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스 가정예배가이드 23]

'백령도'(白翎島)와 '연화리'(蓮花里) 전설 속에 묻혀버린 772함 용사들이여

글/ 정재선 목회자


4:6My people are destroyed for lack of knowledge: because thou hast rejected knowledge, I will also reject thee, that thou shalt be no priest to me: seeing thou hast forgotten the law of thy God, I will also forget thy children. (Hosea 4:6, KJV)

4:6나의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여 멸망하노라. 네가 지식을 거부해 왔음으로, 나도 너를 거부하겠으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될 수 없을지라. 네가 너의 하나님의 그 율법을 잊어 버렸으니, 나도 너의 자녀들을 잊어 버리겠노라. (호세아 4:6, KJV화중광야역)


옛날 그리고 먼 옛날 서해 바다에 두 외로운 섬이 마주보고 있었다. 한 섬에는 처녀가 살고 있었고, 다른 섬에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처녀와 총각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바다가 가로 놓여있어 서로 만날수가 없없다. 처녀는 죽어 갈매기가 되어 총각이 사는 섬을 찾아 날아갔다.

처녀가 죽어 갈매기로 변해 흰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간 섬이라 해서, 후세 사람들은 그 섬을 '흰백'(白)에다 '날개령'(翎)과 '섬도'(島) 자를 따서 '백령도'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것이 '백령도'(白翎島)라는 섬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심청전(沈淸傳)에 등장하는 '인당수'(印幢水)가 바로 백령도 근해이다. 백령도에는 '연화리'라는 마을이 있고, '연화봉'이라는 산이 있다.

'연화'(蓮花) 곧 '연꽃'을 말하며, 효녀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바다에 뛰어 들었다, 꽃같은 처녀가 바다에 몸을 던진 사연을 들은 용왕은 심청의 효심에 감복해 연꽃에 태워 다시 세상으로 돌려 보낸다.

심청이 탄 연꽃에 떠오른 바다가 바로 백령도 근해이고, 심청이 탄 연꽃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 백령도 어부였다. 심청이가 탄 연꽃을 제일 먼저 발견한 봉우리라 해서, 그 산을 '연화봉'(蓮花峰) 이라 부르고, 심청이 탄 연꽃을 건져 올린 마을이라 해서 '연화리'(蓮花里) 마을 이라고 부르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이었으나, 행정구역 변경으로 도시규모가 비대해지므로, 현재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으로 변경되었으므로, 북한과의 근접 지역이다. 북방 한계선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2010.4.7)


한반도의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 전래지'를 초토화시키는 사탄의 계략
에 '그 복음'으로 적극 대처할 때가 온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꼭두각시' 일제는 대륙 강점이라고 하는 야망에 불탄 나머지...역사적으로 은인의 나라인 조선을 강제로 병탄하려는 그 일환으로,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7월 29일 '태프트ㅡ가쓰라 밀약'(자세히보기)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았으며,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조약(英日同盟條約)을 통해 영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지도 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같은 해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러시아로부터도 마침내 한국에 대한 지도·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승인받았다. 열강들로부터 한국의 보호국화(保護國化)에 대한 승인을 얻어낸 일제는 이어서 한국에 보호조약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일제가 한국의 보호국화에 관한 기본방침을 확정한 것은 1904년 5월 31일의 내각회의에서였다. 내각회의에서 한국의 국방 및 재정의 실권장악, 그리고 외교의 감독과 조약 체결권의 제약 등을 통한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결정했다. 이른바 '을사늑약'(을사오적)이요, 1905년 11월 17일이었다. 그러나 1882년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가 최초로 한글성경을 발행하여 간도 지역 안에 뿌려졌던 '그 복음의 씨앗'은 발아되기 시작하였으며, 끝내는 함경도 강계를 중심으로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1907년 1월에 들어서자, 평양을 중심으로 '영적 대각성의 물결'이 고조되다가 폭발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한반도 전대미문의 '1907평양대각성운동'이었다. 이 운동으로 인하여 가장 겁을 먹은 것이 바로 일제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한 가지 사건을 조작한 것이니, 그것이 바로 '105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다른 말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이라고도 하는데, 이 각본에 따르면, 1910년 8월 이래 서울 '신민회'(新民會) 본부의 지휘하에 5차례에 걸쳐 '총독모살' 계획이 서북지방의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평양·선천·정주 등 9개 도시에서 이 일에 필요한 자금과 무기를 구입하는 등 준비작업을 수행했으며, 1910년 11월 27일부터 12월 2일 사이에 압록강 철교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의선 열차편으로 총독 데라우치가 서북지방에 오자, 그를 암살하려고 각기 준비한 단총(短銃)을 지참하고, 각 지방의 역으로 나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암살행위는 없었으나, 이 사건을 암살미수죄에 해당된다고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이에 따라 일제는 1911년 9월부터 총독암살미수사건으로 윤치호를 비롯하여 양기탁·임치정·이승훈·유동열·안태국 등 전국적으로 600여 명을 검거했다. 이 중 1심 공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자가 105명이었지만, 항소심에서는 주모자로 주목된 윤치호 외 5명을 제외한 99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일제는 이 사건을 통해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의 실체를 파악하고 해체시키는 등 비밀항일단체를 제거하게 되었지만, 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많은 운동가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되면서 이후 민족해방운동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영적 기반의 중심지가 바로 '평양'이었다. 이러한 평양이 오늘날에는 김일성 집단이 완전히 장악하여, '하나님의 그 말씀의 불모지'로 만들어 버렸다. 1953년 7월 27일 영구히 분단시켜 놓은 '휴전선'이었다. 이제는 또 하나의 '그 복음의 발상지'인 '백령도'와 '장산곶'이 있다. '현재 '장산곶'은 북한의 황해도에 있기 때문에 복음이 막혀있는 상태이다.

◆귀츨라프 선교사가 정박하였을 당시 장산곶(長山串)과 백령도(白翎島) <19세기 조선지도>(화중광야 소장)


그런데 여기서 불과 남서쪽으로 12킬로 지점에 위치해 있는 '백령도'(인천시 옹진군 소재)는 대조적이다. 백령도에는 조선 개항(1882년 조미수호조약) 훨씬 이전인 1832년에 영국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소속의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로는 처음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귀츨라프 선교사의 동아시아 3년(1881-1883) 항해기록 저서이다. ( Charles(Karl) Gutzlaff, Jounal Of Three Voyages: A Long Coast Of China, Corea, Siam in 1831, 1832, 1833, London: Frederick Westley & A. H. Davis, 1834, p.339). <화중광야 소장>.


    [다음은 위 본문을 이진호 장로님이 번역한 것이다]
    나는 받겠다는 사람에게는 전도문서를 곁들여 복음서를 주었는데, 그들(조선인들)은 관심을 가지고 보겠으며 잘 간수하겠다고 하였다. 나를 슬프게 한 것은 그 후 관리들이 책이나 그 외 무었이든지 안된다고 금지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이 내리기 전에 이미 많은 관리와 서기들이 생명을 말씀을 받아갔다. 성경을 줄 때에 역사와 지리책도 함께 나누어 줬다. 나는 이 금지령으로 책의 가치가 높아졌으며, 읽고자 하는 열성이 더 많아졌다고 확신한다. 이 모든 사건들을 내가 기도로서 간구한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한다. 조선에 파종된 하나님의 (그) 진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없어질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푸짐한 열매를 맺으시리라. 가장 낮은 서민들도 글을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알 때 아주 재미있었다. 그들은 다른 종교(그리스도교)가 들어오는 것을 질투하리 만치 편협한 것 같지 아니하였다. 고관들이 책을 받아가자, 사람들은 밀려와서 책을 받아갔다. 이 나라에는 종교가 거의 없는 것이 명백하여, 우리는 용기를 내어 (그) 복음을 전파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쇄국정책을 거두어 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이진호, '동양을 섬긴 귀츨라프: 한국에 최초로 온 개신교 선교사의 일대기', 서울: 도서출판 에이멘, 1989, p.64-65)

    ◆중국 푸젠(福建) 수부(水夫) 복장을 하고, 1881년 제1차 선교여행을 하는 우리에게 낯익은 귀츨라프 선교사. 우리가 즐겨먹고 있는 감자!! 귀츨라프 선교사가 보령 앞바다 '고대도'(古代島) 주민들에게 전수해 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지들.... 오른쪽 <요한복음> 성경은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중국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馬禮遜)이 1823년에 번역한 중국어역본 '新遺詔書'(신약)이다. 이 성경이 귀츨라프 선교사가 조선 땅(백령도/장산곶/고대도)에 뿌린 최초의 중국어 번역성경이다. 이 성경은 2000년 6월에 필자가 홍콩성경공회 이치공(李志剛) 총무님으로부터 헌증받은 성경이다.  <화중광야제공>.


귀츨라프 선교사는 조선 왕조의 그리스도교 선교 금지로 본토 입성이 어렵자, 황해도 '장산곶'(장산반도)에서 멀지 않은 '백령도'를 택한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주목을 받는 이곳은 주민의 90% 가량이 그리스도교 신자다
. 우리나라 그리스도교 인구가 대략 25%인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비율이다. 인구가 4900여명에 불과한 섬이지만, 교회는 무려 12개에 이른다. 이(里) 단위의 작은 마을에도 어김없이 교회는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최초의 교회도 이 섬에 있다. 이것이 우연의 일이겠는가!! 한반도에서의 그리스도교 말살을 획책하는 비밀조직의 소행이라고 판단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제곡 '새롭게 하소서!!' 작업중...>


◆우리는 왜 이처럼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희생자들 가족, 친지들은 이 모습을 보고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겠는가!! 오, 예호바 하나님, 사탄이 더 이상 우리 한반도를 장악치 못하도록 붕괴시켜 주소서!! 한민족의 근기(根器)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를 보내주소서!! 오 주님, '삼파람'으로 저들을 단숨에 날려보내소서!! 오, 주 하나님, 이 땅을 새롭게 하소서!!


대한 해군이여!! 772함 용사들이여!! 그대들은 조국의 바다에 잠들었도다
사랑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자식들, 사랑하는 아내도 모두 고향산천에 남겨두고
조국의 수호신이 되었도다!!

서해바다, 깊은 물길 굳건히 지키며, 오늘도 그대들은 부릅뜬 큰 눈으로
조국의 큰 바다를 지키고 있으려니, 그대들의 바다는 길이요, 생명이었노라!
772함, 돌아오지 못한 수병들이여!!
인당수 돌고 돌아 심청이 심봉사 찾아오듯
그대들도 돌아오라, 그대들 넋이라도 돌아오라!!

해군이여, 영원하라...대한민국 조국과 함께...


[부록] 또 하나의 심청 '원홍장'의 이야기

심청전은 우리나라 전래의 소설이다. 단지 심청이가 팔려간 곳이 중국이므로 중국 소설이라는 말이 나온것 같다. 심청전의 전래의 배경은 약130여종으로 내려온다는 설이다. 그러나 황해도 황주가 심청전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전라남도 곡성의 송정리라는 마을이라는 설이 있다.

효의 대명사 심청. 그런데 최근, 소설 속의 인물인줄만 알았던 심청이 실제로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심청전'하면 떠오르는 인당수, 용궁, 연꽃 등의 내용들로 인해 심청전은 바닷가 주변의 이야기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심청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곳은 전혀 의외의 장소인 전라남도 곡성이었다.

◆심청전이 전설이 아닌 실존인물이라는 설을 입증해주는 '관음사 사적기'(전남 곡성 소재) <KBS 역사스페셜 ㅡ '역사추적, 심청의 바닷길' 영상캡쳐>.


곡성군에 따르면 KBS <역사스페셜> '역사추적, 심청의 바닷길'을 통해서 소개된 바와 같이 1700년 전 곡성 땅은 철의 주산지로 무역선이 왕래했고, 장님 아버지를 둔 곡성 땅의 효녀가 절에 시주됐는데 마침내 섬진강 뱃길을 따라 중국 양자강 어귀의 보타섬으로 건너가 귀인이 되었고, 그 공덕으로 아버지가 눈을 떴다고 한다. <자세히보기>


1. 심청이의 마을


섬진강이 흐르는 강변에 자리잡은 전라남도 곡성의 작은 마을, 송정리. 마을 사람들은 심청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이 동네 한가운데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심청이가 마을 아낙네들에게 젖을 얻어 먹던 곳이라고 한다. 이 우물은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데, 마을 사람들은 심청의 효심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송정리 사람들은 심청이가 왜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을까?

2. 관음사 사적기

곡성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송광사에 송정리 사람들이 심청이 실존 인물이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면서 조심스럽게 내보이는 관음사 사적기였다. 관음사 사적기는 심청과 같은 한 효심 깊은 처녀와 맹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내용은 심청전과 거의 같았는데, 다만 주인공이 심청이 아닌 '원홍장'이라는 처녀였다.


3. 관음사의 홍장보살상

관음사는 원홍장이 보내온 불상을 모셔서 창건한 절이다. 중국으로 건너간 원홍장이 불상을 만들어서 고향으로 보낸 시기를 나타내는 기록을 보면, 서기 300년. 그러니까 원홍장은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의 인물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의 한적한 산자락에 위치한 관음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고 평범한 절이었다. 하지만 관음사는 17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4. 중국과 곡성을 잇는 뱃길

인당수에 빠지는 소설 속의 심청의 운명과는 달리 실존 인물 원홍장은 중국으로 무사히 건너갔다. 그리고 고향으로 불상을 보냈는데, 원홍장 처녀가 불상을 보낸 중국 절강성과 한반도 곡성은 엄청난 거리이다. 절강성 근해의 보타도 앞바다에는 신라초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다. 신라 상인들이 관음상을 싣고 가려다가 이 바위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처럼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했을 1700년 전에, 불상을 실은 배가 대양을 건너 곡성까지 올 수 있었을까.

5. 중국 상인들이 곡성에 들어온 이유

원홍장이 살았던 서기 300년경에는 중국과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시기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 상인들은 그 많은 지역 중에 왜 하필이면 내륙 깊숙한 곡성까지 들어와서 처녀를 데려갔을까. 원홍장의 빼어난 미모 때문이었을까. 심청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검붉은 담벼락이다. 비만 오면 녹물이 흘러내린다는 돌담, 돌담을 쌓은 돌들이 철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상인들이 내륙 깊숙한 곡성까지 온 이유도 이 철 때문이었다.

6. 인당수와 용궁

인당수는 과거 바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최대의 표현은 인신공희. 사람을 제물로 삼았던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중국으로 가는 길목인 위도와 죽망동 일대에서 인신공희의 흔적이 발견되었단다.



<Created/100407> <Updated/201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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