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가는 방향

글/ 안연숙

머리를 남향으로 두고, 발을 북쪽으로 두고 잠자라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한글의 방향지시 말 ㅡ''(), ''(), ''(), ''()ㅡ 중에 ''쪽으로 가는 방향은 하늘로 이어지는 방향이라 혼자 생각해 본다. 영이 혼과 살을 벗어버리고 가는 방향 말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북극에 있고, 그것으로 모든 별자리가 배열되어 있듯이, 북쪽을 나쁘게 말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근접하기 힘든 위치임을 사람이 죽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라 그런 거 같다.

천문은 우리 삶의 시간적 디자인에도 밀접히 관여하고 있다. 해가 뜨고짐을 기준으로 날(), 달이 차고 기움을 기준으로 달(), 해의 고도 변화에 따른 계절의 반복을 기준으로 해()을 삼아, 시간의 이름 자체에서부터 천체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또 목성의 공전주기 12년을 따라서 십이지다(十二支) 12개 띠를 정하였다. 한 해를 24절기로 나누어 각 절기마다 수많은 세시풍습을 행하였고, 절기에 얽힌 격언과 속담도 풍성하게 사용하였다. 인간은 출생 때부터 별의 정기를 받아 세상에 태어나고, 평생 해와 달 그리고 별과 함께 호흡하며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북두칠성을 그린 칠성판에 누워 칠성칠포에 덮여 북망산(北邙山)으로 돌아가는 존재로 자리하였다. 자연은 인간에게 영원한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으로 설정되었던 것이다.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천문을 보고 천문을 따른다)>(p.207-208, 박창범, 2002, 김영사)

해는 집이 남향으로 지어졌을 때, 가장 따스한 빛을 많이 안겨다 준다. 반면에 북향으로 지어진 집은 어둡고 추운 곳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향하면서 점점 우리 시야에서 멀어지듯이, 이 남과 북도 태양광의 영향력에서 그리한 거 같다.

사방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북향은 해가 없는 음침한 곳으로만 알고 있다. 그 북쪽, 북망산으로 가는 길에 가는 예복이 있으니 북두칠성을 그린 '칠성판'에 누워 칠성칠포에 덮여 가는 것이다. 북쪽을 잡아주는 '북두칠성'이 그려진 예복을 입고 북향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쪽으로 향하는 것은 모든 것을 지으신 분에게로 가는 것이 아닐까??'

죽은 사람은 '칠성칠포'를 덮고, 그 죽은이를 배웅하는 이는 누런 '베옷'을 입었으니, 이 옷이 바로 '대한민족(大桓民族)의 고유의 '상복'(喪服)이다.

이 슬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성경에서 종종 보게된다. 지금 우리가 치르는 장례식의 검은 상복이 아닌 얼마전까지만 해도 입었던 삼베로 된 상복을 말함이다. 성경의 그 슬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구절들과 설명들이 있는 사이트의 글을 인용하려고 한다:

    30:11Thou hast turned for me my mourning into dancing: thou hast put off my sackcloth, and girded me with gladness;

    30:11당신이 나를 위하여 나의 슬픔이 (하나의) 춤(여기서는 기쁨. 그러나 그 반대로 춤이 슬픔으로 바뀜=예레미야애가經 5:15)이 되게 바꿔놓으셨습니다. 당신이 나의 베옷(슬프고 근심 때 곧잘 입음=에스더經 4:1. 요나經 3:6. 시편經 35:13)을 벗기셨고, 기쁨으로 띠를 둘러놓으셨습니다.

    30:12To the end that my glory may sing praise to thee, and not be silent. O LORD my God, I will give thanks unto thee for ever. (PSALMS 30:11-12, King James Version).

    30:12마지막까지 나의 영광이(시편經 16:9) 당신에게 찬송할 것이요, 침묵하지(사람들이 죽음으로 끊겨지는 때=시편經 31:17) 아니할 것입니다. 예호바 나의 엘로힘이시여, 내가 당신을 향하여 영원히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시편經 30:11-12, 킹제임스 정재선역)

성경에 나오는 이 'sackcloth' 곧 '베옷'이 상을 당하여 슬픈 사람들이 입었던 '삼베로 된 상복'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I am encouraged by those in the scriptures who put on the sackcloth and ashes as a sign of repentace, an example we ought to learn from ourselves:

    우리 자신이 배워야 하는 하나의 표상으로서, 나는 회개의 표식으로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사람들로 인하여 고무된다. <자세히보기>.


그 상복은 아무때나 입지 않고, '북망산'으로 가는 사람과 또 그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입었으니, 성경적으로 그 옷은 '회개'(Repentance)를 뜻함이니, '회개'의 뜻 자체가 엘로힘께 되돌아가다는 의미여서, 우리 조상님들이 죽음의 의미를 한울님께 돌아감으로 생각하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서양의 검은 양복은 늘상 점잖은 자리에서 입는 것이지만,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상복은 꼭 죽은자의 직계가족만이 입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상여를 끄는 상여꾼의 종소리와 노래소리는 가는 이와 보내는 이의 마음을 위로하였던 진정한 예능인이라고 '정재선 목회자'님이 가르쳐 주셨었다.

◆[BGM][만가/상엿소리-안병경] 중국 낙양에 자리한 북망산은 고산이기 보다는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상캡쳐)

'노'()쪽은 북두칠성이 있는 곳에 가는, 곧 모든 별자리의 중심이 되는 가는 방향이자,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고, 살아있는 자들은 갈 수 없다. 영원한 죄에 매여있지 못하도록 죽음으로써 이 전에 매여있던 죄를 벗어버리고, '슬픔의 옷'(sackcloth)를 벗어버리고 기쁨의 옷으로 어린양의 보혈로 덮어주심이다. 그것은 밥팀례를 의미함이니 예호슈아 메시야(크리스투)와 함께 죽고 다시 부활함을 의미함인데, 이 죽음을 죄를 회개함으로, 한울님-엘로힘께 돌아감으로 장례를 치루었으니, 참된 밥팀례의 의미를 간파하였음이 아닌가 한다. 예호슈아님께 가지 않으면 어찌 그분의 보혈로 옷입고, 그 분의 생명에 동참하게 되겠는가?? 말이다:

    3:3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JOHN 3:3, King James Version).

    3:3예호슈아님이 그를 향하여 계속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절대 확신갖도록), 내가 너를 향하여 말하노니, 만일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는 예호바의 그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셨도다. (요안經 3:3,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이로써, 우리 조상들은 하늘로 가는 방향을 북쪽으로 봄을 상고하였다. 자는 자리조차 사방위를 살펴서 잠을 잤으니, 그 당시 나침반도 없고,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없었으니 하늘의 별을 보고 북쪽을 찾고, 별자리들을 봄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았으니 참으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지금은 우리 손으로 옷도 못 만들고, 집도 못 만들고, 모든 생활 용품들을 만들 수 없었는데,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집집마다 옷을 직접해서 만들어서 입었다고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우리 친할머니의 베틀로 직조하시는 솜씨는 대단하시다 들었다. 대단한 과학이 발달하고 밤에도 생활할 수 있는 빛을 가졌고, 손으로 할 일들을 기계들이 대신해 주지만 그만큼 옛 우리 조상들의 기술들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능력들을 잃어버린 거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하늘로 가는 방향을 알았던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은 그 방향으로 갈 때 예복을 입었으니, 바로 회개의 '슬픔의 옷'(sackcloth)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고, 그 죄를 회개하여 한울님 곧 엘로힘께로 돌아감이다.

(2016.3.26/새벽)



<Created/20160326> <Updated/20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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