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연숙기도11] 내가 오래 참고 주님을 기다렸나이다! (시편 40:1)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하나님의 그 말씀을 '배도'되지 아니한 '최적의 번역 성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07.8.22/ 깊은 밤

[BGM] 他是創造天地萬物的神 (그는 천지 만물 지으신 주) <노래/ 두란노 경배와찬양>



wo di sheng ming wo di zhu yong zai di tian - fu
(나의 생명 나의 주 영원한 하나님)
wo di sheng ming wo di zhu quan meng di shang-di
(나의 생명 나의 주 전능의 하나님)

[4회 반복]

ta shi chung zao tian di wan wu di shen
(그는 천지 만물 지으신 주)
zhu tian xuan yang zhu di rong mei
(그의 영광 선포하라)
ta shi chung zao tian di wan wu di shen
(그는 천지 만물 지으신 주)
zhu rong yao yi chungman quan
(온 세상을 다스리네)
ta shi wang ta shi zhu
(그는 왕 그는 주)
ta zhang quan dao yong yuan
(영원한 하나님)
ta shi wang ta shi zhu
(그는 왕 그는 주)


어느 고요하고 적막한 소리라고는 없는 조용하게 홀로 한분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그 고독한 적막을 깨시고 직접 소리를 발하셨습니다.

그 소리는 그 분의 말씀이시며

그 말씀은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담 한 사람을 위해 6일동안 차근히 그 창조하실 사람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자신과 친밀한 교제를 할, 사랑받을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으로 그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그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 우리는 항상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창조하셨는데, 왜 저렇게 죽어갈까? 아파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분은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시게 처음부터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땀을 흘려야 살아갈 수 있도록 고통을 주신 것도 아니셨고

그렇게 죽을 만큼 아프게 산고를 겪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고 <창세기>를 보면 적혀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와가 뱀에게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져버린 '언약의 그 말씀'을 깨버린 그것을

<호세아서>에서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신실한 남편의 신의를 져버린 호세아의 아내를 빗대어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호세아의 아내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을 쫓다가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에게 다른 남자들을 쫓다가 종으로 팔리게 되는 그런 처지의 아내를 값을 주고 사서 데리고 오라고 명하십니다.

'내 혼이 진토인들 살리시는 예수님!
그 분은 광야 안에서 피시는 한 꽃이십니다!' (花中曠野)

우리가 고통받는 것을 대신 감당하시고, 그 죽음으로 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 분의 피로 우리가 씻음을 받았으며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제부터 그 아무것도 그 자유를 우리에게서 가져갈 자 없습니다.

그 자유는 다시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죽음을 주시려 한 것이 아니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와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니까요.

무참하게 전쟁 속에서 죽거나, 기근 속에서 죽거나, 어려움에 허덕이는 이 모든 것이 그 분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죽음에 더 고통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문화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온갖 '엔터테인먼트'로 죽음에 대한 감각을 잃게 만듭니다.

잔인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섬찟함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죽이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죽음의 권세잡은 자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삼일 만에 죽음의 고통에서 부활하시므로 그 죽음 조차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양같아서 그 분의 품을 떠나 방황하고 있을 때, 그 분이 우리를 찾아 목숨을 바치셨고, 우리를 그 죽음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죽음의 그 구덩이'에서 말입니다. (창세기 37:24)

'그리고 그들이(형제들이) 그를(요셉을) 취하였고, 그를 한 구덩이 속으로 던졌다. 그런데 그 구덩이는 비어 있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그 분의 품을 떠나는 일은 하와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선과 악의 그 지식의 나무'를 먹은 것이었고, 그것으로 통해 우리는 그 안락하고 안전한 하나님의 그 품을 떠나, 고통의 가시와 엉겅퀴 땅에서 땀을 흘려 고통하며 생명을 이어가다, 결국 하나님의 그 품을 떠난 그 결과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 고통에서 완전히 건져주신 또 그것을 완전히 성취하실 그 분을 기다립니다.

마란아다! 주님, 속히 오소서!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들이 연합되어 -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 - 하나의 밀착된 살이 되어, 우리를 사랑하시고 창조하신 목자되신 하나님 그 아버지 그 품으로 다시 안기어 지길...그리하여 죽음이 왕노릇하고 있는 이 고통의 세상에서 다시오고 게시는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I am Alpha and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 first and the last.' (Revelation 22:13, KJV)

샬롬.
<2007.1.13(토)/ Beth-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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