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잇!! 안 맞잖아!! 나 안해!!

글/ 루디아 안


성경의 그 말씀을 흩어버리려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퍼즐을 맞추다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능력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맞추다가 다 흩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저는 <다음지식검색>에서 이와 같은 글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성경의 역사기록 오류와 다니엘서 비판' (자세히보기).

'성경을 이토록 알면서 깨닫지 못하는가?' 말입니다. '안 믿을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자신이 그 글을 쓰면서 자신이 또 다른 성경해석의 이단이 되는 것인 줄 알고 나 있는지, 그 심판을 어떻게 받으려고 하는 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믿는 자 조차 하나님의 그 말씀을 상고하고 연구하는 것에 조심스러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가 성령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일삼으면서 '기록된 그 말씀'을 난도질 하는 모습이 여간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지식에 또한 감탄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아는 몇 줄의 지식을 가지고 거대한 성경을 저렇게 난도질 할 수 있구나... 짧은 말 몇 마디 가지고 말입니다.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면 믿지 말지...'왜 성경의 역사 왜곡을 시키고 있는가?' 이 말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처럼...혹시 중국인이십니까?

이렇게 말하는 저조차도 아직 하나님의 그 말씀의 깊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우매한 자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함부로 성경의 그 말씀을 해석하려 들지 않습니다. 다만 하루, 하루 조금씩 깨우쳐 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그 말씀 읽기에 열심히 있으시다니, 저로서는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기록된 하나님의 그 말씀을 믿을 수도 없고, 이해하실 수 없으시죠? 그 이유는 믿지 않기로 선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그 길'(하나님의 주권적 의지ㅡ블레마)를 우리에게 주셨지만, '사람의 그 길'(사람의 선택적 의지ㅡ델레마)를 존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강제로 취하는 남자는 그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아가서>에서 '하나님과 그 분의 성도간의 사랑을 남녀의 사랑으로 비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 <아가서>에서 나오는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는 '술람미 여자'는 자신의 정혼자인 목자와의 사랑의 신뢰를 깨뜨릴 수 없다며, '솔로몬' 왕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의 정절을 성문과 같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게(다른 유사 복음), 자신을 그 성벽같이 옹골지게 지켜내었습니다. 왕비가 될 수 있는 길을 버린 것입니다!! 세상의 안위와 부귀를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술람미 여자(하나님의 사랑받는 성도를 상징함)'은 자신의 사랑인 그 목자(예수님을 상징함)의 어깨에 기대어(Believe On The Jesus Christ) 자신의 고향으로 '귀향'하게 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석양이 내리깔리는 그 중동지방에서 자신을 지켜내어 지치고 상한 몸으로 그 목자의 어깨에 기대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 모습을 말입니다.

우리의 고향 곧 하나님 아버지의 그 품으로 말입니다. 그 여자가 '솔로몬 왕'의 청혼을 받아드렸다면 어찌할까요? 다시 자신의 정혼자에게 갈 수 있었을까요? 양심이란 것이 있다면 더럽혀진 몸으로 다시 자신의 사랑에게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술람미 여자' 처럼 하나님의 그 말씀 이외는 다른 어떠한 '유사 복음'에 현혹되지 않기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쉽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져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지혜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양과같이 우매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백성들은 귀가 둔하고, 엉뚱한 길로 간다'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통해 하시는 지 읽어보신 분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창세기>에서 뱀 속으로 들어간 사탄이 아담의 아내 '하와'에게 한 말을 말입니다:

    3:5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Genesis 3:5, KJV)

    3:5이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안에 너희 눈들이 열릴 것이고,너희가 선과 악을 아는 신들처럼 될 것임을 하나님이 아심이다. (창세기 3:5, KJV화중광야역)


'선과 악의 그 지식의 나무의 것' (The Tree of the Knowing Good and Evil)을 먹으면 신들과 같이 선과 악을 아는 것, 즉 지혜로워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거짓을 따라 우리의 지혜를 늘려왔습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 이외의 새로운 가설 속의 '유토피아'에서 우리만의 왕국의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난 자들이야' 라는 가설 아래에서 즉, 스스로 노력해서 이만큼 오게되었으니, 더 노력한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전도서> 말씀에는 '해아래는 새것이 없다'(전도서 1:9-10) 하시면서, 세상의 지식이 오히려 근심을 가져 온다고 알려주십니다:

    1:18For in much wisdom is much grief: and he that increaseth knowledge increaseth sorrow.  (Ecclesiastes 1:18, KJV)

    1:18따라서 지혜가 많음은 슬픔도 많은 법이라. 그러기에 지식을 늘리는 사람은 슬픔도 늘리는 것이라. (전도서 1:18, KJV화중광야역)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아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어린 아이와 같이 빈 마음이 되어야  [정재선목회자의 성경기초주제어풀이 5]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 아이 [2] '어린 아기'ㅡ네피오스ㅡνηπιος]    <자세히보기>.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그 말씀들을 이해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1:25>:

    11:25At that time Jesus answered and said, I thank thee,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because thou hast hid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prudent, and hast revealed them unto babes. (Matthew 11:25, KJV)

    11:25그 때에 예수님이 계속 간구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시여, 내가 아버지께 감사하오니, 이는 아버지께서 이런 일들을 그 지혜롭고 총명한 자들로부터는 숨기셨고, 어린 아기들을 위하여 그것들을 밝히 드러내주셨음이나이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5, KJV화중광야역)


우리의 아는 것을 다 비우는 것이 진정 '무소유'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어린 아이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 하나님의 그 말씀을 그런가 하여 신사답게 상고하는 것...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 들어집니다. <주석서>나, <사람의 짧은 역사지식>가지고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그 길들을 어찌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바퀴벌레들이 우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먼지와 같은 존재들임을 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전능자 하나님의 그 말씀을 대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119:161...but my heart standeth in awe of thy word. (Pslam 119:161, KJV)

    119:161...나의 마음은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합니다. (시편 119:161, KJV화중광야역)


함부로 성경의 몇 글자 안다고, 그 말씀을 흩어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무(無), 혼란(Chaos)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 우리 믿음의 기초(Foundation)이 되십니다. 그 분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창조됨, 우리의 존재 자체를 왜곡하는 것, 즉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을 왜곡하고 그 말씀을 믿지 않을 진대...그 말씀을 훼방하는 자는 그 같이 마지막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죄없이 하심'의 감싸주심의 은혜를 입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된 모습으로 그대로 설 것이고, 적나라하게 우리의 죄가 드러나 그대로 심판 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은 그 기록된 말씀으로만 가능한 일이니, 그 말씀에 생명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그 길이 적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목자의 어깨에 기대어'...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그 기록된 말씀을 의지하여 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그 말씀을 흩어놓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옷, '죄없이 하심'의 그 감싸주심을 거절하는 것이니,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의 모습으로 서게 되며, 어두운 곳으로 가서 슬피 애통하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으십니다.

저도 성경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알면 알수록, 하나도 모르는 것 같이 백지상태가 됩니다. 단지 조금씩 알게 해주시는 것만 알아갈 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그 말씀을 훼방하기 위해 그 말씀을 열심히 읽으신 분이 존경스럽습니다. 다만 그 말씀이 읽기만 할 뿐 아니라, 저같이 우둔한 자도 깨닫는 그 말씀이 저보다 지식이 많으신 그 분께 이해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니, 그 길은 좁으나, 방향이 제대로 잡혀있기에 쉬운 길입니다. 절대로 딴 길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There is no other way, but only Jesus Christ!!' (다른 길은 없으니,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샬롬!!

<2010.3.16./새벽에>

<Created/20100316> <Updated/201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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