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장 번역, 정리중에 깨달은 그 말씀의 비밀 - 네필림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다]

다시 믿음을 돌아보길...박준형 전도사님에게 띄우는 글

그 동안 무척 피곤했었나 봅니다. 숙면을 하고서 지금 일어나니 새벽 4시 좀 넘었군요. 잠이 보약인 것 같습니다. 전도사님의 멜을 받아보니 활력이 넘치는군요. 전자카드가 안 보여서 아쉽긴 하지만요.

글쎄 자기 몸 조금만 아파봐요. 저렇게 야단 법석이거든요. 그렇게 호들갑 떨다가 죽으면 끝입니다. 물론 육체의 가시야 아프지요. 그 아픔을 참아가면서 골고다의 그 길을 자기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며 참다운 그 말씀 안에서 묵상과 간구로 주님께 의지하면 왜 주님이 방관하시나요?

아무튼 한국 교회의 기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무속의 샤마니즘과 혼합되어 기복적으로 흘러오고 있기 때문에, 기도 중에도 의심케 하고, 동역을 한다고 하면서도 상대방을 비방하게 만들고, 아낀다고 하면서도 한쪽으론 회의를 느끼게 하잖아요? 의심케 하잖아요? 이게 어디 주님으로 부터 '다시 태어난 자녀'입니까? '네필림'(NEPHILIM)이지요.

이 '네필림'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닙니다. 이 '네필림'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다시 태어남이 곧 '새창조'(고린도후서 5:17)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의 'charity'를 소유하게 된 자입니다. 'love'가 아녜요. 주님의 온전하신 희생을 보여줍니다. 'lovingkindness'입니다. 즉 'loving+kindness=?' 입니다. 이 '?'는 각자 자기에게 확신되기 때문에 이를 힘으로 해서 어떤 고난과 역경도 헤쳐나가는 겁니다.

물론 공감하는 동역자의 합력도 절대적이지요. 그러나 그 바탕은 이 'charity'입니다. 이 'charity'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이것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이 'charity'에는 '13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하바'(Ahavah)로서 구약 전체를 의미합니다. (별도주제어 풀이 참조). 주님의 사역을 하는 중에도 의심과 의혹 투성이로 여태까지 쌓아올린 선한 일을 일순간 무너뜨리고, 다시 괴로워하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방랑하는 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게 무슨 짓이냐 말입니다.

말로만 오직 한 길로 간다고 떠벌려 놓고 말입니다. 너무나 불결한 영적인 때가 묻어 있어서 좀처럼 그 맑았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여지질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평생 동역을 하다가도 '데마'처럼 '이기심과 미혹 투성이의 세상을 사랑하여' 그 복음의 길에서 떠나는 자가 있는 겁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악의 뿌리 속에 박혀 있습니까? 주님의 사역을 동역함에 있어서 세속적인 무당들이나 점쟁이들이 하는 말 듣고서...그런 말은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더군요...놀아나는 불쌍한 군상들이 과연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보세요. 온통 '돈돈돈...' 돈은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됩니다. 온통 부정, 비리, 뇌물 등등...이 사회에 이미 만연되어버렸고...성경은 이미 이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교제함에 있어서 돈은 하나의 지엽적인 수단은 될 수 있으나, 그 최후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과거의 믿음의 선배들은 돈 때문에 순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귀하고 귀한 '그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아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불변합니다. 역사는 이를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새벽에 지금 <창세기 7장>을 번역, 정리하는 도중에 '네필림'이 노아 홍수때 멸절되었다고 배웠는데, 아브람이 500년 후에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카나안으로 들어가려 하니까 이미 그 땅 안에 카나안인들인 네필림들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기겁을 한겁니다. 완전히 괴물입니다. 정상이 아니지요. <요나서>에 등장하는 그 괴물말입니다. 이것은 비유법으로 풀어지는 해석입니다. '물'과도 연관되구요. 그러니까 지금도 그 땅 안에는 온통 증오와 적대로 인하여 서로 죽이고 죽이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이스라엘 중심의 중동지역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분명하고 확실한 해답을 오늘 이 새벽에 찾은 겁니다. 하나님의 홍수 심판의 원인이 '아담 그 사람의 사악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어놓으셨던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멸절하신 겁니다. 노아의 방주 속에 선택받은 존재외에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찾았습니다. 바로 '네필림'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지어놓으신 것만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왜냐구요?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창세기 6:1-4> 입니다:

6:1그리고 아담 그 사람이 그 대지의 얼굴 위에 많아지고, 자기들을 위하여 딸들이 낳기 시작하게 되니,

6:2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 그 사람의 딸들, 곧 그들이 선함을 보고는, 그 아들들이 택한 모두를 자기들을 위하여 아내들로 취하였다.(진리와 종교의 혼합의 태동)

6:3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되, "내 영(그리도도의 영)이 영원을 향하여 아담 그 사람 안에 남아있지 않으리니, 이는 그도 역시 살임이라(flesh/자신의 욕망대로 행함/유다서16,19). 그러나 그의 날들은 일백이십 년이 될 것이다." 하셨다.

6:4노아의 그 날들에 그 땅 안에 네필림이 있었고. 그리고 그 날들 후로도,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 그 사람의 딸들을 향하여 들어갔고(창세기38:2), 자기들을 위하여 자식들을 낳았으니, 바로 그들의 자식들은 예전에 있었던 그 명인(名人)들인 용사들이 되었다. (창세기 6:1-4, KJV화중광야역)

분명 이 '네필림'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닙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낳은 산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기형'입니다. 인본주의의 기초입니다. 오늘의 '종교교회'의 목적이 되어버린 겁니다. <3절>의 '정도를 벗어난' 죄악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그 구속의 계획'(The Redemptive Plan)을 완성하시기 직전인 마지막 때에 심판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미완료된 <요한계시록>의 핵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홍수 심판에서는 제외되었던 겁니다. <창세기 7장>에서 그 해답을 찾은 겁니다. 할렐루야!! 한번 찾아보세요. 몇 절에 있나요? 힌트는 이미 앞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자세히보기/창세기 6장 번역>

결국은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슬프게 여기시어(후회라고 번역한 것은 말씀의 변질임), 홍수심판을 하신 후에는 '새창조'를 계획하십니다. 이 홍수심판을 바울은 '옛것은 다 지나갔고, 새 것이라'고 증언합니다(고린도후서 5:17). 바로 '새창조'는 '그 말씀에 의한 창조'를 의미하며, 이 '새창조'를 위해서 약속하신 언약의 징표가 바로  <창세기 9:13-17>의 '활'입니다. '무지개'가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서 접습니다. 차후에 계속되기를 빕니다. 샬롬.

<2002.3.21/새벽/목회자 정재선>

<Created/20020321> <Updated/200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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