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 바울의 로마순교여행 1]

바울의 로마순교여행은 이 땅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방황의 끝이요
본향을 향해 반드시 유리바다를 건너야 하는 절대 믿음의 상징이다!!

글/ 정재선 목회자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은 물론이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풍랑(風浪)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요약해서 '인생풍랑'(人生風浪)이라 한다. 이 풍랑은 필자나 여러분이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그 뜻을 벗어나 잘못된 길을 가든지 상관없이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 생애에 닥쳐오는 시험과 시련의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께로 '되돌리기 위한'(to return) 그 분의 계획된 것임을 깨달을 때 그 은혜에 감사가 넘쳐흐른다! 5년전에 준비해 둔 본 칼럼을 이렇게 마지막 손질해서 올리게 된 것을 주님께 감사드린다. 본 자료는 총 3회에 걸쳐 업로드될 것이다! 샬롬. (2008.4.7)



그래서 성경에 보면, 자기 생애 속에 큰 풍랑을 만났던 두 전도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구약입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보냈기 때문에 큰 풍랑을 만났던 요나(Jonah)가 있습니다. 이 요나라고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의 힘으로 목숨을 구해 보고, 자기 뜻대로 살아볼려고 하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 했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선교자였습니다.

둘째, 신약입니다. 사도 바울(Apostle Paul)이란 분이 나옵니다. 이 분은 자기 목숨을 버릴 각오로, 성령님께 완전히 자기 자신을 맡긴 사역자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일기예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도 아주 발전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앞으로 예상되는 천재(天災) 혹은 인재(人災)에 따른 위기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된 옛날에는 일기예보라는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지금부터 필자는 사도 바울께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항해에서 어떻게 하였길래, 그 목숨을 잃을뻔 했던 위기에서 벗어나, 드디어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를 풀어나갈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소위 '바울의 로마여행'(Paul's Journey to Rome)이라 말합니다. '바울의 순교여행'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입니다. (동영상 /바울의 선교여행/BBC)

이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앞서서 먼저 여러분에게 필자가 1994년에 번역하였다가, 본 홈페이지 '복음문서 컬렉션'에 올린 '하나님의 그 뜻'을 정독하시길 강력하게 권합니다. 바울의 로마여행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몸(body), 혼(soul), 영(spirit)의 완전 구분없이는'하나님의 그 뜻'이 풀리질 않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영혼'이 절대 아닙니다. '영''혼'으로 나눠서 호칭해야 합니다. 툭하면 '영혼' '영혼' 하는데, 이것이 완전 구분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그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찬송가> 한 장을 예로 들어봅니다. <469장 1절> 가사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Far away in the depths of my spirit to night / Rolls a melodysweeter than psalm;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In celestial-like strains it unceasingly falls / O'er my soul like an infinite calm.

평화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Peace! peace! wonderful peace, / Coming down from the father above!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Sweep over my spirit forever, I pray, / In fathomless billows of love.

영어 가사가 원가사입니다. 원가사를 중심으로 번역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혼'(soul)'영'(spirit)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한글개역성경>이 그렇게 번역해 놓는 바람에, <킹제임스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측(예: 박만수 형제님/안티오크)이 그렇게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권면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오늘의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보통 영적인 혼돈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영어 원가사대로 부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된 걸로 부르면 문제가 많은 <찬송가>입니다. 위 <찬송가 469장 1절> 가사를 이렇게 바로 잡습니다:

 

내 영(나의 영)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Far away in the depths of my spirit to night / Rolls a melodysweeter than psalm;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혼(나의 혼)을 고이싸네
In celestial-like strains it unceasingly falls / O'er my soul like an infinite calm.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Peace! peace! wonderful peace, / Coming down from the father above!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나의 영)을 덮으소서
Sweep over my spirit forever, I pray, / In fathomless billows of love.

 
<찬송가 469장 '나의 영의 그윽히 깊은데서' 연주-다니엘정>

이제라도 바르게 고쳐서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 날 부끄럼없게 합시다(디모데후서 2:15):

15

네가 진리의 그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하나님을 향하여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열심을 다하라.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그래서 이 글을 읽기 전에 여러분에게 본 홈페이지 '복음문서 컬렉션'에 올린 '하나님의 그 뜻'을 정독하고 상고하길 강력하게 권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사도 바울과 함께 '로마여행'을 떠납니다. 사도 바울의 '로마여행'을 다루는 성경 본문은 <사도행전 27:1-28:31>로 두 장 속에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심적인 것은 '배'와 '바람'입니다. 이 두 요소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룹니다. 과연 바울이 도착지인 로마에까지 안전하게 도착하여 가이사(황제)에게 자신의 무죄를 변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하심은 무엇입니까? 그 당시 세계 통치의 중심지인 로마로 바울을 보내는 이유를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사람'(the man of God) 모세를 통하여 광야의 땅 안에서 40년간(정확한 의미로는 38년간) 호된 고난의 생활을 시킵니다. 결국은 홍해와 요단강 이라고 하는 두 큰 시험대를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카나안의 땅에 입성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즈음에서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후에(신약시대) '그 모임'(교회건물이 아닌 사도 바울이 세운 참십일조의 모임)를 향하여 전달되어지길 바랍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짧고 비통한 삶 속에서, 그들 자신이 자기들의 위로와 방향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90:1-17> 입니다. 이것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David Dickson, A Brief Explication of the Other Fifty Psalms, from Psalm 50 to Ps. 100, London, 1655):

첫째, 이 세상 안에서 '그 모임'이 겪게 되는 한시적인 고난들과 불행들을 물리칠 수 있는 네 가지 위로에 관한 기도입니다(1-4절):

   1) 세세토록 주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 분의 인자하심에서 나온 위로(1절)
   2) 그들이 선택받음을 선포함에서 나온 위로(2절)
   3) 그들이 부활함에서 나온 위로(3절)
   4) 그들의 삶의 기간이 짧음에서 나온 위로(4절)

둘째, 죄로 낳아진 삶의 짧음과 불행들이 긍휼로 가득하신 주님 앞에 놓여 있음에 관한 기도입니다(5-11절).

셋째, 여섯 가지 간구로서, 일부는 짧고 비통으로 찬 이 삶을 올바르게 사용하고자 함이요, 일부는 그러한 삶으로부터 주님의 은혜의 구원을 바라는 기도입니다(12-17절).

그러나 그렇게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숭배 금지 명령을 준행하지 못하고, 이방인들의 우상들과 혼합되어진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마지막 검을 사용하사(①1차 試劍=광야 안에서 사용하심/요한복음 6:49에서 직접 증거하심. ②2차 試劍=더 이상 아다마(흙)에 속하지 않은 '영적 완성자'를 위하여 사용하심/에스겔 23:8-17),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5개 지역으로 흩어버리셨고(열왕기하 17장/요한복음 4:18에서 예수님이 증거하심), 남유다는 후에 바빌론에로 70년간 '사로잡힘'(Captivity='포로'라는 용어는 적합치 않음)으로(열왕기하 24,25장) 시험을 하셨습니다. 반면에, 황폐함으로 되어 있는 예루살렘은 70년간 안식과 휴식의 기간 중에 있었으며(레위기 26:32-35 성취), 70년 후에 '사로잡힘'에서 돌아오게 되는 '회복된' 자들은 '영적 완성자'(에스겔 21:8-17)로서, '참십일조'만 돌아오기로 된 것입니다(에스겔 20:37,38). 이는 하나님이 예루살렘 안에 '그 거룩한 씨'(The Holy Seed/그리스도)를 보존하시기 위한 계획이심을 통감해야 합니다(에스라 9:2. 느헤미야 9:2).

그러나 구약은 끝내 이스라엘 민족의 배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의도하신 쌍방언약이 이루어지지 못하고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서 비롯된 일방언약인 '새 언약'(예레미야 31:31-33)이 선포되었으며, 결국은 '말라키'를 끝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초림)의 필연성을 예고하면서(말라키 4:2), 구약시대는 접게 됩니다.

그 후 430년간 말씀이 없는 시대가 지속되었고, 드디어 2000년전에 '그 거룩한 씨'(The Holy Seed)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33년간 공생애를 통하여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구약의 모든 기록된 성경기록들이 바로 자신을 증거함이요, '성경기록들을 파헤치라'(Search the scriptures/요한복음 5:39)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 아버지가 찾고자 하시는 '잃은 자' '참십일조'를 찾아서 그 아버지께 되돌려드린다고 하시면서(요한복음 16장을 정독바람), 온 인류의 죄값을 '그 나무'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다 이루어졌도다'(It is finished)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그대로(누가복음 24:49) 보혜사 성령님이 오순절날 임하신(사도행전 1:8; 2:4) 이후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만 하면'(사도행전 16:31) 구원을 받게 되는 복음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소위 사도들의 복음전도 시대요, 교회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못쓰게 만들거나 망가뜨린 것이 바로 우상숭배였으며, 이것을 필자는 감히 '네필림'(Nephillim/창세기 6:4)이라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우상숭배'로 변형되어 있다가, 신약에 들어 와서는 이른 바 '종교'의 형태로 변모하며, 지금까지 우리를 '참말씀'인 성경을 상고하고 깨닫는데 아주 주요한 장애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약시대처럼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고, 지금 시대에는 뒤로 숨어서 드러나지 아니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깨어서 분별하지 못하면, 곧장 미혹에 걸려 유혹에 빠져 버리니, 가히 '영적 위기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이미 2000년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언약'을 여신 하나님이, 앞으로 세계 중심이 될 '로마'에다 '그 복음의 씨'(The Seed of the Gospel)를 뿌려 놓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계획하심 따라서, 사도 바울을 '죄인의 명목'을 씌워서 지금 로마로 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계획을 미리 사전에 감지한 사탄이 그냥 있을리 만무합니다. 그 거대한 도시 로마에다 사탄은 미리 마술사 '시몬'을 보내어, 물질로서 종교를 만드는 최고의 위치에 앉게 만드니, 그것이 바로 교황의 시석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그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는 교두보를 로마에다 두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하는 사탄의 앞잡이에 의하여 시시비비 대적을 받게 됩니다.

실제 신대륙발견자 John Cabot/별칭/Giovanni(1450-1499)

이것이 초대교회시대 이후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오고 있는 역사의 중심부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 기록은 온통 거짓과 날조로 포장 되어 있음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한 예만 들겠습니다. 우리는'미국 신대륙을 누가 언제 발견하였다고 배웠습니까?''1492년 콜럼버스'라고 배웠습니다.'존 카봇'(John Cabot/별칭/Giovanni)이 1494년 6월 24일 아침 5시에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의 날조입니다. 이러한 실례가 수 없이 많습니다. 사탄의 계략과 날조에 의해서 우리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속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이러한 유혹과 거짓을 '이겨내도록' (overcoming) 강조하고 계십니다(요한계시록 2:7-3:22). 그냥 지나칠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이르러 사탄은 '네필림'의 본질인 '거인'(창세기 6장)을 내세워 모든 세계 질서를 '대형화'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모든 면에 이르기까지 '대형화' 아닌 것이 없습니다. '대형화'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술수(음모)를 쓰면서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칼'을 내세웠습니다.

지난 수 년간 우리 나라는 IMF라고 하는 이 '칼'에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한 가지 모르고 있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호되게 '칼'을 들이대도, 우리 속 안에 자리하고 계신 예수님만은 '구조조정' 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마지막 시대에 성경대로 따르며 순교하는 '성경신자들'(BIBLE BELIEVERS)이 겪고 있는 고난이며, 이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사탄의 술수에 넘어가서, 진리를 '배도'하게 되는, 엄청난 '영적 전쟁' 만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세계 전쟁은 '북핵문제 처리' 및 '이란'을 제거하려는 전쟁 외에는 그다지 커다란 전쟁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러한 외적 전쟁 보다는 '대형화'를 통한 보이지 않는'네필림'의 본격적인 등장이 더더욱 무섭습니다. 소위 중세 시대에 있었던 '종교재판'의 재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는 달리 물리적인 체형을 가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활동에 제약을 거는 것으로서,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바로 '신용불량자'의 방치 정책입니다. 이 나라 정치 지도자가 사탄의 술수에 넘어가 만들어 낸 역사의 준엄한 심판과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마귀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는 갈수록 복음의 길이 막히고 있으며, 조만간 이 강토가 시뻘건 전쟁의 회오리 속에 말려들어갈 것임은 자명한 미래적 실재인데, 오늘의 우리의 현실은 암담할 뿐입니다. 전혀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점점 어둠만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 없습니다. 각성하고 깨어서 경계해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이제부터 우리는 바울이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가는 여정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도 분명 '하나님의 그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언한 반면, 바울은 '작은 자'(a little one/이사야 60:22)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언하는 사도'(the Apostle to the Gentiles)였습니다(사도행전 9:15,16; 22:17-21; 28:28. 갈라디아서 2:7,8).  ('캐나다의 팀 콜린스 형제님의 조언에  감사를 전합니다.')

우선, 바울은 한 열렬한 유대교인이었으며, 후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주요 인물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오늘의 터키) 다소(Tarsus)에서(왼쪽 이미지)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에 예루살렘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중에,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납니다. 그 후로 그는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잠시 세계 복음전파의 주요 교회의 하나인 안티오크 안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 선교사로서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시작한 것은, 안티오크에 있는 회중의 지체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뽑아서 새 지역에로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한 때였습니다. 안티오크를 출발한 그들은 구브로(현재 키프러스)로 항해하였고(오른쪽 이미지), 오늘날 터키인 그 주변의 지역들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1차 전도여행입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서방 소아시아와 그리스 쪽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안티오크를 떠난 후, 바울은 길리기아, 브르기아, 그리고 오늘날 터키 국가에 해당하는 갈라디아 지역들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여행하였습니다. 소아시아 서안(西岸)에 위치한 드로아에 도착한 후, 서쪽을 향하여 유럽 쪽으로 복음을 가져가는 사투(死鬪)를 계속합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마케도냐와 그리스의 성읍들에로의 여행은 물론, 에베소(오른쪽 이미지)에서 장기간 사역을 하게 됩니다. 결국에 가서, 이번 사역으로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체포됩니다. 그는 체포된 후, 가이사랴에 있는 감옥에서 2년이 넘도록 갇히게 됩니다.

이제 바울의 로마에로의 여행은 가이사랴에서 시작된 항해였습니다. 계절상 늦은 때에 여행함으로써, 크레타 섬에서 피난철을 찾는 동안, 배는 폭풍의 기후를 맞게 됩니다. 바다 위에서 수 주일을 보낸 후, 그 배는 바울과 다른 일행들을 말타 섬으로 데려갔습니다. 거기서 겨울 남은 기간을 보낸 후, 바울은 로마를 향하여 북쪽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황제 앞에 변론하기 위하여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로마여행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러면 왜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로마로 보내려 하십니까? 그 해답이 <사도행전 23:11>입니다:

11
이는 네가 예루살렘 안에서 나에 대하여 증언해 왔듯이, 또한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하느니라. (KJV화중광야역)

for as thou hast testified of me in Jerusalem, so must thou bear witness also at Rome. (KJV)

이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3차까지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전도사역을 접고는, 세계 중심지인 로마로 건너가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케'(to bear witness of Jesus Christ) 함으로써 세계 복음화의 초석을 다지기 위하심입니다.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복음사역을 당부하심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마태복음 28:19,20).

20여년 전만해도 '불확실성의 시대'를 말하면서, 미래학자 알빈 토풀러(Alvin Toffler)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서 21세기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습니다. IT시대의 도래를 예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IT가 지금의 시대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지금  우리의 이 시대를 '불안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세계가 점점 다변화되어 가고 있고, 문명의 이기(利器)가 급속도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스트레스'(Stress)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란 몸이 위협들을 감지한 그 반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속하게 싸우고 싶다든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싶다함을 느끼는 것은 생존하기 위한 몸의 '방어체계'(Defendinf System)의 하나인 것입니다. 매일 제 시간에 일을 해야 한다든지, 마감 시간들을 직면한다든지, 삶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성취해야 한다는 것은 이러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안이 초과함으로 야기되는 하나의 위태한 면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의 수준이 과도하면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물질의 남용과 약물 중독, 자살, 심지어는 분노가 극도로 일어나서 살인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인들 왜 불안과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그의 대적들은 무슨 '꼴미'를 달아서라도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는 불안 속에 있는 바울에게 주님이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전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33>입니다:

33
이 말들을 내가 너희를 향하여 전해 온 것은, 너희가 내 안에 평안을 지니게 하려 함이라. 그 세상 속에 너희는 환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라. 내가 그 세상을 이겨냈음이라. (KJV화중광야역)

These things I have spoken unto you, that in me ye might have peace. In the world ye shall have tribulation: but be of good cheer; I have overcome the world. (KJV)

이제부터 바울의 로마여행에로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로마여행 노정
 

바울의 로마여행 배경 (사도행전 21:18-26:32)

1. 야고보를 방문한 바울 (사도행전 21:18-26)

1) 바울이 '3차 전도여행'(사도행전 18:23-21:17)을 마친 후,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나다. (18절)

2) 바울이 그들에게 이번 3차 전도여행의 결과를 보고하다. (19절)

3) 그들이 이미 소문으로 바울이 율법에 어긋나게 가르친다는 소리를 들어, 심히 바울이 체포될까봐 염려하다. (20,21절)

4) 이것을 막기 위하여 바울에게 정결례를 행하도록(위장 측면에서) 권고하니, 바울이 이를 받아들이다. (22-26절)

2. 성전 안에서 체포된 바울 (사도행전 21:27-22:5)

1) 정결례(7일간)가 끝나는 무렵,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로마 병사들에게 넘겨지다. 이유는 이방인 곧 헬라인들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더럽혔다는 것이다. (27-32절)

2) 두 사슬에 결박당한 바울이 영문(CASTLE) 안으로 끌려가는데, 무리는 그를 죽이라고 하면서 뒤따라 온다. (33-36절)

3) 천부장에 의해, 바울은 살인자 사천명을 이끌고 광야 안으로 들어간 바로 그 주모자 애굽인으로 오인 받는다. (38절)

4) 바울이 허락을 받고,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히브리어로 말한다(39-22:23절):

'내가 이 길을 죽음에 이르도록 핍박하였으며, 남자와 여자 할 것 없이 결박하여 감옥들에다 넘겼다.' (22:4)
② 이방인들의 사도가 된 경위 - 자신이 사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러 다마스커스(다메섹)에 가다가 본체 곧 빛이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서, 밥팀례 받은 후(회개의 증거로서) 구원받은(죄들의 씻음받음) 사실을 증언하다. (22:1-21를9:1-25와 비교)
③백성이(유대인) 강력하게 바울을 죽이라고 소동을 벌이다. (22,23절)

3. 로마시민권을 행사한  바울 (사도행전 22:22-29)

1)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고자 천부장이 직접 나서다. (24절)

2) 천부장이 바울과 터놓고 '로마시민권'을 이야기하다.

①천부장: '나는 이 시민권을 얻는데 상당한 돈을 들였다.'
②바   울: '나는 나면서부터다.' (28절)

4. 공회 앞에 선 바울 (사도행전 22:30; 23:1-11)

1) 바울이 로마시민권이 있음을 안 천부장이 그를 풀어주었고, 바울이 고소당한 이유를 알고자 대제사장들과 공회를 소집하고 그를 그들 앞에 세우다. (22:30)

2) 바울이 변론하기 시작하는데(23:1),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그의 입을 막으려고 명하니(2절), 이에 바울이 그 대제사장에게 반격한다:

'너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라.' (3절)

예수님이 위선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책망하심을 기억하기 바란다. (마태복음 23:27)

①바울은 자신이 바리새파임을 강조하면서, 이 교파의 교리상(죽은 자의 부활) 때문에 붙들려 심문받게 됨을 해명한다. (6절)
②이에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로 양분되다. (7,8절)③바리새파 서기관들이 바울을 옹호하고, 바울의 무죄를 원하므로, 심한 분란이 일어난다. (9,10절)

3) 그 날 밤 주님이 영문 안에 갇힌 바울에게 나타나신다(11절):

11
바울아, 용기를 내라. 이는 네가 예루살렘 안에서 나에 대하여 증언해 왔듯이, 또한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하느니라.

Be of good cheer, Paul: for as thou hast testified of me in Jerusalem, so must thou bear witness also at Rome.

5.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 (사도행전 23:12-22)

1) 유대인들 40여명이 작당하여, 저주로 맹세하고, 자기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말하다. (12-14절)

①그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와서, 천부장에게 바울에 관하여 더 알아 볼 것이 있다고 하여, 바울을 데려오게 하면, 그 도중에서 그를 죽일 준비가 다 갖춰졌다고 전하다. (15절)

2) 그런데 바울의 생질(Son of Paul's Sister)이 이 음모를 듣고서 바울에게 전하니, 바울이 자기를 천부장에게 데려다 주라고 간청한다. (16-18절)

3) 바울의 생질에게서 유대인들의 음모를 전해들은 그에게 절대로 비밀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바울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것을 결심한다. (19-22절)

6. 벨릭스 총독에게 호송된 바울 (사도행전 23:23-35)

1) 천부장(글라우디오 루시아)은 백부장 두 명을 불러 바울의 호송 준비(보병:200명, 기병:70, 창병:200명)를 시키고, 그날 밤 제3시(밤9시)에 가이사랴로 가서 벨릭스 총독에게 데려가라고 명하다. (23,24절)

2) 그리고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보내게 된(호송하게 된) 사유를 편지로 적어 보낸다. (25-30절)

'그가(바울이)그들의 율법에 관한 문제들로 고소를 당한 것일 뿐 사형을 받거나 감옥에 갇힐 만한 죄가 하나도 없음을 알았나이다.' (29절)

3) 안디바드리에서 보병들에 의해 호송되어 온 바울은 기병들에게 인계되어, 가이사랴에 이르러 벨릭스 총독 앞에 서게 된다. (31-33절)

4) 편지를 전해 받은 총독은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임을 알고, 그를 고소한 자들이 오면 함께 물어보겠다고 하면서, 그를 헤롯의 재판정 안에 가두어 두라고 명한다. (34,35절)

7. 바울에 대한 논고 (사도행전 24:1-9)

1)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이 더둘로 라는 변사를 통해서 바울을 고소(논고)하다. (24:1-7)

①바울은 소동을 일으키는 자
②나사렛 분파(도당)의 괴수
③성전을 더럽힌 자

2)이에 유대인들이 동의하다 (8,9절)

8. 벨릭스 총독 앞에서 변명하는 바울 (사도행전 24:10-27)

1)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단호하게 변호하다 (10-21절)

① 바울 자신은'그 길을 따라'(비교. 사도행전 9:2) 하나님을 섬기며(비록 그들이 이단이라 부를 지라도),
②성경 말씀을 믿으며,
③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으며, 그 소망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하여 항상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지니려고 애쓴다.
다만,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한 문제로, 내가 오늘 불려와, 심문을 받고 있도다.'(21절) 라고 변호하다. (비교. 사도행전 23:6)

2) 총독 벨릭스의 구원은 과연 진실한가? (22-27절)

①벨릭스는'그 길에 관해서는' 더 자세히 알고 있다. (having more perfect knowledge of that way) (22절)
②이렇듯 벨릭스가 완전히 구원받은 것 같이 보이나, 그가 바울의 강론(의,절제, 다가올 심판)을 듣고 난후 두려워 떨고, 간구하면서 바울을 다시 부르겠다 하기에 진정 거듭난 이방인 의인으로 느껴지는데, (25절)
③막상 바울에게서 돈을 받으면(댓가성 뇌물) 그를 풀어주려고 했기 때문에, 그를 자주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거짓 구원받은 자의 본보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6절) 그러므로 그가 바울에게 선대(善待)를 베푼 것도(23절), 그리고 유대인 여자 아내 드루실라를 통해서'그 길'에 대해서 듣고, 알고 있었으나, (22,24절)
④2년이 지나서 그의 후임자 베스도 총독이 부임해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바울을 감옥 안에 가두었다는 것은(27절), 벨릭스 총독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 믿음에 관한',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믿음은' 완전치 못했고, 위선적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24절)

9.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사도행전 25:1-12)

1) 총독 벨릭스 후임으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가 3일이 지난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갔는데, (25:1)

①대제사장과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을 고소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하니, 이는 그가 오는 도중에 길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그를 죽이려 함이다(2,3절) (비교. 사도행전 23:15,21)
②총독 베스도가 재판석에 앉아서 바울을 불러냈는데, 유대인들이 그를 고소한 확실한 증거를 대지 못하더라. (6,7절)

2) 바울이 자신을 변명하다(8절-)

①율법, 성전, 가이사(로마의 황제 아우구스도)에게 범죄한 것이 전혀 없으며,(8절)
②베스도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사도행전 24:27-총독 벨릭스처럼),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을 것을 권하다. (9절)
③바울이 이를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자신의 죄가 없기 때문에,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나이다'라고 선언하므로(11절) 베스도가 그가 로마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허락하게 된다. (12절)

10. 아그립바와 버니게 앞에 선 바울(사도행전 25:13-27)

1) 마침 아그립바(헤롯) 왕과 그의 아내 버니게가 베스도를 문안하러 가이사에 도착한다. (25:13)

2) 베스도가 그들에게 바울의 감금에 대한 사유를 상세하게 밝힌다. (14-21절)

①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한 고소한 그 증거를 대지 못한다. (18절)
②로마법 관례상 피고가 원고와 대면해서 변명할 기회를 준다. (16절)
③베스도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기를 권했으나, 바울이 가이사에게 가서 판결을 받겠다는 것이다. (20,21절)

3) 아그립바가 바울을 심문하고자 하기에, 베스도가 바울을 데려오라고 명하다. (22,23절)

4)베스도가 바울이 심문받게 된 사유를 설명하면서,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했는데, 가이사에게 보낼 바울의 죄목거리가 없음을 호소한다. (24-27절)

11. 바울의 변명(사도행전 26:1-32): 가이사랴에서

1)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하다. (26:1-23)

①예루살렘에서 처음부터 유대인들과 생활해 왔음은 모든 유대인들이 알고 있다 . (4절)
②바리새파의 한 사람으로 종교 생활을 해왔다. (5절)
③지금 고소당하여 재판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 때문이다. (7,8절)
④사실 자기도 구원받지 못했을 때는, 종교인(바리새인)으로서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그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였다. (9-11절)
⑤그러는 도중,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다. (12-18절):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14절=사도행전 9:5; 22:7)
'가시돋친 채찍에다 발길질 하는 것이 네게 고통이라.' (14절=사도행전 9:5)
*바울의 사명받음:
'이 목적을 위함이니' ('그 일'=사도행전 13:2)
'내가 보아 온 이 일들과, 내가 네게 나타날 그일들에 대하여 너를 한 사역자, 한 증인으로 삼고자 한다.' (16절)
'그들(유대인 백성과 이방인들)의 눈들을 열어주어,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①죄들의 용서받게 하고, ②내 안(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 가운데서 상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절)

환상을 통하여 바울에게 사명을 주시어, 예루살렘, 유대 온 지역, 이방인들에게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일들을 행하라고 전한 것이, 고소당한 이유이다. (19-22절)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것, 죽은자들로부터 첫 번째 일어나심, 유대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포하실 분(23절)

2) 아그립바 왕이 인간적인 교만을 드러내다. (24-26)

①바울에게 학식이 많은 고로 미쳤다고 몰아치나, (24절)
②바울은 '미친 것이 아니요, 다만 진리와 분별의 말들을 하고 있나이다.' (25절)

3) 이에, 바울은 정연한 논리로서 자신을 변론하다. (27-29절)

①선지자들을 신봉하는 아그립바 왕에게 역설적으로 반문함으로써, 즉 선지자들을 믿는다고 하면, 그들의 증언한 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27절)
②이에 곤경에 빠진 아그립바 왕이, 말하기를, '감히 적은 말 몇 마디로 네가 나를 설득시켜 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구나.' (28절)
③바울이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적은 말이든 많은 말이든, 나는 전할 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도 이렇게 결박들을 당하는 것 이외는, 나와 같이 되기를(16절의 한사역자, 한 증인) 하나님께 바라나이다.' 변론하니,

4) 아그립바 왕, 총독 베스도, 버니게(왕비), 다른 유대인들이 바울의 무죄함을 인정하다. 바울이 로마 황제(가이사)에게 상소하지만 않았다면 석방시켜 줄 수 있었다고 아그립바 왕이 선언하다. (30-32절)

<Created/20031109> <Modified/20040109> <Updated/20080407>
<제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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