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물과 항아리 [2]

글/ 안연숙

[살아있는 물과 항아리 (1)] <20140613/자세히보기> ㅡ 참으로 2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안연숙'님의 '살아있는 물과 항아리' <제2집>을 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자 제위의 아낌없는 관심과 기도를 당부드립니다. 샬롬!!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건들이 있는데요. 그것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뻔뻔함일 것입니다. 정말 죄를 짓지 않아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정말 죄를 지었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그런 얼굴 말입니다.

예호바 엘로힘이 지어놓으신 이 '날줄'과 '씨줄'로 엮인 이 '울, 울의 줄, 우주라는 그릇' 곧 '그 항아리'를 더럽히는 죄를 짓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을 벌하시는 예호바 엘로힘에게 반기를 드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 무리들은 어떤 무리냐 하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16:10And the fifth angel poured out his vial upon the seat of the beast: and his kingdom was full of darkness; and they gnawed their tongues for pain,

    16:10그리고 다섯째 천신(天神)이 자기의 대접을 그 짐승의 그 보좌 위에 쏟아부었도다. 그랬더니 그의 왕국이 어둠으로 가득찼고, 그리고 그들이 고통으로 인하여 자기들의 혀들을 깨물었고,

    [미니풀이] '그 짐승의 그 보좌'=인간 세력의 가장 완악한 중심부요, 마지막 시대인 오늘날의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에 의한 세계정복을 예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기록에 의한 예언의 위력인 것이다!!

    16:11And blasphemed the God of heaven because of their pains and their sores, and repented not of their deeds. (REVELATION 16:10-11, King James Version)

    16:11자신들의 고통들과 자신들의 헌데들(종기들)로 인하여 하늘의 그 알로하님을 모독(훼방)하되, 자기들의 행실들을 회개하지 않았도다. (예호슈아묵시록 16:10-11, 킹제임스 정재선역)

    [미니풀이][편집자의 전언] 열 재앙들이 내리던 애굽의 파라오와 같은 악행이었다. 극악에 사무친 멸망당할 자들에겐 도무지 회개가 될리가 없을 것이다. (방재석, '일반평신도를 위한 요한계시록강해', 한국복음화 기도동지회, 1971, p.91-92 참조).

    일례로, 지금 우리 한반도 대기는 온통 뿌옇다. 그 이유를 찾고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직원 세 명이 상공에 올라가 조사하고 있다고 전한다. 원인을 알리가 없다. 갖가지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주범인 '미세먼지'는 저들이 그 동안 2012년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우리 한반도 안에 뿌려댄 '켐트레일'  (Chemtrail)의 성분 속에 '석탄가루'가 있음을 고백할리 없을 것이기에(화중광야에서 이전에 밝혀 놓았음)...갖가지 '추측들'(??)만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강토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깨어서 기도하자는 전언(傳言)임을 밝혀 드린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그 짐승'(The Beast)과 그의 왕국을 벌하는데,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기는커녕 '하늘의 그 알로하'(The ALOHA Of Heaven)를 욕하였으니, 그것이 그들이 밑빠진 항아리 곧 '무저갱'인 두 번째 죽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 짐승도 원래는 예호바 엘로힘이 지으신 창조물들 중에 가장 뛰어나고 멋졌으나, 스스로 높이고 예호바 엘로힘의 그 자리에 앉아서 그분의 것들을 보호하지 않고 마구 괴롭혔으니, 그 괴롭힘이 가히 '신'(god)과 같아서
'모든 만물(萬物)들이'(All Things) <자세히보기> 그 앞에 조아리고 왕으로 모셨던 것입니다.

그 어떤 죄도 예호바 엘로힘 앞에서는 똑같은 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뉘우칠 기회를 벌주심으로 인해 주셨건만, 끝내 '회개' 곧 '그 알로하'에게로 돌아가지 않는 그 형태를 보였으니, 스스로 생명을 차 버리고 죽음에 머문 것입니다.


토기장이신 예호바 엘로힘이 지신이 만드신 그 항아리 속을 들여다 보시려고, 마지막 날에 그 항아리를 열어보십니다. 그 항아리의 뚜껑은 우리가 올려다보는 하늘이니, 그것들이 예호바 엘로힘의 손에 들려서 우두두 떨어지고 없어진다 하십니다:

    3:10Bu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as a thief in the night; in the which the heavens shall pass away with a great noise, and the elements shall melt with fervant heat, that the earth also and the works that are therein shall be burned up. (2 PETER 3:10, King James Version)

    3:10그러나 도덕적으로 어리석음과 어둠의 때에 한 도둑질하는 거짓 사역자 처럼, 예호바의 그날이 오겠으니, 그날 안에 그 하늘들이 갑자기 한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겠고, 전에 것들이 불로 인하여 녹아버리겠고, 그 땅의 그 표면과 그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일들은 나타나지 않겠도다. (페트로後經 3:10,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미니풀이] 이 시대의 끝은 <2028년>에 이른다 함을 <페트로後經 3:8>은 예시하고 있다!!: '예호바의 한 날이 일천년 같고, 일천년이 하루 같도다.' ㅡ 도덕적으로 어리석음과 어둠의 때에 한 도둑질하는 거짓 사역자 처럼=<킹제임스역본>의 'thief in the night'(밤에 도둑)은 만이 비유법으로 풀어져 읽혀지고 있지만, '밤의 어둠을 마귀와 동등시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ㅡ 사라지겠고=본구절은 기존의 하늘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새하늘들'(The New Heavens)이 가까이 '도래하겠음'(will come near, come forward, arrive)을 예시해준다. ㅡ 그 땅의 그 표면과 그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일들은 나타나지 않겠도다=헬라어역본들은 '그 땅'(The Earth/Land)이 '나타나지 않겠도다' 대신에 '불타버리다'로 번역하고 있다:

    ①<예호슈아묵시록>=환경의 훼파가 광범위함을 기술하고 있지 파멸(멸절)은 언급하지 않는다.

    ②<말라키經 4:5-6>=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그 땅을 저주로 인하여 그 땅이 멸절되려 함을 막아낸다.

    ③<마태오經 24:29>=본절도 위 <페트로後經 3:10>에서의 환난 이후에 일어나는 우주적 사건들과 '예호바의 그 날'(The Day Of YEHOVAH)이 시작되는 그때를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다.

    ④<헤브라이經 1:10-12>=우주의 긍극적인 개혁을 묘사하고 있다. (2016.6.7/늦은밤)


아직 그 항아리는 열리지 않았고 이제 곧 열리게 될 것인데, 그 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항아리 안의 물이 썩어 있고, 그 안의 물고기들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고기가 분해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썩어서 다른 물고기들까지 병들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잠시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 짐승'(The Beast)이었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물고기들의 생명을 유지하게끔 도와주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힘은 대단하였고 빛이 났으니, 모든 항아리 속의 물고기들은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서로 그 짐승의 오른팔이 되고자 스스로를 받혔습니다. 그러나 그 짐승을 가까이 하는 물고기들을 그 짐승에게 진액을 빼앗기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은 물고기들은 물에 둥둥 떠다니며 부패하였고, 살아있는 다른 물고기들은 물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짐승이 주는 공기의 이름은 바로 '돈'(Money)이었습니다. 잠시 일회용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공기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 공기는 '그 짐승'이 모든 물고기들을 자신의 발 밑으로 두기 위해, 가둬두고 돈을 주고 사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물고기들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벌려고 열심히 일했고, 겨우 하루 벌어서 그 짐승이 가둬둔 공기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루치 공기였습니다. 내일, 모레, 그리고 글피...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공기를 살 수 없었고, 그렇다면 더 이상 그 항아리 안에서, 곧 그 항아리 안에 고여있는 그 물 속에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항아리의 물들은 이미 그 전에 죽은 물고기들로 인해 부패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살아남아 있는 물고기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 '그 짐승'의 공장에서 죽도록 노동하였고, 그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그날 하루치 공기를 바꾸는 것 이외는 아무런 희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물고기들은 심한 노동으로 인하여 탈진되어 갔고,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어, 한달 이상 공기를 사두고도 스스로 목숨들을 끊어갔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너무나도 지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복되어 노력을 하여도, 하루살이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노와 좌절감에 스스로와 이웃을 괴롭혀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항아리 안의 고기들의 사회는 점점 '분노의 사회'가 되어갔고. 그럴수록 그 항아리 안의 물은 더욱 더 탁해져 가서, 하루치 공기는 하루가 다 가지 못해 바닥이 났고, 그래서 자연스레 죽는 물고기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 속에서 물고기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을 이 항아리 안에서 살게 해주신 예호바 엘로힘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예호바 엘로힘을 떠나 있었는지 기억도 없지만, 그저 절대자 예호바 엘로힘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들을 답답하고 숨조차 쉬기 힘든 이 항아리의 물 속에서 구해달라고 말입니다!!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도움이 오질 않습니다. 그 항아리 안의 공기를 가둔 '그 짐승'의 횡포는 날로 더해져만 가고, 물은 계속 썩어만 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물고기들은 기다렸습니다!! 하루, 하루의 버거운 노동을 견뎌 자신의 생명을 지켜나갔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원흉 '그 괴물'에게서 받은 공기일지라도 말입니다. 자신들을 이 항아리의 물 안에서 살게 해주신 '그 명령'을 따라 '생육하고 번생해 나갔습니다.'(창세錄 1:28). 그리하여 그렇게 각박한 물 속에서도 그 물고기들은 오랜 시간 없어지지 않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고기들 중에 노동을 아니하고 그 짐승의 공기를 얻는 자들이 있었으니, 곧 '그 짐승'의 그 비늘들, '그 용'의 그 비늘들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물고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손쉽게 공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 그 짐승 곧 그 용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하루 하루를 열심히 일하는 물고기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늘들엔 독(毒)이 있었으니, 그 독은 점점 물고기들을 죽게 하였고, 그 물고기들은 자신들이 빠져 나왔던 그 썩은 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아무 미동(微動)도 하지 못했습니다.

썩은 물일지라도 그 안에서 살아가던 물고기들은 그 썩은 물고기들 때문에 더욱 더 살기가 힘들어졌으나, 또 살아남기 위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열심히 노동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으시는 절대자 예호바 엘로힘을 원망하며 눈물로서 물고기들은 살아갑니다:

    3:9The Lord is not slack concerning his promise, as some men count slackness; but is longsuffering to us-ward, not willing that any should perish, but that all should come to repentance. (2 PETER 3, King James Version)

    3:9예호바는 일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약속들을 더디게 지킴 같이, 자신의 약속들을 지키심에 더디지 않으시도다, 아니도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참으시니, 곧 아무도 멸망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회개를 가져야 함을 원하시도다. (페트로後經 3:9,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물고기들은 모두가 '회개함'(Repentance)으로 나오기만을 기디리고 계시는 예호바 엘로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나에게 예호바 엘로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9And God said to Jonah, Doest thou will be angry for the gourd? And he said, I do well to be angry, even unto death.

    4:9그런데 엘로힘(창조자)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 덩굴식물로 인하여 화를 내는 것이 잘 하는 것이냐?' 하시니, 그가 말씀드리기를, '내가 화를 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잘하는 것이나이다.' 하였다.

    4:10Then said the LORD, Thou hast had pity on the ground, for the which thou hast not laboured, neither madest it grow; which came up in a night, and perished in a night:

    4:10그러자 예호바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수고도 하지 않았고, 자라게 하지도 않았고, 하룻밤에 나와서, 하룻밤에 죽은 그 덩굴 식물을 불쌍히 여겼거늘,

    4:11And shoulkd not I spare Nineveh, that great city, wherein are more than sixscore thousand persons rhat cannot discern between their right hand and their left hand: and also much cattle? (JONAH 4:9-11, King James Version)

    4:11게다가 자기들의 오른쪽과 왼쪽도 알지 못하는 십이만 이상되는 사람들과, 그리고 많은 가축들이 있으니, 내가 어찌 저 큰 성읍 니느웨를 아끼지 않겠느냐?' 하셨다. (요나經 4:9-11, 킹제임스 정재선역)

    [미니풀이] 본문에서 <4:9>의 '엘로힘'과 <4:10>의 '예호바'를 언급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엘로힘'은 만물의 창조자(CREATOR)이신 반면, '예호바'는 엘로힘이 창조해 놓으신 자들과의 '언약관계'(COVENANT RELATION)를 지칭한다!! 이 두 분의 언약관계 속에서 가교 역할자가 바로 '만물'(ALL THINGS)이니, '카도쉬=성도'인 것이다!! '만물' 이 용어는 이미 <화중광야 홈페에지>에 풀어놓았다. <자세히보기>. 앞으로 시간이 허용하면, '엘로힘'과 '예호바' 두 용어의 상관성을 상술할 것이다!! 이 상관성을 습득해야 성경풀이와 이해가 용이하다 할 것이다!! (2016.6.8/이른아침)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원수인 '니느웨 성읍'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예호바 엘로힘께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여서 그 성읍 사람들이 멸망을 면하게 되는 것이, 그 성읍에 '회개함'을 선포한 선지자 '요나'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모든 물고기들, 곧 모든 사람들이 '회개함'(Repentance)으로 돌아오길 바라시는 예호바 엘로힘은 변질된 자신의 천신(天神) '그 짐승'(The Beast)를 끝까지 벌하시고 책망하시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회개함'에 이르기를 바라셨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을 벌하시는 예호바 엘로힘을 욕보이며, 예호바 엘로힘을 떠난 그 죽음의 자리에 머물러서 심판을 받아, 자신을 담지 못하고 흘러 버리는 '밑빠진 독'(Bottomless Pit)에 빠졌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피부가 우리의 혼(魂)인 '피'(THE BLOOD)를 담고 있어, 그 피부가 찢겨져 많은 출혈을 하면 죽게 되듯이, '그 짐승'의 생명을 유지해오던 그 피부 곧 '그 항아리'를 깨뜨리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깨뜨리신다는 표현 보다는 자신을 담을 수 있는, 보호할 수 있는 그 그릇으로 옮겨가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항아리를 열었을 때부터, 하늘의 모든 별들과 하늘들이 사라졌을 때부터, 점점 그 항아리에 담긴 모든 생명들(창조물들)은 경각을 달리고 있었고, 새로이 만드신 항아리에 옮겨 담으실 계획이셨는데, 그 예호바 엘로힘에게로 가기를 거부했으니 스스로 자멸한 것입니다. 자신에게로 돌아오길 거부한 '그 용'을 제외한 다른 물고기들을 그 부패한 항아리에서 건져, 새로 만드신 항아리 안에 담아서 더 이상 부패함도 없고, 죽음도 없고, 눈물도 없는 그런 항아리 안에서, 곧 '우주인 울줄' 안에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신 예호슈아님의 명령은 바로 새예루살라임'(NEW YERUSALAYIM)에로의 이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물고기의 수기 <153종류>나 되었으나, 그 가운데 '회개치 않은' 물고기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아직도 '그 용'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구해주신 그분 곧 예호슈아님을 아는 물고기들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오랫동안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길 기도하며 부르짖던 물고기들 곧 '카도쉬아'(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아리 안에서 살 줄만 알았지, 그 항아리를 짓지 못하는 수 많은 물고기들은 '새항아리'(새예루살라임)은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릴 뿐입니다. '지금있는 이 항아리도 대단한데, 어떻게 다른 항아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불가능하지만, 예호바 엘로힘은 가능하십니다. 그리하여 쾌적하고 좋은 살아있는 물에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 항아리가 전부인 줄 알게 하고, 오히려 새항아리 곧 '새예루살라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 짐승' 곧 '그 용'은 물고기들에게 세뇌를 시킵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들은 속습니다. 왜냐하면 새항아리는 그 물고기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랍고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살아있는 물과 항아리 [2]'를 마칩니다!!

(2016.6.6/디안)


[편집후기] 오늘날처럼 세상이 혼탁해지고 혼미해 적은 편집자가 일생을 살아 오면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한 예로서, 자고나면 저 파아람을 상징해주는 하늘은 '잿빛'으로 뿌연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엘로힘께서 저 닫혀버린 창공을 활짝 열어놓으시리라 믿습니다!! 샬롬!! (2016.6.6/오후)

 
 
<Created/20160606> <Updated/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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