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선목회자의 킹제임스성경강해설교]

38년, 그 방황의 세월

[본문] 요한복음 5:1-16

본 자료는 필자가 1997년 5월 18일에 강해한 설교입니다. 본 설교테이프 원본이 망실이 된지라, 복사본 테이프 한 개를 간신히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테이프의 음질이 너무 안 좋아서 여러번 증폭을 시킨 후에 간신히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경우에는 전혀 분간이 안되는 부분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 강해설교를 필자가 아끼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록을 확인해보니, 필자가 <요한복음>을 번역한 날이 1997년 4월 28일이었습니다. <5장>을 설교한 날이 5월 18일 주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을 번역하는 중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성경번역 중에 '미결'로 남아있었던 구절들이 하나하나씩 풀려갈 때였습니다. 얼마나 날아갈 것 같았고...시원시원했던지요...벌써 14년전의 일입니다. 본문의 주제는 <'베데스다' 못에서 38년된 병자>를 예슈아(예수)님이 고쳐주시는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38년'에다 초점을 두고서 성경을 번역하던 중에...그 의미가 풀린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또 한 부분이 있습니다. <21:11>에 기록된 '153'이란 숫자입니다. 이미 필자가 <요한복음번역풀이>에다 밝힌 바 있습니다. 간혹 아람어역본을 보면, <큰 물고기>(Huge Fish)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성지순례가셨다가 갈릴리 바닷가에서 식사를 하신 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물고기>라는 것 말입니다. 우리네 '돔' 정도의 크기지요. 저 정도 크기의 물고기로 그물이 찢어질 정도라...?? 필자는 갸우뚱대면서...귀국해서는 혼자서 나중에 재래식 시장에 나가서 민물고기 파시는 한 아주머니에게 부탁드려 시험을 해보았는데...그다지 많은 양의 물고기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성경기록들 속에 언급된 숫자는 맹목적이 아니라 반드시 그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음을 잊지 마시고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 설교 본문 중에서 '예수'를 '예슈아'로 바꾸었는데, 이는 최근에 필자가 성경 어원적으로 바로잡아가고 있는 작업의 일환이오니 오해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어렵사리 본 설교를 워드해주신 안연숙 사역자님에게 심심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샬롬. (2011.5.9)

[미니설명] 본 설교문이 길기 때문에, 찬양곡을 들으시면서 읽으시라 올렸습니다. 본곡은 필자가 가장 애송하는 곡의 하나입니다. 호산나 인티그리트가 제작한 '돈 모엔' 음악사역자님의 실황 'GOD WITH US' 중에 삽입되어 있는 'All We Like Sheep'입니다. 동영상을 보니 이 곡은 'Congregation Of Music Ministries' 소속의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분 모두 셋이서 부르는데...그리도 화음이 필자의 마음을 녹인 곡이기도 합니다. 이 곡은 주찬양단에서 '우리 모두 양과 같이'로 번역해서 부른 곡이기도 합니다. 오랜 만에 다시 들어보니...필리핀 형제자매님들이 보고 싶군요...무척요...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별도 [찬송가산책]에서 상세하기 올릴 것입니다!!


5:1이 일 후에 유태인들의 한 명절이 있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니라. 5:2예루살렘의 양문 곁에는 히브리어로 베데스다(은혜의 집/House Of Grace)라는 한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3그것들 안에 큰 무리가 무기력한 사람들, 곧 눈멀고, 절뚝거리고,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서, 그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더라. 5:4이는 이따금 한 천사가 그 못으로 내려와, 그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 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간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게 됨이라. 5:5그런데 거기에 삼십 팔년 된 한 병약자가 있더라. 5:6예슈아(예수)님이 그 사람이 거기에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 그가 오랫 동안 병든 줄 아신지라,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하시니, 5:7그 무력한 자가 그분께 대답하기를, '주님, 이 물이 움직일 때, 나를 이 못에다 넣어줄 사람이 없나이다. 그래서 내가 들어가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내 앞서 내려가나이다.' 하니라. 5:8예슈아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네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5:9즉시 그 사람이 나은지라, 자기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니, 바로 그 날은 안식일이더라. 5:10그러므로 유태인들이 병고침을 받은 그에게 말하기를, '안식일인데, 네가 요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하니, 5:11그가 그들에게 대꾸하기를, "나를 낫게 해주신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 하더이다." 하더라. 5:12그러자 그들이 그에게 묻기를, "'네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네게 말한 그 사람이 누구냐?" 하되, 5:13병고침을 받은 그 사람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예슈아님이 한 무리가 그곳에 있으므로, 자리를 뜨셨음이라. 5:14그후에 예슈아님이 그 사람을 성전 안에서 만나,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네가 나았도다. 더 악한 일이 네게 일어나지 않도록,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 하시더라. 5:15그 사람이 떠나가서, 자기를 낫게 해주신 분이 예슈아님이셨음을 유태인들에게 전하더라. 5:16그러므로 유태인들이 예슈아님을 핍박하며, 죽이려고 하였으니, 이는 그분이 이 일들을 안식일에 행하셨기 때문이라.



[본문 강해설교 제목 ㅡ 38년, 그 방황의 세월]

네. 오늘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5:1-16>...너무나 많이 들어왔고, 읽었던 '38년된 병자' 사건입니다. 참, 이 주제를 놓고, 여러가지로, 과연 38년 그 긴 세월, 방황의 세월, 참 깁니다. 인생 70이면은, 반을 넘는 세월인데...지금 <요한복음 5:1-16>까지 함께 읽었습니다. 한번 물어볼께요.

그 38년된, <5절>에 병을 앓던 그 병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그 병자가 '베데스다' 못에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기다렸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면 '예슈아'(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보시고 '알았다. 내가 물이 움직일 때 너를 물 속에다가 넣어주마.' 그러한 귀절이 있어요?

방금 떠오른 메세지가 있어요. 여기서 엄청난 '밥티스마'((βαπτισμα/밥팀례='침례, 세례'로는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함)가 일어납니다. 기가막힌 사연이에요. 그러한 구절은 없죠? 그러면 무엇으로  낫느냐? 그 다음에 <14절> 성전에서 그 병자를 다시 만났을 때, '나았도다.' '완치'죠. 완치!! 완료형입니다. 그러나 예슈아님은 이러한 병자나 치유해주고, 기적을 베푸는 그러한 분이 아니에요. 그분의 이름 자체가 '구원자'에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병'이라고 하면 육신의 병으로만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죄'입니다!! 이 죄들을 씻음받는 것은, 예슈아님을 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가운데 문득 메세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38년 동안 얼마나 긴 세월에 많이 고통받고 연단받고, 방황하였는가? 그래서 <구언약/구약>에서 '광야 38년 사건'이 <신언약/신약>에 <요한복음> 38년된 병자 사건을 통해 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메세지는 '밥티스마'(밥팁례)로 전하라!! 기가 막힌 것입니다. 이 '밥티스마'라는 단어가 언젠가 확 열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38년'이라고하는 시간적인 개념을 놓고, 구언약의 사건들을 연결시켜서 풀어나가겠습니다. '밥티스마', 신언약에 와서도 예슈아님의 사역 가운데서도 '밥티스마'가 이루어지십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요한복음 4:1>을 보시면요, '그러므로 예슈아님께서 요한보다 더 많은 제자를 삼고 밥티스마(밥팁례)를 준다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것을 주께서 아시고...' <2절>에 '예슈아님께서 친히 밥티스마를 주신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것이라.'

그런데 보세요. <요한복음 3:26> 요한의 제자들이 정결, <23절>도. 다 밥티스마를 ...그런데 보세요. <요한복음 3:22>에, '이런 일들후에'...니코데모가 밤에 찾아왔을 때, 거듭남의 비밀을 몰랐었죠. 니코데모는 그 당시 이스라엘의 유명한 '랍비'였고, 율법주의자였고, 선생중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구원의 확신이 없고, 항상 떨떠름한 종교생활을 하다가 남몰래 밤에 예슈아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니코데모의 이름중 '데모'는 '민중'이라는 뜻이고, '니코'라고 하는 것은 '다스리다'.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율법의 선생중에 선생이죠.

그래서 거기 <요한복음 3:5>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물과 성령'을 분리해서 생각하다보면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물은 뭐 심판을 이야기하고, 성령은 은사고, 은혜고, 뭐 여러가지 설이 나오는데...제가 이번 번역가운데 깨달은 것이 있는데, '물과 성령'은 '히브리적'이라고 하는 하나의 특징입니다. 단어는 두 단어인데, 의미는 하나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는 '물'(Water)이고, 또 하나는 '성령'(Spirit)라는 말이죠. 그런데 항상 요 앞에 나오는 단어를 뒤에 나오는 단어가 '형용사' 역할을 해줍니다. 이게 '히브리사상'(히브라이즘)이에요. 그래서 앞의 단어를 뒷단어가 꾸며주니까, 다시 이야기하면 '영적인 물'(Spiritual Water)  아셨어요? '영적인 물'이죠.

그래서 이러한 '영적인 물'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은 하나님의 그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다가, '그러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옵니까?' 아주 유치하죠? 니코데모의 대답이...여기 <10절>을 보면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일도 모르느냐?' 그러면 뭐냐? '땅의 일들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 그래서 여기서 하늘의 일이라는 것은 항상 '영적인 일들'을 이야기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 'from above...위에서 내려오는 것', 즉 <창세기 1:1> '시작안에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니라.' 할 때, 위(하늘)와 아래(땅)를 구분시키셨습니다.

자 보십시요. <요한복음 3:21>에 '이런일들 후에 예슈아님과 제자들이 유대땅으로가서 주께서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밥티스마를 주시더라.' 이것이 굉장히 논란을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예슈아님도 실제로 밥티스트(밥팀레자) 요한이 베풀었던 요단강에서 베풀었던 의식을 행하지 않았겠느냐? 하고들 이야기하는데…그런데 사도 요한은 예슈아님이 안했다고 <요한복음 4:6>에서 못박고 있어요. 그런데 제자들은 왜 했느냐? 그때 제자들은 아직 유태교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셨어요? 12제자도 아직 전통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었어요. 이 열두제자들이 완전히 '예슈아님이 메시야'임을 깨달은 것은 부활 승천하심 후에, 그 다음에 예루살렘의 '마가다락방'에서 120명과 함께 오순절날 기도하는 가운데 입이 열리고 방언이 터지고, 16개국 각 나라 사람 말로 할 때, 그것을 본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 그날 3,000명이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5000명이 나왔어요. '레마 말씀'(살아 역사하시는 그 말씀)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레마'…

근데 오늘 본문에도...<요한복음 5:1-16>까지 보시면은, 38년 병자된 자가 '베데스다 못'에서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가야만이 나음을 얻는데, 이 불구자를 말이죠. 넣어줄 사람이 없다 말이죠. '38년된 병자'가 기다린거에요. 여기서는 '기다림'이에요. '38년'이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기다림'이 중요한 거에요. 기다림은 뭐냐? 곧 '순종'입니다.

이것이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느냐? 이 사건의 예표는 <구언약>(구언약)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신언약>(신언약)에서 이어지는 '모든 완성'(finish, complete, perfective), 완결성을 구언약에서 찾아야 합니다. 구언약에서 예표가 없는 신언약의 말씀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교 제목을 <38년, 그 방황의 세월>이라고 했지만은, 과연 이 38년이 뭐냐? 그래서 사도 요한께서 왜 병약자라고 하면서, 그 병자의 특징 '소경'이냐, '불구자'냐 '손마름병' 있는자냐...그런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그냥 병자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병'을 이야기 해요. 그래서 이런 병든 자들이 반드시 구원자이신 예슈아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슈아님을 만나는 그 자체가 '밥티스마'(밥팀례)입니다. 예슈아님이라고 하는 그 '치유자', 곧 성품들이 '예호바 샬롬, 예호바 이레, 예호바 닛시, 예호바 삼마, 예호바 라파,' 다 그 안에 포함되는 거에요.

'예호바' 자체가 어원적으로 풀어봐도, 예슈아, 예호슈아(여호수아) 일맥상통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이름만 들어도', '그 이름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이게 '밥티스마'예요.

[편집자] '예슈아'님이 곧 '예호바'이심을 성경적으로 풀을 것입니다. 과연 성경기록들 속에 언급되어진 '두 분 예호바'(The 2 YEHOVAHS)의 참의미를 풀어 볼 것입니다.


'38년된 병자'를 놓고 많이들 설교를 해오시는데, 중심내용은 그 38년이라는 숫자 개념이 중요한게 아니고, 그 기다림, 메시야는 반드시 오신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못 뵈도 반드시 예슈아님이 오실 때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 무덤안에 갇힌자도 일으키신다. 그 실례가 예슈아님께서 '그 나무'(십자가 용어는 비성경적임)에 달리셔서 숨을 거두셨을 때, 그 주변에 있는 무덤에서 죽은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육신은 흙입니다. 흙이 다시 육신의 옷을 입고 일어났다는게 아니고, 전부 영적인 이야기 입니다. 그 영적인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면은 초혼자(招魂者)가 되고, 영매자(靈媒者)가 되는 심각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그 38년된 병자가 누군가가 자기를 '베데스다' 못에다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넣어주기를 기다렸다는 애틋한 사연도 있지만은, <요한복음 5:7>에 애절 애절하게 간구하지 않습니까? '물이 움직일 때 나를 옮겨줄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부자유스럽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먼저 앞서가니,' <요한복음 5:8> 보세요. 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뚫고 내려왔던 그 침상과 여기에 나오는 '침상'은 달라요. 여기서는 '얇은 이불' 입니다. 무명천과 자투리 천으로 짜집기 한 누빈 이불입니다. 침상이 아니에요. 다 고쳐주세요. 영어로는 'bed'라고 되어 있지만은 원어상으로는 '요', '이불'입니다.

그 다음 <요한복음 5:9>에도, 그 사람이 즉시 나은지라. 항상 예슈아님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예슈아님과 대화만 하여도 예슈아님께 가서 기도응답만 받아도, 즉시, 즉각이지요. 자기 요를 들고 걸어가니 마침 '안식일'이었어요. 유태인들의 안식일날 행동반경은 1.5Km 범위 안 입니다. 618가지 율법 행동강령을 만들어놓고, 안식일날 행동반경 1.5km 밖에 못 걷는거에요. 이것을 아직도 실행하는 교단이 있어요.

즉시 즉시 낫고, 하필 그 날이 안식일날이야. 안식일날은 먹는 것도 양이 정해져 있지요. 그 이외는 못먹어요. 그러니까 예슈아님께서 너희들은 짐승도 물 안먹이느냐? 먹일려면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요(침상)를 들고 가라 하시고…그러니까 병 나아서 요를 들고 가는 사람에게 유태인들이 '너를 낫게하고 걸어가게 한 사람이 누구냐?' 했더니 병고침받은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했어요.

<요한복음 5:14>에 며칠 후 예슈아님이 성전에서 그를 만납니다. '네가 나았구나. ㅡ Behold, thou art made whole.' 여기서 'whole'은 전체의 온전한, 어느 한글판 킹제임스성경 번역본에서는 이 단어를 '온전한'으로만 번역했고, 'soul'을 또 '혼'으로만 번역해서 버려버렸어요. 'be made whole' 이게 숙어입니다. 히브리어의 관용어에요. '완전히 낫다'는 이야기에요. 또는 '완전히 구원받다'는 뜻이에요.

12년동안 '혈류병' 앓던 여자가 살짝 예슈아님의 옷자락을 잡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혈류가 그치더라. 그래서 '완전해지더라.' 이렇게 번역들하는데, '그 순간에 그 여자는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영어 표현으로는 'whole'입니다. 2가지 뜻이 있어요. 한가지는 '완전함, 완치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구원받는거에요. 어근이 17세기 영어에서 정확하게 파악되어야해요. 이 성경은 '나았더라'로 잘 되었어요. '온전해지더라'고 번역된 것은 좀 아니지요.

그 다음 절에 예슈아님이 '네게 더 이상 이런일이 일어나지 말도록 죄를 짓지 말라.' 여기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은 치유받은 자가 물어봤죠. '선생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러니 '예슈아다.' 하셨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때부터 병고침받은 자가 자기를 낫게하신 분이 '예슈아'라고 전했단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예슈아로 인해서 나음을 받았노라. 이 자체가 복음이에요. 그 다음에 유태인들이 또 '율법에 어긋난다.' 그래가지고 '안식일에 병고쳐주느냐?' 예슈아님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음모합니다. 숱하게 공격을 받아요.

자 다시 돌아갑니다. 러면은 예슈아님께서 그 병자를 그 못에 밀어넣은 사건이 있습니까? 없지요.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예슈아님은 가시적인 행위로서 고치시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았도다.' 이 자체 말씀이 '레마'입니다. 말씀으로 고쳐주신 거에요.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그래서 '낫기를 원하느냐?' 했더니 <6절> 도중에 다른 사람이 새치기 하니깐 못들어갑니다. 그러니까 <8절>에 예슈아님이 '네 요(침상)를 들고 가거라.' 육신의 병에서 영적인 병으로 옮겨지면서 다시 새출발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38>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천국, 하나님의 그 왕국에 들어가기 전에 겪어야 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거에요. 자 그 예표가 구언약(구약)에 <민수기 14:22>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 안에서 이적을 행하셨는데도, 또 10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은 <23절>에 결단코 '약속의 그 땅'에 못들어가죠?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것이 또 <요한복음 6장>에 오면은 그대로 또 일치가 되요. <6장>에 거기 보시면은 도저히 너희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는 구나. <요한복음 6:36> 보세요. <요한복음 6:35>에는 'I am the bread of life. 내가 생명의 그 빵이라.' <요한복음 4장>에서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자와 '생수' 그걸 언급하시고, 여기서는 유태인들하고 대화하시면서 '생명의 빵' 언급하시고, 그러면서 <요한복음 6:36>에서는 너희가 나를 보고서도 믿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희 조상들에게 그 많은 기적과 이적들을 구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는데,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무슨 기적과 이적을 베풀었는데도 믿지 않았다. 다른 믿지 않는 자는 약속의 그 땅, 카나안 땅으로 가지 못했고, 예호바의 그 약속을 굳게 믿었던 '칼렙(갈렙)'과 '예호슈아/여호수아' 만 살아서 약속의 그 땅으로 들어갔지요.

모두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루트>를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기존 출애굽루트와 진짜 출애굽루트가 확연하게 다름을 보여준다. 진자 시내산은 사우디아라비아 군사보호지역으로 묶여있어, 접근이 금지되어 있지만...때가 이르면, 사우디 아라비아 역시 분리될 것이고, 이 지역은 온 세계인들에게 공개될 것이라 확신한다.


야콥의 일행들이 애굽 땅에 팔려간 11번째 아들 요제프(요셉)이 애굽 땅안에서 총리가 되죠. 요제프(요셉)은 자기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굽으로 데려오죠. 고센땅에서 거주시키죠. 그때 내려간 식구가 '70명'이었습니다. '7'은 성경수론에서 '하나님의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내려간 거에요. 그래서 약 430년동안 애굽땅 안에서 약 200여만 명으로 증가되었습니다.

그들이 애굽땅에서 출애굽한 시기가 BC 1491년 아빕월 10일날이었습니다.
지도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모으게 해 가지고, 아빕월 14일날 <유월절 양>을 잡어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하고, 그 다음 오경시 밤이 되어서 출발하는 거죠.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파라오(바로)에게 '삼일 길'을 먼저 앞서간다 했어요. 파라오가 속았음을 나중에 깨닫고 추적을 해온거죠. 출발지점이 고센땅 '라암셋', 거기서 출발을 해가지고, <출애굽기 12:37>에 나오지요. 잘 기록해 두세요.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 밑에 '숙곳'에 왔다는 기록이 어디서 출발했냐면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나오지요? 출발지점이 '라암셋'이에요. <출애굽기 12:37-13:19>까지 '숙곳'에 이른 기록이 나오고, '숙곳'을 출발하여 '에담'에 이르고, <출애굽기 13:10-22> 그 다음에 '에담광야' 맞은편 '바알스본' 맞은편 '홍해' 건너편이 '바알스본'인데, '바알스본' 맞은편에 오고, 그 다음 홍해를 건너서 '에담광야'에 도착하죠. 그 다음에 <출애굽기 14:1-15> 보면은 유명한 쓴물사건을 단물로 만드신 '마라'. 그 다음 <출애굽기 15:27> '엘림'으로 오죠. 그 밑에 '신광야'로 내려옵니다. '신광야'로 내려와서 <출애굽기 16:1-36>까지죠. 그 다음 거기서 '리비딤'으로 출발하다가, 마침내 '시내산', 곧 '호렙산'에 '하나님 산'이라고 하죠. '호렙산'에 도착합니다. <출애굽기 17:1-40:33>까지 나와 있습니다. <테이프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설교 내용이 빠짐>.

◆'카데스 바네아' 유적지 현장에서 발굴된 오아시스 못이다. 출애굽중에, 목마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세가 예호바로부터 '그 반석'을 내리쳐서 물을 내게 해준 그 사건에서 물이 있었음을 입증해준다. [성경바로알기] 신비적연합1 ㅡ 만세반석1(Rock Of Age) (자세히보기). <Candem M. Cobern, Recent Explorations In The Holy Land And Kadesh-Barnea: The 'Lost Oasis' Of The Sinaitic Peninsula, Meadville: The Tribune Publishing Co., 1914, p.139>. (화중광야 소장).


기록상으로 보면, '카데스 바네아' 라고 하는 '파란광야'로 들어가는데, 이것이 지금 삼일 걸리느냐?

BC 1491년 1월 15일 '라암셋'에서 출발해가지고, BC 1451년 1월 15일 '모압평야'에 요단강 맞은편이죠. 참 기가막힌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모압평원의 '느보산'에서 숨을 거두죠. 정확하게 40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도표상으로 보면은 여정이 굉장히 길잖아요. '라암셋'에서 출발해가지고, '모압평원'까지 40년동안 장막을 친거에요.

'카데스 바네아'
는 뭐냐면은 이 '호루마', '라암셋'에서 이 지중해 연안을 따라서 '예리호'(여리고)까지 온거에요. 구언약에서 나오는 '예리호'는 신언약에 나오는 여리고하고 달라요. 이 '에리호' 지역밑에 '호루마'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여기로 들어가면 카나안땅입니다. '카데스 바네아'에 와가지고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각지파에서 착출해 내가지고, '호루마'로 가보라고 했더니, 거기에 바로 '네필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열명은 그쪽으로 들어가면은 도저히 안된다.'라고 말했고, 그때 칼렙(갈렙)과 여호수아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믿지 않은' 그 열명의 정탐꾼과 전쟁에 나가서 싸울수 있는 20대 이상은 카나인땅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BC 1490년 2월(시브월) 20일날 출발해서 모압평원에 1451년 1월(아빕월) 15일날 도착하니까 지정학적으로는 정확하게 38년 걸린 것입니다.
'방황의 시대'를 상징해주는 것입니다. 오는 도중 몇 년씩 걸린 것이 아니라, 카나인 땅 거의 다 와가지고 예호바께서 이렇게 방향을 돌려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무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의심이 많아 가지고 무려 하나님을 열번 시험을 하는 것이 <민수기 14:22>입니다. 보시죠. 2년전(1995년)에 제가 특강을 통해서 '시험과 유혹' 에 관해서 성경적 해석을 풀어드렸습니다. 이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목적이 있다. 선한목적이 있다. 선한 목적으로서의 시험이 있고, 악한 목적으로의 시험이 있다.

선한 목적으로서의 시험은 뭐냐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표로써 주시는 것이 선한목적입니다. <창세기 22:11>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으로 주시는 시험을 피해서는 안된다 이말이죠: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셨다. 그리고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였다. (창세기 22:11, 킹제임스성경 화중광야역)

이것은 뭐냐면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의 명에 따라 제물로 바치려 하였으나, 그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수풀에 걸려있는 예비해두신 숫양을 대신 바치게하신 사건입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그 중심을 보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러자 그 분이 말씀하시되, '네 손을 그 아이 위에 놓지 말고, 그를 향하여 아무 일도 행치 말라. 이는 네가 네 아들, 곧 네 독자라도 내게로부터 아끼지 아니하였은 즉, 내가 이제서야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알았음이다.' 하셨다. (창세기 22:12, 킹제임스성경 화중광야역)

    주 너의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를 인도하셨던 모든 길을 너는 기억하라. 이는 너를 겸손하게 하시고 시험하사 네가 주의 계명들을 지키는지 그렇지 않은지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2,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역)

이것이 신언약에 와서 '네 마음에 하나님 법을 두라.' 그러니까 율법시대에 있었던 그 그림자는 신언약에 와서 '마음 속에 인치심 곧 마음 속에 내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격렬해져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위반하고 내 음성에 경청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사기 2:20,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역)

여기에서도 선한 목적으로 사람을 시험하십니다.

두 번째, 악한 목적으로서 시험이 있어요. 이것은 거꾸로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에요.

    너희가 맛사에서 그분을 시험한 것같이,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신명기 6:16,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역)

명령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마음을 갖지 마세요. 그래서 이렇게 너희가 하나님을 40년동안 카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열번이나 시험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한 열가지를 소개합니다:

첫번째, 홍해입니다. <출애굽기 14:11>

두번째, 마라에서입니다. <출애굽기 15:23-24>

세번째, 신광야에서입니다. 시내산지역입니다. <출애굽기 16:2>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만나(이것이 무엇이뇨?>에 대해서 두번 시험했습니다. <출애굽기 16:20, 27>

여섯번째, 호렙산 위에 있는 르비딤 <출애굽기 17:1-3>

일곱번째, 시내산-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출애굽기 32장> 전체: 아론과 장로들과 함께 연합해서 호렙산 안에 모세가 응답받으러 간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여덟번째, 타베라 <민수기 11:1-5> 유명한 음식사건 나오죠.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타박합니다. 생선, 오이, 멜론, 부추, 양파, 마늘 애굽에서의 음식을 그리워합니다. 인간의 욕구, 식욕을 충족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찾는 것은 여기서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에요. 타베라에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무엇 때문에? 우상숭배인 식욕 때문에…다시 우상숭배하러 돌아가려는 거에요. 그런데 <7절> 보십시요. '만나'지요. 그런데 카나안 땅에 예비하신 음식은 무엇이죠? 밀, 보리, 호도, 감람류, 무화과, 석류, 꿀입니다.

아홉번째, 그 유명한 '메추라기'사건. <민수기 11:34>. '키브롯 핫다와' 곧 '탐욕의 무덤들'이란 제목으로 작년(1996년)에 설교를 했었죠:

    그곳의 이름을 키브롯 핫타아와라 불렀으니, 이는 욕심을 낸 백성들을 그곳에 장사하였음이더라. (민수기 11:34,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역)

120리길 되는 길에 메추라기를 주셨어요. 메추라기를 쏟아부어 주셨죠. 그걸 갖다가 막 먹다가 씹기도 전에 말입니다:

    그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빨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주의 진노가 그 백성에게 대하여 격발하였으니, 주께서 심히 큰 재앙으로 그 백성을 치셨더라. (민수기 11:33,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역)

즉각심판이에요. 그러니깐 탐욕과 불평, 불만 즉각적인 심판이에요. 씹기도 전에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싶어서 <32절>을 보면 잠도 안잤다 그래요. 밤새 종일, 그 메추라기를 긁어모으는...여기서 인간 세상의 추접한 물질, 욕망에 노예가 되어가지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지고서, 그 결과가 신랄하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요새 세상돌아가는 것 보면, 전부, 몇억, 몇천억하는 소리들입니다. 비리 저지른 사람들의 돈들 말입니다. 이제는 그런가보다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열번째, <민수기 14:22>의 하나님께 대한 열번째 시험이 '카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면은 이 열가지 시험이 신언약에서는 어떻게 언급이 되겠느냐? <고린도전서10:1-11>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 조상들이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통과하였으며,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모세에게 침례를 받았고, 또 모두 같은 영적 음식을 먹었으며, 모두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다는 것이라. 이는 그들이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음이요.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음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그리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죽어 넘어졌느니라. 이제 이런 일들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그들이 열망하였던 것 같이 우리도 악한 일들을 열망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처럼 우상숭배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와 같으니 곧 '그 백성이 앉아서는 먹고 마시며 또 일어서서는 뛰논다.' 한 것이라.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음행하지 말자. 그들은 그러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느니라.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시험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 그들은 그러다가 뱀들에게 물려 죽었느니라. 너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불평한 것처럼 불평하지 말라. 그들은 그러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당하였느니라. 이제 그들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본보기가 되고 또 세상의 끝날들을 당한 우리에게 권면으로 기록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0:1-11,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역)

<10:4>에 '모두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다는 것이라. 이는 그들이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음이요.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음이라.' 바로 '예슈아'님을 우리가 마신 거에요. 이게 '밥티스마'에요. 바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했던 열가지를 설명한거에요.

이제 오늘의 강해설교를 맺습니다. <요한복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38년된 병자의 베데스다 못에서 완전히 고침받음> 이 사건을 왜 사도 요한이 이것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깨우쳐주려고 하느냐? 그 해답이 구언약에서 출애굽사건에서 풀렸습니다. 38년이라!! 참으로 15일이면 도착하는 그 약속의 땅 카나안으로 가는 길이 무려 40년이나 걸렸습니다!! 3분의 2의 여정을 2년만에...마지막 3분의 1의 길을 38년 동안 방황과 고통을 받게 하신거에요.

    예수께서 지나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주의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가 죄를 지은 것이니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아니면 그의 부모니이까?' 라고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요, 오직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9:1-3,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이 38년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이었습니다. 아셨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태어나면서 38년이 시작되는거에요. 우리가 가시적이고 육신적으로 보이는 시점이 되는 것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영적으로 방황이 시작되는 첫 시점은 무엇일까요?:

    예슈아(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를 향하여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에게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그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킹제임스 화중광야역)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니코데모 네가 '영적인 물'로 너의 육신을 죽이지 아니하면은...너의 전통을 벗어나지 아니하면은...바로 그게 영적인 방황이에요. 밥티스마를 받지 못하면은, 죄사함을 못받으면은, 하나님의 그 말씀으로 구원받지 못하면은…그러나 물과 성령, 즉 '영적인 물'로 다시 태어나는 즉, 밥티스마되는 순간 영적인 방황이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슈아님 믿고서, 거듭나고 구원받고서, 환란이 왜 오니?, 고통이 왜 따르니?, 불평불만 해야되겠습니까?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예호슈아(여호수아)와 칼렙(갈렙) 같은 신앙인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세요. 그래서 그 많던 무리가운데 오직 예호슈아(여호수아)와 칼렙(갈렙)만이 요단강을 건너서 카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 아닙니까? <민수기 14:6> 보십시요:

    그 땅을 탐지한 자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 그들의 옷을 찢고 (민수기 14:6,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이 두 사람만이 불평이 하나도 없이 담대함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기 14:8>에서 뭐라고 합니까?

    만일 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가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다가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리니,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민수기 14:8,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그러니까 불평없이, 불만없이, 하나님의 그 명을 따라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칼렙(갈렙)과 여호수아 같은 사람. 그 사람 속에서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마태복음 3:16-17>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니, 보라, 하늘들이 그에게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의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라. 보라, 하늘에서 한 음성이 있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라.'고 하시니라. (마태복음 3:16-17,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주께서는 오직 네 조상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어 그들의 씨인 너희를 모든 백성 가운데서 택하신 것이 오늘과 같으니라. (신명기 10:15,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주님이 어떤 쪽으로 가야 기뻐하시는 지 알아 그 쪽으로 가야죠.

    그가 주께서 자기를 구하실 줄 신뢰하였도다. 주께서 그를 기뻐하시니 그를 구하시게 하라. (시편 22:8,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크리스투(그리스도) 곧 메시야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이 기쁨을 받으십니다. 벌써 이렇게 두 사람 '칼렙(갈렙)과 예호슈아(여호수아)'를 택해서 말입니다. 벌써 '예호슈아'는 예슈아(예수)를 예표하지 않습니까? 그 안에 벌써 '예슈아'님을 들어서 하나님 께서 요단강을 건너서 젖과 꿀이 흐르는 카나안 땅으로 입성시키는 거에요. 그 안에서 기뻐하신 주님, 하나님은 예슈아 안에서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의 비밀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아야 할 모든 복의 비밀, 신비가 뭐냐? '예슈아'를 통해서 기뻐하시는 그 사랑을...그 사건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 이외는 복의 비밀이 없습니다. 이생에서의 물질 탐욕, 이것은 복이 아닙니다. 세상의 복은 한계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복에 너무 취해 있어요.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받음'(blessing).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예슈아님께서 받으셔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blessed' 하나님께 감사기도 하셨습니다. 빵이 뭡니까? 예슈아님 자신의 살이요, 부스러기가 뭡니까? 자기의 몸에서 나온 말씀이지요.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예표가 나옵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을 봅니다. 무리들이 쭉 따라오니까 예슈아님께서:

    그들이 바다 건너편에서 주를 만나 말씀드리기를 '랍비여, 언제 여기에 오셨나이까?' 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6:26,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육신의 빵이에요. 그렇게 쭉 말씀하시다가 '나는 그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받는 여러분들,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러자 그들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이 빵을 우리에게 항상 주소서.' 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6:34-35,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역)

예슈아 크리스투(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족하십시요. 사람이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지마시고…수가성 우물가 여인처럼, '와 보시요!'

성경에서 말하는 중심내용은 무엇이냐? '너 한 생명이 귀하다.' 라는 말씀이에요. 더 순종하고…'예수 천국 불신 지옥'. 이렇게 '딴따라'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구요. 문제는 그렇게 극성맞게 해서 부흥회니 뭐 심령부흥회니 운동장에서 해도 안됩니다. 물질의 팽배와 문명의 이기가 극도록 악화되고 현란하기 때문에 <아모스 8:11> 말씀 그대로 되는 거에요. 저희가 말씀을 먹어도 귀가 먹을 것이요(이사야 6:9), 한편에서는 계속 복음이 들어가면 막히게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육신의 방황이 시작되었나이다. 우리의 영적인 방황의 그 끝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 다른 믿음이 우리 안에 넘나보지 못하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이 믿음대로 열심히 그예슈아님의 그 복음을 전도하고, 예슈아님만 증언하다가 부름을 받을 때에, 아버지 곁으로 가기를 원하오며, 우리 주 예슈아님의 그 거룩하신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997.5.18/주일)

 
<Created/20110508> <Updated/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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