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글들'(THE HOLY SCRIPTURES)과 '성경기록'(SCRIPYURE)의 구분'(요안經 7:14-18) [13년 만에 최초공개] <관련자료 자세히보기>

7:14그 명절이 중간쯤 이르렀을 때, 예호슈아님이 그 성전 안으로 올라가셨고, 가르치셨다. 7:15그리하여 그 유태인들이 이상히 여겨, 말하기를, '그것들을 전혀 배운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글들을 아는가?' 하니, 7:16예호슈아님이 그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가르침은 나의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그분의 것이라. 7:17만일 누구든지 자기 뜻을 행하겠으면, 그는 그 가르침이 예호바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 전하는 것인지 알 것이라. 7:18자기 자신으로부터 전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하나, 자기를 보내신 그분을 구하는 바로 그는 참되고, 그의 속에는 불의도 없느니라. (요안經 7:14-18, 킹제임스 정재선역).

7:14Now about the midst of the feast Jesus went up into the temple, and taught. 7:15And the Jews marvelled, saying, How knoweth this man letters, having never learned? 7:16Jesus answered them, and said, My doctrine is not mine, but his that sent me. 7:17If any man will do his will, he shall know of the doctrine, whether it be of God, or whether I speak of myself. 7:18He that speaketh of himself seeketh his own glory: but he that seeketh his glory that sent him, the same is true, and no unrighteousness is in him. (JOHN 7:14-18, King James Version)

7:15και εθαυμαζον οι ιουδαιοι λεγοντεζ πωζ ουτοζ γραμματα οιδεν μη μεμαθηκωζ (ΚΑΤΑ ΙΩΑΝΝΗΝ 7:15, Textus Receptus 1550)


[요약] '카도쉬'(성도) 파울로의 영적 아들 티모티에게 '너는 어려서부터 거룩한 글들(the holy scriptures)을 알았다'(티모티後經 3:15) 고 말한다. 그 이유는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깨달음'(wise unto salvation)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과연 어떠한가?  이스라엘의 교육의 근간이 '가정'에서 비롯되며, 그 교육의 주제가 바로 '성경'(토라)이다.

그런데 과연 오늘의 우리의 가정은 어떠한가? 성경을 상고하는가? 필자는 왜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깨달음'을 제공하는지, <티모티後經 3:15-17>을 인용해서 그 해답을 제시한다:


3:15
And that from a child thou hast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thee wise unto salvation 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3:15그리고 너는 어린 아이 때부터 거룩한 글들을 알아왔나니, 그것들은 너로 예호슈아 메시야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깨달음을 줄 수 있느니라.

3:15kai oti apo brefouV ta iera grammata oidaV ta dunamena se sofisai eiV swthrian dia pistewV thV en cristw ihsou

3:16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3:16모든 성경기록은 엘로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요,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 잡아주고, 의 안에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3:16pasa grafh qeopneustoV kai wfelimoV proV didaskalian proV elegcon proV epanorqwsin proV paideian thn en dikaiosunh

3:17That the man of God may be perfect, throughly furnished unto all good works. (2TIMOTHY 3:15-17, King James Version)

3:17이는 알로하의 사람은 완전케 되어, 모든 선한 일들에 철저하게 구비되게 하려 함이다. (티모티後經 3:15-17, 킹제임스 정재선역)

3:17ina artioV h o tou qeou anqrwpoV proV pan ergon agaqon exhrtismenoV (PROS TIMOQEON B 3:15-17, Textus Receptus 1550)

우선 본문도 지금까지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구절이다. <15절>의 '거룩한 글들'(the holy scriptures)과 <16절>의 '성경기록'(scripture)이 별다른 차이가 없이 '성경'으로 번역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새로 개정 발행되었다는 <킹제임스성경>에는 양자를 '성경기록'으로 번역해 버렸다. '성경'보다는 발전된 번역같으나, 이것도 최선의 번역이 못된다. 그러면서 원어성경 <헬라원어역본>을 활용했다고 그럴싸한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 비뚤어진 양심을 가지고 어찌 설교아닌 설교를 하고 있는지...그런 삯꾼들이 속히 사라져야 제대로 번역된 성경이 발행될 것이다!!

이토록 성경에는 번역상의 문제의 심각성이 내재해 오고 있다. 그러나 <15절>의 '거룩한 글들'(the holy scriptures)과 <16절>의 '성경기록'(scripture) 양자는 상고하면 할수록 엄청난 구별과 차이가 존재함을 필자는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성경기록들의 파헤침'(Searching the Scriptures)의 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1997년 10월에 성경을 번역하는 도중에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상대에게 풀어주면서 조언해줘도 도무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존의 한글성경 번역에는 모두 '성경'으로 번역하였으며, 일부는 '거룩한 성경기록들'로, 그리고 최근에는 '성경기록'으로 번역함으로써 바르게 번역하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이 역시 <15절>과 <16절>을 구분을 하지 않았다. 이로써 지금까지 번역된 한글성경은 충분하고 바른 의미를 전하지 못하고 있어,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

우선, 본문 <티모티後經> <15절>을 보자:

3:15And that from a child thou hast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thee wise unto salvation 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2TIMOTHY 3:15, King James Version)

3:15그리고 너는 어린 아이 때부터 거룩한 글들을 알아왔나니, 그것들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깨달음을 줄 수 있느니라. (티모티後經 3:15, 킹제임스 정재선역)

3:15kai oti apo brefouV ta iera grammata oidaV ta dunamena se sofisai eiV swthrian dia pistewV thV en cristw ihsou (PROS TIMOQEON B 3:15, Textus Receptus 1550)

위 본문에서 '거룩한 글들'(the holy scriptures)은 헬라원어로 'ιερα γραμματα'(히에라 그람마타)인데, 특별히 관사(ο=τα)가 빠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영어에는 관사 'the'가 첨가되었지만, 원어상에는 생략되어 있다. '기록된 것'(what is written)을 의미한다:

    1. 문자, 알파벹의 기호: 글자, 율법조문
    2. 문서: 증서, 모세의 기록들, 서신들, 학문(배움), 글


이 용어풀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사야經 29:11-12>을 인용한다:

    29:11And the vision of all is become unto you as the words of a book that is sealed, which men deliver to one that is learned, saying, Read this, I pray thee: and he saith, I cannot; for it is sealed:

    29:11모든 환상은 너희에게는 마치 봉인된 한 책의 말들과 같으니, 사람들이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자에게 건네주면서,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 하나, 그가 말하기를, '그것이 봉인되어 읽을 수 없으니, 나는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

    29:12And the book is delivered to him that is not learned, saying, Read this, I pray thee: and he saith, I am not learned. (ISAIAH 29:11-12, King James Version)

    29:12그리고 그 책을 읽을 수 없는 자에게 건네주며,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 하나, 그가 말하기를, '나는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다.' (이사야經 29:11-12, 킹제임스 정재선역)

신언약의 헬라원어원문 역본인 '수용원문'(Textus Receptus/TR)은 구언약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에 위 본문 구언약을 헬라원어로 번역한 <칠십인역>(LXX=Septuagint)을 인용한다:

    29:11και εσονται υμιν παντα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ωζ οι λογοι του βιβλιου του εσφραγισμενου τουτου ο εαν δωσιν αυτο ανθρωπω επισταμενω γραμματα λεγοντεζ  αναγνωθι ταυτα και ερει ου δυναμαι αναγνωναι εσφραγισται γαρ

    29:12και δοθησεται το βιβλιον τουτο ειζ  χειραζ  ανθρωπου μη επισταμενου γραμματα και ερει αυτω αναγνωθι τουτο και ερει ουκ επισταμαι γραμματα

위 본문에서 επισταμενω γραμματα(에피스타메노 그람마타)'읽을줄 아는 법'(knowing how to read)을 강조한 것이지, '성경기록'을 말한 것이 아니다. '성경기록을 읽는 법을 아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으려면, 먼저 읽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 읽는 법을 알려면, 천자문(千字文)을 배워야 함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카도쉬'(성도) 파울로는 모든 유대인 아이들처럼 '티모티'(Timothy)도 가정에서 성경, 즉 구언약의 기록들을 배워 온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래서 티모티가 어린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성경을 배워오고 있음을(from a child thou hast known) 강조한 것이다. 티모티의 외조모 '로이스'(Lois)와 어머니 '유니케'(Eunice)의 가르침을 상기시킨 것이다. (티모티後經 1:5):

    1:5When I call to remembrance the unfeigned faith that is in thee, which dwelt first in thy grandmother Lois, and thy mother Eunice; and I am persuaded that in thee also. (2TIMOTHY 1:5, King James Version)

    1:5나는 네 안에 있는 그 가식없는 믿음을 생각하노니, 이는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케 안에 있었고, 네 안에 있음을 확신하노라. (티모티後經 1:5, 킹제임스 정재선역)

여기서 '카도쉬'(성도) 파울로는 'ιερα γραμματα'(히에라 그람마타)로서의 '책들'(books)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 위대한 랍비들(선생들)의 방법들, 곧 성경기록에서 습득하는 '그 학문'(그 배움)을 의미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언약을 통해서 각 단어 및 글자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들을 상고하면서, 특히 메시야에 대한 계시를 밝히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양육할 때, 어린 시절부터 선민사상(選民思想)을 넣어준다. 엘로힘이 성조(聖祖) 아브라함과 선택계약을 맺었으며,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땅 카나안을 주셨다는 사상이다. 엘로힘은 조상 아브라함의 그 알로하시요, 이삭의 그 알로하시요, 야콥의 그 알로하이시며, 오늘 이스라엘의 엘로힘이심을 현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통(家統)은 부계(父系)가 아니라 모계(母系)로 이어진다. 즉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닐 경우, 그 부모가 낳은 아이는 유대인이 아니다. 아버지가 유대인인데도, 그 아이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 어머니가 법적으로 동의하는 승낙서가 있어야 그 자녀가 유대인이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닐 경우, 거기서 낳은 아이는 유대인이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아이는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티모티'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지만(사도행실錄 16:1), 어머니가 유대인이다. 그래서 티모티는 유대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어려서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에 관하여 배워왔음을 '카도쉬'(성도) 파울로가 증언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 <15절>의  'ιερα γραμματα'(히에라 그람마타)로서 '거룩한 글들'(the holy scriptures)로서 '배움'인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 바로 성경기록에 관하여 깊이 연구하고 살피고 파헤쳐나가는 소위 '상고'(祥考)가 필수 선행조건임을 '카도쉬'(성도) 파울로는 선포한 것이다.

다음, 본문 <티모티後經> <16절>의 '성경기록'(scripture)은 헬라원어로 'γραφη'(그라페) 즉 '기록물'을 의미한다:

3:16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2THIMOTHY 3:16, King James Version)

3:16모든 성경기록은 엘로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요,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 잡아주고, 의 안에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티모티後經 3:16, 킹제임스 정재선역)

3:16pasa grafh qeopneustoV kai wfelimoV proV didaskalian proV elegcon proV epanorqwsin proV paideian thn en dikaiosunh (PROS TIMOQEON B 3:16, Textus Receptus 1550)

헬라원어 'γραφη'(그라페)는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1. 작은 책
    2. 성경: 성경구절, 성경전체(성경 부분을 모은 것, 선지자의 글, 성경전체)


따라서 헬라원어 'γραφη'(그라페)는 '기록된 모든 말씀'을 의미한다. 그리고, 'γραφη'에는 <15절>의 'ιερα γραμματα'(히에라 그람마타) 처럼 'ιερα' 즉 'holy'(거룩한)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티모티前經 5:18>이다:

    5:18For the scripture saith, Thou shalt not muzzle the ox that treadeth out the corn. And, The labourer is worthy of his reward. (1THIMOTHY 5:18, King James Version)

    5:18성경기록이 말씀하시길, '너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재갈을 물리지 말지라.' 하였고, '일꾼이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은 마땅함이라.' 하였느니라. (티모티前經 5:18, 킹제임스 정재선역)

    5:18legei gar h grafh boun alownta ou fimwseiV kai axioV o ergathV tou misqou autou (PROS TIMOQEON B 5:18, Textus Receptus 1550)

위에서 '성경기록'(the scripture)은 헬라원어로 'η γραφη'(헤그라페)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η γραφη'(헤그라페)는 구언약의 정경(正經)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본문 속에 인용된 특별성구를 지칭하였다(요안經 7:38,42. 사도행실錄 1:16; 8:32,35, 로마經 4;3;9:17;10:11, 갈라티아아經 3:8). 그리고 복수형 'γραφαι'(그라파이)로 사용될 경우에는 성경 전체를 의미하였다(마태오經 21:42. 루카經 24:32. 요안經 5:39. 로마經 15:4).

'카도쉬'(성도) 파울로 티모티가 어린 아이때부터 '거룩한 글들'(the holy scriptures)'을 배워온 궁극적인 목표 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밝혀준다. 바로 그것이 '성경기록'(scripture)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성경기록은 '엘로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요,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 잡아주고, 의 안에서 훈육하기에 유익하며,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갖추기 위함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킴이 성경기록의 목적이요, 결국은 완전한 엘로힘의 사람으로서 구비요건이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품 속으로부터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으라는 권면의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문제는 예호슈아님을 믿고 구원만 받으면, 만사형통인 것 처럼, '구원'을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소위 '복음주의적'이니, '독립적'이니 하는 무리들에게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복음주의적' '근본주의적' '독립적' 이런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도 일종의 '인학'(人學)에서 비롯된 자구책의 산물임을 말할 수 있겠다.

자, 어떠한가?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용어의 차이점을 깨달았는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기존의 한글성경을('한글개역'이든 다른 '한글킹제임스성경'이든) 위 본문과 비교해보시라. 엄청난 차이를 느낄 것이다.

어쨌든 한글성경은 아주 중요하고 기초적인 바탕을 이루어야 할 말씀 태반이 '오역 아니면, 변질된 번역'으로 지금껏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올바르게 가르쳐 주어도 오랜 교리, 교단전통, 종교의식에 찌든 한국 교인들의 눈과 귀는 언제 열릴런지? 가히 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올바른 말씀을 전하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Modified/20051203><20070901><20090125>


[에필로그] 자, 어떻셨나요?? 지금까지 알고 깨달아 온 '그 말씀'에 변화를 느끼셨나요?? 이 메시지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당신의 이웃에게 전해 주십시요!! 말씀이 올바르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잘못 번역된 그 여파가 오늘날 우리에게 엄청난 '곡해'를 남겨주었습니다. 이제는 제 자리로 돌아오십시요!! 성경기록은 '교리'와 '학문'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성경기록은 성경기록 속에서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이웃에게 부지런히 힘써 이 자료를 전하기를 부탁드리면서, 주 예호바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2016.2.27/깊은밤)

 
 

<Created/20030223> <Updated/20160227><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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