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신년특집]

사람밖에 모르시는 예호바!!

글/ 안연숙

1999년 정재선 목회자님이 작사하시고, 제 피아노 스승이신 '다니엘 정' 선생님이 작곡하신 '화중광야'(花中廣野)라는 곡이 있습니다. <듣기>.

많이 힘들었던 어느 날, 저는 제 그랜드 피아노에서 이 곡을 연주하였는데, 한 장면이 제 머릿속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닷가에 백사장 같이 넓은 곳에서, 사람들이 그 백사장의 모래만큼이나 모여서 손을 들고, 전능자 예호바께 울부짖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그 선율과 화성진행에 따라  그 울음소리를 담아 '화중광야'를 연주하며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말 성경에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시샘할 정도로 '사람' 위주로 기록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모든 동물보다 모든 생명체보다 뛰어나게 월등한 것이 없지만, 최고로 여김받게 되는 것은 바로 '화중광야'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주 당신께 사랑받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주인공은 '예호슈아'님이신데, 그분은 오로지 사람에게만 집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비유로 말씀하신 곳이 많은데, 조심스럽지만 오늘 밤 그것을 가만히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예호슈아묵시록 21:1>을 보겠습니다:

    21:1AND I saw a new heaven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were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more sea. (REVELATION 21:1, King James Version)

    21:1그리고 ①내가 한 새 하늘과 한 새 땅을 보았는데,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②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않았다. (예호슈아묵시錄 21:1, 킹제임스 정재선역)

    [미니풀이]
    ①내가 한 새 하늘과 한 새 땅을 보았는데=본절은 <창세錄 9:11>에서 예호바가 '그 땅을 부패시킬'(to destroy the earth) 대홍수를 보내신 후에 나타난(드러난)  그 새 땅과 일치하는 것이다.
    ②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않았다=본절은 '비유법'으로 풀이해야 된다. '영존하는 왕국' 안에서 그 바다들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다음 구절들을 그 해답들이다: 1) 시편錄 72:7-9. 이사야經 5:30; 24:14-15; 60:5. 예레미야經 31:35-36. 에스켈經 26:5; 47:10,15. 하박국經 2:14. 스파냐經 2:6-7. 스카랴經 14:8. 2)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새 하늘들과 새 땅'이 1천년이 지나가기 까지는 이르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기회가 주어지면 별도주제에서 밝힐 것이다!!>

한 새 하늘과, 한 새 땅은 다시 허락하셨는데, 더 이상의 바다는 허락하시지 않으십니다. 바다를 싫어하시는가?? 바다에 사람이 많이 빠져 죽어서 심판하시는 것인가?? 별 별 생각을 다하다가, <창세錄 1:10>을 읽는 데, 그 물들로 '바다'를 이루게 하시고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1:10And Elohim called the dry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Elohim saw that it was good. (GENESIS 1:10, King James Version)

    1:10그리고 엘로힘이 그 마른 땅을 뭍이라 선포하셨고,그리고 그분이 그 물들이 함께 모인 곳을 바다들이라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엘로힘이 보셨다. (창세錄 1:10, 킹제임스성경 정재선역)

분명, 그 하늘과 그 땅 처럼 아름답게 보셨는데, 왜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실 그때에 바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being) 못하게 하셨을까요?? 저는 그 물음을 '그 물들'(waters)에서 풀어보려 했습니다.

'물'(water)은 그 자체가 셀 수 없는 많은 알갱이로 이루어진 '불가산 명사' 입니다. 그런데 왜 영어성경에서는 이 '물'(water)을 '물들'(waters)이라고 쓰고 있을까요?? 단순히 '물'만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물(water)을 세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다와 같이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입니다.> 물이 사람의 몸에 70%를 이루기 때문도 아니고, 다만 '사람들의 모임'도 그 바다와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시적인 '바다'와 '사람의 바다'와 동일선상에서 보는 것과 동시에 다른 측면에서 그것을 비유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서 함께 보고자 하는 성경 구절들에서는 사람들을 방패막이처럼 자신을 둘러싸게 만들어서 전능자 예호바의 눈으로 부터 '눈가림'하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옛뱀' 곧 '용'의 모습입니다. 나의 강은 내 자신의 것이라 하는 것은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큰 강과 같이 많다는 것이고, 전능자 예호바께서 아끼시는 사람들이니 자신을 벌하시려고 그 사람들을 헤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용' 곧 '사탄'의 계략입니다:

    29:3Speak, and say, Thussaith the Lord GOD ;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dragon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which hath said, My rivers is mine own, and I have made it for myself.

    29:3전하고 말하기를, 전능자 예호바가 이같이 말하노라.'보아라, 애굽의 왕 파라오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니, 너는 자기 강들 한 가운데에 누운 큰 용이라, 말해 오기를, 내 강은 내 자신의 것이라. 내가 그것을 나를 위하여 만들었도다.' 하는도다.

    [미니풀이]
    '전능자 예호바'(Adonai Yehovah). 본 직함은 에스켈 선지서의 예언의 특징어로서 214회 인용된다. 다른 선지서들 속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어이다. 이 당시 에스켈 선지자는 포로 상태였다. 이로써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암미'(Lo-Ammi = not My People) 상태였지만, 예호바가 여전히 통치자이심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29:4But I will put hooks inthy jaws, and I will cause the fisht of thy rivers to stick unto thy scales, and I will bring thee up out of the midst of thy rivers, and all the fish of thy rivers shall stick unto thy scales. (EZEKIEL 29:3-4, King James Version)

    29:4전하고 말하기를, 전능자 예호바가 이 같이말하노라. '보아라, 애굽의 왕 파라오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니, 너는 자기 강들 한 가운데에 누운 큰 용이라, 말해 오기를, 내 강은 내 자신의 것이라. 내가 그것을 나를 위하여 만들었도다.' 하는도다. (에스켈經 29:3-4, 킹제임스성경 정재선역)

그와 같이 사람들의 모임, 바다는 오염되었습니다. 처음에 보셨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공모하여 자신이 지키는 사탄과 우상과 같이 전능자 예호바와 동등하게 되려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7] 바벨의 참뜻[1] - 하나님이 왜 흩으셨나?? <자세히보기>.

    11:9Therefore is the nameof it called Babel; because the LORD did there confound the language of all the earth: and from thence did the LORD scatter them abroad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GENESIS 11:9, King James Version)

    11:9그러므로 그 도성의 이름이 바벨이라 불리웠으니,이는 주님이 거기서 그 온 땅의 거주자들의 입술을 혼란시키셨음이다. 그리하여 주님이 그들을 그 온 땅의 얼굴 위에 흩으셨다. (창세錄 11:9, 킹제임스성경 정재선역)

그 사람들의 모임, 그 바다를 흩으신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우상숭배라는 탐심에 빠지지 말라. 사기꾼에게 걸려 사기에 드는 것은 바로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함이라는 이치에 비춰서 볼 때, 우리가 악에 빠져드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 악한 일을 도모하기 쉬운 것이 군중심리이기 때문입니다.

물들을 셀 수 있는 복수명사를 쓰는 것은 함께 모여있지만 개개인(個個人)으로 모여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물의 분자이고, 그것이 사람 한 사람 한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있어 악한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모든 언어들과 민족들로 흩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악을 위해 연합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 연합이 바로 위에 언급된 <에스켈經 29:3-4>의 '용의 거처-은신처인 그 강'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마음을 품고 함께 선동된 무리를 뜻합니다. 그 악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쏟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관리하고 누리라고 주신 것인데, 세상의 모든 물질에 노예가 되는 것은 이 세상을 모두 다 우리 사람에게 주신 전능자 예호바의 뜻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예호바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신 분이 그분의 독자, 나사렛 사람 예호슈아이십니다:

    4:8Again, the devil taketh him up into an exceeding high mountain, and sheweth him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and the glory of them;

    4:8다시 그 마귀가 그분(예호슈아)을 가장 높은 산 속으로 데리고 올라갔고, 그분에게 그 세상의 모든 그 왕국들과, 그것들의 그 영광을 보여주었고,

    4:9And saith unto him, All these things will I give thee, if thou wilt fall down and worship me.

    4:8그러더니 그분을 향하여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엎드리겠고 나를 숭배하겠다면, 내가 모든 이것들을 당신에게 주겠다.' 하였다.

    4:10Then saith Yehoshua unto him, Get thee hence, Satan : for it is written, Thou shalt worship Yehovah thy Aloha, and him only shalt thou serve. (MATTHEW 4:8-10, King James Version)

    4:8이에 예호슈아님이 그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여기에서 물러가라. 이는 기록되었으되, '너는 너의 알로하 예호바를 예배할지요, 너는 그분만을 섬길지라.' 하였다." 하셨다. (마태오經 4:8-10, 킹제임스 정재선역)

오직 너의 창조자 엘로힘을 섬기라는 예호슈아님의 말씀이십니다!!

물질은 누리는 것이지 그것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은 손에 쥐면 쥘 수록 목마른 음료수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이지 그 물질을 섬기기위함이 아닙니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그만 먹을 줄 아는 데, 사람만이 '과식'을 한답니다. 그 자체가 물질을 쌓아두고 싶은 마음과 탐심이 아니겠습니까?? '자족'하는 마음과 모든 것을 허락하신 예호바를 믿고 열심히 사는 거 이외 더 물질에 집착하는 것은 탐심이요, 결국 그 세상 물질에 대한우상숭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엘로힘으로부터 돌릴 것이고, 물질이 전부이게 될 것이며, 결국 그 물질을 숭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 세상의 청지기 권리를 그 첫 사람, 아담이 사탄에게 속임 당하여 빼앗겼기 때문에, 단지 살아남기 위한 거 이상으로 많은 부(富)를 위한 욕심이 발동한다면, 그 세상의 부를 가로챈 사탄의 지배하에서 농락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라도 '엘로힘의 등불인 양심의 거울'에 비춰서 거슬린다면,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돈의 지배, 사탄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뇌물로 인하여 욕심이 생겨서 청렴함을 지키지 못하고,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엘로힘이 만드신 세상의 모든 만물들로 사탄 자신의 것인 양 속여, 사람들을 그들의 욕심에 끌리게 만들어 결국 자신의 은신처인 사람들의 모임, 강들'(rivers)을 만든 것입니다.

그 사탄을 예호슈아님 자신이 대신 하셔서, 사람들이 당하여야 할 그 첫 번째 죽음의 고통을 감당하셨으니, 그것은 사람이 죄의 삯은 죽음이라는 율법을 파기하심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죽음을 주셨던 엘로힘의 뜻을 완전히 이루기 위함이셨습니다. 그것은 죄를 가지고 영원히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죽음으로 죄의 삯을 치루고 나서 더 이상 죽음의 권세가 사람들과 엘로힘 사이를 갈라놓지 못하도록, 예호슈아 그분이 친히 그 갈라진 틈을 메우신 것입니다.

왜 그 말씀되신 그분이 천군(天軍)과 천신(天神)을 대동하여 그 일을 이루지 않으시고, 친히 사람들의 두려움을 느끼셨을까요?? 그리고 알마(처녀), 곧 미리암(Miriam, 마리아는 성경적이 아님)의 몸을 통하여 '참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사탄과 짝하여 살과 혼과 영이 네필림(엘로힘으로부터 '떨어져나간'(FALLRN/나팔=네필림)('타락한' 용어는 불충분함)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본 모습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닐까요?? 참인간의 모습에서 '떨어져나가버린' 우리 사람의 그 인성을 되찾게 하심이 아닐런지요!! 그것이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의 동학(東學)의 중심사상의 하나인 '인내천'(人內天)이 아니겠습니까?? <대한민족 토속종교(2)/자세히보기>.

무슨 병이든 뿌리가 있습니다. 그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그 병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수 없듯이, 그 사탄을 강들처럼 에워싸고, 지키고, 섬기고 있는 그 사람들의 무리를 흩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강들 한 가운데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용, 곧 사탄의 아가미를 꿰어, 들어올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을 사람들 가운데서 뿌리뽑기 위해 다시 오심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Which also said, Ye men of Galilee, why stand ye gazing up into heaven? this same Yehoshua, which is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shall so come in like manner as ye have seen him go into heaven. (ACTS 1:11, King James Version)

    1:11말하기를, '너희 갈랄라이 사람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하늘을 향하여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로부터 들려올려지신 바로 예호슈아님은 너희가 하늘 안으로 올라가심을 본 그 모습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였다. (사도행실錄 1:11, 킹제임스 정재선역)

이렇듯, 물들이 모인 그 바다의 의미를 단순히 '물'로만 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의 바다로 대입하여 풀어보았습니다. 그 물들과 마른 땅을 나누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마른 땅을 지남과 같이 생명-그 말씀이 임하는 곳을 뜻한다고 정재선 목회자님이 가르쳐 주셨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 더 이상 바다가 없다는 것은, 물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바벨에서와 같이 흩으셔서 더 이상, 물들의 모임, 바다가 없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것은 마른 땅과 물들의 결합을 의미함이니, 그 땅도 더이상 메마르지 않고, 그 물도 거할 곳을 찾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니 많은 열매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마른땅이 그 말씀이 임하는 곳이니, 물들이 그 말씀과 예호슈아님과 연합되니, 그것이 토기입니다. 질그릇같이 연약한 우리 사람이니, 참인간으로 빚으시기 위해 옹기장이이신 엘로힘께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물들이 마른 땅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사람이 창조주 엘로힘이 되려하지 않고, 그 바다에서, 그 모임에서 건짐받아(요한經 153종류의 물고기가 그물에 잡힘과 같이), 물이 수증기가 되어 비와 이슬로 땅에 맺히듯이 말입니다.

그 물들의 모임인 바다를 아름답게 보셨으나 그것이 그들만 모여있게 되면 쉽게 오염됨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언어와 나라로 흩으신 것입니다. 그 마른 땅(그 말씀-예호슈아)과 그 물들(사람)이 연합되어 참사람이 되도록 말입니다. 창세 이래로 그 바다에 빠져 죽은 많은 사람들은 그 바다의 무서움을 알 것입니다. 그 홍해 바다를 가르셔서 물들의 세력을제압하신 것처럼, 예호슈아님께서도 성난 군중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치셨습니다. 그 성난 군중들은 예호슈아님을 절벽 밑으로 밀어버리려 했는데 말입니다.그것이 하늘의 평화인 것입니다.

성난 물결이, 죽음의 바다가 에워싸도 그 죽음의 바다에 빠지지 않는 그 하늘의 평화말입니다. 물을 '물'이라 하지않고 '물들'(waters)라고 부르신 것처럼, 한 덩어리로 보지 않으시고 한 개인, 개인으로 따로 세시는 것이니, 우리의 구원도 그렇게 어떤 누구의 공로로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치열한 싸움인 것입니다. 그 죽음의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렇기 위해서는 그 마른 땅과, 그 말씀과 연합만이 살 길이라 생각 됩니다.

이상으로 부족하나마 저의 작은 궁금증을 풀어보았습니다. 글을 시작하자마자,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게 해주신 '카도쉬'(성숨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합니다. 샬롬!!

<2017.1.2/새벽>

 
 
 
<Created/20170102> <Updated/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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