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족(大桓民族)의 음악

글/ 안연숙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음악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한국적인 것은 대중문화에 끼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 속에서 한국인이 따라하지 못하는 미국적인 음악이 대중문화에 만연해 있습니다.

예전에 제 스승이신 <다니엘 정> 선생님이 서양사람이 피아노로 클래식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서양의 클래식음악은 그들의 것이라고' 한 것이 문뜩 떠오릅니다.

아무리 미국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려 해도 미국 사람을 못따라가고, 미국 현지에 살다 온 사람들이나 그 미국의 노래의 맛을 살리는 것을 볼 때, 아무리 우리가 외국 음악을 한다고 한들, 그 사람들이 내는 그런 소리에는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정말 문화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미국의 영어를 어린 아이때 부터 공부를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또 실제 한국에 오래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제 나라 말과 풍습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것이 그 나라의 '문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어'와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한글과 영어의 어순이 완전히 다른 것은 생각과 문화가 완전 다르다는 뜻과도 통할 것입니다.

예전의 민요와 창을 들으면서 한국어로 저렇게 깊은 소리를 내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외국의 창법을 따라하며 부르다 보니, 영~ 어색하기 그지 없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 듭니다. 물론 모든 음악을 포용할 수 있는 게 한글이라지만, 한글로 한국의 음악이 아닌, 서양인의 감성이 담긴 음악으로 노래하니, 민요와 창에 비해서 발색이 덜하다고 해야 하나요?? 한글의 독특한 매력이 덜 발산된다 말해야 하나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음악인 '국악' 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황량하고 매말랐습니다. 오히려 외국학교나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국악기를 더 많이 다루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신명'은 다른 나라에서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색한 표현이 되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자란 사람이 서양 음악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몸에 맞는 옷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옷, 한복도 빼앗겼습니다. 그 풍성하고 여유 넘치는 옷을 입고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게 어색해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악이 생성된 나라에서 이토록 국악을 배우기가 힘들고 좀처럼 대중매체에서 듣기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집집마다 국악이 울려 퍼져야 그것을 귀로 알음알음 듣고, 저절로 배우게 될 텐데요.

저 어렸을 때 만해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지신 여자 분들이 나오셔서 민요를 하시던 것을 자주 텔레비젼에서 보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민요를 한다고 해도, 서양의 음악처럼 고운 민요를 해서, 심하게 말해서, 약간 '식은 죽'을 먹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노래를 하시던 분들이 '득음'을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고통스러우셨나 봅니다.

우리 나라의 '소리'의 색은 모든 색이 섞인 검은 색인 거 같습니다. 모든 감정들을 다 담고 있는 그럼에도 자신만 울리지 날카롭게 다른 사람의 귀를 건드리지 않는 범종(梵鐘) 같은 소리 말입니다.

절대 화려하지 않고, 칠흙과 같은 어둠 속에서는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없어지지만 오히려 빛을 받으면 더 빛나는 존재, 검은 색 말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그나마 다른 색은 분간할 수 있는데 검은 색은 그 어둠과 너무 색이 동질하여서 그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처럼 국악을 등한시 하여 대한민족(大桓民族)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제한하고 있지만은, 그 국악의 소리는 바로 우리 한글의 소리이기에 한글을 쓰는 우리의 마음 속에는 바로 검은 색과 같이 감추어 져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어처럼 발음하기 힘든 언어도 드물 것입니다. 받힘이 있기 때문이고, 한글을 쓰는 우리들은 모르지만, 단어마다 독특한 성조가 있어서 그것이 바로 국악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음악이 미국의 영어와 결합되었을 때 빛을 발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자란 우리가 아무리 외국음악을 질리게 들을지라도, 미국에서 사는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항상 영어의 바다 속에서 사는 그들의 언어의 성조, 음악을 그들만큼 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자라고 그들 속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정말 그들처럼 그들의 음악을 표현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제 친 할아버지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셔도 좋으실 만큼 창과 장구를 그렇게 잘하셨다는데요. 저는 장구를 제 평생에 3번 만져봤는가 싶습니다. 저도 별로 흥미는 안가는데요.

그것은 왠지 어릴때부터 접하지 못하였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어렵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할아버지 세대들이 일찍 전쟁과 가난으로 많이들 돌아가셔서 국악을 자연스럽게 전해 줄 통로가 막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처럼만 오래 사셨어도, 저도 장구를 잘 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손녀를 데리고,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신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을텐데 말입니다. 언어도 사람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듯이, 음악도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배우는 게 달라지게 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라는 그런 비겁한 변명을 뒤로하고, 장구를 쳐봐야 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원에 원장님이 지인에게 얻어온 장구가 8개월째 방치되어 있거든요. 자세가 바르건 바르지 않건 일단 쳐야 고쳐지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국악은 너무 재미없고, 흥미없는 분야입니다.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평생을 한 외국음악은 평생을 해도 그 맛이 살지가 않고, 점점 맛이 이상해 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대중음악도 그런 거 같습니다. 분명 '한류스타'라고 엄청 화려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음악이 아니잖습니까??

갑자기 서양식으로 복식을 바꿔야 했던 조선사람들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어색한 것입니다. 국악도 어색하고, 서양음악도 어색하고 말입니다. 맺힌 가슴이 뻥 뚫어지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서양사람들은 자신의 음악을 잘 고수하고 잘 표현하고 있는데, 왜 유독 한국만 이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활발히 활동하셨던 국악의 '명창'들은 이런 국악을 천대하는 문화에 가려서 빛도 없이 어려움 속에서 후대도 양성치 못하시고 많이들 가셨다 합니다. 서양의 성악보다 더 크고 큰 울림과 시원함을 가졌던, 우리네 한글의 진정한 표출이었는데...물론 요즘도 그런 국악을 하시고 시원한 발성을 하시는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잘 접할 수 없고, 오히려 그런 분들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시는 것을 텔레비젼을 통해서 볼 때, 뭔가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런 분들이 고국의 큰 무대에서 왜 못 서시나 말입니다. 국악을 왜 장려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맛을 보아야 맛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린 아기들이 무엇이든 맛보아서 무슨 사물이든 알아보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배운 국악의 리듬은 어릴 때 동네 놀이터에서 벌여졌던 신년 풍악대의 신명나는 소리를 통해서입니다. 그것이 제가 7살 때 보고, 그 뒤로는 잘 볼 수 없었는데요. 그 때의 느낌은 뭐랄까?? '세상에 이런 신남도 있네' 라는 것입니다. 헤어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었습니다.

어린 저는 그 풍물하시던 50명 가량의 풍물하시는 분들을 한없이 쳐다보았습니다. 어디 다른 곳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뛰었거든요. 아직도 그 흥분이 남아있는 듯 합니다. 가끔 그런 흥분을 피아노에 실어보기도 하는데 역부족입니다. 국악기 만큼 확 터져나오는 소리가 없습니다.

태평소의 그 카랑 카랑한 소리가 없습니다. 장구의 그 울림도 없습니다. 징의 범종같은 울림도 없고 말입니다. 모든 음들을 악보로 기보한다고 해도 그 세밀한 맛을 다 기보하기엔 역부족이기에 선생님을 통해서 전해져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까??

국악도 음표로 표기할 수 있지만 그 음표가 국악의 색에 맞춰서 재현되기 위해서는 그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문화로 가르쳐 주면 될텐데요. 국악의 맛을 알고 그 문화를 가르쳐 줄 우리 조상님들이 전쟁으로 가난으로 너무 빨리 돌아가시고, 너무나도 빨리 젊은 세대들의 입맛에 맞는 서양음악으로 모든 대중매체들이 변화되다 보니 옛 음악을 가르쳐 주시고 표현해서 전달될 창구가 막힌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大韓民國)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국악의 그 깊은 맛을 알지 못하고 그저 뭔지는 모르지만 서양음악에만 열광하고, 서양음악은 최고이고, 우리나라의 국악은 외국인이 처음 우리나라 음식 대하듯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저만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달려온 지난 날들이었지만, 그것은 서양음악의 틀에서만 표현하려 했던 한정된 것이었고, 앞으로 저의 음악은 좀 더 국악기들을 접하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그런 음악의 길이 되어야 겠습니다. 저는 느끼한 '까르보나라'보다는 시원한 '김치찌개'가 좋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영어보다는 아무런 노력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살아서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국악을 접하기 힘든 우리 후세대들에게 국악의 깊은 맛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아무런 노력 없이도 국악을 익히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친할아버지도 하셨다는 그 악기를 직접 할아버지에게 들어보지 못한 저에게 큰 파동은 아니겠지만, 제가 살아있어서 국악은 이런 거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국악이 우리 한글을 담을 수 있는 최적의 그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요... 요즘의 노래들은 한국말도 꼭 영어처럼 발음을 약간 부셔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 그런데 저 처럼 소리가 입 속에서 웅얼대는 사람은 영어로 된 팝송보다 한글로 된 노래가 소리를 밖으로 빼기에 적합하다고 하는 것을 노래 가르치는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서양음악일지라도 민족적 색채를 덧 입힌 수많은 클래식 음악가처럼, 서양음악일지라도 다른 나라의 언어를 따라하지 않고, 우리 한글의 똑부러지는 그 말투를 그대로 담아서 하는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음계를 담은 서양음악이나, 한국의 정서를 담은 서양음악 말입니다.

예전의 동요들이 그러했지요. 그래서 그 동요를 오히려 서양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중국의 짜장면이 한국의 짜장면과 맛이 다르듯이, 중국의 만두가 한국의 만두와 맛이 틀리듯이, 우리만의 음악적 색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 입맛에 맞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한글을 담아 예호바 엘로힘께 흘러보낼 수 있도록 그런 그릇인, 배(船)인 국악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음악은 진정한 마음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예호바 엘로힘께 아뢰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한민족(大桓民族)이 아뢰는 것임을 아실 수 있도록, 조상 대대로 울려온 우리의 소리를 되찾아야 겠습니다.

국악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그분들은 그분들이고 저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국악을 배우고 하려고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 학원에 있는 단소와 장구를 건들어 봐야겠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려고 노력한 거 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서...막막하지만...그래도 '시작이 반'이지 않겠습니까?? 샬롬!!
<2016.9.26/월요일새벽>

 
 
<Created/20160926> <Updated/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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