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APOSTASY - 성경의 배도] 사도 바울은 순교 전에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을 기억했다!!


본 칼럼은 필자가 약 1년만에 집필한 것입니다.
성경은 깊이 파헤치고 들어가면 갈수록
 그 말씀의 광맥이 발견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더 망설이지 마시고 성경으로 돌아오십시요.
필자는 감히 이런 기쁨을 독자 제위께서
공감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샬롬!

글/ 정재선 목회자


<디모데후서 4장>은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죽음 곧 순교가 임박한 마지막 장면이다:

4:6 For I am now ready to be offered, and the time of my departure is at hand. (2Timothy 4:6 - KJV)

4:6 따라서 나는 이미 희생제물로 드려지기로 되어 있고, 나의 떠남의 그 때가 가까워졌노라. (디모데후서 4:6 - KJV화중광야역)

위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본다:

4:6 For I am already about to be sacrificed[my life is to be poured out as a drink offering]: the time of my[spirit's] release[from the body] is at hand and I will soon go free. (2 Timothy 4:6 - Amplified Bible)

4:6 따라서 나는 이미 희생제물로 드려지기로 되어 있노라[나의 목숨은 하나의 전제(奠祭)로서 부어지도록 되어 있노라]. 나의(영의) 벗어남[몸으로부터]의 그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곧 자유로워 지겠노라. (디모데후서 4:6 - Amplified Bible)

위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순교를 암시하고 있다. 특히 '떠남'(departure)이란 '영이 몸으로부터 해방'(his spirit released from the body)을 의미하기에, 죽음의 본질을 보여주는 아주 귀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인가? 본문에서는 구약 <민수기 15:5; 28:7>에 언급되어 있는 희생제사 가운데 하나인 '전제'(奠祭/붓는 제사/drink offering)를 비유로 들고 있다.

15:5 And the fourth part of an hin of wine for a drink offering shalt thou prepare with the burnt offering or sacrifice, for one lamb. (Numbers 15:5 - KJV)

15:5 그리고 한 전제(奠祭)를 위해서 포도주 사분의 일의 힌을 너는 번제나 희생제에 양 한 마리에다 준비할지라. (민수기 15:5 - KJV 화중광야역)

무슨 '전제'인가? 한 마디로 포도즙인가 아니면 포도주인가?

구약성경에는 포도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8종의 용어가 있다:

1. '야인'(Yayin)  2. '티로쉬'(Tirosh)  3. '헤메르'(Chemer)  4. '셰카르'(Shekar)  5. '아씨스'(Asis)  6. '쏘베'(Sobe)  7. '밈싸크'(Mimsak)  8. '셰메르'(Shemer)

이 가운데서 본문은 1. '야인'(Yayin)이다. 이 용도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용어상 주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1. '야인'(Yayin=H3196)

어근 '야얀'(yayan) 즉 '거품이 일어나다'(ferment)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되어, 각종 포도주에 사용된다. 구약에 142회(『구약 성구사전』, 기독교문화협회, 1983. pp.671-672) 인용되며, 각종 발효된 포도주는 모두 포함된다.

1) 최초 인용=창세기 9:20,21

(1) 창세기 9:20,21
'그가(노아) 한 포도원을 심었다. 그리고 그가 그 포도주(야인)로부터 마셨고, 취하였다.'

(2) 창세기 14:18
'그리고 살렘의 왕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야인)를 가지고 나오셨다.'

(3) 사무엘상 25:36,37
'나발의 마음이 즐거웠으니, 이는 그가 심히 취하였음이었다(야인을 마심).'

(4) 이사야 28:1
'에프라임의 술 취한 자들이...포도주(야인)로 만취되었다.'

(5) 예레미야 23:9
'내가 한 술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야인)가 사로잡아 놓은 사람 같으며.'

2) 따라서 이상의 구절들을 살펴보면, '포도주'(야인)은 발효된 것이고, 취하게 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3) 포도주(야인)는 '신성한 목적들'과 '복을 주는'(blessing) 경우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1) 창세기 49:12
'그의 눈들은 포도주(야인)로 붉을 것이며, 그의 이들은 젖으로 희게 될 것이다.'

(2) 아모스 9: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힘을 다시 데려 오리니...그들이 포도원들을 심어, 그것의 포도주(야인)를 마시겠고...'

단, 아모스 9:13의 '달콤한 포도주=새 포도주'는 '아씨스'(H6071)에서 언급됨.

(3) 전도서 9:7
'한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야인)를 마시라. 이는 하나님이 이제부터 너의 일들을 받으심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특히 'bless or blessing'을 '축복'으로 표현함은 샤마니즘적인 조선시대 용어를 차용한 것이므로, 오늘에 와서는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21세기 첨단의 시대에 들어서는 즈음,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이 '축복'이란 용어는 과감하게 버리고, 능동적인 표현인 '복을 주다' 혹은 '복을 주는 것', '복을 줌'이란 용어로 바르게 잡아야 한다.
번역 용어 표현 하나가 잘못 기록, 반포됨으로 해서, 성경 속의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하심에서 벗어남은 물론, 특히 이런 기복적인 용어는 죽어라고 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종교적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위로는 설교를 책임진 선배 목회자들의 잘못 가르침이 제일이요, 아래로는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무언의 행동으로 따라가는 후배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4) 기타 용례

(1) 민수기 6:13-20=나실인이 하나님께 서원한 기간이 끝났을 때, 포도주를 마셨다.
'(20) 제사장은 주 앞에 요제로 그것들을 흔들어 드릴 것이며...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야인)를 마실 수 있다.'

(2) 신명기 14:24-26=예호바의 절기 때 사용되었다.
'(26) 소나 양이나 포도주(야인)나 독주 등 네 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구하라. 그리고 거기 주 네 하나님 앞에 너와 네 집이 함께 먹을 것이요, 너와 네 집이 즐거워할지라.'

(3) 출애굽기 29:40. 레위기 23:13. 민수기 15:5=예호바께 전제물로서 드려졌다.
'(민수기 15:5) 그리고 한 전제(奠祭)를 위해서 포도주 사분의 일의 힌을 너는 번제나 희생제에 양 한 마리에다 준비할지라.'

And the fourth part of an hin of wine for a drink offering shalt thou prepare with the burnt offering or sacrifice, for one lamb.

여기서 <민수기 15:5>의 전제는 히브리어 Nesek=the Drink Offering(전제)요, nasak (H5258)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시편 2:6>을 인용한다:

2:6 Yet have I set my king upon my holy hill of Zion.

2:6 그러나 내가 시온 나의 거룩한 산 위에 나의 왕을 세웠도다.

이 용어는 to pour out/왕에게 기름붓다/세우다 의미를 지닌다.

한편, 신약에서는 spendo (G4689) 용어로 대치된다.

2:17 Yea, and if I be offered upon the sacrifice and service of your faith, I joy, and rejoice with you all. (Philippians 2:17 - KJV)

2:17 그렇고, 만일 내가 너희 믿음의 그 희생제물과 섬김 위에 드려진다해도, 나는 즐겁고, 너희 모두와 함께 기뻐하노라. (빌립보서 2:17 - KJV화중광야역)

위 본문에서 'be offered' 헬라어 spendo (G4689)는 'to be ready to be offered'(드려지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  

4:6 For I am now ready to be offered, and the time of my departure is at hand.

4:6 따라서 나는 이미 희생제물로 드려지기로 되어 있고, 나의 떠남의 그 때가 가까워졌노라. (디모데후서 4:6 - KJV화중광야역)

그런데 위 본문에서 'ready to be offered' 헬라어 spendo (G4689)는 'to be poured out' 곧 '쏟아 부어지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울께서 '나의 목숨은 하나의 전제(奠祭)로서 부어지도록 되어 있노라'는 것을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메시지인 것이다. 이 전제는 포도주를 희생제물(동물) 바로 위에 혹은 하나님 앞에 쏟아 붓는 제사로서 <민수기 15:5; 28:7>의 성취이기도 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에 임박해서 예수님이 당부하신 '그 유월절 만찬을 기억하라'(한글개역에는 '기념하라'고 오역을 해놓았다) 고 당부하셨던 그 말씀이 떠올랐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1:23-25):

11:23  For I have received of the Lord that which also I delivered unto you, That the Lord Jesus the same night in which he was betrayed took bread: 

11:23 따라서 내가 주님에게서 받아들여 온 것을 또한 너희를 향하여 전하여 주었나니, 이는 주 예수님이 (배반당하사) 넘겨지시던 그 밤에 빵을 취하셨노라.

11:24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ake it, and said, Take, eat: this is my body, which is broken for you: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11:24 그리고 그 분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그 분이 그것(빵)을 떼었고, 말씀하시기를,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대신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라. 이것으로 나를 기억하라.

11:25 After the same manner also he took the cup, when he had supped, saying, This cup is the new testament in my blood: this do ye, as oft as ye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11:25 그분께서 식후에도 그분은 이와 같이 그 잔을 들어올리셨고, 말씀하시기를,'이 잔은 나의 피 속에 (담겨진=내가 피를 흘림으로써 입증된) 그 새로운 유언이니라.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이것으로 나를 기억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죄인 인간 사이에 맺으신 '언약'(Covenant) 그 어떤 언약도 피흘림이 없이는 세워지지 않았다(출애굽기 24:8; 히브리서 9:20). 따라서 어떤 피흘림이 없이는 불가능하였다(레위기 17:11). 인간이 '그 언약'을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은 '하나의 새로운 언약'(A New Covenant)을 약속하셨다(예레미야 31:31). 이것이 바로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이 손수 입증하시는 '그 새로운 유언(The New Testament)'인 것이다.

킹제임스성경(KJV)에서는 이 용어가 최초로 <마태복음 26:28>에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11:19>까지 총35회 인용된다. 헬라어 'diadake'인 이 용어는 '언약'(covenant)으로 21회, '유언'(testament)으로 14회 사용된다. 이 14회 인용 가운데서 '예수님의 만찬과 죽으심'과 관련해서 모두 7회 (마태복음 26:28; 마가복음 14:24; 누가복음 22:20; 고린도전서 11:25; 히브리서 9:16,17,20) 언급되어 있으며, 나머지 7회는 구약과 신약과 관련해서 언급되어 있다.

요컨대, '언약'(Covenant)은 쌍방에 의해서 확정되고, 맹세로서 확립되며, 쌍방이 지킬 때 그 효력이 발생된다. 만일 한쪽에서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유언'(Testament) 은 유언자의 일방적인 선언에 의해 확정되며, 유언자의 죽음으로써 성립되며, 지키는 행위와 무관하게 유언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그 효력이 발생하여 상속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Testament'가 구라틴어 역본의 'testamentum'에서 번역한 것이지만, 이방인의 첫 번째 모임인 '안티옥회중'이 헬라어 '디아데케'(διαθηκη)를 14회나 'testament'로 이해한 첫 번째 회중인 것이다.

이 때 안티옥회중에 이방인의 복음증언을 위하여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장본인이 바로 바울이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3:1-3):

13:1 Now there were in the church that was at Antioch certain prophets and teachers; as Barnabas, and Simeon that was called Niger, and Lucius of Cyrene, and Manaen, which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Acts 13:1 - KJV)

13:1 그때 안티옥에 있는 그 회중(교회 용어는 성경적이 아님/KJV가 잘못 선택한 용어임/Tyndale은 Congregation으로 번역/아래 구절 참조) 안에 몇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즉 바나바와, 니겔이라고 불리는 시므온과, 쿠레네인 루키우스와, 영주 헤롯과 함께 자란 마나엔과, 사울이라. (사도행전 13:1 - KJV 화중광야역)

13:1 There were at Antioche in the congregacion certayne Prophetes and teachers: as Barnabas and Simon called Niger and Lucius of Cerene and Manahen Herode the Tetrarkes norsfelowe and Saul. (Acts 13:1 - Tyndale New Testament 1526)

13:2 As they ministered to the Lord, and fasted, the Holy Ghost said, Separate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whereunto I have called them.

13:2  그들이 주님을 위하여 섬겼고, 단식하였을 때, 성령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러드린 것은 그 일 때문이니 바나바와 사울을 내게 따로 구별해 놓으라.' 하시니라.

13:3 And when they had fasted and prayed, and laid their hands on them, they sent them away.

13:3 그리하여 그들이 단식과 기도를 마친 후에, 그들(바나바와 사울)에게 그들의 손들을 얹었고, 그들이 그들(바나바와 사울)을 떠나 보내더라.


위 본문에서 '사울'은 '바울'을 지칭한다. 이 장면은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떠나는 '제1차 전도여행'의 시작이다.

바울께서는 이미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고, 3년간 아라비아 광야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였고, 이제는 죽기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한 첫발의 디딤이었다.

바울께서는 이렇게 시작된 자신의 전도사역을 '경주'(競走)에 비유하고 있다:

4:7 I have fought a good fight, I have finished my course, I have kept the faith:

4:7 내가 한 선한 싸움을 싸워왔고, 내가 내 달려갈 길을 마쳤으며, 내가 그 믿음을 지켜 왔노라.

이제 바울에게 남은 일은 무엇인가? 오로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을 전했으니, 조용히 순교의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바울은 예수님의 '그 유월절 만찬'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11:25 그분께서 식후에도 그분은 이와 같이 그 잔을 들어올리셨고, 말씀하시기를,'이 잔은 나의 피 속에 (담겨진=내가 피를 흘림으로써 입증된) 그 새로운 유언이니라.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이것으로 나를 기억하라.'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1:25)

이 잔은 '그 새로운 유언'의 성취였다. 예수님이 골고다 그 나무에서 그 피를 전부 쏟으심은 바로 구약의 율법 곧 예호바에게 드려지는 희생제사를 이루시기 위함이었다(마태복음 5:17). 바로 구약의 제사 가운데 하나인 '전제'(奠祭)를 이루신 것이다.

사도 바울께서는 이러한 구약의 율법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과 희생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자기가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저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을 증언함으로 인하여, 바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구원의 연장선에서, 자기 자신의 죽음을 이 '전제'(奠祭)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당부하신 '그 땅의 가장 먼 곳을 향하여 나에 관한 증인이 될 것이라는'(사도행전 1:8)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이신 '그 복음의 지휘봉'을 다음 승계자인 디모데에게 비유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4:6 For I am now ready to be offered, and the time of my departure is at hand. (2Timothy 4:6 - KJV)

4:6 따라서 나는 이미 희생제물로 드려지기로 되어 있고, 나의 떠남의 그 때가 가까워졌노라. (디모데후서 4:6 - KJV화중광야역)

위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본다:

4:6 For I am already about to be sacrificed[my life is to be poured out as a drink offering]: the time of my[spirit's] release[from the body] is at hand and I will soon go free. (2 Timothy 4:6 - Amplified Bible)

4:6 따라서 나는 이미 희생제물로 드려지기로 되어 있노라[나의 목숨은 하나의 전제(奠祭)로서 부어지도록 되어 있노라]. 나의(영의) 벗어남[몸으로부터]의 그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곧 자유로워 지겠노라. (디모데후서 4:6 - Amplified Bible)

따라서 필자는 신약성경을 상고하는 중에 사도 바울의 사역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을 완전히 끝마무리 해주는 '추수꾼' 같음을 성경 속에서 발견하고는 자주 깨닫게 되었다. 필자의 그러한  간증을 이렇게 필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기록을 파헤치라'(요한복음 5:39) 예수님의 분부는 뒷전에 몰아두고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에만 치중해오고 있는 것이 어쩌면 인위적인 기독교 역사의 중심을 이루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에 들어서는 예수님의 인성(人性)에 대한 공격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으며, 영화 '패션'이니 '다빈치코드'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미지를 완전히 저하시켜 놓았다. 이것이 오늘날 '영적인 로마인들'이 저지른 크나 큰 죄악이다. 그 죄악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엄청난 신성모독죄인 것을...그리고 그 로마인들의 주장대로, 만일 '그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그 피로 변화되었다면'(성체설/화체설), 그 잔도 변화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성배'(Holy Grail)라고 주장하는가?

그래서 그들은 그것도 모자라서 사도 바울의 무덤을 들고 나왔나? 아래 [부록]을 필독하길 바란다!! 성경 속에는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모호해질 수 있는 주제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사탄이 그것을 노리고서 성경을 혼돈시키거나 배도의 첩경을 걷게 만들고 있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음행이 아니고 무엇이겟는가!! 그러한 음행으로부터 속히 빠져 나오라고 성경은 지금도 경고하고 있다(요한계시록 18:4). 주님이 다시 오고 계심이라...샬롬!


[마치면서]

사도 바울께서도 예수님의 이 모습을 따라가리라 굳게 결심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전하는 순교의 자세이리니...

19:34 But one of the soldiers with a spear pierced his side, and forthwith came there out blood and water. 

19:34 그런데 한 창을 든 병사들 중 하나가 그분의 옆구리를 궤찔렀고,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나오더라= exerchomai(G1831)=요19:34/예수님의 피와 물이 나오더라=came out)

성경대로 믿고 준행하는 '성경신자들'은 어떻게 함이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교자가 될 수 있을까?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분별하라:

2:15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2Timothy 2:15 - KJV)

2:15  네가 진리의 그 말씀을 올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이 부끄럽지 않는 한 일꾼으로 하나님에게 인정받도록 부지런히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 - KJV 화중광야역)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일꾼(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일성수하고 교회(?) 열심히 나가면 자연히 해결될까? 아니다!! 성경을 깊이 파헤쳐야 한다. 그것이 성경신자의 의무이니까 말이다. (조지 화잇필드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 필독요망)

<야고보서>를 읽어야 한다. 시험과 유혹을 구분하여 이겨내려면...

<베드로전후서>를 읽어야 한다. 믿음의 척도인 인내의 본질을 깨달으려면...

<요한1,2,3서>를 읽어야 한다. 적그리스도를 대처하려면...

<유다서>를 읽어야 한다. 거짓 목사들(교사들/선지자들)을 경계하려면...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한다. 신자의 유리바다(본향)을 소망하려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을 드시던 그 날, 그 장소에는 없었다. '유월절'(Pasca)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6:17-19>에 나오는 유월절 용어들은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이것에 관한 풀이는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상세하게 풀기로 한다.
<Created/20070630>


[부록 - 성경의 배도현장] 교황 성도 바울의 묘지 개봉 허락하다 (Pope OKs opening of St. Paul's tomb)

사도이자 성도 바울의 유골이 내장된 것으로 믿어지는 정교한 석관(石棺)이 바티칸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긍정적으로 확인된 지 18개월만에,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이 고대 석관의 내부를 조사토록 하는 관련 조사관들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을 승인하였다고, 독일의 한 카톨릭신문이 전했다.

이 석관은 2002년과 2003년 발굴 기간중에 로마 남부에 자리한 성 바울의 성당(바실리카) 외벽들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이 묘지는 교황들과 황제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주후 79-395)가 보존해서 사도 바울의 묘로서 전 세계에다 바친 것입니다.' 라고 바티칸 박물관의 한 전문가인 지오르지오 필립피(Giorgio Filippi)가 말했다.

이 발굴은 성 바울의 성당 관리자 프란체스코 지오이아 대주교가 2000년도 희년(禧年) 기간 중에 수 천명의 순례자들로부터 사도 바울의 묘지의 위치에 관해 질문들을 받은 후에 시행되었다.

수 세기가 지나서야, 이 성당은 4세기 초에 묘지 자리에 세워진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이 묘지 자리의 신뢰성 내지 황제 데오도시우스의 행위들로 인정받아 오면서 증축을 계속해 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다가 1823년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하여 석관의 정확한 위치는 여러 해 동안 소실되었던 것이다.

'지난 2000년간 그 묘지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양하게 보였다가는 과거 얼마 동안은 보이지 않았다가 이제 다시 드러난 것입니다. 부분적으로나 볼 수 있도록 성단 안의 기층(floor)에다 한 개의 출구를 만들었습니다.' 라고 성단의 대사제인 추기경 안드레아 코르데로 란자 몬테체오로(Andrea Cordero Lanza di Montezemolo)가 작년에 로이터 통신에 알렸다.

이 성당의 초기 조사를 통해서 고고학자들은 4세기 당시의 원래 모형의 건물을 재건할 수 있었다.

바티칸 팀은 2차 발굴 중에 성당의 주 강단 아래에서 이 석관을 발견하였다.

그 제단 아래, 하나의 대리석 판이 보였으며, 4세기 일자와 함께 '순교자 사도 바울'(ostle Paul, martyr) 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티칸 팀이 발견한 '그 석판의 후면을 아무도 감히 볼 생각을 못했습니다.' 라고 필립비가 말했다.

'우리는 그 내부를 볼려고 엑스레이로 시도했습니다만, 그 돌이 너무 두꺼웠습니다.' 라고 몬테체오로 추기경이 말했다.

약 길이가 8피트(2.4미터), 너비가 4피트(1.2미터), 높이가 3피트(0.9미터)의 그 묘지의 재발견 이후로, 고고학자들은 묘지 주위에 수 세기 동안 있던 부스러기와 벽토를 말끔히 치웠다. Kath.net에 의하면, 한 내시경을 집어넣어서, 석관 속의 내용물들의 이미지들을 볼 수 있도록, 그 석관을 봉인한 한 마개를 떼내도록 하는 허락을 받았다고 전한다.

'사도 바울의 유골들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절대적인 증거일 것입니다.' 라고 발굴에 방문했던 우트레흐트대학교(University of Utrecht)의 한 고고학자인 레오나드 루트거스(Leonard Rutgers)가 지난 4월에 고고학 잡지에 말했다.

문서 증거에 의하면, 사도 바울의 유골은 주후 258년에 본래의 매장지에서 제거되어, 다른 로마 지역 안에 다시 매장하였다가, 4세기 후반에, 이 바울 성당이 본래의 교회 위에 세워졌을 때, 사도 바울의 유골이 되돌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유골들은 주변에도 많습니다. 만일 그 석관 속의 유골들이 사도 바울의 것인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것은 4세기 후기에 매장된 것으로서 가치는 있습니다.' 라고 루트거스는 말했다.

성경은 바울이 어떻게 죽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많은 학자들은 그분이 로마 황제 네로의 통치기간인 주후 64년경에 로마 안에서 참수형(목베임)을 당했을 것으로 믿는다. '이방인들의 사도'('The Apostle to the Gentiles) 라고 자칭한 그분은 모든 신약성경 기록자들 가운데서 가장 많이 기록한 분이었다.

11:13 For I speak to you Gentiles, inasmuch as I am the apostle of the Gentiles, I magnify mine office: (Romans 11:13 - KJV)
따라서 내가 너희 이방인들에게 전하노니, 내가 이방인들의 그 사도인 이상, 나는 나의 봉직(사역)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라.' (로마서 11:13 - KJV 화중광야역)

<자료/20070630/W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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