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족(大桓民族)의 글

글/ 안연숙

하고 싶은 많은 활동들이 있고, 많은 말들이 있고, 하지만 정작 글을 쓰기란 '나'를 가두는 느낌이라서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연주하고 싶은 많은 악기들과 많은 악보들과 즉흥연주들이 있지만, 정작 '나'만의 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내가 악기를 연주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듣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 전에는 시도해 보지 않을 거 같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없는 분들이 눈의 깜박임만으로 글을 쓰고, 시를 쓰는 것을 볼 때,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을 포기하고 글을 쓰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고 글을 쓰는 것보다 나을 것이란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를 못하고 집중하여 글을 쓰고 작곡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인거 같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던 시절, 부모님도 경재력이 되시고 저도 건강하게 '내' 길을 갈 수 있을 때 마음에 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길이 아니다.' 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남에게 보란듯이 내세울 수 있는 길을 포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바른 <예호바의 그 말씀>을 찾아 사방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쏘다니면 답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 스승이신 정재선 목회자님은 의자에 본드 붙히고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숨님(성령님)이 '내'가 글을 쓸 때에 관련 성경구절을 찾을 때면 적재적소에 맞는 <그 말씀>을 찾게 하셨고, 그 성경구절이 또 다른 면에서 관철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난' 어릴때부터 말 더듬증을 가지고 있어서 발표수업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런데 글에선 제가 말 더듬는 것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온 사방을 뒤집어 엎고 찾으려고 애썼던 것이 사실은 가까이에 있어서 허탈했던 기억이 누구나 한번쯤 있으실 것입니다.

'내'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 그것입니다. 스스로 파헤치면 나오는데 괜히 찾아 헤매었던 거 였기 때문입니다. 전 초등학교 4학년때 독한 감기에 걸려서 비염이 찾아왔고, 그때부터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는 거의 독학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 할 수 없었고,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책 만은 설명이 되어 있었고, '내'가 느리게 이해하여도 기다려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포기하고 사는 것은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비록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홀로 남아 마음 잡는데 몇년이 걸릴 지라도 한 편의 글을 쓰고 곡을 쓰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고 건강마저 다 잃어서 글을 쓸 수 밖에 없고, 곡을 쓸 수 밖에 없는 것 보다 낫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한민족(大桓民族)은 책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했습니다. 모든 활동 중에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최고의 가치로 여겨서, 나중에는 먹고사는 것를 천하게 여겨서 모든 신분 중에 높은 계급의 있는 사람만의 전유물이 되다 싶이 했습니다. 높은 사람들도 음식을 접하였지만 밑에 있는 계급들이 글을 접하지 못하고 오직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서 높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지를 못쓰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되어 오로지 글만을 위해 인생을 받혔던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양반 밑에 있는 하인들이 그런 양반들을 불쌍히 여겨서 열심히 일해서 밥을 지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글만을 위해 손발을 묶어서 자신을 제어하고 있었던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양반이라고 다 글을 열심히 읽진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하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너희들은 글만 읽어라. 그리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학교에서 읽고 있는 글은 과연 사실일까요? 모든 것이 정말 의문없이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말입니다. 대한민족(大桓民族)이 그렇게 글만 읽고 이룩해 온 옛 문헌들은 배우지 못하고, 서양의 단편적인 학문만 질문하지 못하게 하고 외우게만 하는 이 교육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공부하면서 몸이 안 좋아져서 집중 못한 면도 있었겠지만, 뭔가 흥미를 잃게하는 그런 의문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런 학문을 배우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음악만 했는데, 그 길 마져 차단 당하고 이렇게 텅빈 공간에 홀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씁니다.

그리고 옛 선비들이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도 사랑방에 앉아 글을 읽고 연구하고 깨우치는 데 열중하였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도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을 것이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악기 연주나 그림이나 이런 것들로 말입니다. 그것들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사물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모든 표현하고 싶은 모든 길이 막히고, 오로지 그것을 글로만 표현하라고 했을때의 막막함과 구구절절하게 늘어지는 표현들이 많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글을 자신의 모든 표현 수단으로 삼았던 그 사람들은 모든 사물들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어떤 건축물의 설계도만 하더라도 말입니다. 단순히 수치측량만 되어 있고, 그림만 되어 있다면,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재현해 내기가 많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중요 건축물들은 꼭 글과 함께 도면이 그려져 있어서, 그것을 보고 다시 재건축 할 수 있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이나 음악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잡을 수 없지만, 글이라는 것은 종이에 적히면 적어도 천년은 갈 수 있도록 목판을 짜고, 오래 갈 수 있도록 종이를 과학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말 소질이 있고 천재성이 있지 않은 사람도 그 설명문만 보면 다시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금도 많은 한류(韓流)들이 세계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들은 정말 조상들의 주류사회(主流社會)에서 으뜸으로 쳤던 글과는 다른 것들입니다. 오직 글만 읽을 수 있도록 돕던 사람들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글을 옛 문헌들을 수능때나 조금 접하고 어릴 때부터 옛 서당이나 향교처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글만 읽게 하고 학문을 발전 시켰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지금의 대한민족(大桓民族)은 구심점을 잃어 버리고 표류하는 배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역동적인 나라이지만, 그것을 내려놓고 차분히 옛 문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양학문의 역동적인 것 보다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만의 사상을 배워서, 이 나라의 들떠있는 모든 것들을 잠재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민주주의 건 사회주의 건 단지 사유재산 그런 것만 따지는 것이 아닌, 약육강식이 아닌,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만의 삶의 양식 말입니다. 모든 것을 분별하고 따져서 빠져서 나갈 수 있는 분별력이 없이 그저 학교교육에 끌려다니고, 나라 정책에 무능력하게 끌려다니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모습에서 무력함을 느낍니다. 과연 옳은 것인지 말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식인들의 항거는 최고 권력층의 눈에 가시입니다.

                  

작곡/체 친저릭ㅡ편곡/이준호ㅡ쟁(야탁)/왕녕ㅡ지휘/원영석ㅡ전통예술원/국악관현악단

[미니해설] 본래는 우리 방송 EBS가 방영한 <하늘의 땅 몽골> 편에 나오는 우리 전통악기 '가야금'과 외형이 거의 동일한 몽골의 악기 '야탁'의 협연을 입수하려 하였지만, 전곡을 연주한 음원이 불가능하였다. 이에 본 편집자는 다른 연주곡을 입수하게 되었다. 본 음원의 작곡자 '체 친저릭'은 러시아에서 서양 작곡을 수학한 바 있는 몽골의 대표 작곡가로, 몽골 전통악기를 위한 유명한 작품을 다수 작곡하였다. 그 중 대표작으로 1995년에 작곡한 <야탁을 위한 콘서트>가 있다. 이 곡은 야탁과 피아노 이중주곡으로 작곡해 대중에게 호응을 받았고, 이후 몽골국립민족관현악단에서 야탁협주곡으로 연주하였다. 이번 무대에서는 '이준호'의 편곡으로 몽골의 야탁이 아닌 중국의 쟁과 함께 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였다. 관객의 귀와 눈을 사로잡을 부분은 이곡의 빠른 부분이다. 몽골의 독특한 리듬을 쟁 연주자의 연주기량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도록 유도하고, 느린 부분은 쟁 연주자의 오른손과 왼손의 섬세한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다. <인용>


그러나 '나'는 단지 대한민족(大桓民族)으로서 옛 문헌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제를 전복하고 정치를 비판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제대로 된 것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옛 정승들이 사직을 하고 도인처럼 사라져서 홀로 학문의 길을 갔을 거 같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불구가 되어야만 제대로 된 대한민족(大桓民族)의 학문과 역사를 찾는다고 눈만 껌뻑이고 발버둥 치기 전에, 모든 것이 가능할 때에 스스로 자제하여 우리 옛 글과 학문을 되찾아서 공부하였으면 합니다.

9년마다 외침을 당하였어도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만의 글과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때 '내' 자신의 들뜬 마음을 부여잡고 옛 문헌들을 공부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옛 문헌은 하루에 한 글자를 읽는 것도 어려워서 표지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 책을 사지 않기에 점점 출판산업이 어려워지고 어려운 책보다는 단순히 읽기 쉬운 책들만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문헌들 책들이 부르는게 값이라고 하더라구요. 어렵게 구한 책들인 만큼 한자라도 공부하는 것이 대한민족(大桓民族)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겠기에, 오늘 새벽 한자라도 보고 잠에 들어야 겠습니다. 샬롬!!

<답답한 구름들로 막혀있는 하늘들을 바라보며 글을 쓰다/2016.9.11/새벽>



<Created/20160911> <Updated/201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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