는 곡을 연주하셔서 레슨시간에 들려 주셨을 때,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안하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곡목/주님의 시간에 ㅡ 연주/다니엘 정

그런데 선생님이 그러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조성이 올라간 것을 듣고 말했는데, 너는 왜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듣고만 있냐고 말입니다. 제가 녹음된 것을 듣고 조성이 올라간 곳을  찾긴 찾았습니다만, 너무 자연스럽게 올라가셔서 그 순간은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음감이 없는 문제도 있겠습니다만그냥 보통 사람들이 들어서 어색하지 않고, 조성이 올라가서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면 그걸로 족한게 아니겠습니까?? 굳이 그 부분에 조가 올라갔다고 놀랄 수 밖에 없는 그런 연주는 좋은 연주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클래식 거장들을 보면 모차르트는 몇 마디 사이로 조성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베토벤도 조가 바뀌었는데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그 사이에 교묘히 자연스러운 멜로디와 화성들을 이용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웃간의소통이자 자유로운 왕래라고 느낍니다. 전혀 다른 조성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전혀 막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막상 조바꿈을 하려고 하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곤 했었습니다. 다른 조를 가기 위한 징검다리 놓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던 겁니다.

연주자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를 듣고 칭찬과 집중을 욕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듣는 사람을 배려해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내 연주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다만 나는 내 음악이 울림으로 인해 듣는 당신이 편안해지고, 모든 어려운 일들과 슬픔을 이겨내길 바란다. 함께 울고, 함께 우는 그런 울림을 내는 것이 어떠한 경지인지는 모르지만’ '다니엘 정' 선생님은 그런 것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궁정 안에서 있는 그런 주인이 예복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편안히 와서 지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음악을 알든 알지 못하든, 누구든 편안히 들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 말입니다. 화려하지만 다른 사람의 화려하지 못함을 없인 여기지 않고, 오히려 화려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화려함으로 흡족하게 만드는 그런 거 말입니다

비록 음악을 모르고 그런 연주를 할 수는 없으나, 나는 할 수 없어도 그런 연주로 오히려 듣는 그 사람이 마치 자신이 연주를 하는 거처럼 흡족해 할 수 있는 그런 거 말입니다.

클래식도 대중음악처럼 편안히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편안히 연주한다면, 듣는 사람이 어려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 배우는 사람이 전혀 그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 그 가르칠 내용을 완전히 소화해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받아먹고 자신의 것으로 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완전히 이해한 그 울림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 울림을 전할 때도 그와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접하는 악보는 마치 어느 지옥의 한 구석을 헤매는 것 같은 악몽을 꾸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악보를 무서워하지 않고 계속 치다 보면, 어느 새 그 악보가 어떤 음을 말하고자 함을 깨닫게 되고, 점점 그 악보가 없이도 연주가 가능하게 됩니다.

클래식은 어려운 게 아니고, 그 당시의 대중가요와 같았을 것입니다. 물론 한문만 적혀있는 책처럼 된 곡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읽는 사람이 그 한문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어준다면, 듣는 사람은 그 어려운 곡을 어렵게만 듣지 않고 그 곡의 아름다움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독단일 수 있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본 글을 쓰면서, 공부하면서 혼자 있었던 외로운 시간들을 함께 하였던 '다니엘 정' 선생님의 연주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음악이 울리는 공간에 함께 있는, 함께 있을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런 음악 말입니다.

<2015.12.6 /Beth-dian>

 
 
<Created/20151208> <Updated/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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