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5-3]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해 오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통하여 영존하는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셨던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가 너희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너희를 모든 선한 말씀과 일 안에 세우시니라.'
(데살로니카후서 2:16-17 / KJV화중광야역)

 

속사람 : 하나님의 그 뜻은 이렇게 알 수 있다
How You Can Know The Will of God


글/ 목회자 케네스 헤이긴  번역/ 정재선


 


1. 속사람: 당신의 본체(眞我)

2. 속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3. 환상들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4.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언의 은사






3. 환상들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로는 하나님은 환상들(visions)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의 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카이사랴에 코넬료라고 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집안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에게 많은 자선을 행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라. 그가 그 날 제 구시경에 한 환상 가운데 분명히 보았는데, 하나님의 한 천사가 그에게 와서, 말씀하시기를, '코넬료야.' 하더라'(사도행전 10:1-3). 비록 코넬료는 한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유대교 개종자(a Jewish proselyte)였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안에 있는 형제들에게 코넬료에게 일어났었던 일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코넬료) 자기 집 안에서 한 천사를 보았는데, 곧 그 천사가 서서 그에게 말씀하기를,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네게 말씀들을 전해 주리니, 그 말씀들로 너와 네 온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였다는 것이라.'(사도행전11:13-14).

이 성경 말씀은 코넬료가 환상 속에서 한 천사를 만났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천사들은 사람들의 눈에 보여질 수 있도록 형태를 취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 바울이 이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들도 있었다.'(히브리서 13: 2). 그렇지만 위 성경 구절은 코넬료의 체험인 한 환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코넬료와 함께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천사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 속에서 언급되어진 환상은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한 영적 환상(a spiritual vision)입니다.

육체적 눈으로가 아니라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이 주님을 본 것, 바로 그것은 한 영적 환상이었습니다. 그는 육체적 눈들로 주님을 본 것이 아님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들을 떴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는지라, 함께 온 사람들이 그의 손을 이끌고, 다마스커스 안으로 데려갔다'(8절). 바울은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에게 전하심을 그가 들었을 때, 그의 눈들은 닫혀 있었습니다. 눈들을 떴을 때, 그는 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육체의 눈들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한 영적 환상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형태는 한 무아지경(a trance)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코넬료는 한 무아지경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가 무아지경에 빠졌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날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그 성읍에 가까이 왔을 때, 베드로가 제 육시경에 기도하려고 지붕 위로 올라갔는데, 그가 몹시 시장하여 먹고자 하는데, 집사람들이 음식을 마련하는 동안 그가 한 무아지경에 빠져'(행10:9,10). 만일 당신이 한 무아지경에 빠질 때, 당신의 육감(肉感)들은 일시적으로 중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당신은 주위에 일어나는 일도 알지 못합니다.

세 번째 형태는 소위 한 열린 환상(an open vision)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육체적 눈들을 뜬 상태에서 보는 환상입니다. 성경은 코넬료에게 나타난 천사의 모습을 이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무아지경에 빠져 있을 때,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 하나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19>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베드로가 그 환상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비록 이 환상은 형태가 다른 한 환상이었지만, 환상은 환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환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코넬료는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구원에 관해 알려 줄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가 본 환상이 주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선 코넬료가 천사가 알려 준대로 행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천사는 그에게 구원받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교회 시대에 천사들이 복음을 전파해야 함을 분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이 전파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 안으로 가라.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그 복음을 선포하라.'(마가복음 16:15). 천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코넬료가 만나야 할 사람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둘째로, 베드로의 환상이 상징적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가 본 환상은 무엇인가 의미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 즉시 그 환상이 의미하는 바를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큰 보자가 같은 것이 네 귀가 끈으로 묶여져 땅 위에 내려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는 갖가지 네발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그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으라'(13절).

베드로는 거듭났으며,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종교 속에서 성장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해서 본 환상에 대하여, 진위(眞僞)를 분별하는 것은 퍽이나 힘든 것이었습니다. 짐승들을 먹는 것은 그가 살고 있는 유대의 문화의 신앙과는 어긋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절대로 안됩니다. 나는 결코 속된 것이나 부정한 것을 먹은 적이 없음입니다.'(14절). 유대인들은 아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음식은 정결하였고, 다른 어떤 음식은 부정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 속에서 바울은 이 점을 분명하게 가렸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나니, 이는 하나님의 그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하게 됨이라'(디모데전서 4:4-5).

'그 음성이 두 번째 그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결케 해놓으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환상을 보고나서 음성을 세 번이나 들었던 것입니다), 그 그릇이 다시 하늘로 올리워 받더라. 그 때 베드로가 자기가 본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궁금해 하고 있는데...'(사도행전 10:15-17). 베드로는 속으로(내적으로) 그 환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순전히 유대교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 환상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비록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부정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 영(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19절).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전하셨지만, 그는 아직도 그 환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서 내려가, 아무 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냈음이라' 하시니, '(19,20절)라고 성령님이 그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초자연적 방법(supernatural means)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를 <사도행전 8:26-29>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서, 남쪽으로 가라.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는데, 그 길은 한적한 곳이라' 하니, 그가 일어나서 가더라. 그런데, 보라,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휘하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큰 권위를 지닌 한 내시가, 예루살렘으로 예배드리러 왔다가, 돌아가고 있는데, 마차 안에 앉아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더라. 그 때 성령님이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 '가까이 가서, 이 마차에 함께 타라' 하시더라.'

잠시 여기에서 멈추고 한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베드로같은 사도들에게 전하셨다 해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방문(임재)은 사도만을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자(evangelist)였으며, 집사였다는 것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그에 관한 최선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에게 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이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님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은 한 '내적 증인'(속사람의 증언)은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내적 증인의 사건이었더라면, 성령님이 빌립에게 증언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에게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13,14>에서 예수님이 성령님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그 영이 오시면 그 분이 너희를 모든 진리 속으로 인도하시리니, 그 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듣는 그것 만을 말씀하시며, 그리고 너희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보이시리라. 그 분이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니, 이는 그 분이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임이라.' 비록 스스로를 말씀하시지 않지만, 성령님이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방언들로 전함을 예수님이 언급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방언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발설(utterance)케 하시면, 당신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님이 발설하게 하신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사도행전 2:4). '그 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듣는 그것만을 말씀하시며'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성령님이 들으신 바 무엇이든 성령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 니다. 그 분은 당신의 영(spirit) 안에 거주하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당신의 영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빌립 전도자의 '속에다'(on the inside) 전하신 것이 확실합니다.

베드로의 환상과 관련해서 성령님이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사도행전 10:10). 성령님이 베드로의 마음을 증언하신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런 경우였더라면, 성령님이 그를 증언하셨다고 해야 되는데, '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다른 두 가지 환상을 <사도행전 9:10-12>에서 소개하겠습니다: '다마스커스에 아나니아라고 하는 한 제자가 있었는데, 주님이 그 사람에게 한 환상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아나니아야.'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주님, 보소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니,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곧은 거리라고 부르는 곳으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타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보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 그가 한 환상 속에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은 즉, 다시 보게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아나니아도 빌립처럼 한 제자에 불과했습니다. 사도가 아니었는데도, 하나님은 그를 쓰셨습니 다. 물론 우리는 환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복음을 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상을 보여주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환상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몇년 전에, 내가 달라스에서 한 모임을 참석했을 때인데, 한 여자가 내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날 쓰시려고 함을 항상 느꼈어요. 난 3일간 단식도 했고 기도도 했어요. 그랬더니 주님이 날더러 떠나서 개인적인 사역을 하라는 거였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진작 저를 만났더라면, 3일간의 단식과 기도를 만류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증인이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증언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습니다만, 당신의 그런 문제 때문에, 3일간 기도할 필요는 없는 거지요. 그저 떠나서 사역을 하면 되는 겁니다. 자, 제가 자매에게 무얼 기도해 드리길 원하시는지요?' '저,' 그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저는 그런 이유라고 해서 기도해드릴 수 없습니다. 단지 당신의 가련한 오랜 게을러빠진 뼈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자매님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떠나가서 사역을 감당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 여자의 말은 마치 아내가 하는 말 같았습니다: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해야지.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어.' 우리가 일을 하는 사이에,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의무니까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진행하는 대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그 분이 당신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환상을 구하면서까지 사역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관해서 이 세상 가운데에서 아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환상 속에서 사울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기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시어, 한 사람이 갈급해 있음을 알려주시면서, 아나니아에게 '가서 그를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아나니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 내가 이 사람에 대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기로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갖은 악한 짓을 행하였고, 여기에서도 그가 대제사장들로부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하라는 권한을 받았다 하더이다.'(13-14절). 바꿔 말해서, '주님, 자신하십니까? 제가 그에 관해 듣기로는 신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하던대요.'라는 아나니아의 반문이었습니다. 한편, 동시에 하나님은 한 새 회심자(a new convert)가 된 사울에게도 관여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 역시 기도 가운데 한 환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다가와서 그에게 손들을 얹자, 시력이 회복됨을 환상 속에서 보았던 것입니다. 한 천사가 한 환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수 년전에 한 순복음교단에서 지도자들 모임이 있었는데, 한 동료 목회자가 한 환상 속에서 한 천사를 보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천사가 그에게 목회사역을 가르쳐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일부 목회자들이 그에 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한 형제가 한 천사를 보았다고 해서, 교단 차원에서 출교당하기 직전에 놓이게 되었는데, 한 저명한 성경 교사인, 한 원로 목회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적절한 때에 일어났습니다. 내가 시무하던 교회 안에서, 내가 회중에게 우리의 매주성경공부에서 토론하는 것 중에, 듣고 싶은 주제를 종이 쪽지에다 적어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회중의 대부분이 천사들의 주제에 관해 여하한 가르침도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천사들에 관해 2-3 가지 주제 정도를 가르치겠노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성경을 가지고 앉아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하니까, 5~6주 정도 가르칠 분량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형제가 한 천사를 보았다고 한 것이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들 태반이 천사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성경 말씀들을 인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가자로 내려가는 복음 전도자 빌립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배를 타고 가는 바울에게, 코넬료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그리고 옥에 갇힌 베드로를 어떻게 구해내셨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천사들을 봐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평범한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일로서, 우리 모두가 한 천사를 보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간혹 누군가는 보게 된다는 겁니다. 내게 평을 해달라 물으셨는데, 반대로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이 천사 주제를 없애면, 이 자리를 채울 더 좋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천사를 보았다는 그 사역자 대신에 천사에 대한 주제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은 환상들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초자연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할지라도, 내가 당신에게 권면해드리고 싶은 것은, 한 환상을 구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칫 그것을 찾아 나서다가는,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게 되며, 그 자리에 마귀가 찾아와 당신을 미혹 시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환상을 볼 때까지, 혹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다른 것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보다 정확한 인도하심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이 아니면 그 말씀을 제조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항상 당신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만 계십시오. 원칙으로 '내적 증인'(inward witness)에 의해서, 또한 '내적 음성(inward voice)'에 의해서 인도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뜻하는 대로 아니라, 하나님의 뜻하시는 대로 다른 길들을 인도하십니다. 이보다 더 특이한 방법으로 인도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들을 가르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 일들은 당신이 찾지 않아도 일어납니다.

내게도 주님께서 환상 속에서 7-8회 나타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도한 것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내가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환상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게 나타나셨을 어느 때에든 내가 단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단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단식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도 단식합니다. 단식은 오랜 기간해야함이 어떤 표적을 받는 것으로 생각들하고 있습니다만, 내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나는 단식하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환상들은 찾아왔습니다.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환상들을 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강제로 밀어부치는 식으로 해서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환상이란 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은 갈라디아 지역을 통과해서 분명히 아시아 지역 안으로 가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아시아 안에서 그 말씀 선포하는 것을 금하셨기에'(6절), 그들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성령님이 허락치 아니하셨습니다.'(7절). 그런데 그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말하기를,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9절)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나려고 하였으니, 이는 주님이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확신하였음이라.'(10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어떠한 말씀도 직접 받지 않았으나, 그들은 이것이 곧 주님이 그들에게 원하시는 바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 '우리'라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그들의 결정은 한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며, 바울로 하여금 결정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신줄로 확신하였음이라...' 성령님이 인도하셨고,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일행 전체가 이 결정을 옳은 것임을 동의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32>에서 전도와 예언에 관해서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 때 유다와 실라도 그들 자신들이 선지자이므로, 여러 말들로 그들(형제들)을 위로하고 강건케 해주더라.'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예언과 인도와 관련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개인적 예언에 관해서 매우 신중해야할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덕을 세워 주고(edification),' '권면하고(exhortation), ' '위로해준다(comfort)'는 이 말씀이 놀라운 것 입니다. 그런데 예언을 하는 어떤 사람이 자신을 예언의 전도자(a prophet minister)로서 간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지(豫知)의 말을 갖고 있다고 해서, '나는 예언한다. 고로 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개인적 예언의 영역 안에 있어야 할 곳으로부터 이탈하고 맙니다. 결국 그는 잘못 인도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의 무지에서 비롯됨과 미혹에 빠진 나머지, 세계 곳곳에서는 영적 은사와 예언을 통해서 사람의 생명을 인도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때에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자가 있으며, 이 예언의 노선을 따라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10-11>에서 재미있는 사건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기서 여러 날을 머물고 있을 때, 아가보라 하는 한 예언자가 유대에서 내려왔는데, 그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지고, 자기의 양손과 양발을 묶어놓고 말하기를, '성령님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이 허리띠의 임자를 이같이 결박하여서, 그를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시니라.'고 하더라.' 예언자 아가보는 바울에게 아무런 인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갈 것인지 안 갈것인지 사전에 물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단순히 성령님이 말씀하신 바로 이 곳에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소위 예언으로 말한다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 나는 들어온 바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들의 말을 듣고는 결혼까지 했다가, 그들의 삶이 엉망진창된 것도 보아 왔습니다. 그들은 결코 그들의 잃은 것 (loss)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외치는 자들의 말을 듣고서 깊은 상처를 받은 사업가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미혹의 예언을 믿고는 돈을 투자했다가 도산한 것입니다. 예언을 따라서 사업을 투자하라고 알려주는 성경 말씀을, 나는 신약성경 속에서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이고 영감적인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예언의 단순한 은사란(예언의 사역을 언급하는 것이 아님) 사람들에게 '덕을 세워 주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 입니다.'(고린도전서14:3). 어느 가정에서 있었던 기도회(prayer meeting)에 참석했었던 한 교단에 속한 여자가 최근에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기도회가 뭔가 잘못 된 것 같아요. 난 참석한지 얼마 안되어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없어요. 우린 기도회라고 부르고 있지만, 전혀 기도하지 않고 있어요. 거의가 서로 예언하느라 2-3시간씩 보내고 있거든요. 그렇게 예언하면, 뭐 좋은 일이 생기는지는 난 알지 못해요. 나는 성령이 충만한지라 방언으로 말해 왔지요. 그건 제 생애에서 크나 큰 복받음 (blessing)임을 알아요. 그런데 이런 기도회는 단순히 시간 낭비예요. 내가 받은 예언 모두가 나쁜 걸요. 그 중 한 가지는 내 어머니가 곧 돌아가신다는 거에요. 그런데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셔요. 또 한 가지 예언은 내 남편이 곧 날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는 아직 내 곁을 떠나지 않았어요.' 이상의 간증은 예언의 은사에 있어서 진짜 증언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은사는 사람들에게 '덕을 세워 주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예언은 그 여자에게 덕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여자를 손상시켰습니다. 그 예언은 그 여자에게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 여자에게 근심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의 죽음에 대해서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갖가지 방법으로 미리 알려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해주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미리 알려 주십니다. 제 아무리 당신을 위해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 말이 당신 자신의 영 속에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위로해주지 않는다면, 그 말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인간이며, 그러기에 실수(과오)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선포자에 불과합니다. 틀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지 않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 다. 만일 당신이 자동차를 몰고가는데, 당신의 행위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보도(步道)의 연석(緣石)을 들이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약간 방심했다고 해서 당신이 운전을 못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영적인 일들에 있어서도 의당히 우리가 날카롭지 못한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영적인 일들은 판정받아야 된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내게 안수하고 나서는 하나님이 나를 사역하도록 부르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는걸요.' 나는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이라면, 난 그 일을 잊어버리겠습니다. 만일 그 말이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주지 못한다면, 잊어 버리세요.'

<사도행전 13:2>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섬기며 단식하고 있을 때, 성령님이 말씀하시기를, '바나바와 사울을 내게서 따로 세우라. 이는 내가 그들을 불러 시킬 그 일 때문임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미 이루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사울과 바나바는 이미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사역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각기 다른 사역으로 구별해 놓고 계셨습니다. 즉 이방인들에 대한 사도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곧 그 사역을 감당할 하나의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예언에 의해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예언으로 사람이름을 받는 것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고 예언을 하면서 복음 전도자가 되길 말하는 것을 나는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적절한 간증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말씀도 선포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셨다면, 당신의 사역에 합당한 자격을 주실 것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한 가지 명확한 선이 있습니다. 현실과 광신(fanaticism)을 구분하는 정확한 선이 있습니다. 그 훌륭한 선을 긋기란 쉽습니다. 그리고 많은 손상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과용과 오용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깊은 상처를 받고서는 이 일들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반면에 어떤 극단에 빠진 자들은 무엇이든지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the Spirit)을 따르면서도 '그 말씀'(the Word)은 떠납니다. 그들은 길 반대편 도랑에서 멈추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길가 도랑에 머물길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길 한 가운데로 곧장 걸어가길 원하십니다.

<사도행전 11:27-28>을 읽으시겠습니다: '그 무렵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티옥으로 내려 왔는데'(여기서 선지자들이 여러명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 가운데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성령으로 알리기를, 온 세상 전역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 하더니, 클라우디오 가이사 때에 그렇게 되니라.' 아무튼 이 본문은 예언이었는데, 그러나 예언이 아니라, 예언자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선지자 아가보가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알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16:6>에 바울과 실라의 사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루기와 갈라디아 지역을 두루 다녔을 때,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금하셨으며.' 성령님이 개인에게 직접 전하실 때는 각기 다른 표현이 사용됨을 주시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의 경우, '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사도행전 10:10)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복음 전도자 빌립의 경우도, '성령님이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사도행전 8: 29)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성령님이 바울과 실라 일행이 전도하는 것을 금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즉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바울과 실라는 전도해 왔는데, 이번에는 두 사람이 기도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 예언으로 말했다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말씀 선포하는 것을 '성령님이 금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그들이 가지 말도록 그들에게 알려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시아 안에서 말씀 선포하는 것을 성령님으로부터 금지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말씀이 아시아 안에서 선포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나요? 그렇습니다. 적절한 때가 오면 전하라 하시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 안으로 가라.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그 복음을 선포하라.'(마가복음 16:15). '어디 가서 말씀을 선포하든지 그게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 안으로 가라고 하시니, 나는 그냥 가는겁니다'라고 말하는 일부 설교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이 일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까? 만일 우리 모두가 선교사들이라고 한다면, 지역교회(home church/가정교회)를 시무할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인도(印度)로 떠나려고 한다면, 아프리카는 누가 가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 개인에게 특정 지역에 나가서 말씀을 선포하길 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활짝 열고 있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언의 은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관련시켜서 예언의 은사를 연구하는 데는, 선지자의 사역과 예언의 은사가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해도 동일한 것은 아님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양자가 혼돈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예언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를 선지자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예언하기를 구하라고 가르치는 것 뿐입니다. 만일 예언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선지자가 되었다면, 주님은 모든 사람이 선지자가 되길 바라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모두가 선지자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 이겠느냐 ?'(고린도전서 12:29).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라는 겁니다. 모두가 선지자가 될 수 없는 고로,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구하라고 선지자가 우리에게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는 예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언의 단순한 은사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덕을 세워 주고, 권면하고 위로하는'(고린도전서14:3) 것입니다.

예언이란 알고 있는 말로서(당신 자신의 혀로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초자연적인 발설(a supernatural utterance)입니다. 방언들로 전함은 알지 못하는 말로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초자연적인 발설입니다. 즉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말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에게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예언이란 기도 중에 당신이 알고 있는 언어는 물론 방언들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나는 영어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영이 내게 부어주심을 너무 강한 영감을 받기 때문에, 혼자 기도하면서 1시간 동안 들어본 적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나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그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에 대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언, 즉 '영감받은 발설' (inspired utterance)이었습 니다.

당신도 예언을 하고 있을 때, 마치 '당신의 둘'(two of you)이 존재함을 느꼈을 때도 간혹 있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의 겉사람(the outward man)과 속사람(the inward man)말입니다. 이 예언은 속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겉사람이 듣는 것입니다. 내가 설교하는 도중에 가끔 성령님의 부으심(anointing)이 내게 임하십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계획하지도 않았던 말들을 하게 되는 내 자신을 듣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영감받은 발설입니다. 여기에는 나의 마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 나에게 내주하시기 때문에 나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의 은사가 발휘되고 있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인 것입 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어느 사람이 예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선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로서의 직분이 따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그 직분 속에 들어가서 그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단순 은사는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덕을 세워 주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사는 오직 그 영역 안에서만 이용되어야 합니다. 이 예언의 은사에서는 앞 일을 말하는 예언과는 전혀 무관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선지자의 사역에서는 앞 일을 말하는 예언이 가능합니다. 이미 그에게는 계시의 은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과 영분별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적인 일들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일들도 잘못 이용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기만 하면, 모든게 잘 되는거야.'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의 감화에 의해서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완전하시므로, 성령님의 은사들 자체가 완전합니다. 그렇지만 그 은사들이 증언됨(드러남)은 완전치 못한 '사람들'(그릇들)로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반드시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예언과 통역을 수반한 방언은 판단받아야 하는 필연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예언하는 자들은 둘이나 셋이서 전하고, 다른 사람들은 판단하라'(고린도전서 14:29). 성경에 따라서 판단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선 판단하지 않고서 그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계시가 있으면...(고린도전서 14:30). 예언하는 사람들은 계시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다만, 예언하는 사람들은 이 노선(line)을 따라서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이 충만한(spirit-filled)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지식의 말, 지혜의 말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음성 은사들(방언, 방언통역과 예언)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unction)으로 발휘되는데, 우리는 그 발휘만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는 말을 안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의 영들은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지배를 하나니.'(고린도전서 14:32).

이 은사들은 당신의 영을 통해서 나오기에, 당신의 영에게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 없이 발휘되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우리는 은사들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함도 보아 왔습니다.

이제 말을 맺을까 합니다. 하나님의 한 자녀가 자기의 생명을 위해서 그 분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그 분의 완전하신 뜻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자녀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마음에게 전하는 잔잔한 작은 음성을 통해서이건, 일종의 초자연적인 임재하심을 통해서이건, 평안의 통로에서 자기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놓은 자들을 하나님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샬롬.

(1994.12.29/ 정재선 번역하다)

[관련필독자료] 하나님의 그 뜻 - 불레마와 딜레마 (작업중)

<Created/19941229><Opened/20021223>
<Modified/20060326><20061015> <Updated/200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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