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5-1]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해 오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통하여 영존하는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셨던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가 너희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너희를 모든 선한 말씀과 일 안에 세우시니라.'
(데살로니카후서 2:16-17 / KJV화중광야역)

[이 책을 권한다 - 디모데 박]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2002년도는 내 삶에서 아주 깊숙히 묻어두고 싶은 해이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눈물에 가려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시간일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분이 있으니, 바로 주님이시다. 이런 나에게 주님께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알려준 책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한 번 쯤은 '몸과 혼과 영'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했지만 거기에 대한 확실한 대답은 얻지 못한 채,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시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 또한 신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궁금했던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몸과 혼과 영'의 관계였다. 그래서 90년대 초에 나왔던 책 중에 하나인 워취만 리의「속사람」을 보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한 바 있지만, 여전히 한 쪽 마음에서는 석연치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는 중에 정재선 목회자님과  함께 '아빠! 광야 안에서도 피는 꽃이 있어요.' (Dad, Let's pull ourselves together, remembering the flower in the wilderness)라는『화중광야』(花中廣野) 문서사역을 준비해오면서, 목회자님이 신학대학 교수 재직시 입수한 책자를, 기독교 복음문서선교 자료로 활용코저 1994년에 번역초벌해 놓으셨던 것을, 부탁을 받고 워드로 정리하는 중에, 나는 얽힌 실타래가 하나씩 풀어지는 그런 감격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 원제목은 「How You Can Know The Will Of God」(1979년 발행)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힘들고 지친 육체지만, 우리의 영에게 말씀을 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영들을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심을 알게 되었다. 결코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육적 의식이 아닌 영적 의식을 소유해햐 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영적의식을 소유하지 못한 채, 아무리 구하고 간구해도 그것은 하나의 허공에서 맴도는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결코 하나님이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달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영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불분명하게 느껴질수 밖에 없다. 그렇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또한 우리는 영을 소유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시지, 우리의 혼과 몸에게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여전히 육적인 의식을 소유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의식을 소유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것인가?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입증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우리의 겉사람인 우리의 몸(육체)는 우리가 거듭난 그 이전과 동일하게 행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외쳤고 몸부림을 치셨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죽음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

그렇다. 오늘도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과 계획하심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의 속사람을 거스르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의 영은 영생을 누리며 거듭나지만, 여전히 우리의 혼을 이루는 사람의 지성과 감성은 여전히 해결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의 외침처럼 우리는 날마다 싸워야 한다. 주님이 오실때까지 아니면 우리가 주님께 갈 때까지 말이다.

그러면 우리의 지성과 감성은 어떻게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가?  즉 우리의 혼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단 한가지, 바로 말씀으로 새로워 질 수 밖에 없고, 말씀으로만 회복될 수 있다. 그래서 말씀을 상고해야 함을 또한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그 분의 말씀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성경을 읽으십시오!' 라고 한다면, '전 시간이 없어서...또한 졸려서...읽어도 의미를 잘 알지 못해서...' 라는 이유로 성경을 접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결코 신앙생활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고, 하나님의 그 뜻(the Will of God)을 알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겉사람에 이끌리어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여전히 겉사람에게 이끌리어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말씀'을 통해서 나의  몸을 이기고 새로워 지면서, 하나님의 그 뜻 안에서 살아 갈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읽어야 하는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성경은 확실하게 영과 혼과 몸을 구분하고 있다. 바로 우리의 영으로는 우리의 영계를 접촉하고 있으며, 우리의 혼은 우리의 정신계를, 육체는 물질계를 접촉하고 있다. 우리의 혼과 육체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그 뜻을 알 수도 없고 구분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그 뜻을 구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그 분의 완전하신 뜻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분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하나님은 바로 당신을 인도하시길 바란다: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데살로니카전서 5:23)

참으로 힘들고 지쳐버린 나에게, 이 책을 만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에게 오늘도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가 영적으로 깨어나길 원하시는 주님의 그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던 시간이다.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라는 질문은 많았지만, 거기에 대한 답은 없었던 나의 신앙생활! 참으로 부끄럽지만,『속사람: 하나님의 그 뜻은 이렇게 알 수 있다』(How You Can Know The Will Of God)-이 책을 통해서 얻었던 기쁨을 여러분과 느끼고 싶어 이렇게 몇자 간증의 글을 적으면서, 다음 페이지에 소개한다.

(2002.12.23/ 디모데 박)

속사람 : 하나님의 그 뜻은 이렇게 알 수 있다
How You Can Know The Will of God


글/ 목회자 케네스 헤이긴  번역/ 정재선


 


1. 속사람: 당신의 본체(眞我)

2. 속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3. 환상들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4.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언의 은사




1. 속사람: 당신의 본체(眞我)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로마서 8:14)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증거하시거니와.' (로마서 8:16)

'사람의 영은 주님의 그 등불이라, 뱃 속에 있는 모든 깊은 곳들을 살핀다.' (잠언 20:27)

<잠언서>의 기록자는 사람의 영(the sprit of man)이 주님의 그 등불이라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영들을 통해서 우리를 비추시고 인도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길을 제외하고서, 너무나 자주 다른 길을 가고자 합 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감으로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육감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니면 자주 우리는 정신적 견지에서 사물들을 바라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영은 주님의 그 등불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한 영(靈)의 존재'(a spirit being)입니다. 사람은 한 혼(魂)을 소유하고 있으며, 한 육체(肉體)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한 영의 존재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한 영'(a Spirit)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역주/요한복음 4:24 참조)

육체가 죽어서 무덤 속에 있을 때, 사람은 계속 살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적인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 내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갖는 그것이 훨씬 좋으나'(빌립보서1:23). 몸의 죽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살 안에 남아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필요하리라.'(24절). '내가 떠나면 주님과 함께 있게 되리라'는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가'(I)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의 몸이 떠나는 것이 아니므로(24절), 그의 몸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한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몸은 일으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고린도후서 4:16). 우리에게 한 겉사람(an outward man)과 한 속사람(an inward man)이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겉사람은 진정한 당신이 아닙니다. 겉사람은 당신이 살아가는 '집'(몸)일 뿐입니다. 속사람이 진정한 당신(眞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들을 통해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이해하기에 앞서, 우선 우리는 우리의 영의 정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이 속사람이란 '마음의 숨겨진 사람'(베드로전서 3:4)이며, 그것은 사람의 영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마음이란 영, 곧 속사람 내지는 숨겨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람(眞我)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한 새로운 창조이다'(고린도후서 5:17)고 말하는 것은, 속사람, 곧 진정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거듭나게 되었을 때, 당신이 한 새로운 몸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라, 진정한 당신이(眞我)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킹제임스성경 외의 다른 번역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한 새로운 자아가 존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종종 우리가 성경 용어들을 묘사함에 있어서, 그 의미가 불명확하여 혼돈을 야기시키는 예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말씀을 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일례로 <데살로니가전서 5:23>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게 전한 말씀입니다:

'화평의 하나님이 너희를 완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이처럼 용어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옮기는 것이 올바른 해석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속에서(the inside) 시작하여 겉으로(the outward) 이르고 있습니다. 속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겉사람에 이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사람들은 위 사실을 잘못 인용하여, 영 대신에 육(몸)을 앞세우는데, 그것은 그들이 영적 의식(spirit-conscious)보다는 육적 의식(body-conscious)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순서를 바꿔서 더욱 영적 의식이 앞서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영적 의식이 될 때까지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달을 수 없을 것이고, 영적인 일들이 불분명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영적 의식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의식이 되면 될 수록, 주님의 인도하심이 우리에게 더욱 실질적으로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혼들을 소유하고 있고, 몸들 속에서 살아가는 영의 존재들로서, 우리의 자아들에 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오랜 시간 속에서 이 주제에 대해, 우리의 생각이 잘못 받아 들여졌기에 많은 혼돈을 가져온 것입니다. 내가 미국의 저명한 성경 학자들에게, '사람의 영과 사람의 혼은 어떤 차이죠?' 라고 질문하면, 그들은 놀라면서, '그야, 나는 둘 다 같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설교자들이나 부흥사들도 영과 혼은 동일한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면서, 두 용어를 번갈아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어떤 양날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을 찔러 가르고...'(히브리서 4:12).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언어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는 것이지만,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함이다.'(고린도전서14:14). 우리의 마음(understanding)은 우리의 혼의 일부분입니다. '나의 지각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나의 혼(지성 및 마음)에서 기도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혼이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바울은 고백한 것입니다. '만일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언어'(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한 것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잠언 20:27>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사람의 영은 주님의 그 등불이라, 뱃 속에 있는 모든 깊은 곳들을 살핀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성경기록이 말함과 같이,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배에서 샘솟는 물로 이루어진 강들이 흘러날 것이다(이는 그 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 받아 들여야 하는 성령님에 관하여 그 분이 전하시는 말씀이라, 예수님이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에, 아직 성령님이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셨음이라)(요한복음 7:37-39). 성령님을 받아들임으로서 나타나는 결과는, '배'로부터 샘솟는 물로 이루어진 생명수의 강들(rivers of living water)이 흘러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번역은,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생명수의 강들이 흐를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앰플리파이드 번역본』(The Amplified translation)은 <고린도전서 14:14>를 이렇게 번역합니다 : '따라서 만일 내가 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기도함이다.' (★역주/『앰플리파이드 역본』은 1965년에 출판되었고, 문자적 번역으로 된 본문의 주요 어휘에 대해 동의어나 추가 설명을 보완한 영어성경으로서, 특히 신약 성경연구 자료에 도움이 됨). 당신이 알지 못하는 방언들로 기도할 때, 그것은 당신의 가장 깊은 곳, 곧 당신의 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언 20:27>의 '사람의 영은 주님의 그 등불이라, 뱃속에 있는 모든 깊은 곳들을 살핀다'는 이 말씀을 읽으면, 사람의 영이 우리의 가장 깊은 존재임을, 즉 그것이 진정한 사람(眞我)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깊은 곳의 사람이자 진정한 사람, 곧 사람의 영은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여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혼을 이루는 사람의 지성(知性)과 감성(感性)은 여전히 해결될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지성과 감성은 거듭나는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생각(마음)의 새로워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기쁘게 받으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과정(a process)인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고린도인들에게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제1장>에서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들이라.'(야고보서 1:21).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한복음 3:6).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하나님의 그 말씀으로 새로워질 수 있으며, 회복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spirit)으로 우리는 '영계'(spiritual world)를 접촉합니다;

우리의 '혼'(soul)으로 우리는 '정신계'(mental world)를 접촉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body)으로 우리의 '물질계'(physical world)를 접촉합니다.

가끔 우리는 '자아를 죽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아를 죽이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살(육체)를 '그 나무'(십자가 용어는 부적절함)에 맡기길 원합니다. (★역주/성경 전반에 걸쳐 예민한 용어이기 때문에, 역자의 성경주제풀이 '십자가인가 그 나무인가?' 참조).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마련해두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들로 인하여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들을 하나님께 거룩하고 기쁘게 받으실 살아있는 한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섬김이니라.'(로마서 12:1). 그는 '자아 혹은 살(flesh)을 죽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살을 가지고 쓰임 받는 일을 하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로마서 6:13>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지체들을 불의의 무기들로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당신이 거듭난 후라도, 당신의 몸(body)은 그 이전과 동일하게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속에 의지하고 있는 속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은 즉, 이 속사람으로 하여금 겉사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과 혼의 개념을 혼돈해 온 이유가 있습니다. '새로남'(new birth)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은(justified)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한 새 사람,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로운 창조'  (new creature)가 된 사실입니다.(★역주/한글개역의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은 부적절한 번역임. <에베소서 2:8-19>와 <마태복음 9:17>을 연관시키면 이해가 한결 용이함).

속에 의지하고 있는 이 사람, 곧 하나님이 다루실 사람의 영이 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옛 사람 속에 있던 그 옛것들은 이제 사라진 것입니다. 그 속에는 영적 죽음이 있었습니다. 악의 본성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증오와 거짓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그 속에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본성이 그 속에 있을 뿐입니다. 이는 높임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왠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는 바로 우리의 영들, 곧 이 사람을 통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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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19941229><Opened/20021223>
<Modified/20060326><20061015> <Updated/200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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