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4]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해 오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통하여 영존하는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셨던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가 너희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너희를 모든 선한 말씀과 일 안에 세우시니라.'
(데살로니카후서 2:16-17 / KJV화중광야역)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

글/ 조지 화잇필드(George Whitefield)  번역/ 화중광야(花中曠野)



조지 화잇필드(1714-1770)
조지 화잇필드는 존 뉴톤(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 작시자)과
존 웨슬리(감리교 창시자)와 함께 18세기 영국 복음의 3대 거성으로 불리운다!!

[발행기도문]
오 주님! 이 귀한 메시지를 담은 책자를 읽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TV 드라마에 빠져 세상적인 논제들로 지혜를 논하는 것을 즐겨했음을 회개합니다. 드라마에 중독되었음을 알고도 쉽게 돌이키지 못했고, 그 흘려버리는 시간들이 아까웠지만, 육체를 쉬고자 TV 앞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고, 오히려 몸과 마음이 곤해 졌음을 고백합니다.

목회자님을 통하여 전하여 주시는 성경말씀을 접하고도,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흘려버림으로 오히려 갈등과 불확실 가운데 있었습니다. 진정 주님의 자녀라면,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생명이라면, 하나님의 그 말씀을 먹고, 생명 가운데 살아야 함을 이 시간 새롭게 각오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파헤쳐, 말씀을 듣고 이행함을 의무로 해야 함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환경 탓으로 돌리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마귀의 계략임에도 불구하고, 그 계략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이 어려운 주변 환경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무시로 기도하며, 말씀을 상고하여, 이 험하고 어두운 권세를 이겨 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빛의 자녀들에게 권면하시는 대로, 세상에 주님의 말씀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소금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그 말씀을 나누고, 영적 성장을 함께 하겠습니다.
주님, 이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 소책자를 읽는 심령들마다, 마음에 인침을 받고 변화되어,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더욱 사모함으로 읽고, 기도 가운데 성령의 깨달음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이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 그 말씀으로 순종하는 자가 일어나도록 변화시키는 역사를 이루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3.9.15/ pb>


[번역을 하면서]
18세기 영국의 복음전도의 3대 거성(巨星)하면, 리버풀 출신의 존 뉴톤(John Newton/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작사자)과, 존 웨슬리(John Wesley/ 감리교 창시자)가 있고, 그리고 조지 화잇필드(George Whitefield)가 있다.

본 책자는 조지 화잇필드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왜 성경기록들을 파헤쳐야 하는가? 그것은 주님의 자녀된 자의 의무라는 것이다. 역자는 이 글을 번역하면서 3차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한번은, 본문 자체가 300여년전 영어의 표현이라서 현대 영어와는 다르며, 성경 전반에 대해 통달되어 있지 않으면, 번역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은데, 그 까다롬을 이겨내어 번역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하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대해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지금까지 성경해석을 이른바, 신학적  비평장치에 의존해오고 있는 추세를 완전히 탈피하여, 오로지 성경기록들 안에서 그 해답을 12년간 찾아왔던 역자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실어준데 대해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끝으로, 이미 하나님은 300여년 전에 영국에 이렇게 귀히 쓰시던 복음전도자의 글을 보내주시사, '진리의 입맞춤'(로마서 16:16)이 이루어지게 한데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자는 동역해오신 분들의 문서사역의 열매에 대한 감사, 곧 주님 앞에 드려지는 한 예물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리고 이 귀한 책자를 보내주신 캐나다의 콜린스 형제님과, 이 번역문을 워드해주신 디안 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샬롬.
<2003.9.17/ 화중광야(花中曠野)>


<1739년 4월 27일 '성 마리아 교회' 묘지석 위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선포하는 조지 화잇필드>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
[
THE DUTY OF SEARCHING THE SCRIPTURES]

사두개인들이 우리의 칭송을 받으신 주님에게 와서, '이 생에서 일곱 남편들을 소유했던 그 여자가 다음 생애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분은 그들에게, '그들이 성경기록들을 알지 못함으로 잘못 생각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역자주/마태복음 22:23-31 계대혼인(繼代婚姻)에 관한 구절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퍼져 온 모든 범죄들이 맨 먼저 어디서 야기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면, 그 범죄들은 대부분이 동일한 기초로부터, 곧 하나님의 그 말씀의 무지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에게 복을 주신 주님은, 비록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으로서 그 분은 성경기록들을 자신의 변함없는 규범과 안내로 만드셨다. 그러기에 그 분이 율법사에게서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셨을 때, 그 분은 그 해답으로서, '너는 무엇을 읽느냐?' 하시면서 자신에 관하여 성경을 언급하셨다(역자주/누가복음 10:25-28). 그리고 영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으로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에, 즉 마귀가 모든 공격들을 감행해 왔을 때에, 그 분은 '기록되었으되' 하심으로 성경을 언급하셨다. '그 말씀에 의한 영이 아니라, 오직 영에 의해서만 우리의 행동의 규범임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자들의 견해 중에서 이것은 논박거리가 충분하다. 만일 그렇다면, 넘치도록 영을 소유하신 우리의 구원자는 기록된 말씀을 반드시 언급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겠는가!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 성스런 말씀들을 집어치우고, 문맹인들에 적합한 하나의 고서(古書)로서 다루는 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성경기록들이 무엇을 말씀하며, 무슨 목적으로 짜여졌는지를 모르는 것은 엄청난 과오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을 논하게 될 것이다.

첫째, 성경기록들을 파헤침은 모든 이의 의무이다. 그리고 둘째, 그 성경기록들을 파헤침으로 얻어지는 유익을 위하여 당신에게 약간의 지침들을 전할 것이다.

나는 먼저 성경기록들을 파헤침이 모든 개인의 의무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성경기록들을 통해서, 나는 율법서와 예언서들과, 각 세대마다 정경으로 인정받아 온 책들과, 흔히 성경이라 불리는 그 책을 이해한다. 이것들은 단연코 성경기록들의 양식(樣式)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여타의 다른 책들은 진리의 기록물들이라 칭함을 받을 가치가 없지만, 이것들은 '진리의 성경기록들'로서, 혹은 어떤 개인의 해석, 권위 및 창안(創案)이 아니라, 거룩한 옛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밝히 드러내는 근본은 아담 안에서 우리의 '떨어져 나감'(fall=역자주/타락으로 번역함은 부적절하다)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의 새로남의 필연성 때문이다. 그리고 마땅히 우리가 할 바대로, 우리가 성경기록들을 파헤치면, 우리는 그것들의 요지와, 알파와 오메가와, 시작과 끝을 찾아냄으로서, 그 두 가지의 큰 진리들을 알도록 인도받기 위함인 것이다.

모든 징조들, 약속들, 계율들, 모든 훈계들과 교리들 속에는 모든 의식(儀式)들, 축하행사들, 유대 율법에 따른 희생제들이 포함되었다. 거룩한  성경기록의 모든 역사적 부분들을 통해서 보면,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담 안에서 '떨어져 나감'을 추정하고, 우리에게 한 중보자가 오심을 지적하고, 아니면 이미 살(flesh=역자주/육체로 번역함은 부족하다) 모습으로 오신 그 분을 말해야 한다.

만일 사람이 무죄함의 상태 안에 살았다면, 그에게는 외형상의 계시가 필요치 않았을 것임이니, 이는 하나님의 그 율법이 사람의 마음판들 속에 깊이 기록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금지시킨 열매'(역자주/ KJV 창세기 2:17=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것/ 개역=선악과)를 먹음으로 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불만을 야기시켰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으며, 아울러 외형적인 계시가 없이는, 사람은 '떨어져나간' (fallen=역자주/ 타락으로 번역함은 부족하다) 성품에서 비롯된 불행과 어둠으로부터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진리들이 사실이다 보니, 내가 당신들에게 권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여하한 다른 책 보다는 당신들 자신의 마음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떨어져나간'(fallen=역자주/ 타락으로 번역함은 부족하다) 창조물들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마음들 안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그러한 가증한 부패함들(역자주/마가복음 7:21,22=예수님이 손수 증거하셨으니, 곧 13가지로서 악한 생각들, 간음들, 음행들, 살인들, 도둑질, 탐욕들, 사악함들, 속임, 색욕, 악한 눈, 하나님을 모독함, 교만, 어리석음)이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조물주(Maker)의 손들에서 부패될 수 없음이니, 이는 그 분의 선하심 자체가 오로지 그 분 자신이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시기 때문임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우리의 성품의 무질서(혼란)들로부터 구원받기 원함은 자명한 것이니, 이는 우리가 이같이 부패되었으나, 항상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아주 다른 마음의 틀과 기질을 지닌 자들로 나타내려 애쓰는 우리 자신들 속에서 한 가지 적대(敵對)를 발견함이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가장 많이 배웠다는 논쟁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자기가 선천적으로 자만하고, 화를 내고, 보복을 품고, 하나님의 순수하심과 거룩하심과, 오래 참으심에 대적하는 다른 감성들로 가득찬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그의 체험이 하나님의 계시에 대적됨을 감히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감'(fallen=역자주/ '타락'으로 번역함은 부족하다)을 보여주는 어떤 길이 아닌가? 그리고 내가 또한 호소하는 것은, 그가 동시에 그의 마음 속에 이러한 상처를 입히는 욕망들을 찾게 된다면, 그는 온화하고, 공손하고, 친절하고, 정중하지 못한 것 같이 보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따라서 그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불행하고, 부족하고, 방법을 모르는데도, 그가 분별이 있다 함은 하나의 밝히 드러난 증거가 아니잖는가?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분 자신의 말씀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오셔서, 성경(거룩한 기록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무한한 선하심 같은 그러한 장면들을 그에게 열어 보이신다. 우리의 현대(역자주/저자 당시는 근대) 자연신교도(自然神敎徒) 같이 변질되고(부패하고) '떨어져 나가는'(fallen=역자주/ '타락'으로 번역함은 부족하다) 마음들을 지닌 사람들은, 그러한 장면들을 보지 아니하고 두 눈을 감아 버리곤 한다.

오, 사람이여, 당신이 느꼈고 비판하였던 그 눈멈과, 어둠과, 불행 속으로 당신이 어떻게 '떨어져 나간'(역자주/'빠져 버렸다'는 의미로는 부족함)지를, 하나님은 그 분 자신의 기록된 말씀 안에서, 당신에게 보여주시는 것을 어떻게 행하시는가?그리고 동시에 그 분은 당신이 바라는 그 길을, 곧 당신이 '그 분의 사랑의 그 아들'(the Son of His love)을 믿기만 하고, 닮기만 하면, 당신은 그 말씀에서 구속받을 수 있는 그 길을 가르키신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다시 당신에게 전한다. 이 두 가지 진리(역자주/바로 위 구절에서의 '죄'(떨어져 나감)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말씀으로 구속받음) 위에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남아 있다. 그 계시는 다른 목적을 위해서 아니라, 우리에게 우리의 불행과,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떨어짐'(fall= 역자주/타락으로 번역함은 부족하다)과, 회복을    보여주기 위하여, 아니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죽었던 모습과, 그리스도 안에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기록들을 파헤쳐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이는 성경기록들이 오로지 우리의 구원의 대증서(大證書)이요,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의 사람들과 맺어진 한 언약의 계시요, 우리를 평안의 그 길로 인도하는 한 빛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성경기록들을 읽지 않으면 안 되니, 이는 우리 모두가 똑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으며'(fallen=역자주/ '타락'으로 번역함은 부족하다), 모두가 똑같이 회복되어져서, 그 분과 함께 어떻게 다시 연합되는 지를 알아야 할 당위성 안에 서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서로 논박하고 있는 이 세대의 불신자들(이단자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하늘로부터 표적들'을 구하고 있으며,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의 그 진리를 입증하려고 '외적 증거'를 찾아나서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란 말인가! 이런 까닭에, 그들이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은, 그들을 향하여, 아니, 그들 속으로 가까워 진다. 그러니 다만 그것들은 그들 자신의 마음들과 논쟁하게 해도, 그들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것들로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들과 논쟁하게 해도,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부족함들을 위하여 계시된 하나의 치료를 보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기록된 말씀은, 마치 얼굴이 물 속의 얼굴에게 대답하듯이, 그들의 마음들의 부족함들과 바라는 것들을 정확하게 대답해준다는 사실을 보게 될 뿐이다.

그러면 이 세계의 논쟁자들의 이성(理性)을 논쟁하던 그 서기관은 어디에 있으며, 그 현자(賢者)는 어디 있으며, 그 논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마음들이 바랄 수 있는 그렇게 단순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 분 자신을 그들을 향하여 드러내지 아니하셨는가?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한 표적을 요구하니, 그들에게 주어질 여하한 표적도 없을 턴데 말이다. 따라서 만일 그들이 자기들의 부족함들에 대하여 모든 점에서 적합한 한 가지 계시를 믿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서야 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믿지 아니하는 그들을 위해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성경기록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한 계시를 담고 있는 사실과, 마치 그들의 주관심사가 되어버린 것처럼, 그것들을 읽을 뿐 아니라, 파헤쳐야 하는 것이 그들의 소임(의무)임 을 알고 믿는 자들을 위해서 계획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로, 그 성경기록들을 파헤침으로서 얻어질 유익에 관하여 몇 가지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다:

첫째, 성경기록들이 기록된 그 목적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그 길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라. '성경기록들을 파헤쳐라. 이는 그것들이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다.' 라고 우리의 칭송을 받으시는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 기록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라. 그 분은 구약과 신약이라고 하는 밭 속에 감춰진 그 보물이시다. 구약에서는 당신은 그 분을 예언들, 전형들, 희생물들, 그리고 그림자들을 통해서 찾게 될 것이다. 신약에서는, 한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들의 한 대속물이 되시려고, 그리고 한 선지자로서 그 분의 하늘의 아버지의 그 모든 뜻을 밝게 드러내시려고, 살(flesh=역자주/ '육체'로 번역함은 의미가 부족함)을 입고 드러나신다.

그러니 당신이 하나님의 그 말씀을 읽고 있을 때는, 항상 그리스도를 품어라, 그리하면 동쪽의 별 같이, 이것이 당신을 메시야에게로 인도할 것이요, 모호한 모든 것이 풀리는 한 열쇠 역할을 할 것이며, 하늘의 그 왕국의 모든 신비들의 지혜와 풍성함을 열어줄 것이다.

둘째, 어린 아이 같이 한 겸손한 의향을 가지고 성경기록들을 파헤쳐라.

이러한 기질을 가지고 성경기록들을 읽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결코 그 성경기록들 속에 포함된 것들의 지식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 자신의 눈들 안에 현명하고 신중한 자들로부터는 그러한 감각을 숨기시고,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 '어린 아이들'(역자주/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그들을 돕는 동역자들을 의미함)에게만 밝히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이 어린 아이들은 마땅히 알아야 하지만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며, 그 말씀의 그 참된 젖이 먹여지길 겸손히 바라는 자들로서, 이로 인하여 장성할 수 있게 된 자들이다(역자주/히브리서 5:12-14).

그러므로 당신이 성경기록들을 파헤칠 때, 특별히 당신이 신약을 읽게 될 때는, 당신 자신이 그 거룩하신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있는 마리아가 되도록 자부하라. 그리고 사무엘이 '주님, 말씀하소서. 주님의 종이 듣나이다.'(역자주/사무엘상 3:9) 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당신에게 가르치실 것을 기꺼이 배우도록 하라.

오, 하나님의 그 밝히 드러낸 뜻을 대적하는 모든 높은 생각과 상상을 허물게 될 믿지 않는 자들이여! 새로 태어난 어린 아이들 같이, 그 말씀의 그 순수한 젖을 먹혀지기를 바라는 자들이여! 그러기에 우리는 더 이상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시를 조소하게 하거나, 혹은 필리스틴인들(역자주/한글개역에는 블레셋인들)이 삼손을 끌어내다가, 놀이로 삼았던 바로 그러한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그들로 성경을 읽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모든 성경 구절 위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미지와 글자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통하여 그들의 혼들을 향하여 전하시는 말씀을 듣게 될 것이요, 결국에 가서는 그것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지식과 두려움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 당신이 읽은 것을 실행하려는 침된 의도를 가지고 성경기록들을 파헤쳐라.

하나님의 그 뜻을 행하고자 하는 한 바램은 그것을 알고자 하는 유일한 길이다: '만일 누구든지 그 분의 뜻을 행하려 한다면, 그 분은 그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   전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알게 될 것이다(역자주/ 요한복음 7:17). 그래서 너희(기꺼이 성경기록 파헤침의 의무를 실행하는) 에게는 하나님의 그 왕국의 그 신비들을 알도록 허락되었지만, 이러한 나의 가르침, 즉 성경기록 파헤침의 의무를 가르치는 나에게 흠을 잡는 자들에게는 그 신비가 깨닫도록 허락되지 않으므로, 이 모든 일들을 비유들로 전하니, 그들이 듣긴 들으나 깨닫지 못함이요, 듣긴 들으나 이해하지 못함이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그러한 강한 미혹들을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한 거짓을 믿게 하고, 단 한 가지 의도를 가지고 그 분을 찾지 않으려는 모든 자들로부터 그 분 자신을 숨기려 함은 올바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 분의 말씀으로부터 알기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그 분은 어제 처럼, 지금도 동일하시므로(역자주/히브리서 13:8), 그 분을 믿고 의지하며, 그 분을 통하여 살아가기 위함이며, 그 분이 사마리아의 그 여자에게 '네게 전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니라'(역자주/요한복음 4:26) 고 분명하게 밝히신 것 처럼, 그 갈망하는 자에게 자신을 밝히 드러낼 것이다. 아니면 유대인들이 그 분의 이름을 위하여 내 버렸던, 날 때부터 눈먼 자에게(역자주/요한복음 9:1-7) 드러내신 것 처럼, 그 분을 알기를 원치 아니하거나, 그 분의 당부들을 지키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들의 위로를 위하거나, 아니면, 그 분이 드러내시는 그 방법이 단순함에 조롱하는, 말하자면, 비록 성경기록들을 끝까지 파헤쳐야 함에도, '그는 결코 자신을 밝히 드러내지 못해'라고  한 욕망을 지닌 자들에게는 그 분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 아니면 그 분이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호기심에서 질문을 던지거나 아니면 그것을 빌미로 해서 그 분을 고소할  자들에게는 결코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

넷째, 계속 효율적으로 성경기록들을 파헤치기 위하여, 당신이 읽는 모든 것을 당신의 마음에 하나로 적용하라.

따라서 하나님의 책 속에 쓰여진 모든 것은, 우리가 배움을 얻도록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전에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하신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는 거룩한 기록말씀들이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의 계시요, '떨어져 나간 인간'(fallen man=역자주/타락자로 번역함은 부족하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교훈들과 징조들과 약속들이 즉시 알려진 자들에게는 물론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속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아들의 그 믿음으로 인하여 살았다고 우리에게 알리는 사도는, '나 때문에 죽으셨고, 자신을 드리셨다'고 덧붙인다. 우리 마음들에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적용함은 그 분의 대속이 우리 각자에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기록들을 읽고 있을 때, 그것들은 책망하고, 바로 잡아주고, 의로 훈육하고,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완전하게, 즉 모든 선한 일에 구비되도록 계획된 것인 만큼(역자주/디모데후서 3:16), 우리에게 유익한 것임에 틀림없는 성경기록의 모든 교리적, 역사적 부분들을 적용하는 것이다.

내가 성경의 모든 영적 독자의 체험을 강조하는 것은, 만일 그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찾지 않으면, 마치 그는 대제사장의 가슴 위에 착용된 '우림과 둠밈'(Urim and Thummim)을 구하였듯이, 언제고 어느 때든지 행동하는 방법을 인도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밝히 드러내시는 그 길인데, 새로운 계시들을 만듦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신실한 독자의 마음에 이미 계시된 일반적인 일들을 적용함으로써 밝히 드러내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그 말씀은 행동의 한 완전한 규범이 아니니, 이는 그것이 우리에게 행동하는 법, 특별 사례들에 있어서 결정하는 법, 혹은 우리가 의혹에 잠겨 있을 때,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우리를 인도하지 못하므로, 따라서 그 말씀이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 행동의 규범임에 틀림없다.'고 말하는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이의(異意)에 대한 해답이다.

그러나 이것을 내가 부인하지만, 반면에, 언제, 어떤 환경들과 어떤 장소들이든 비록 사소하지만 아주 특별한 것이기에, 만일 우리가 부지런히  그 분의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고, 일반적인 것들을 우리의 가슴들에 적용하고, 그로 인하여 거룩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들을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특별한 도움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기록들을 파헤침으로서 내게 유익을 얻도록 다섯 번 째 방향을 제시해준다.  성령님에 의해서 기록되어진 그 성경기록들을 얻도록 부단히 힘쓰라.

자연인이 하나님의 영의 그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말씀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전하신 그 말씀들은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따라서 단순한 자연인에 의해서 그 말씀들의 참의미가 더 이상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한 언어를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도 그 언어를 말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기록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진행했던 그 구름에 비유되어 온 것은 부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그 구름이 애굽인들에게 어둠으로 나타났듯이, 성경기록들은 자연인에 의해서 이해되기는 어둡고 어려운 것이다. 그 대신 그 성경기록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빛이요, 생명이니, 이는 파라오(개역=바로)와 그의 집에 어둠으로 나타난 바로 그 동일한 구름이, 하나님의 그 이스라엘에게는 밝음과 동시에 영광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한 교사요, 유대인들의 한 통치자인 니코데무스(개역=니고데모)가 거듭남의 가르침을 완전히 알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영의 도우심이 부족한 탓이었다. 이는 오직 한 자연인으로서, 일이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구원자의 제자들이, 비록 우리 구원자가 제자들과 자주 친교를 가졌을지라도, 그들이 날마다 그 분이 전하신 그 가르침들의 본질을 놓친 것은, 바로 이 영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마음들로부터 자연적인 베일(장막=거죽)이 벗겨져 나갔기 때문이니, 이제 와서성경기록들을 파헤치는 체 하는 수 많은 자들은, 그 성경기록들에서 글자 뿐인 것 이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며, 모든 비유로서 표현되고, 하나님의 그 책의 모든 가르침들 속에 포함된 그 영적 의미를 모든 제삼자들에게 지속시킨다.

진실로, 하나님은 한 영으로 존재하시므로, 그 분은 인간들의 마음들에 하나의 영적 방법이 아니면 교제하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만일 우리가 그 분의 영에 낯선 자들이면, 우리는 그 분의 말씀에 낯선 자들로 남아있어야(역자주/continue=그 당시 remain 의미임) 하는데, 이는 결국 그 분 자신이 영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복받은 영을 받아들이려면, 진실되게 힘써 애써라. 그리하지 않으면, 당신의 이해를 가지고는 성경기록들을 이해하는데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기도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음 여섯 번째, 당신이 성경기록들을 읽기 전에 기도할 것을 충고한다. 그리하면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대로, 그 분의 영을 보내사, 당신을 모든 진리에로 인도하실 것이다.

당신이 성경기록들을 읽는 동안, 가능하면 모든 단어와 절에 대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당신이 성경책을 덮을 때는, 당신이 읽었던 그 말씀들이 속으로 당신의 마음들 안에 새겨져서, 당신 안에 한 선한 삶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라.

이렇게 행하라. 그리하면, 하나의 거룩한 충돌로서, 당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당신의 마음들 속으로 모시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 분의 은혜로운 영향을 체험할 것이요, 하나님의 그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이 당신들의 혼들을 비추고, 살리며, 불타게 하심을 느낄 것이다. 그리하면 당신은 읽는 것은 물론이요, 당신이 읽은 것을 표시하고, 배워서, 속으로 소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말씀이 당신들의 혼들을 위하여 진실로 음식이 될 것이고,  마실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면 당신은 아폴로 같이, 성경기록들 안에서 능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왕국에로 가르침을 받아, 당신의 마음들로부터 보물들, 곧 당신이 교제 나누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얻어지는 말씀들(things)을 가져올 준비가 된 서기관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한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일곱 번째, 성경기록을 꾸준히 읽어라. 아니면 본문 안에 있는 우리 구원자의 표현, '성경기록들을 파헤쳐라'를 이용하라, 그리고 숨겨진 보물 같이 그것들을 파헤쳐 내라.

이는 여기에 광물들을 캐는 자들에게 한 가지 밝히 드러난 비유가 존재함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자는, 만일 우리가 금이나 은을 캐는 자들 같이, 현명하게 성장하려면,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읽는데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성경기록들은 하나님의 '깊은 말씀들'(the deep things)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들을 읽음에 한 가지 부주의하고, 피상적이고, 몹시 서두르는 방법으로는 결코 충분하게 파헤쳐질 수 없으며, 다만 한 가지 부지런하고, 밀접하고, 겸손한 적응에 의해서 만이 충분히 파헤쳐 질 수 있다.

<시편 기록자>가 한 선한 사람의 특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가 낮과 밤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기 때문이다: '이 율법서를(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되)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오직 너는 그것을 낮과 밤으로 묵상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번성케 될 것이요, 너는 형통할지라.'(역자주/여호수아 1:8). 그러므로 진심으로 뿐만 아니라 날마다 성경기록들을 파헤치라. 이는 그것들 속에 영원한 생명의 그 말씀들이 있음이다(역자주/요한복음 5:39). 끊임없이 지혜의 문에서 기다리라. 그리하면 그 때까지가 아니라, 그 때서야 그 지혜의 문이 당신에게 하늘의 보화들을 보여주고 열어 줄 것이다. 부유한 당신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난한 당신은 잠시 당신이 소유한 것을 조심해야 하고, 보람있게 이용해야 한다. 이는 성경기록들을 통해서 당신은 마지막 날에 심판받게 되어 있음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이 얕보는 책에 대한 맛은 느끼지 못한다. 연극물, 시들, 그리고 오락물들 같은 것은 당신의 맛을 더해 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런 경우라면, 당신의 맛은 해로운(결여된) 것임을 나는 당신에게 감히 말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그 영과 그 말씀으로 고침받지 못하면, 당신은 결코 그 분의 하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여기서(사는 동안) 하나님 안에 기쁨을 얻지 못하면, 어찌 사후(死後)에 당신은 그 분과 함께 만나 거주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당신은 유익하지 못한 부적절한 책들을 읽음이 하나의 죄인가 물을 것이다.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따라서 그와 동일한 이유에서, 제멋대로 무익한 대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죄이니, 이는 양자(부적절한 책들을 읽음과 악한 대화)가 즉시 우리가 구속의 그 날에 인침을 받을 수 있는 '그 영'(that Spirit)을 슬프게 하고 소멸할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라고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자, 지금까지 권면해준 대로 실행하라, 그리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그 책  혹은 동일하신 영으로 쓰여진 것들(역자주/성경관련 책들) 보다 다른 것들을 읽는 데서 가지게 되는 위태감, 죄책감, 그리고 불만족감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당신은 이같이 말할 것이다: '내가 어린 아이었고, 하나님의 그 말씀의 우월성을 몰랐을 때, 비록 나이는 늙었지만, 나는 다른 지식있는 아이들이, 해 온 것처럼, 아니 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이 해가 안 된다고 부르는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생명의 그 선한 책을 맛보았고, 나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보다 완전한 지식에로 나오게 되었고, 나는 이 어린아이 같은 사소한 것들을 집어치웠고, 오로지 다른 것은 말고 그리스도 예수님 만을 읽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성경기록들을 파헤쳐라. 하나님의 그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맛을 보라. 그리하면 당신은 결코 하늘의 만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메마른 자들을 먹일, 곧 거짓 맛을 보고 스스로 기뻐하는 사람들 안에 있는 그 작은 죄지은 구성원들을 먹일 그 빛의 빵이기도 한   천사의  양식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당신은 그러한 보잘 것 없는 오락물을 경멸할 것이고, 당신이 그것을 한 때는 좋아했음을 낯붉힐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하나님의 그 말씀은 꿀과 꿀송이 보다 더 달 것이요, 금과 은 보다 더 귀할 것이다. '하나님의 그 말씀'을 읽음으로써 당신들의 혼들은 전 처럼, 골수(骨髓)와 기름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마음들은 무감각하게 그 복주신 주관자의 그 영 안으로 주조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여기서(사는 동안) 당신은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 인도받을 것이고, 사후(死後)에는 그 분의 신적 말씀의 그 빛을 통하여 영광에로 행하게 될 것이다.

<Crated/20030917> <Modified/20061008> <Updated/200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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