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는 항상 사람들의 죄를 단죄한다

글/ 루디아 안

세상에서는 항상 사람들의 죄를 단죄한다. 끝까지 파헤쳐서 도마 위에 올려놓고, 공개적으로 짓밟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영화 같은 데 보면 '로마' 콜로세움 같은 원형경기장에 모여 사람이 사자와 싸워 죽는 것을 즐기지 않는가? 성경에서도 유대인들은 그들의 명절날들에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러 사람들이 어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죄책감 없이 죽인다. 그리하여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유대인들 앞에서 죽으셨다.

제 색을 잃어버린 본래의 기능과 모습을 잃어버린 한 사람 ㅡ 아담(Adam)이 있었다.

'잊혀진 자'가 기억받음 되다. '로암미'에서 '암미' '잃은 자'에서 '찾아진 자'로 요셉은 또한 예수님의 모형인데 잊혀졌다. 이집트 뿐 아니라 이스라엘 가문을 살린...'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창조라.' 그 새창조 그것이 주님과 함께하는 부활인데, '나중 것이 먼저 되리라' 하신 말씀처럼 뭔가 깊은 게 있는데 풀리지 않습니다...

라고 '정재선 목회자'님께 질문을 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주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하나님의 뜻이 하늘 안에서와 같이, 땅 안에서도 이루어지시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정죄가 아닌 원래의 모습으로의 회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화중광야 가정예배가이드 27] '하늘 안에서와 같이, 땅 안에서도' (As In Heaven, So In Earth) <자세히보기>.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구약전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실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그 사람 '아담'이 자신을 지으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떠나 제 색을 제 기능과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아담 ㅡ 사람들에게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내가 고쳐 줄께, 내가 너희들을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켜 줄께

하나님의 그 뜻이...하나님의 그 왕국이...하나님의 그 말씀이...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려 오신 것이다. 우리의 수치를...우리의 벌거벗음을...덮어주시려, 친히 아담과 하와의 가죽옷이 되어 주신 것이다.


[화중광야 성경의 두 뿌리] '금지된 책' (THE FORBIDDEN BOOK) - 성경(THE HOLY BIBLE/聖經) <자세히보기>

1.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어떻게 보존하셨나?
고대 히브리어는 상형문자(象形文字/picture language)였다:

<창세기 4:7>에서 '카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 '만일 네가 좋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그 문 입구에 눕는다.'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 KJV화중광야역), 고대 히브리어에서는 '죽임당한 숫양'(slained ram)이 문 앞에 엎드려있는 형상이었다.

그것이 신약에 와서 <요한복음 1:29>에서 '밥팀례자 요한'으로부터 확증되었다:

'보라 온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of the world. - KJV화중광야역)


'카인'이 죄를 지을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이미 그 죄의 마음 문 앞에는 온 세상 죄를 지신 '죽임당한 숫양' (slained ram)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문 입구에 누워계셨다.

사람들은 항상 단죄를 좋아하고, 죄를 파헤쳐서 도마에 올려서 죽여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을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벌써 그것을 덮어주시려 죽으셨다. 역사적으로는 2000년전에 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의 뜻은 벌써 <창세기> 카인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대신 그 죄를 받으시고 카인은 살리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카인은 그 죄의 문을 열고 만다. 그래서 그 땅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방랑하는 자(a wayfaring man)이 된 것이다.

방랑과 방황은 여러모로 비슷한 면이 있다. 죄로 인한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번민과, 번뇌가 그것일 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다. 죄로 인해 변질된, 하나님의 창조하신 원래의 의도와 맞지 않는 상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래서 항상 내가 곧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 항상 소망을 주셨던 것이다.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마지막 부분 마술 같이 저주가 풀리는 것 같이, 괴물이었던 왕자가 잘생긴 왕자로 변하고, 어두침침한 궁전이 원래의 화사함으로 돌아오는 것 같이(꼭 성경적인 것을 이상한 마법적인 것으로 변질시켜서 사람들에게 혼돈을 주지만)

본래의 모습과 본래의 색은 하나님의 형상의 닮음 안에 지어진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그 뜻이고, 죄로 인해 그것을 잃어버려 다시 원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 그것이 '새창조'(New Creature)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그 말씀께선 그 하나님의 뜻을 '하늘 안에서와 같이, 땅 안에서도' (As In Heaven, So In Earth)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시면서, 하나님의 그 뜻을 이 땅 위에, 곧 그 은혜로 이 땅 위를 덮으신 것이다.

그 주님께서 죄 없이함 받은 그 평온함을 타인에게도 베풀라고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신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더 이상 들추어내지 않는 것, 그것이 큰 은혜를 입은 내가 오늘날 해야 하는 '덕'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려고 하셨던 것처럼…샬롬.

<2010.8.22/깊은 밤>

<Created/20100822> <Updated/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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