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41] 현대 시온주의 기원 (크리스투인의 복음전도용 필독자료)

'무서운 오후'…짙은 어둠속 우박에다 천둥 번개까지

오늘(28일) 오후 2시 반쯤 서울 목동 일원에 짙은 먹구름이 깔리면서 마치 밤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게다가 천둥 번개를 동반한 굵은 빗방울에다 우박까지 겹치면서 시민들이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 30분쯤에는 서울에 직경 5mm의 우박이 내렸다. 이날 우박은 오전부터 옅은 비를 뿌리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하면서 약 5분간 쏟아졌다.
<노컷뉴스/20070328/자세히보기>

오늘밤에는 비구름이 전국을 통과해 대부분 지방에 흙비가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SBS뉴스/20070328/자세히보기>

일본 불교 종파 가운데서 일련종이 있다. 이 종단을 창시한 스님이 일련(니찌렌) 대사이다. 이 대사의 '유문집'이 있다. 국난(國亂)의 징조를 열가지로 들어서 풀어놓은 책이다. 어제 위의 일기를 보고는 문득 떠올라 적는다. '춘3월에 눈이 오거나 흑비가 내리면 이 또한 국난의 징조이다.'  오탁한 악세의 말법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비록 불가의 이야기지만, 곰곰이 씹어볼 대목이 아니런가...2007년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변란이 일어날 가능성 높아...(2007.3.28/깊은밤)

[필독관련자료] <[花中曠野 大河秘史] 들새바람 '野風'ㅡ덕장법사(德藏法師)의 설법ㅡ7가지 국란징조>
<
자세히보기>.


현대 시온주의 기원

글/ 잭 매뉴엘리언 ㅡ 편역/ 정재선


10:1Why standest thou afar off, O LORD? why hidest thou thyself in times of trouble? (Psalm 10:1, King James Version)

10:1오 주님, 어찌하여 주님은 멀리 서 계십니까?(시편 22:1) 어찌하여 고난의 때에 주님은 자신을(주님의 두 눈과 두 귀를) 숨기십니까? (시편 10:1, 킹제임스 정재선역) <시편번역풀이/자세히보기>.

[알립니다] 본 자료(무저작권)는 저자이신 '잭 매뉴엘리언'(Jack Manuelian)님이 2004년에 발표하신 'The Origins Of Modern Zionism'(현대 시온주의 기원)을 2005년부터 '화중광야'(花中曠野)가 번역, '블로그'에다 배포했었던 복음선교자료를 보정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필자의 최근의 글 중에서 <사바티안 마피아團>이란 용어를 곧잘 올리는데, 바로 <사바타이주의>(Shabbataism) 추종자들을 통칭하며, 오늘의 '가짜' 유태인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오늘날 전 세계를 <혼돈> 속으로 몰아세우는 '변질되어 버린' 사탄의 <속임의 씨> 입니다!! 이 <속임의 씨>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가 공개되었습니다. '가짜' 유태인들이 팔레스틴을 점령한 이유는 '전 세계에 있는 유태인들은 중동 안에서 기원된 동일한 유전적 요소를 공유한다'라는 것이었는데,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하면, '유럽 유태인들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 속에는 '코카서스人'(코가소이드 인종=백인종)의 요소가 지배적이다.'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별도주제>를 통해서 밝혀 볼 것입니다!!

한편, <사바타이주의>(Shabbataism) 추종자들(사바티안 마피아團)이 멀쩡한 한반도 강토를 두 동강이 내어서 우리 <대한민족>을 '디아스포라'로 만들어 버린 주도자들이요, 이들이 지금 영국에서 비밀리에 모여서 앞으로의 <한반도> 처리를 놓고 '탁상곤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일루미나티'를 통해서 자기들식의 <한반도통일>(신도안 안에다 히틀러가 설계한 청사진대로 세계정부 사령부 건설??/자세히보기)의 올가미(??) 속에 걸려들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겉으로 <정치쇼??>(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산가족상봉)에 속지 말고...우리 대한민족 고유의 정기를 되찾아야 할 막중한 시대적(종말적) 운명에 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대한민국의 국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그대신 <대한국>이라고 하는 본래의 기마민족의 기상을 받고 내려오는 북방민족의 대명사로서 세계를 품어 안을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그토록 외치셨던 <민족의 중흥>인 것이요, 본 필자가 부르짖고 있는 <대한민족의 회복>인 것입니다 . <2013.6.8/오전>


[본 영어본문은 무저작권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특히 인용문 번역문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Modern Zionism has its roots in a 17th century false Jewish messiah by the name of Sabbatai Zevi who claimed to be the promised savior of the Jews that has come to establish the Jewish kingdom in the promised land known then as Palestine.

현대 시온주의는 팔레스틴으로 알려진 <약속의 땅> 안에 유태인 왕국을 세운다고 하면서, 온 유태인들의 약속받은 구원자라고 주장한 사바타이 체비(Sabbatai Zevi/1626-76)라는 이름을 가진, 17세기 그 당시 한 '가짜'(거짓) 유태인 메시아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Zevi was a very controversal figure, he not only trashed the Talmud but said to do opposite what God said to do in the Talmud. 'Sin' and 'guilt' were no more and everything and anything was allowed; the commandments of God in the Torah were now null because according to him the messianic age has arrived and he was the one who was going to redeem them.

체비는 아주 논쟁의 인물이었다. 그는 <탈무드>(Talmud/편집자주/유태교의 613가지 율법과 그 해설서)를 쓰레기 취급하였을 뿐 아니라, 탈무드 속에 하나님이 말씀한 것을 대적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죄'(sin)와 '죄지음'(guilt)이 단순히 모두 받아들여졌다. <토라>(Torah/편집자주/기록된 하나님의 그 말씀/모세 5경 총칭) 속의 하나님의 계명들은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여 그가 그들을 구속(救贖)하려 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미지]  <왼쪽>사바타이 체비 초상화. <오른쪽> 사바타이 추종자 야콥 프랑크의 초상화. 이들이 오늘의 시온주의 두 원흉이다. <중앙이미지/왼쪽>사바타이 체비의 기름부음받은 장면 ㅡ <중앙이미지/오른쪽>사바타이 체비가 자신의 보좌 위에 앉은 장면. <Sabbatai Zevi: a tragedy in three acts and six scenes with a prologue and an epilogue. Philadelphia: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 1930, p.30, 65> <화중광야 소장>. ◆[번역자의 보충설명] 위 두 장면을 통해서, <탈무드>는 물론 <성경>의 메시야를 무시해 버리고...자기가 바로 그 메시야임을 노린 자칭 <메시야>인 사바타이 체비이다. 그의 추종자들이 오늘날 온 세계를 이렇게 <혼란>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가짜' 유태인들이다. <적크리스투>(적그리스도)의 원흉들이다!! 따라서 지금 이 시대를 <대환난>이라 칭하는 것이다. <마태오복음 24장>의 예슈아님의 예언의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십일조>(참다운 믿는자)를 위하여 이 <대환난>의 기간을 단축해주신다고 예슈아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 성도들의 유일한 이 세상 안에서의 소망인 것이다!!

As Jerry Rabow wrote in page 110 of his book '50 Jewish Messias' published by Gefen of Jerusalem, (source Barry Chamish):

예루살렘의 '게펜'(Gefen)에 의해서 발행된 '제리 라보우'(Jerry Rabow)는 그의 저서 <50인의 유태인 메시야>(50 Jewish Messias) 110 페이지에서 이같이 썼다:

    'Through all of this, Shabbatai Zevi continued to issue proclamations of the theological changes wrought by the coming of the messianic age. Shabbatai's new prayer was, 'Praised be He who permits the forbidden.' Since all things would be permitted in the age of the messiah, Shabbatai declared many of the old restrictions of the Torah no longer applicable. He abolished the laws concerning sexual relationships. He eventually declared that all of the thirty six major biblical sins were now permitted and instructed some of his followers that it was their duty to perform such sins in order to hasten the Redemption.'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사바타이 체비는 다가오는 메시야 시대에 의해서 이루어진 이론적 변화들을 계속 선포하였다. 사바타이의 새로운 기도제목은 '금지된 것을 허용하는 자가 찬양받을지라'(Praised be He who permits the forbidden)였다.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들이 허용될 것이기 때문에, 사바타이는 토라의 많은 옛 금지조항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성관계에 관한 율법들을 폐기시켰다. 결국은 그는 36가지 주요 성경적 죄들 모두를 이제 허용하였고,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 일부에게 자신에 의한 <그 구속>(the Redemption)을 앞당기 위해서 그러한 죄들을 실행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Zevi or Zvi was a kabbalist and occultist who deceived most of the Jews of his time and those who came after him. He was born on Aug. 9, 1626, in Smyrna, Turkey. In 1666 he converted to Islam with some of his followers and took the name Aziz Mehemet.

체비(Zevi) 혹은 츠비(Zvi)는 한 '카발리스트'(Kabbalist)요, 신비주의자로서 당대와 그 뒤에 따른 거의 모든 유태인들을 속였다. 그는 1626년 8월 9일 터키 '쉬뮈르나'(Smyrna/스머나=편집자주/성경지명=요안계시록시록 2:8)에서 태어났다. 1666년에 그는 자신의 몇몇 추종자들과 함께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아지즈 메헤멧(Aziz Mehemet)이란 이름을 취하였다.

Most of the Jews were disappointed but he told them that he had to become Muslim in order to convert the Muslims to Judaism, and then he turned around and told the Turks and the Sultan that he was to keep in close contact with the Jews in order to convert the Jews to Islam. Thus he was free to go wherever he liked and do whatever he wanted.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실망했다, 그러나 그는 모슬렘들을 유태교로 개종키 위하여 자신이 모슬렘이 되어야 했다고 유태인들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그는 돌아서서 터키인들과 술탄(Sultan/편집자주/1922년전의 터키 황제)에게는 유태인들을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위하여, 자신은 유태인들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자기가 마음대로 가고 싶으면 갔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대로 행하였다.

Zevi was betrayed to the Turks by another Jewish messiah from Poland. Zevi revealed to this Polish messiah the prophecy given by his close associate, Nathan Ghazzati the prophet, that Zevi was destined to become the ruler of the Ottomam Empire. Instead, Zevi was exiled to a small village in Albania were he died. But the followers of Shabbataism indeed became the real rulers of modern Turkey, albight in an invisible subtle way.

체비는 폴란드 출신의 또 다른 유태인 메시야에 의해서 터키인들로부터 배반을 당했다. 체비는 그의 절친한 협력자인 예언자 '나단 갓자티'(Nathan Ghazzati)가 제시한 예언을 이 폴란드 메시야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체비는 '오토만제국'(Ottomam Empire)의 통치자가 될 몸이었다. 그대신에 체비는 '알바니아'(Albania) 안에 있는 한 작은 마을로 유배당하였고, 거기서 죽었다. 그렇지만 <사바타이주의>(Shabbataism)의 추종자들이 보이지 않는 묘한 방법으로 실제로 현대 터키의 '진짜' 지도자들이 되었다.

Zevi's influence among the Jews did not die with his death, many still believed this wizard of deception who legitimized deception as a mean to achieve one's goals. Rebbe Berechiah, an extremist, succeded Zevi and took over his movement of Shabbataism.

유태인들 사이에서 체비의 영향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유태인들이 하나의 개인의 목적 달성의 한 수단으로서 '속임'을 합법화시킨 이 사기의 마법사를 믿고 있다. 한 극단주의자인 '렙베 베레치아'(Rebbe Berechiah)가 체비를 계승하였고, 그의 사바타이주의(Shabbataism) 운동을 이어받았다.

Barry Chamish, in his article 'The Deutsch Devils,' (December 31, 2003), posted in his web-site (barryChamish.com), says

배리 하미쉬(Barry Chamish)는 자신의 웹사이트(barryChamish.com)에 올린(2003.12.31) 자신의 글 <독일의 마귀들>(The Deutsch Devils)에서 이같이 말했다:

    that 'the Shabbatai followers continued their hidden life in the Turkish sect of the Donmeh, whose activities continue to this day, as reported extensively this year, even by the straid Jerusalem Post. One of the Donmeh followers was Jacob Frank (1726-1726), who would transform Europe and the world into a Shabbataian hell barely a century later.

    '사바타이 추종자들은 <터키의 돈메파>(Turkish sect of the Donmeh) 안에서 은둔 생활을 계속하였다. 예루살렘포스트에 의해서 금년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들의 활동들은 오늘날 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돈메파 추종자의 하나는 야콥 프랑크(Jacob Frank (1726-1791)였다. 그는거의 100년 후에 유럽과 세계를 하나의 <사바타이 지옥>(Shabbataian hell)으로 전환시키려고 하였다.'


Jacob Frank succeeded Rebbe Berechiah and in eighteen century brought the Donmeh ideaology To Europe. He made an alliance near/in Frankfurt, Germany, with Jesuit Adam Weinhaupt (founder of the Illuminatti and the usurper of the Freemasonic lodges worldwide, specially that of England and Scotland) and the Rothschild empire.

야콥 프랑크는 렙베 베레치아를 승계하였고, 18세기에 <돈메 이데올로기>(Donmeh ideaology)를 유럽으로 들여 왔다. 그는 독일 푸랑크푸르트 부근 및 안에서 예수회 회원 <아담 바인하우프트>(Adam Weinhaupt=번역자주/일루미나티 창설자요, 범세계적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프리메이슨 조직의 강탈자)<로스차일드>(Rothschild=번역자주/롯쉴트-'붉은방패' 의미) 제국과 동맹을 맺었다.

Barry Chamish, in his above mentioned article, mentions Rabbi Antelman saying in his book To Eliminate the Opiate:

배리 하미쉬는 위에서 언급된 그의 글에서, 랍비 안텔만(Antelman)이 자신의 저서 <아편 제거하기>(To Eliminate the Opiat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언급한다:

    'A movement of complete evil now took hold. The Jesuits' goal was the destruction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 leading to a return of one pope sitting in judgement on all mankind. The Rothschilds goal was to control the wealth of the planet. And the Frankist vision was the destruction of Jewish ethics to be replaced by a religion based on the exact opposite of God's intentions [or high-class Satanism]. When these factions blended, a bloody war against humanity, with the Jews on the front lines, erupted.'

    '이제 하나의 완전한 악마의 운동이 뿌리내렸다. 예수회의 목적은 한 교황이 모든 인류에 대한 심판석에 앉아있는 것을 되돌려 놓고 있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롯쉴트(로스차일드)의 목적은 세계의 부(富)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랑크 추종자의 비전은 유태인의 윤리를 파괴시켜서, 하나님의 의도들과는 정반대되는 하나의 종교(혹은 높은 차원의 악마주의)로 대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당파들이결합될 때, 전선에서는 유태인들과 함께 인류를 대적하는 하나의 피의 전쟁이 분출되었다.'


In the book 'The Messianic Idea in Judaism' by the Jewish professor Gershon Scholem (1971 edition, page 126) the author writes about Jacob Frank:

유태인 교수 <게르손 스콜렘>(Gershon Scholem)의 저서 <유태교에서의 메시야 사상>(The Messianic Idea in Judaism/1971년판, p.126)에서 저자는 <야콥 프랑크>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In all his actions [he was] a truly corrupt and degenerate individual' and as 'one of the most frightening phenomena in the whole of Jewish history.'

    '그의 모든 행동들을 통해서 볼 때, 그는 유태인 전체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현상의 하나로서, 진실로 부패하고 변질된 개인이었다.'


Jacob Frank considered himself to be another messiah. He claimed to be an incarnation of the the Jewish patriarch Jacob. He ordered his 13,000 followers to become Catholics and infiltrate the Catholic church. He referred to the Catholics as the 'Esau,' the brother of biblical Jacob while he and his followers were the biblical Jacob. To the Christian Catholics he told that it was time for a reconciliation between 'Jacob' and 'Esau.' While he told his followers secretly that as Jacob deceived Esau in the story of the Bible, so by the way of deception we will establish a Jewish anti-christ kingdom in Palestine.

야콥 프랑크는 자신을 하나의 메시야로 간주하였다. 그는 유태인 족장 야콥의 화신(化身/성육신과는 다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13,000명 추종자들에게 카톨릭교도가 되어서 카톨릭교회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카톨릭교도들을 성경에 나오는 야콥의 형제 <에서>(Esau)요, 자신의 추종자들을 성경의 야콥이라고 간주하였다. 카톨릭교도들에게 그는 <야콥>과 <에서> 간에 화해를 할 때라고 알렸다. 그는 성경의 이야기 속에 야콥이 에서를 속였다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비밀리에 알렸으며, 따라서 속임의 방법을 통해서 <팔레스틴 안에 하나의 유태인 적그리스도 왕국>(a Jewish anti-christ kingdom in Palestine)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Rabow, in page 130 of his book mentions:

<라보우>(Rabow)는 그의 저서(p.130)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The Frankists also become involved in international political intrigue, and sent secret emissaries to the Russian government and the Eastern Orthodox Church offering to help in the overthrow of Poland and the Catholic Church.'

    '프랑크 추종자들은 세계적 정치 음모 속에 포함되었고, 폴란드와 카톨릭교회를 전복시키는데 도와주도록 러시아 정부와 동방 정교회 밀사들로 파송되었다.'


Jerry Rabow gives more details in his '50 Jewish Messiahs' (source Barry):

<제리 라보우>(Jerry Rabow)는 그의 저서 <50인의 유태인 메시야>(50 Jewish Messias)에서 더욱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He [Frank] extended the paradoxical teachings of Shabbati Zvi that the coming of the messianic age had transformed sexual prohibitions of the Bible into permissions and even obligations. According to Frank, engaging in sexual orgies now became the means to purify the soul from its sins. Debauchery became theraphy...Frank convinced his followers that the only way for their special form of Judaism to survive was for them to outwardly become Christians, just as the Donmeh had descended into the world of Islam...In February, 1759, the Frankists told the [Catholic] Church they were ready to be baptized.'

    '그(프랑크)는 메시야 시대의 도래(the coming of the messianic age)는 성경의 성적 금지들의 허용들과 심지어는 준수들로 바꾸었다고 사바타이 체비의 역설적인 교리들을 확장시켰다. 프랑크에 의하면, 이제는 성적 열심은 혼을 죄들로부터 성결케 하는 수단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방탕이 혼의 치료법이 되었다. 돈메파(Donmeh)가 이슬람 세계 속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 처럼, 프랑크는 특별한 형태의 유태교를 존립시키는 유일한 길은 자신들이 외형상 크리스천들이 되는 것이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확신시켰다...1759년 2월에, 프랑크 추종자들은 카톨릭교회에다 자기들은 '세례'(편집자주/'밥팀례'라고 볼 수 없음)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알렸다.'


On page 121 of Rabow's book, it is mentioned:

라보우는 그의 저서 120 페이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The Donmeh now converted the Shabbatain Purim into an annual orgy, when members exchanged spouses for a ceremony called 'extinguishing the lights.' The Donmeh justified their Purim orgies, and their regular practise of sharing wives and engaging in other sexual activities, by citing biblical precedants.'

    '이제 돈메파는 사바티안 부림절(Shabbatain Purim)을 하나의 연례행사, 곧 회원들이 배우자들을 바꾸는 이른바 <불빛들 끄기>(extinguishing the lights)라 하는 하나의 축제로 바꿔 버렸다. 돈메파는 성경적 관례들을 암송하면서, 그들의 부림절 행사와, 아내들을 나눠 가지고, 다른 성적 활동들을 전념하는 규칙적인 실천을 정당화시켰다.'


The Jewish Encyclopedias defines Donmeh as

유태인 백과사전들(Jewish Encyclopedias)은 돈메(Donmeh)를 이렇게 정의한다:

    'the Turkish word for 'apostate' and refers to the Jews of the Near East who followed Sabbatai Zevi into Islam in 1666, but secretly remained Jews who continued practicing Jewish rituals but worshiped Sabbatai as the Messiah and incarnation of God.'

    '<배도>를 의미하는 터키어요, 1666년에 사바타이 체비를 쫓아서 이슬람으로 들어 온 근동 지역의 유태인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비밀리에 유태인의 의식들을 준행하면서, 사바타이를 메시야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숭배하는 자들로 남아 있다.'


Another researcher said:

유태인 백과사전의 또 다른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The Donmeh showed great public affection with Islam but amongst themselves entirely rejected and even despised Islam.'

    '돈메파(Donmeh)는 이슬람에게 큰 공적 호의를 보였으니, 그들 중에는 이슬람을 완전 거부하였고 심지어는 경멸까지도 하였다.'


There is no need to say that they also in secret hated and despised more the Christians of the Ottoman Empire. Those same 'Turkish' Donmeh were the ones that were in power in Turkey during WW1 when the Armenian Genocide occured. They were the visible rulers of the Ottoman Empire and they carried out and gave orders for the slaughter --in a most unimaginable barbaric way and according to plans they had-- of almost the whole Christian population of Asia Minor: One and half million Armenians, half a million Greeks and Greek Pontians, and half a million Assyrians and Caldeans.

그들이 비밀리에 오토만제국의 많은 크리스천들을 증오하고 멸시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동일한
<터키의 돈메파>(Turkish Donmeh)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Armenian Genocide)이 발생했던 1차대전 중에 터키 안에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오토만제국의 보이는 통치자들이었고, 그들은 자기들이 세운 계획대로 상상을 초월한 야만적인 방법으로, 거의 소아시아의 전체 크리스천 인구에 대한 학살 명령을 내렸고, 그리고 그렇게 자행하였다.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 50만명의 그리스인들과 50만명의 앗시리아인들과 칼대아인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극동지역에 일본인이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학살한 반면, 중앙아시아(중동)에는 투르크인(터키인)이 아르메니안을 그렇게도 못살게 굴었고 대학살시켰다!! 일본인과 터키인은 <예슈아님이 다시오실 때> 우선적으로 심판받을 것이다!! [이미지설명] 쿠르드인들과 투르크인들이 한 아르메니아인 지도자를 고문하고 있다. <Henry D. Northrop, Armenian Massacres: The Sword Of Mohammed, Philadelphia: National Publishing Co., p.35>(화중광야 소장). <필독관련자료/끔찍한 투르크인들/자세히보기>.


The Turkish author, Mevlan Z. Rifat, was referring to this Donmeh sect by his words 'a syncretist Jewish-Muslim sect,' when he wrote in his book 'Inner Folds of the Ottoman Revolution' 1929.-- 'The Armenian genocide was decided in August 1910 and October 1911 by a Young Turk committee composed entirely of displaced Balkan Jews in the format of a syncretist Jewish-Muslim sect, including Tallat, Enver, Behaeddin Shakir, Jemal, and Nazim posturing as Muslims.

It met in the Rothschild-funded Grant Orient loge in now Greek Salonika. No wonder the infrastructure was in place by August by August, 1914, in Erzerum for the Great Massacres, almost three months before Turkey entered the Great War. During World War I and ever since, Jews have held prominent positions in the Turkish government, including three presidents, Ataturk, Inonu, and Bayar.' No known English translation exist of Rifat's book, however it was translated to Armenian in 1939.

터키인 저자 메브란 리파트(Mevlan Z. Rifat)는 1929년 자신의 책 <오토만 혁명의 비밀요원들>(Inner Folds of the Ottoman Revolution)에서 썼던 자신의 말로, <돈메파>를 하나의 <유태인-모슬렘 혼합주의파>(Syncretist Jewish-Muslim Sect)라고 부른다: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은 모슬렘들로 위장한 탈라트(Tallat), 엔베르(Enver), 베해딘 샤키르(Behaeddin Shakir), 예말(Jemal), 그리고 나침(Nazim)을 포함하는 하나의 <유태인-모슬렘 혼합주의파>의 형식으로 완전히 발칸지역 거주 유태인들로 대치된 하나의 <터키 청년당원 위원회>(Young Turk committee/편집자주/정당 내부의 반당주의자,급진주의자)에 의해서 1910년 8월과 1911년 10월에 결정되었다.

    그 위원회는 롯쉴트(로스차일드)가 재정을 후원해주는 지금의 그리스 살로니카(Salonika/번역자주/신약성경지명인 테살로니카) 안 <그랜트 오리엔트>(Grant Orient) 집회소 안에서 회동하였다. 터키가 1차세계대전에 가담하기 거의 3개월전 1914년 8월까지 이 조직은 에르체름(Erzerum) 안에 기지를 구축하였다. 1차대전 중과 그 이후로, 유태인들은 세 명의 대통령 아타투르크(Ataturk), 이노누(Inonu) 그리고 바야르(Bayar)을 포함하여 터키 정부에 요직들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리파트(Rifat)의 책은 1939년에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되었지만, 영역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The Hebrew scholar, Avrum M. Ehrlick, writes in his book 'Sabbatean Messianism As Proto-Secularism' (source, Berry's article: Kerry, Gaza and the New Sabbatean Holocaust):

히브리인 학자 아브룸 에리크(Avrum M. Ehrlick)는 그의 저서 <원세속주의(原世俗主義)로서 사바티안 메시아주의>(Sabbatean Messianism As Proto-Secularism)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Dr Nazim, Nuzhet Faik, Mustafa Arif, Muslihiddin Adil, Sukru Bleda, Halide Edip Adivar and Ahmet Emin Yalman were all active in the Young Turks and of Donme families. Mehmet Kapanci (1839-1924) who was a mayor of Salonica and a well-known banker funded the C.U.P [ some Armenians were masons and were part of the Committee of the Union and Progress Party before the Genocide happened ] and was a Donme.

    '나침 박사(Dr Nazim), 누체트 파이크(Nuzhet Faik), 무스타파 아리프(Mustafa Arif), 무스리히딘 아딜(Muslihiddin Adil), 수크루 블레다(Sukru Bleda), 하리데 에디프 아디발(Halide Edip Adivar)과 아메트 에민 얄만(Ahmet Emin Yalman)이 <터키 청년당원>과 <돈메파> 안에서 모두 적극 행동대원들이었다. 메메트 카판치(Mehmet Kapanci/1839-1924)는 살로니카의 시장이었으며, CUP의 저명한 은행가였으며(연합진보당 위원회/Committee of the Union and Progress Party/집단학살 발발직전에 일부 아르메니안인들은 프리메이슨 회원들이었고, 연합진보당 위원회 소속이었음), 그리고 한 돈메파회원이었다.

    Other Jews active in the Young Turks were Nissim Mazliah from Izmir and Vitali Faradji, Moise Cohen (later called Munis Tekinalp) who was an active Jew and once rabbinical student who turned to business and actively asserted a proud Turkish identity along with Zionist sentiments...

    <터키 청년당원>으로 적극적이었던 다른 유태인들로는 이츠미르(Izmir/편집자주/성경지명 스머나의 현재 명칭) 출신의 니심 마츠리아(Nissim Mazliah)과 비탈리 파르드지(Vitali Faradji)가 있었다. 그리고 모이세 코헨(Moise Cohen/후에 무니스 테키날프(Munis Tekinalp)라 불리움)은 전에 랍비 학생이었다가 사업가로 변신하여, 시온주의 정서에 맞춰서 터키인의 신분을 확보하였다.

    It is curious that Israelís first and second Prime Ministers, David Ben Gurion and Moshe Sharett and her second president Yitzchak Ben Zvi had lived and studied in Istanbul and embraced the concept 'lehitatmen', Hebrew for 'to become an Ottoman'. Ben Zvi is alleged by some to be descendant of a Sabbatean family. Sharett served in the Ottoman army in WW1. Ben Gurion gave up Russian citizenship for Ottoman citizenship, something many others in Palestine were afraid to do. Israeli Presidents Ben Zevi, Zalman Shazar and to a lesser degree Yitzchak Navon became students of Ottomanism.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데이비드 벤 구리온(David Ben Gurion)과 2대 수상 모세 샤레트(Moshe Sharett)와, 2대 대통령 이츠하크 벤 츠비(Yitzchak Ben Zvi)가 이스탄블에서 살며 공부하였으며, 히브리어로 <한 오토만이 되는 것>(to become an Ottoman)이란 <레히타트멘>(lehitatmen) 개념을 수용했던 것은 이상스럽다. 벤 츠비는 한 사바티안 가족의 후예라고 단정된다. 샤레트는 1차대전에서 오토만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벤 구리온은 러시아 시민권을 포기하고 오토만 시민권을 획득하였으니, 이는 팔레스틴 안에서는 행하기 조차 두려운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대통령 벤 츠, 찰만 샤차르(Zalman Shazar) 그리고 그 아래 단계인 이츠하크 나본(Yitzchak Navon)은 오토만주의(Ottomanism)의 학생들이었다.

    Mehmet Cavit Bey (1875-1926) w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Donme political figures. He was active in the revolution [of 1908] as a highly articulate editor of a tabloid and professor of finance and was three times Finance Minister of Modern Turkey until his execution for his alleged role in the assassination attempt of Ataturk. It is believed that Cavit Bey was an ardent Zionist and saw the advantages for Turkey in the Jewish settlement of Palestine.'


    메메트 카비트 베이(Mehmet Cavit Bey/1875-1926)는 <돈메파> 주요 정치 인물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1908년의 혁명에 타블로이드판의 편집장과 회계담당 교수로서 적극 가담하였고, 아타투르크(Ataturk/편집자주/이스라엘인 터키 대통령) 살해 시도에 주도 역할을 한 관계로 처형될 때까지 3회에 걸쳐서 현대 터키의 재무장관을 지냈다. 카비트 베이는 한 열심 시온주의자였고, 유태인의 팔레스틴의 정착에 있어 터키가 얻을 이익들을 내다 보았다.'


Avrum Ehrlich elaborates in more details in his same book:

아브룸 에리크는 그의 동일한 저서에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The extent to which Jews were involved in the Young Turk revolution is debated, some arguing that Jews and Donme dominated the Committee of the Union and Progress Party (C.U.P) which gained control of the State. Others argue that this was anti-Semitic rhetoric and exaggerated and that while the Jews supported the revolution on a grass roots level, they were not highly represented in the upper echelons of the party. Indeed British diplomats did report to the home office that a Jewish-Masonic conspiracy was at work favoring the revolution. The Donme are believed to have been equally involved in the revolution but exact details are less known due to a number of reasons...

    '<터키 청년당원> 혁명에 가담된 유태인들을 논하고자 한다. 일부에서는 유태인들과 <돈메파>가 터키 국가를 통치하게 된 CUP(연합진보당 위원회/Committee of the Union and Progress Party)를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은 반유태주의적 과장으로서, 유태인들은 풀뿌리 수준에서 혁명을 지원한 것이었지, CUP의 고위직 단계를 대표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영국 외교관들은 하나의 <유태인-프리메이슨 음모>(Jewish-Masonic conspiracy)가 혁명을 지원하고 있다고 본국 외무부에다 보고하였다. <돈메파>도 마찬가지로 혁명에 가담했다고 믿어지고 있으나, 여러 이유들 때문에 정확한 이야기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It was via the Masonic lodges that the Donme, the Jews, Bektashi and secularists who were less accepted in mainstream society were able to meet on an equal footing, many of them becoming major instruments of the revolution...

    돈메파, 유태인들, 베크타쉬와 주요 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세속주의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회동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메이슨 집회소>를 통해서 가능해졌던 것이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혁명의 주체들이 되었던 것이다...

    Whether the suspicions that Masonry is responsible for sedition and subversive activities are true or not, in this context they were a convenient home for the revolution, providing lodges and personnel, secrecy and structures for the revolution.

    프리메이슨이 선동과 전복 활동들에 책임이 있다는 의혹들에 대한 진실 여부를 떠나서, 프리메이슨이 집회소들과 인력들과 혁명에 대한 비밀과 구조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하나의 안락한 집이었던 것이다.

    The Donme thrived in the Masonic environment, allowing them to be both secretive and influential, maintaining their religious ideas in a non-dogmatic atmosphere. Bridging the gap between the Jews and the Muslims, they seemed to represent the happy medium of the secular Young Turk revolution. Even today Donme are involved in the Masonic Lodges ofTurkey.'

    <돈메파>는 프리메이슨과 비밀을 지켜가며 영향력을 허용하고, 하나의 비교리적 분위기 속에서 종교적 이상들을 유지해가면서, 프리메이슨의 환경 속에서 번성하였다. 유태인들과 모슬렘들과의 틈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그들은 세속적인 <터키 청년당원> 혁명의 행복한 중재자를 대표한다. 오늘날까지도 <돈메파>는 터키의 <프리메이슨 집회소> 안에 거주하고 있다.'

[이미지설명] '배리 하미쉬'가 IDF(이스라엘군) 복무시절의 모습이다. 배경은 이스라엘국가의 땅의 모습이다. <화중광야제작 제공>. <배리 하미쉬>는 캐나다 출생으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이스라엘국가의 저자요 저널리스트이다. 특히 하미쉬는 라빈 수상의 암살배후를 밝힌 <누가 이츠하크 라빈을 암살했는가?>(Who Murdered Yitzhak Rabin?) 저서로 널리 알려졌고, 이스라엘국가 정부로부터 심한 감시 속에서 살다가...지금은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참다운 이스라엘 애국민족주의자로서 추앙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우리 대한민국에는 지식인들 중에, 이처럼 <명성태황후의 암살배후>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배후>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암살배후>를 심도있게 밝혀내는 지식인들의 저서를 만나 볼 수 없다.
끝까지 <이념투쟁>하다가 <대한민국>은 종착지로 내닫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Barry Chamish believes that the Armenian Genocide was a dry run for the Jewish Holocaust. Berry is a former Israeli military man turned to investigative reporter who is warning his fellow Jews about a coming Second Holocaust of the Jews in Israel proper. This time the Arabs and Muslims playing the role that the Nazis played during WW2.

배리 하미쉬(Barry Chamish)는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Armenian Genocide)이 <유태인 대학살>(Jewish Holocaust)에 대한 하나의 예행 연습이었다고 믿는다. 배리는 이스라엘 안에 다가오고 있는 제2의 대학살(a coming Second Holocaust of the Jews in Israel)에 관하여 동료 유태인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리포터를 조사했던 전 이스라엘 군인이었다. 이번에는 2차대전중에 나치가 자행하였던 그 역할을 아랍인들과 모슬렘들이 자행한다는 것이다.

Barry's research lead him to the fact that basically both the planners and instigators of the Armenian Genocide of WW1 and the Jewish Holocaust of WW2 were the same entities and that those same entities are planning another holocaust of the Jews during the coming WW3, which is going to be ignited in the middle east.

배리의 연구는 근본적으로 1차대전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과 2차대전의 유태인 대학살 양자를 중심으로, 이와 동질성을 띤 또 다른 유태인에 대한 대학살이 계획중이며, 이것은 다가오는 3차대전 중에 중동 안에서 발발된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Do not call the author of this article an anti-Semite, he will be the first to come to the help of any Jew whose life is in peril. Also, he is not a hate-monger, his heart is full of love. He is not a liar either, he will not lie intentionally; he is an old man now whose father survived the Armenian Genocide 90 years ago and he is trying to find out what really happened, because justice on earth has not been done yet concerning the Armenian Genocide and the issue will never die. It can not be swept under the rug as the Turks and their allies are trying to do.

이 글의 필자를 하나의 <반유태주의자>(anti-Semite)라 부르지 말라. 그는 목숨이 위태에 놓여 있는 모든 유태인에게 첫 번째로 도움이 되는 자가 될 것이다. 또한 그는 하나의 선동자가 아니다. 그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하나의 거짓말쟁이도 아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노인이며, 그의 아버지는 90년전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에서 생존하였고, 이 땅 위에서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에 관한 정의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문제는 결코 시들어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는 터키인들과 그 동맹국들이 노력하고 있는 한, 비밀로 존재할 수는 없게 되었다.

As President Putin said during his first visit to Israel: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이스라엘 첫 방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In the 21st Century, there can be no place for xenophobia, anti-Semitism or other forms of racial or religious intolerance. This is not only our debt to the millions who dies in the gas chambers [and may I add, in the killing fields of historical Armenia], it is our duty to future generations.'

    '21세기에서는 외국인 싫어하기, 반유태주의 혹은 다른 형태의 인종 내지 종교 편협이 설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가스실 속에서 (그리고 저 역사적 아르메니아의 킬링필드 안에서) 죽어간 수 백만명에 대한 우리의 빚 일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본 글은 저작권이 없으니, 여하한 형식으로든지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ㅡ THIS ARTICLE IS NOT COPYRIGHTED, IT MAY BE REPRODUCED IN ANY FORM AND MEDIA. <자료/20050501/일루미나티뉴스>.


'세계가 미국을 바라보니, 보이는 건 미국이 하나의 이스라엘 식민지로다. (폴 크레이그 로버츠/전 재무차관) ㅡ (When the world looks at America, what it sees is an Israeli colony./Paul Craig Roberts)


<Created/20050501> <Modified/20060412><20070329> <Updated/201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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