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 바울의 로마순교여행 2]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적용 - 하나님의 그 뜻을 제대로 준행하면, 죽음의 위기 속에서 반드시 건짐을 받는다!!

글/ 정재선 목회자

[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5 - 하나님의 그 뜻은 이렇게 알 수 있다]를 선독하신 후 아래 글을 읽으시면, 한결 이해가 쉬워질 것입니다!!

[제1부에서 계속됨]

바울의 로마여행 (사도행전 27:1-28:31)

<사도행전 26장>은 지중해 연안 '가이사랴'(Caesarea) 지역이 그 배경입니다. 필자가 1999년 11월  27일(토요일/날씨 맑음),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는 해가 이미 진 뒤였습니다(아래 사진/동행한 이희동 형제님 제공). 바쁜 선교여행 스케쥴 때문에 자세히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그러나 훗날 주님이 허락하시면, 바울이 떠난 <로마여행> 여정을 밟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당시 기행록 일부입니다:

우리는 다시 이곳 므깃도에서 약간 북서쪽에 위치한 가아사랴로 올라갔다. 거의 5시에 이르러 가이사랴에는 또 입장료(5불)을 받고 있었다. 나는 또 그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특히 나는 사도행전을 번역하면서 이곳을 그토록 갈망했었는데, 어느 누구 하나 같이 들어가자는 사람 없었다. 그 5불(6,000원)이 무엇이길래!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밖에서 비디오에 담으려고 했는데, 비디오 카메라 조차도 작동이 되질 않는다. 그것도 지친 모양이다. 아니면 밧데리에 이상이 있든지, 초점이 잡히지 않아서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다. 아예, 모든 것을 단념한 채, 선물코너에 가서 안내서 책자를 몇 번 만져보고 놓고, 만져보고, 또 놓고, 주인이 안보면 슬그머니 훔칠 강한 충동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부질없는 소행같았다.

간단한 엽서식 팜플렛을 하나 사고 나니(20세겔=6,000원) 이제 남은 것은 10세겔(3,000원)이 전부였고, 귀국하기에는 2일이 남아 있었다. 그래,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 참자, 그리고 기다리자, 지금까지 기다려 왔는데!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기 전 갇혀 있었던 곳! 가이사랴! 끝내 그 장소를 확인 못하는 아쉬움...그러나 내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다시 시작해 볼 결심을 해본다. <정재선의 성지순례 기행록 중에서>

◆한송이 꽃을 피울 때(2003) - 작곡연주/다니엘정


성경에는 '바람'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에 부는 바람은 바로에게 심판을 가져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은 광야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식을 가져다 주는 바람이기도 했습니다.<욥기>에 보면, 바람은 하늘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바람은 파멸케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4:37-41>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27장>에는 바울 일행이 가이사랴를 떠나 서단(西端)의 멜리데 섬에 이르기까지 여정(旅程)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본문을 기록함에 있어서 거쳐가는 정박항(碇泊港)에 대해서는 대략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고, 그들이 항해중에 닥친 바람과 바울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따라서 본 주제를 '배와 바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바람은 4단계로 발전해가는 바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에는 일기 예보가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일기예보가 매우 발전되어서 누구든지 앞으로 예상되는 천재 혹은 인재에 따른 위기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다른 바람들이 계속 불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바울이 로마로 떠나다(사도행전 27:1-44)

1)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과 다른 죄수들의 호송을 맡다. (1절)

2) '아드라뭇데노'라는 배를 타고 가이사랴를 떠나(사진 위) 그 다음날 시돈에 닿으니, 율리오가 바울에게 자유를 주더라. (2,3절)


3) 역풍(逆風=맞바람)이 불다(27:4-11):

①시돈에서부터 출항할 때 역풍이 불므로, 구브로(오늘의 키프러스) 아래 쪽으로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앞 바다를 지나, 무라(루기아의 한 성읍)에 도착하다 (4,5절).

본문 <4절>에 이 역풍(Contrary Winds)을 맞바람 혹은 거슬림의 바람)이라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길 원하는 길로 가고자 할 때, 바로 닥쳐오고 우리에게 타격을 주는 바람입니다.

처음에 불어오는 역풍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강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가기를 원하는 방향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바람이 우리의 길을 완전히 바꿔놓고 맙니다. 바로 이 바람이 우리를 낙심케 하고, 또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바람 앞에서 낙심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바람이 우리 인생에 닥쳐 오는 것은, 우리를 낙심시키기 위함인데, 이것이 바로 거슬림의 바람입니다. 벌써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조그만 바람을 만나서 낙심 가운데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다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②무라에서 백부장이
'알렉산드리아의 배'로 갈아 태우다. (6절) 그니도 앞까지 왔으나, 바람이 허락지 않아,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아래쪽으로 항해하여, 거기서 '아름다운 항구'(美港=라새아 성읍에서 가까움)에 이르다. (7,8절)

본문 <제7절>에 보면, 전진을 막는 방해하는 바람(Hindering Winds) 있습니다. 바로 이 바람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기를 원하는 길을 막는 바람입니다. 사랑받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여러분의 생애에도 반드시 이러한 방해하는 바람을 맞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매일 같이 이런 바람이 우리를 방해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육체적이거나 불신자인 친구들을 통해서도 이런 바람은 불어오는 것입니다. 이런 친구들이 곧 우리의 진로를 방해하는 바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바람이 우리의 태만과 게으름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지정하신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 수록 이 방해하는 바람은 더욱 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받는 여러분! 이 방해하는 바람은 여러분이나 저와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도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이런 방해하는 바람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③시기상으로 단식하는 절기(디스리월(7월): 양력9,10월)가 지나, 항해하기가 매우 위태로운 때였다. 그리하여 바울이 권고하다(9.10절):

    여러분, 내가 보기에는 이번 항해에 화물과 배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상당한 손실과 피해가 있으리라. (10절)

본문 <9,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위태로운(위험한)바람 (Dangerous Winds)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어오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다시피 절기에 따라 바람이 점점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위태로운 바람이 불 때, 많은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림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바람이 점점 세게 불면, 파도도 풍랑도 점점 세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풍파가 매우 위험한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람 앞에서 파멸로 들어가고 있는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인생의 풍랑 앞에서 많은 파멸로 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우리 잠시 생각해 봅시다.

주님을 잘 섬기다가 파멸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바람 앞에서 예수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 흩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결정은 육체에 기초한 결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④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는 그 배의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더라. (11절)

4) 남풍(南風) 곧 순풍(順風)이 불다(27:12-13):

①거기서는  즉. '아름다운 항구'(美港)에서는 겨울을 지낼 곳이 못되어, 뵈닉스(그레데의 항구)로 향하다(남서쪽, 북서쪽). (12절)

소아시아의 그니도(7절)로부터 바울의 배는 바람들이 허락치 않음으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그레데섬에서 대피소를 찾았습니다. 그 배는 그레데의 남안(南岸)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美港)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 항구는 겨울을 나기에는 적합치 않으므로, 그들은 그레데의 서쪽에 위치한 뵈닉스라고 부르는 한 항구로 향하였습니다. 주후 1세기에 그레데는 로마의 한 지역이였습니다. 배들은 이 섬에서 겨울 폭풍들을 피할 대피소들로서 항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12

그리고 그 항구(아름다운 항구)는 겨울철을 위한 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으므로, 대다수의 의견은 그 곳을 떠나, 어떻게 해서든지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나자는 것이니, 뵈닉스는 그레데의 한 항구로, 남서풍과 북서풍을 바라보고 있더라

And because the haven was not commodious to winter in, the more part advised to depart thence also, if by any means they might attain to Phenice, [and there] to winter; [which is] an haven of Crete, and lieth toward the south west and north west.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상징이 숨겨져 있습니다. <개역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RSV)는 본절 <12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항구(아름다운 항구)는 겨울에 적합하지 않음이니, 대다수는 거기서부터 떠나자고 충고하였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이 그레데의 한 항구요, 북동쪽과 남동쪽을 바라보는 뵈닉스에 도착하여 거기서 겨울을 보내고자 함이었다. (사도행전 27:12, RSV화중광야역)

    And because the harbor was not suitable to winter in, the majority advised to put to sea from there, on the chance that somehow they could reach Phoenix, a harbor of Crete, looking northeast and southeast, and winter there. (Acts 27:12, RSV)

<한글개역>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 항구(아름다운 항구)가 과동(겨울 나기에)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북동쪽)을, 한편은 동남(남동쪽)을 향하였더라.


뵈닉스(φονιξ/G5405/ Phenice/종려나무 의미요, 현재지명은 루트로=Lutro) 
항구를 묘사함에 있어서, <킹제임스성경>은  
남서풍과 북서풍을 바라보고(lieth toward the south west and north west) 라고 번역함으로써 바람의 방향을 표현하였습니다. 반면에 <개정표준역>은 바람의 방향 대신에 '북동쪽과 남동쪽을 바라보는'(looking northeast and southeast) 라고 번역함으로써, 아무리 강한 폭풍이 불어도 배들이 대피하기에 적합하다는 폭풍의 대피처로서 지리적 적합성을 표현하였습니다.

사랑받는 여러분! 여기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바라보는'(looking) 의미는 헬라어로 '블레포'(βλεπω/G991)인데, '두 눈으로 보면서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으나 정신적으로 보임을 느끼는 것'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시야를 지니고서 항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뵈닉스는 '종려나무'를 상징하며,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상징합니다.

특히 '뵈닉스'는 현재 지명이 '루트로'(Lutro)인데, <르빠우오>(LE PAUO)와 직결되는 <바울의 배>가 정박하는 항구를 상징합니다. 닭이 알을 품듯이 어머니 품과 같이 하나님의 영이 '물들의 위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곳입니다(창세기 1:2).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②마침
남풍(순풍)이 부니, 자기들의 뜻을 이룬 줄로 생각하여, 닻을 올리고, 그레데 해안에 바싹 붙어서 항해하다. (13절)

끝으로, 네번째 바람이 있는데, 본문 <13절>에 보면, 바로 속임수의 순풍(Deceive Winds)인 일시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이렇게 속임수의 순풍, 일시적인 순풍이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까?

그들은 그니도를 출발하여 살모네 포구를 지나서 그레데섬에 바짝 붙어 남쪽으로 항해하다가, 겨울철 폭풍을 대비하여 '아름다운 항구' 보다는 남서풍과 북서풍을 바라보고 있는 '뵈닉스 항구'로 가서 겨울을 지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10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말하되, '여러분, 내가 보기에는 이번 항해에 화물과 배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들에도 상당한 손실과 피해가 있으리라.

And said unto them, Sirs, I perceive that this voyage will be with hurt and much damage, not only of the lading and ship, but also of our lives.

그 때 항해를 계속하자고 찬성 투표를 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머물고 여행을 해서는 안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비웃었을 겁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매우 비웃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항해를 반대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에 따라 결정했습니다. 마침 남풍, 곧 순풍이 불어오니, 자기들의 뜻이 이루어진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순풍에 의해 속아가느냐 이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남풍이 매우 순하게, 부드럽게 불어 왔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 이런 속임수의 바람을 맞이하게 됩니까? 사실 우리의 매일 순간 순간의 삶속에서 이런 바람은 불어 옵니다. 이런 생활속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결정하지 않아요. 많은 목회자들이나 또는 영적으로 성장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신앙상담을 해주고, 좋은 충고를 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기들이 더 잘 안다고 하면서 영적인 지도자들 혹은 목회자들의 상담이나 충고를 거절하는 경우를 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의 조건 보다도 더 좋은 것을 지불할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관심이 없고, 우리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자 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내가 아무 도시에 가서 주님을 섬기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럴 때 잘못된 결정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자, 우리가 어떤 잘못된 영적이 아닌 결정을 내릴 때, 사탄은 우리의 결정이 잘 되었다고 이렇게 지지를 합니다. 사탄은 그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얘기 하면서, '당신은 바로 당신의 가족을 위해서 좋은 결정을 했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결정은 하나님의 뜻일 것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5) 폭풍(暴風) 곧 유라굴로(Euroclydon:북동풍의 광풍으로서 지역적으로 선원들에 의해서 불리워지다)가 불다(27:14-38):

①그런데 얼마 안되어 유라굴로라는 폭풍이 일다. (14절)

자, 본문 <1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죠?: '자기들의 뜻을 이룬 줄 생각하여'

'자기들이 목적을 이룬 줄 알았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조언과 충고를 거부하면서 이런 착각 속에 빠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랑받는 여러분! <14절>을 정확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 안되어 유라굴로라 불리우는 광풍이 일어 몰아치니'

사랑받는 여러분!! 처음의 속임수의 바람은 점점 태풍으로, 광풍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광풍이 불어치니까 목회자를 불러야 되겠죠? 목회자는 광풍이 불어오기 전에 충고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광풍속에 들어가면 목회자를 불러도 소용이 없고, 이미 태풍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결정 때문에 많은 무죄한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재산도 배도 다 바람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어리석은 어떤 결정 때문에, 심지어 사업 조차도 파멸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종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지를 않았습니다. 백부장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첫째, <11절>에 보면, 백부장이 항해에 대한 비전문가인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 보다는 선장이나 선주의 말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영적이 아닌 많은 사회적인 어떤 사람들의 전문적인 의견을 많이 의지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있어서 전문적인 경험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바로 전문가를 통해서 역사하시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역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백부장의 실수는, <12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항해의 결정이 편의하냐 불편하냐 하는 편의성에 기초해서 결정되었다는 겁니다.

식당이 어떻구, 호텔이 어떻구 하는 등의 편의성을 말합니다. 여러분! 영적인 결정은 편리하느냐 안 하느냐에 의해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잘못된 결정에 의해 파멸의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세번째 실수는 <12절>에서 또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다수의 여론에 기초해서, 다시 말하면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서 더 의지했던 걸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뜻 보다는 사람들의 여론에 따랐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본문을 볼 때, 결과적으로 도저히 사람들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왔습니다. 바다 생활의 경험이 풍부했던 선원들까지도 짐과 배를 건지기에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②배가 바람에 휘말려, 바람이 부는대로 놔두었다가, 가우다라는 한 작은 섬 아래쪽으로 밀려가면서 거룻배를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16절)

③여러날 거센 풍랑이 몰아치니 그들이 구조될 소망이 모두 사라지다. (20절)

자, <14-20절>까지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뱃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구원의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all hope was taken away).

사랑받는 여러분! 이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한계가 이르면, 이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는 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이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 때문에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까?

④여기서도 바울이 권면하다(21,22절):

    여러분이 내 말을 귀담아 듣고, 그레데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와같은 타격과 손실을 입지 아니하였으리라. (21절)

⑤천사가 전한 말씀을 바울이 증언하다(23-26절). 곧,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다.

자, <21-25절>까지 우리 같이 한 목소리로 읽습니다:

    여러 날을 먹지 못한 후에 바울이 그들 한 가운데로 나가 서서, 말하기를, '여러분, 여러분이 내 말을 귀담아 듣고, 그레데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와같은 타격과 손실을 입지 아니하였으리라.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는 것은 기운을 내라는 것이라.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 누구의 목숨도 잃지 않을 것이라. 내가 속해 있어,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그 천사가 바로 이 밤에 내 곁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너는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 모두를 네게 주셨느니라.' 하였느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기운을 내라. 나는 하나님을 믿나니,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 하더라.

여러분!! 배는 파선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화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도 하나님의 그 말씀대로 다치질 않았습니다. 그 일행이 파선 후에 도착한 섬이 있었습니다. 멜리데라는 섬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주민들이 병들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이름으로 병든 많은 섬주민을 고쳐주었을  때에, 그 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랑받는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의 독자 예수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 나무'(THE TREE)에 피흘려 돌아가게 할 만큼, 이 세상의 죄인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골고다 '그 나무' 위에서 흘린 보배로운 피로써 인류의 모든 죄, 여러분과 나의 모든 죄는 다 씻음받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랑받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인생 속에 태풍은 몰아닥친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어떤 사람 때문에 우리도 그런 광풍에 몰리는 때가 있음을 아십시오. 그러나 우리 인생에 어떤 광풍이나 태풍이 몰아 닥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전해서 그들의 영(spirit)을 구원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⑥14일째 되는 밤, 아드리아 바다 안에서 표류하다. 선원들이 배가 암초에 걸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거룻배를 바다 위에 내려 놓는다. (27-30절).

⑦바울이 또 다시 권면하다(31-38절):

    '이 사람들이 배 안에 남아 있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목숨을 건질 수 없으리라.' (31절). '여러분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 굶은 지가 오늘로서 14일째라.'(33절). '그래서 음식을 들라고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노니,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을 살리는 길이라. 여러분 중에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은 자가 없으리라.' (34절)

이에 바울이 빵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그것을 떼어 먹기 시작하였고, 모두가 기운을 내어 음식을 먹으니, 모두 276명이더라. (37절) (요세푸스는 600명이 항해 하다가 폭풍(광풍)을 만나 80명만이 생존했다고 기록함).


6) 배가 파선 당하다(27:39-44):

①해안이 있는 작은 만에다 배를 대기로 작정하다. (39절)

②해안을 향해 나아가다가, 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 배가 끼어들어 좌초되니, 배가 파선되다. (40,41절)

③병사들은 죄수들을 다 죽이자는 것이었으나, 백부장은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모두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칠 자는 치고, 헤엄치지 못하는 자는 뱃조각(널조각)에 매달려 다 육지로 안전하게 피신하다. (42-44절).

바울을 싣고 떠난 '그 배'는 파선되었지만, 결국은 승선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아니하였고, 다 육지로 안전하게 피신하였으니, 이처럼 놀라운 기적이 또 있습니까?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권면을 묵살하고는, 선주와 선장의 의견을 따랐으며, 그 결과는 엄청난 손실을 가져 왔습니다. 갖은 풍랑을 겪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풍랑>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앞에 언제 어떤 바람이 불어닥칠지 모르기에, 항상 깨어서 근신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상고해 볼 주제 하나가 있습니다. '그 죽음의 광풍 속에서도 그들이 목숨을 건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비록 죄인이었지만,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계속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인도하심을 확신하였고, 그것을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기진해서 목숨을 잃게 되었을 때,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25절>입니다: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기운을 내라. 나는 하나님을 믿나니,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

Wherefore, sirs, be of good cheer: for I believe God, that it shall be even as it was told me.

'기운을 내라'는 선포였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그들에게 빵을 떼어줌으로써 그들을 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4,000명(혹은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연상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5:36>입니다:

36

그 빵 일곱 덩이와 그 물고기들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그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그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And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the fishes, and gave thanks, and brake [them], and gave to his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the multitude.

빵은 무엇입니까? 네. 맞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죽음에서 생명에로 바뀝니다. 어떠한 풍랑이 닥쳐와도 능히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제3부에 계속됨]

<Created/20031117> <Modified/20060314> <Updated/200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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