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혁크리스투교(Reformed Christianity)에 새용어 <교중>(敎衆)이 정립되다!!]

Which stood only in meats and drinks, and divers washings, and carnal ordinances, imposed on them until the time of reformation. (Hebrews 9:10, King James Version)

이러한 일들(성막제사들)
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들은 원상태로 회복될 때(개혁)까지만 부과된 것이도다. (히브리서 9:10,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제1부에서 계속됩니다!!] <자세히보기>

<에클레시아>(EKKLESIA)의 성경적 용어풀이

한국교회는 왜 이 용어 <교중>(敎衆-CONGREGATION)을 회피해 왔는가?? (2)

풀이/ 정재선 목회자

[필자의 한 말씀] 한국교회의 성경용어의 만성적인 고착화는 사탄의 치명적인 속임수이니 이를 계속 파지(把持)해 나가면, 결국에는 '영적인 암'으로 번져서 <그 말씀>이 변질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만성적인 고착화를 허물어 버릴 수 있는 귀하고 고가의 자료를 입수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그 손길>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샬롬!!


한국교회는 왜 이 용어 <교중>(敎衆-CONGREGATION)을 회피해 왔는가??

필자가 목회를 시작하고부터 가장 곤경에 처한 경우는 바로 용어다운 용어로 번역되지 못한 채, 주로 중국어로 번역된 용어를 그대로 차용해 온 결과, 제대로 성경적인 용어가 정착되지 못한 채로 오늘에 이르도록 활용되어 오는 그 자체가 예호바에게 대단한 죄과가 아닌을 부인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특히 교리나 교파에 따라서 성경의 용어가 각양 각색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자못 성경말씀의 분열을 자초해 온 것은 아니지 반문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대동강 강변 양각도(羊角島) '쑥섬'에서 순교당하신 <로버트 J. 토마스>(Robert J. Thomas) 선교사의 소식을 접한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는 한국에 외국인의 입국이 불허된 상황에서 인근 지역인 중국(청국) 동북삼성의 중심지인 <봉천>(심양)에다 <동관교회>(東關敎會)를 세워 선교의 중심지로 삼아 본격적인 조선인 선교에 헌신하였다.
<관련자료/[Dembo's Unforgettable  Essay] [1] 점점 가시화되어가는 안티-그리스도교의 물결!!> (자세히보기).

◆[이미지/화중광야제작] <한국 복음화의 그루터기 ㅡ 우리의 간도!!> (자세히보기)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선교란 사람이 많아야 되는 것이 아니리...1993년 5월 10일, 중국선교여행 마감 2일전 <고려문>을 거쳐서 <봉황성>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전날에 중국군에게 '의심자'(??)로 체포되어 취조를 받았던 그 시간들...너무 초라한 모습과 그리고 열악한 상황에서 너무도 부족하였지만, 처처에 현지인 조력자들을 공급해주시는 예호바의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아우야, 니 말이야...이 담에 다시 올적엔 돈 좀 많이 가져 오라우...어째 넌 돈도 그리 없냐...' 가이드를 맡아 주신 '박의환'(북한 출신) 동포의 헌신을 잊을 수 없구려...!!


로스 선교사는 <한글성경번역>에 애착을 가진 후로, <우장>(牛莊)에 체류하는 중에 조선과 청국의 경계지역인 <고려문>(高麗門)을 두 차례나 방문해서(상단 이미지 참조), 1874년에 의주에서 건너 온 조선 청년 이응찬(李應贊)을, 1876년에는 이응찬의 친구들 백홍준(白鴻俊), 이성하(李成夏)김진기(金鎭基)를 픽업해서, 그들로부터 한글을 터득하였고, 결국에는 1887년에 최초의 한글성경인 <예슈성교젼셔>를 번역 간행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金良善, '韓國基督敎史硏究', 基督敎文社, 1971, p.48-53> 참조!!).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존 로스(羅約翰) 선교사는 중국대륙에 부임하기 전에 '런던선교회'에서 중국어 교육에 열심하였고, 그리하여 중국어에 능통하였다. 그러나 중국 우장(牛莊) 이르러 조선 청년들과 함께 성경을 번역하는 중에, 위의 세 가지 용어를 한글로 번역하는데 있어서 적합한 한글이 없어서 [하단이미지] <①Sabbath=사밧날, ②baptism=밥팀례, ③Passover=넘는절>로 각각 번역하였다고 본국 '스크틀랜드연합장로교선교회'에 보고하였다. <김정현, '한국의 첫 선교사', 계명대학교출판부, 1982, p.206-2013 참조>. 한편, 미국 선교사들 중심의 한글번역팀 <성서번역자회>가 (마무리 성경번역/요안계시록 제4장/자세히보기) 로스 선교사의 한글성경 번역의 이 용어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오늘날같이 <안식일/세례 혹은 침례/유월절> 같이 중국어 성경용어의 타성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 아니던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더우드 선교사 중심의 <성서번역자회>의 '오류'(??)가 드러난 것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또 일례로<baptism>을 일본어 성경번역에서는 헬라원어 그대로 음역해서 <バプテスマ-밥티스마>로 번역한 것을 보더라도, 이 용어가 풀이해서 정립될 용어가 아닌...그야말로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차라리 일본어 번역처럼 우리도 <밥티스마>로 번역해 놓았어야지...그것을 중국어 번역(모리슨/메드허스트/귀츨라프=런던선교회 지원=런던선교회는 프리메이슨 조직) 그대로 차용해서 <洗禮-세례>로 번역하였고, 나중엔 그것도 아니다 라면서 일부 교파교단에서는 <浸禮-침례>로 사용하고 있는데...로스 선교사는 'Wash-Rite'(洗禮-세례) 그러한 번역 자체가 '넌센스'(nonsense)임을 시인하고, 과감하게 <밥팀례>로 번역하였던 것이다!! 19세기 후반에서 이러한 번역은 대단한 결단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복음문서사역이었던 것이다. 한국교회와 한글성경은 이러한 적합한 용어 '기피'(회피)로 인하여 오늘날까지도 수 없이
<가지>(교파)로 나누어져 있음이니, 가히 이것이 성경적일까??


한국 '모임'(교회)의 전초기지는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선교가 시작되기 이전에 만주지역 곧 '우장'(牛莊)과 '봉천'(奉天=심양/瀋陽)과 '서간도'(西間島) 일대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한국인 예배공동체였다:

    '우장'(牛莊)은 한국 '교회'의 최초 신자를 낳은 곳이요, 최초의 한글성경을 번역한 곳이다.

    '봉천'(奉天)(심양/瀋陽)은 최초의 한글성경을 출판한 곳이며, 최초로 한인 전도자를 선택하여 한국 안으로 파송한 곳이다.

    '서간도'(西間島) 조선인촌(朝鮮人村)은 최초로 한국인 '교회'가 세워진 곳이다.

    (김양선, 한국의 성서번역사, '성서한국', 대한성서공회, Vo.2, No.2, 1956, p.23.)

만약에 김양선(金良善) 목회자(교수/최초 한글성경 번역자 백홍준의 외손자)가 정리, 요약해 놓으신 위 세 가지 파워포인트의 대상은 <교회>(CHURCH)라고 표현하였지만,  성경적으로 접근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위로부터(하늘로부터) 불러내심을 받은 자들'(CALLED-OUT)전도자(傳道者=설교자=일부 교파는 '강도사/講道師'로 표현)들이 전하는  구언약인 <엘로힘의 그 말씀>과 신언약인 <예호슈아유언><그 복음>을 열망하여 받아먹는(시편 37:3) 대상으로서 '영적 제자'<파이디온>(자세히보기)이요. 또한 <네피오스>(자세히보기)인 것이다:

    37:3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so shalt thou dwell in the land, and verily thou shalt be fed. (Psalm 37:3, King James Version)

    37:3예호바를 의지하고 선을 행하라. 그 땅 안에 거주하라. 그리고 안전한 푸른 풀(믿음)이  먹여질지다. (시편 37:3,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너는 먹여질지다'
라는 것은, 엘로힘이 아브라함, 이자크(이삭), 그리고 야콥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유로 주기로 약속하신 <카나안의 그 땅>(민수기 33:53. 창세기 37:1. 히브리서 11:9) 안에 자라게 될 것인데(시편 85:12), 곧 그 땅이 진실로 신실하게 가져다 주는 열매들을 먹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위 본문은 '너는 그 땅의 부요함으로 먹여질지다'라고 번역된다. 그렇다면 그 땅이 가져다 주는 열매들인 그 소산은 '카도쉬'(성도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너는 그 땅의 부요함으로 먹여질지다'라는 것은
 '너는 푸른 풀이 먹여질지다'는 것이요, 바로 '너는 믿음이 먹여질지다'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으니, '카도쉬(성도)는 믿음을 먹고 산다'는 예표인 것이다!! 이 얼마나 성경의 파노라마 같은 '비밀'인가??

'카도쉬'(성도)를 헬라원어상 <에클라시아>(εκκλησία)요, 영어용어상 <CONGREGATION>이요, 한글용어상 <교중>(敎衆)인 것으로 정립하는데 일익코자 본글을 올리게 된 것임을 밝혀드린다.


한국교회는 왜 이 용어 <교중>(敎衆-CONGREGATION)을 회피해 왔는가??


선교여행으로 외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 이상한 나라...한국이다. 지금이야 많이 잦아졌지만...한국은 <킹제임스성경>하면...유독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나라다. 특히 1994년 <말씀보존학회>에서 첫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발간하자, 기존 교파/교단 교회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서점 안내지 박스에서 건져낸 <킹제임스성경> 발행 광고지는 필자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땐 필자는 대학 교수직을 접고서 신학원 과정을 마치고, 원어성경과정에 올인하던 때였다. 아울러 <원어성경><킹제임스성경><한글개역성경>은 필자와 함께 복음문서사역의 필수본들이 된 것이다!!

필자 또한 <교중>(敎衆) ㅡ 이 용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모임/회중>이라는 아주 제한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행되어 오던 중에...한 가지 작은 이적이 필자에게 찾아 온다.

2014년 5월 1일, 새벽에 이 책을 접하게 된다: '敎衆에 對한 職務ㅡ講道學 講議'


우선,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두 단어 <교중>(敎衆)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배워오고 활용해 오던 <모임>이나 <회
중>
같은 그러한 <무리>와 관련된 용어가 아님을 한 눈에 깨닫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 두 가지 용어를 활용해오면서도...진실된 그 내면 속에 담겨진 의미를 표출시킬 수 있는 성경적인 용어는 없을까??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교회><건물>이 아님을 강조해 오고 있다. 이는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니다. 헬라원어
<에클레시아(εκκλησία)  를 올바르게 번역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용어 <교회>는 이미 이 땅 안에
<그 복음>이 들어오면서부터 <그 복음>을 받아먹는 <대상> 보다는 <건물> 내지는 <장소>와 결부되어 활용되어 오던 용어였기에...좀처럼 구별되어 사용하는데는 <혼돈>이 초래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게다가 <교회>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일단은 '색안경' 쓰고 쳐다보는 이상한 관행들이 너무도 긴 시간 속에 젖어 온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성경번역에서도 찾아진다.

유독 헬라원어 <에클레시아>(εκκλησία)의 영역(英譯) <CONGREGATION> 용어가 거의 사장(死藏)되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필자의 경우, 캐나다 선교 여행 때, 주일 예배를 참석한 적이 있었다. 네델란드 이민들이 개척한 '개혁회중'(Reformed Congregation)였는데, 그곳에는 <CHURCH> 대신 <CONGREGATION>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말로 '성도 여러분!!'에 해당하는 용어로서 'Our Congregation!!'이라 하면서...목회자의 설교 중에도 유난히 <CHURCH> 보다는 <CONGREGATION> 용어가 많이 언급되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에는<회중교>(CONGREGATIONAL CHURCH)가 존재하고 있다.
일례로서, 대한민족(大桓民族)의 거성시인(巨星詩人)의 모교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은 미국에 불법 유학 중에...마침 1872년(메이지 5년)에  미국에 온 <메이지유신>의 주도세력의 하나요 미국 전권 특명대사인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가 이끌고 온 <岩倉具視使節團>의 통역을 맡게 되었던 <니지마 조>(新島襄)가 세운 학교이다. 그는 미국에서 <회중교>의 목회자가 되어, 1875년에 귀국하였고, 손위 처남인 <야마모토 가쿠마>(山本覺馬)와 미국 <회중교> 선교사 <제롬 D. 데이비스>의 도움을 받아 조국발전의 토대라고도 말할 수 있는 교육에의 공헌을 위하여 <도시샤영학교>(同志社英校)  를 설립한다. 이것이 현재 <도시샤대학>의 전신이며, 이후, 일본 유수(有數)의 대학 <도시샤대학>의 각 학부와 중, 고등학교를 포함한 종합사립 학교법인 <도시샤대학교>에 이른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이 사진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낯익은 장면이다. 1883년(明治 16年) 5월 8일, 일본의 <第3回 全國基督敎徒大親睦會幹部> 모임인데, 초기 일본의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거의 참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줄에 유독 한복차림의 인물이 바로 조선인 <이수정>(李樹廷)이다. 1800년대 후반에 만주에서 로스 선교사가 한글성경 번역에 올인하고 있을 동안, 일본 동경에서도 한글성경번역이 진행중이었고, 그 장본인이 바로 이수정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민비'(명성태황후)를 구출해드린 공과로, 고종태황제의 신임을 얻은 이수정은 그해 9월 <第4次 修信使> 박영효와 김옥균 일행과 비공식수행원으로 도일하여, 3년 9개월간 체류하였다. 당시 일본의 저명한 농학자요 크리스투교인 <츠다센>(津田仙)에게서 한문성서를 기증받았으며, 그의 안내로 <츠키지교회>(築地敎會)에 출석, 크리스투교에 감명을 받고, 1883년 4월 29일 나이 40세에 <낙스>(G. W. Knox/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에게서 <밥팀례>를 받았다고 전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이수정>에 관하여 소상하게 밝힐 것이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 우리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보인다. 바로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이다. <김교신>(金敎臣)으부터 <노평구>(盧平九)로 연결되어지고, 나중에는 <함석헌>(咸錫憲)에까지 이르는 소위 한국내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의 스승이 바로 우치무라 간조이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회중교>의 <니지마 조>(新島襄)가 보인다. 우리의 문호가 개방되기 전에, 일본의 크리스투교는 각 조직들 간에 이처럼 교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겠다. 특히 교파와 교리 간에 장벽이 없이 원만한 교제가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잘 음미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에게는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남아 있다. 1926년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해였다.  우선, 그 해는 <윤치호>의 후원으로 새로이 성경적 용어 <CONGREGATION>의 새번역 <교중>(敎衆)이 태동되는 시기인 동시에, <김교신>이 일본 유학에서 우치무라 간조 밑에서 7년간 무교회주의를 지도받고 귀국한 해였던 것이다. 바로 이 두 인물이 한국 크리스투교에 미친 영향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첫째, 윤치호는 그의 초기 사상과 행동에 집중해 있는데, 크리스투교를 통해서 한국(조선)의 근대화를 지향한 예언자적 존재로서, 인간과 사회의 크리스투교化를 통한 도덕적 순화를 지향한 개화사상가요 사회참여의 신학의 선구자로서, 한국 크리스투교에 큰 영향을 미친 '크리스투교적 개혁사상가'로서 평가받는다.

    둘째, 김교신은 교육학, 한일교류사, 한국크리스투교사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이를 정리하면, 김교신의 <조선산 크리스투교>(朝鮮産基督敎)는 토착적ㆍ민족적 크리스투교의 한 원형으로서 높이 평가받는다. 그리고 김교신의 신앙적 논리였던 '무교회주의적'인 특징을 들 수 있다.

이 또한 [별도주제]로 다루고저 기도 중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놀라우신 성숨님의 은혜로 한글성경 새용어 <교중>(敎衆)을 만나게 되었다!! (2014.5.1) <白南奭 번역, 王永德 교열, '敎衆에 대한 職務ㅡ講道學 講議', 京城: 朝鮮耶蘇敎書會, 1926, 속페이지>. 원저자 <존 커언>.


[원저자 <존 커언>은 누구인가?? ] ㅡ '벤덜빌트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의 교수인 <존 아담 커언>(John Adam Kern)은 1846년 4월 23일, 버지니아주 프레데릭州에서 태어났다. 독일계 영국인 후손으로서 그는 아버지 니므롯(Nimrod)과 어머니 엘리지(Eliza) 벤틀리(Bentley) 커언(Kern)의 아들이다. '윈체스터고등학교' 졸업후, '버지나아신학대학교'(Seminary and University of Virginia)를 졸업하였다. 1889년에 '워싱톤리대학교'(Washington and Lee University)에서 신학박사 (D.D.)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06년에는 '랜돌프매콘대학'(Randolph-Macon College)에서 법학박사( LL.D.) 학위를 받았다. 1875년 1월 25일, 마가렛 버지니어 에스크릿지(Margaret Virginia Eskridge)와 결혼하였다. 1866년에 남감리회(M. Episcopal Church, South) 주최 '볼티모어회의'(Baltimore Conference)에 참석하였다. 1886년에 '랜돌프매콘대학'의 철학 교수로 부임, 1897년에 본 대학 학장이 되었다. 1899년 이후로  '벤덜빌트대학교'에서 실천신학강좌를 맡았다. 저서로는 'The Ministry to the Congregation,' 'The Way of the Preacher,' 'he Listening Heart,' 'The Idea of the Church'와 'Christianity as Organized'가 있다. 1926년 3월 24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영면하였으니, 자신의 저서 <The Ministry to the Congregation>(敎衆에 대한 職務)이 한글판으로 번역, 간행된지 약 1개월이 지난 후였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2014년 5월 1일, 새벽 4시 30분경, 놀라우신 성숨님의 은혜로 필자는 한글성경 새용어 <교중>(敎衆)을 만나게 되었다!! 한결같이 <모임>과 <회중> 용어를 보완할 수 있는 성경적 용어를 갈급하였던 필자에게는 <교중>이야 말로 메마른 땅 위에 내린 단비를 맞은 느낌이 온 몸을 감싸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어떻게 입수하는냐가 관건이었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고가(高價)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발행된 지 이미 80년이 넘었기에 당연히 고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드디어 당일 오후에 필자는 담판을 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다른 자료들 구입이 무산되더라도, 이 책만큼은 필히 입수해야 할 책이었다.

분명, 성숨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되었다.
필자의 사정을 전해 들은 서점주인은 '그렇게 필요하시냐??'고 하면서 책값을 <20%>나 깎아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일 전에 입수된 이 책을 갈급하였던 것은 <CONGREGATION>을 <敎衆>(교중)으로 번역한데 대한 어떤 해명 내지 해설이 있겠다 싶어서 구입하게 된 것이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미지/화중광야 제작] [왼쪽이미지-번역문] <王永德, '敎衆에 對한 職務ㅡ講道學 講議', 京城:朝鮮耶蘇敎書會, 1926, p.21> ㅡ [오른쪽이미지-영어원문] <John A. Kern, THE MINISTRY TO THE CONGREGATION: LECTURES ON HOMILETIC, Nashville: Publishing House Of The Epicospal Church, 1897, p.17>.


위 이미지에서 보듯이, <CONGREGATION>에 관하여 <敎衆>(교중)으로 번역한 것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역자 서언> 속에는 <CONGREGATION>을 <敎衆>(교중)으로 번역한데 대한 <해설> 혹은 <풀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第一講演 有益과 防害>의 첫 머리에 <敎衆>(교중)을 만나게 되었다:

    [번역문] 牧師가 公衆 禮拜를 引導하는 것은 講道함과 一般으로 亦是 牧師의 行함 한가지 職務니 牧師가 그 입으로 讚頌하고 祈禱하는 것은 敎衆을 向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敎衆 압헤셔 하는 것이며 또 讚頌과 祈禱가 곳 敎衆의 것이 되게하자는 特別한 主旨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 牧師가 奉獻物을 壇에 갓다 노흐며 '이것은 여러분의 것과 내것인되 우리가 함께 主께 드리비시다' 하는도다

    [영어원문]
    THE conduct of public worship is, like preaching, a ministry. True, the minister's utterance of praise and prayer is not to the congregation, but it is made before the congregation and with the express 'purpose that it may also become theirs. He brings an offering to the altar and says to the people : "It is yours and mine ; let us offer it together unto the Lord."


[부록] [TRANSLATOR'S NOTE  ㅡ 譯者 緖言]

◆[이미지/화중광야] <역자 서언>을 통해서 왕영덕(미국명=Alfred W. Wasson) 선교사는 본서는 백남석 씨가 초벌 번역하였고, 윤치호 장로가 일부 번역 교정을 해주었으며, 임영빈 씨가 조수 역할을 해주었음을 감사하고 있다.

For many years THE MINISTRY TO THE CONGREATION has been in the course of study prescribed for Methodist preachers in America. For three years I have used it as a textbook with Korean students and have found it remarkably well adapted to their use.

본서 <敎衆에 對한 職務>는 다년간 미국 감리교회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하던 책인데 역자가 3년간 조선 신학생에게 교과서로 사용하여 본 결과 전도인에게 대하여 실로 필요한 책이라는 감념(感念)을 얻었나이다.

In this translation only a few sentences and paragraphs have been omitted. Most of these are references to the English language that would have no point in a translation. Perhaps the extensive use of Dr. Kern's book in America is due in part to the fact that it deals so largely with matters of more than local or temporary interest.

본 역문은 원문을 거의 전부 다  번역한 것이요 영어로 써야만 의미가 있는 그런 구절만 가각 빼었나니 본서가 미국에서 널리 쓰게 되는 이유 한 가지는 원저자가 한 지방이나 시대에만 관계되지 않고 도처에 항상 관계되는 사실로 강론의 재료를 삼은 가닭이라 하나이다.

The chief credit for any excellence this translation may possess should go to Mr. N.S. Paik, M. A. who made the original draft and who later went carefully over the final copy for the press. Many others have contributed to the result. Special thanks are due to Hon. T. H. Yun, LL. D. for reading parts of the manuscript and suggesting improvements, and to my secretary, Mr. Y. B. Im, who with great good nature and patience and ability has worked with me on this task since its beginning three years ago.

본 역문의 우미점(優美點/장점)은 문학사 백남석(白南奭)씨의 공이니 첫 원고와 인쇄전 마지막 준(準)을 담임하였고 여러 명사의 공헌도 불소하며(작지 않으며) 특히 법학박사 윤치호(尹致昊)씨는 원고의 얼마를 교열하셧고 개량할 것을 교시하셨으며 임영빈(任英彬)씨는 그 관후한(아량넓은) 천품과 인내와 재능으로 역자를 보좌하여 과거 3년간 그 노력이 다대한 것을 감사하나이다.

Seoul, February, 1926.

 

 A.W.WASSON.

京城 監理敎會協成神學校에서

 

 王 永 德  識

그러나 원번역자 <왕영덕>(王永德/미국명 <알프레드 왓손>(Alfred W. Wasson)은 초벌 번역자가 <백남석>(白南奭)이요, <윤치호>(尹致昊) 장로가 교정에 참여한 진실과 임영빈(任英彬)이 자신을 보좌하였음을 적고 있다. 임영빈은 그후 <대한성서공회 총무/1949-1966>로서 한글성경 보급에 매진하였다. 참고로 <임영빈>은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목사의 장모의 오빠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이 책은 한국 주재 미국 남감리회의 작품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백남석>의 부친이 바로 판수(장님 점쟁이)였다가 크리스투인으로 거듭나서 많은 화제(이적)을 일으켰던 <백사겸>(白士兼/1860-1940) 전도사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점쟁이의 아들이 <윤치호> 장로의 후원으로 미국 에모리대학(남감리회 본산신학대학)으로 유학하였고, 귀국해서는 연희전문학교 영문학 교수까지 된 데에는 예호바의 크신 섭리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필자처럼 소년시절 많이 불렀던 현제명 선생이 작곡한 동요 <가을>의 작사자가 바로 <백남석>이라는 점이다!! 본래 이 곡은 1936년에 간행된 어린이 찬송가집 속에 수록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 찬송가곡을 개사해서 동요로 불려지게 한 것이니, 이 얼마나 애호바께서 기뻐이 받으셨겠는가??

◆[BGM/가을/백남석 작사/현제명 작곡/찬립훈 오케스트라 연주] (음원/뮤즈님제공)
[가사] <1>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누나 ㅡ <2>가을이라 가을바람 다시 불어오니/밭에 익은 곡식들은 금빛같구나/추운 겨울 지낼 적에 우리 먹이려고/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선생님, 학생, 교과서', 국립민속박물관, 2000. p.115> ㅡ 1950년대 필자의 국민학교 떄의 음악시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때에는 음악전공 선생님이 적은 지라, 음악시간이 되면, 벗들과 함께 풍금을 교실로 옮겨 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남학생과 여학생은 이처럼 교복을 착용하였다. 이 사진은 어느 음악경연대회(??)에 나가려고 연습중인 모습인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저런 풍금소리는 얼마든지 재생시킬 수 있을 터인 즉 그 당시 음악교과서에 실린 동요들만이라도 연주해서 복구해야 함은...정부가 세대간의 <불통>을 억제시키는 좋은 비방일 것인데...고작해야 <박물관/기념관> 속에다 처박혀 있으면, 아무런 쓸모없는 잡티에 불과할테니 말이다. 불과 수 십년전의 실생활 모습이 언제부터인가...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시작하였다. 이는 <친일파 잔당>의 소행으로서...<대한민족의 정기>가 이래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온통 귀한 에너지를 소비해가면서...하는 짓거리가 프리메이슨의 심볼로 이루어진 필드 곧 <야구중계> 뿐이다...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고교생들이 수몰되었는데도, 어떤 포털에서는 야구경기를 중계하고 자빠졌었다!! 국가가 패닉상태(소리없는 전쟁상태)로 빠져있는데도...이 포털은 연일 <야구경기>를 중계하고 자빠졌다. 이 어찌 매국행위가 아니런가?? 참으로 망국의 길은 이렇듯...앞당겨지고 있음이도다...머지 않아 이 배후세력 하수들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 것이다!!


<윤치호> 장로로 말하면, 1906년에 개성 소재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이룬 <한영서원>(韓英書院)을 세운 장본인이다. 이 학교가 오늘날 인천 소재 <송도고등학교>의 전신이다. 이 학교는 같은 남감리회 선교회가 세운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와 함께 개성에서 쌍벽을 이루게 된 학교이다. <황성옛터는 호수돈여학교에서 태동되다!!/자세히보기>.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왼쪽이미지] 1902년 원산지역 '덕원감리' 부임시 윤치호와 그의 가족이다. <옥성득, '한반도 대부흥:사진으로보는 한국교회, 1900-1910', 서울:홍성사, 2009, p.94-95>.  [오른쪽이미지] 이 사진은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요 송도고등보통학교(송도소학교) 1회 졸업생 <손금성>(孫金聲) 박사가 1988년일시 귀국해서, 당시 <송도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인 <진영수>(秦永壽/松中32회)에게 기념으로 준 사진으로 전해진다. 이 귀중한 사진은 1920년 2月에 ,송도소학교> 교정에서 찎은 교직원과 학생들 사진이다. 뒷줄 왼쪽부터 하영종(河榮鍾), 박홍근(朴弘根 ), 임영빈(任英彬/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손금성(孫金聲/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왕영덕(王永德/교장), 박승철(朴承哲), 강준원(姜俊遠), 이범탁(李範鐸), 미상, 최규남(崔奎南)/전 문교장관.


미국 감리회는 같은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전통, 같은 신앙과 교리와 신학을 지녔으면서도 두 갈래의 형태 즉 미감리회로 불리는 <북감리회>와 <남감리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두 교회 형태로 한국에 전래되었다. <남감리회>는 다른 선교구역에 비해서 적었으나, 선교활동 및 업적면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남감리회>가 한국에 발을 들여놓게 된 동기는 <에모리대학>을 졸업, 귀국한 <윤치호>의 적극적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은 주지된 역사적 진실이다.

<윤치호>는 학교육영사업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성경과 관련된 <그 복음>의 문서선교에도 매진하였으니, 본서 <敎衆에 대한 職務ㅡ講道學 講議> 같은 번역서를 발행해서 신학생들의 교재로 활용케 한 공로이다. 이 책은 남감리회 선교사 <왕영덕>(미국명=왓손>(Alfred W. Wasson)이 윤치호의 배려로 개성에 온 후로 신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설교학 교재로서, 영어 원본은 1897년에 미국 <남감리회> 본부가 발행한 <존 커언>(John A. Kern)의 저서 <THE MINISTRY TO CONGREGATION: LECTURES ON HOMILETIC>이다.

다만, 일제시대 그 암흑기인데도 <그 복음>의 일꾼들인 윤치호를 비롯해서 왕영덕(왓손), 백남석 그리고 임영빈 등 관계자들이 상고하고 연구검토하였을 것이요, 그 결과 <CONGREGATION>을 한글 <敎衆>(교중)으로 표현하는데 '최적용어'였음이 분명한 <역사적진실>이었기에...본 필자는  번역한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관심있고 이에 동참해오신 분은 함께 따라 주리라 믿는다!!

이미 한국에서는 헬라원어 <에클레시아>(εκκλησία)를 <교회>(예슈성교젼셔/로스역/1887) 혹은 <무리>(신역 신구약전서/게일역/1925) 혹은 <회중>(일본성경번역/1915) 등으로 번역해 있음에도 이러한 기존 번역 용어를 따르지 않았음은, 대단한 성경적 개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번역용어 <敎衆>(교중)은 상용화되었다는 증거를 아직은 찾아내지 못하였다. 단회적인 사용으로 끝났다 하면, 이는 언더우드의 <성서번역위원회>에 의해 밀려나고야 말았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보이지 않는 '영적 파워게임'(??)에서 밀려났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언더우드가 먼저 <존 로스> 선교사팀에 의해 번역 발행된 첫 한글성경 <예슈셩교젼셔>를 표준말로 보완 번역 증보하였더라면...얼마나 멋있는 (예호바가 보시기에) 한글성경이 나왔겠느냐 말이다. 무슨 고집으로 중국어성경 용어를 그대로 빌려다 놓아서 ...오늘날까지도 이리도 용어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는 <대과오>를 범하느냐 말이다!!

언젠가는 필자의 필적(筆跡)에 의해서 밝혀지겠지만, 언더우드의 '진짜' 정체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만 해도 일본에서 체류중이었는데...그 체류기간 동안의 행적이 아직은 상세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 번역 발행된 <일본어성경>을 참고하였더라면, 예를 들었지만, 헬라원어 <밥티스마>(βαπτισμα)를 <세례>라고 번역하는 과오는 범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자기의 <OOOO신학교>(차후에 상세히 밝힘) 모교 출신의 선배인 <베어벡> 선교사가 이미 1859년에 신학교를 졸업하자, 곧바로 아시아를 거쳐서 일본에 입국해서, '나가사키'에서 '암약'(??) 중이었고 둘은 같은 네델란드 출신인데다...베어벡의 모교에 부탁한 권유로 동양(동아시아)에 관심을 가졌다는데...일본까지 와서는 직계 선배 <베어벡>을 안 만났을리 만무하잖은가 말이다!! 그런데...아무리 찾아보아도...이 둘의 접촉 근거 내지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만약에 이 둘의 접촉 증거가 밝혀지는날에는 '한국교회사' 및 '한국기독교사'는 언젠가는 반드시 전체를 재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된 것이다.


[☞권면의 부탁말씀] [되풀이 되고 있는 이 강토의 대환란...이제는 마지막으로 깨달아야 하고...성경용어 번역 제대로 해서...제대로 전해야지...'색안경' 너머로 비방해 온 이러한 관행은...이제는 접어야 한다]

2014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의 서울 한 복판에서 국운의 종식을 예표하는 <황폐함의 가증함>이 한 종교집단의 <순교자 종교의식>을 빌미로 하여 벌어질 예정이다(마태오복음 24:15-16 의 성취중) ...한국개신교가 이를 막아내도록 일심(한마음)으로 예호바 앞에 기도드리지 않으면...국토 내면의 <강>을 파헤쳐 버리는 것 까지는 대자연(MOTHER NATURE)이 허용하였다고 하지만...국토를 보듬고 있는 외면의 <바다> 만은 대자연이 허용치 않을 예표인지도 모른다는 강한 공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소리ㅡ화음과 불협화음/자세히보기>.

[☞필자의 예견이 적중되다!!][교황 방한·시복식 1주년 기념 바닥돌 설치] 2015년 8월 23일(일요일/오후)에 2014년 8월 15일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밟고 미시를 드린 바로 <광화문 그 터> 위에 <황폐함의 가증함>(마태오복음 24:15-16)이 이렇게 실현되었도나!! <자세히보기> (2015.8.31)

 

 
<Created/20140505> <Updated/20140510><20140512><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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