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족(大檀民族)의 이산(離散/디아스포라/Diaspora)과 전 세계로의 퍼짐(分配/분배/Distribution)

글/ 안연숙

저는 (요안經 6:8-13)의 성경구절을 버스 안에서 읽으며, <6:11>의 'Distribution'을 읽으며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이산'(離散/디아스포라-Diaspora)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던 '정재선 목회자님'의 글들이 생각났었습니다. 같은 'D'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것이여서...그렇지만 한국어로도 두 단어는 '흩어지다-분배하다'라는 공통점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강제로 빼앗겨서 흩어진 우리네 '대한민족'(大檀民族)이 이 성경구절과 같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그것을 연상했었습니다. 그것이 벌써 오래된 일인데 이제서야 글로 그것을 기록하게 됩니다:

    6:8One of his disciple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saith unto him,

    6:8그분의 제자들 중 하나인 시몬 페트로의 형제 안드레가 그분을 향하여 말씀드리기를,

    6:9There is a lad here, which hath five barley loaves, and two small fishes: but what are they among so many?

    6:9여기에 보리 빵 다섯 덩이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한 작은 소년이 있나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무슨 소용이 되겠나이까?' 하더라.

    6:10And Jesus said, Make the men sit dowm. Now there was much grass in the place. So the men sat down, in number about five thousand.

    6:10그러자 예호슈아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을 앉게 하라. (이제보니 그 곳에는 많은 풀이 있더라.) 그리하여 그 사람들이 앉았는데, 그 수가 약 오천 명이더라.

    6:11And Jesus took the loaves;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distributed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them that were set down; and likewise of the fishes as much as they would.

    6:11그러자 예호슈아님이 그 빵 덩이들을 취하셨고, 그리고 그분이 (그것들로 예호바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그 분이 그 제자들에게 나눠주셨고, 그 제자들은 앉아있는 그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니, 그와같이 그 물고기들로도 그들이 원하는 만큼 많이 나눠주었더라.

    6:12When they were filled, he said unto his disciples, Gather up the fragments that remain, that nothing be lost.

    6:12그런데 그들이 배부른 후에, 그분이 자기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남은 그 조각들을 거두워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라.' 하셨다.

    6:13Therefore they gathered them together, and filled twelve baskets with the fragments of the five barley loaves, which remained over and above unto them that had eaten. (JOHN 6:8-13, King James Version)

    6:13그러므로 그들이 그것들을 한데 모았고, 그 사람들을 위하여 먹이고도 그 이상으로 남은 그 보리 빵 다섯 덩이의 그 조각들로 열두 바구니들을 채우더라. (요안經 6:8-13, 킹제임스 정재선역)

    <요안經 6장> 번역 발행용 시험판입니다!! - 6-1 <자세히보기>


망국의 한을 안고 건너간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대한민족은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하여서 많이 죽어갔으면서도, 그곳에서도 근면히 일하여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그곳에 정착하였으나, 광복후에 계속되는 나라의 불안정 때문인가 모르겠지만, 그들의 조국인 이 한반도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망향의 서러움을 안고 멀리서들 살고 있습니다.

[BGM] 곡목/'고향의 설움' ㅡ 편곡연주/안연숙 ㅡ 곡목이 '고향이별가' 혹은 '고향정'으로도 불리우고 있음.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의 필사본으로 내려온 곡이요, 작사자/작곡자는 미상인데. 한반도 출신의 고려인의 작품이라고 전해 온다!! 악보 ㅡ <김병학, 한 야꼬브,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I', 서울:도서출판 화남, 2007. p.181>.


그곳 뿐만 아니라, 단순히 100년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흩어짐(디아스포라)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역사를 너무 잊고 살아감이 아닌가 싶어서 안일한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안일하게 다시 망국의 한을 당하여야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완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채 남북으로 외세의 통치에 의해 나뉘어져 있는데, 지배받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인가?? 일제의 통치 때 아무 힘없이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들이 끌려가서 착취당하였고, 생체실험대에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올랐는데 아무도 그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지금은 '돈의 통치'를 받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물론 그러했으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로부터 그 돈의 권력에 의한 삶의 피폐함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인터넷 댓글로 보게되지만, 다른 나라 가서도 인종차별로 인해 그 땅에 정착함은 상당히 힘든 것도 역시 인터넷 댓글로 보게 됩니다.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이 한 곳에 모여사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흩어짐으로 인해 힘이 약해짐으로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이 더욱 한울님, 곧 예호바만 의지하고 부르게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의 고서 20만권을 불태웠다고 하니,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이 의지하고 믿었던 그 한울님 곧 예호바 엘로힘임을 증거할 수 있는 증거가 불충분하고, 그러하기에 인터넷에 예호바 엘로힘을 능멸하는 말들을 많이들 하지만, <천부경 88자>는 그 내용이 <창세錄 1장>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하니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의 뿌리는 과연 무엇이길래, 그토록 우리의 역사를 변조하고 변질하며 난도질하다 못해 국정교과서까지 내어 더이상 역사를 심도있게 파고들지 못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사(正史)는 무엇입니까? 야사(野史)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거짓을 말하는 사람 또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 혹은 새로이 창작하여 말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루어진 일인데도, 그것을 증거하는 사람들의 말들이 다른 것입니다. 자신들의 입장들에서 말합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유리한 쪽의 역사를 '정사'라고 못 박아 두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족(大桓民族)의 근대사와 고대사와 상고사 입니다. 그것은 일본 및 중국 그리고 우리 작은 나라는 단순히 자신들의 시장(market)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의 입장에서 변론하는 주장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런 역사를 배워야 하며, 또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탐구하지 못하게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묶어 둡니까?? 나라가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며, 보호하지 못하는 또 다른 망국의 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세계로 '흩어짐'은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림을 뜻합니다. 그리고 흩어지지 않았으나, 우리의 고유 문화와 음악을 잊어버림 그 역시 '흩어짐-이산'(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외국음악에는 친근해 있지만, 국악에는 문외한인 우리의 모습에서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세계화다 뭐다 해서 우리의 고유의 것은 천대하고 제대로 계승하지 않았으니, 지금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모습은 세계 속에 잠식되어 버려서 색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미국의 또 다른 한 주가 되어 버린양, 우리 전통의 것을 너무나도 많이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대 왕조들이 남긴 역사서나 왕의 무덤, 천문대와 같은 중요 건축물 등에 천문을 중시했던 고대 지식인들의 사상적 특징이 배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천체 중에서도 우리 선조에게 가장 중시되었던 것은 하늘의 달과 북두칠성이었다. 또 오행성의 수 5와 여기에 해와 달을 더한 수 7이 즐겨 사용되었다.'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우리 역사 속에 스며 온 천문학, (14) 민속과 천문, 물질로 형상화된 천문 상징) (박창범, 2002, 김영사, p201).

여기에서 또 <요한經 6:9)이 연상이 됩니다. '보리 빵 5덩이와 작은 물고기 2마리' 이 숫자의 상징성이 우리 대한민족이 즐겨 썼다던 북두칠성의 오행성 <5>와 여기에 해와 달 <2>을 더한 수 <7>을 즐겨 썼다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족(大桓民族) 곧 '보리 빵 5 덩이와 작은 물고기 2마리, 숫자 7'이 세계로 흩어져 온 나라 사람들에게 잠식당하여 그 흔적이라도 있고 없고, 그러나 '혼야유광(昏夜有光-저녁 무렵에 빛이 있게 되리라/스카랴經 14:7)의 성경기록이 예언하고 있듯이,

    14:7But it shall be one day which shall be known to the LORD, not day, nor night : but is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ZECHARIAH 14:7, King James Version)

    14:7오직 예호바가 알려진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다만 저녁이 이르면 빛이 있게 되리라. (스카랴經 14:7,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미니풀이]
    한 유일한 날이 지속되는 동안, <스카랴經 14:5>에 유다왕 웃시야(Uzziah) 통치기간 중에, 이와 유사한 한 날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초자연적인 천체(天體) 사건과 하나의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삼파람이 부는 그 날, 곧 엘로힘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는 그 날'이 반드시 오리니, 우리가 누구인지 몰라 겨우 숨만 붙이고 사는 우리를 모으실 것이니, '그 날'에는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이 '12 광주리' 안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6:13그러므로 그들이 그것들을 한데 모았고, 그 사람들을 위하여 먹이고도 그 이상으로 남은 그 보리 빵 다섯 덩이의 그 조각들로 열두 바구니들을 채우더라. (요안經 6:13, 킹제임스 정재선역)

성경수론에서 숫자 <7과 12>는 동일시합니다. 숫자 <7>은 땅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숫자 <12>는 하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천문은 우리 삶의 시간적 디자인에도 밀접히 관여하고 있다. 해가 뜨고 짐을 기준으로 날(일)을, 달이 차고 기움을 기준으로 달(월)을, 해의 고도 변화에 따른 계절의 반복을 기준으로 해(년)를 삼아 시간의 이름 자체에서부터 천체의 이름을 사용했다. 또 목성의 공전주기 '12년'을 따라서 십이지와 12개 띠를 정했다. 한 해를 24절기로 나누어 각 절기마다 수많은 세시풍습을 행했고, 절기에 얽힌 격언과 속담도 풍성하게 사용했다.'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우리 역사 속에 스며 온 천문학, (14) 민속과 천문, 천문의 시간적 디자인) (박창범, 2002, 김영사, p. 209).


그래서 숫자 <7과 12>는 다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이니, 참으로 엘로힘의 비작(秘作)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렇듯 <7>과 <12> 양수의 동일성에 관해서는 '정재선 목회자님'이 풀어드릴 때가 올 것입니다!! 참고로 자료를 링크합니다. 샬롬!!

<엘로힘이 별들도 만드셨다>(창세錄 1:16) <
자세히보기>.
(2016.3.13)

 
 
<Created/20130313> <Updated/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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