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bo's Unforgettable  Essay]

멈춰버린 물레방아


이렇게 삶의 잔영 속에서 한 편의 에세이를 쓰게 되는 것도 퍽이나 오랜 만의 일이다. 그 동안 찌들린 소용돌이와 회오리가 몰아치는 지난 10여년간 방향 감각 잃은 계절의 역순환 탓도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산천초목이 사철의 흐름 따라 옷을 수 없이 바꿔입어가도...나 만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로정 속에서 망각하고 싶었던 충동이 강하게 밀려 왔었고...오로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마음 속 깊은 그 곳에 남겨놓아주신 그 흔적을 찾아, 밟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위독하신 어머님의 얼굴을 뵙는 순간!!]

2003년 12월 29일 저녁에 7년만에 잠시 뵙고는, 오늘 2006년 11월 4일(토요일) 나는 어머님이 입원하신 청량리 인근 '병원' 중환자실에 입실을 허락받았다. 정해진 면회 시간 이외는 불가능한 입실이...기적이었다. 오후 4시 50분경이었다. 담당 간호원의 안내로 어머님한테 접근하는 순간!!

    '엄마, 나 왔어. 셋째!'


더 다가 갔다. 곁에 다가가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어머니에게 문안을 드렸다.

    '어머니, 불효자 셋째를 용서하세요!! 이제서 왔습니다.'


눈물이 왈카닥 쏟아졌다. 셋째 아신다고 어머니는 머리를 약간 끄덕이신다. 손과 발, 부은 곳을 맛사지해드렸다. 대화를 나눴다. 이처럼 뵙고 나니(3년만에)...

    '하나님,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 생명을 연장시켜 주세요.'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를 올렸다. 어머니에게 예전의 이야기도 말씀드렸다.
1995년 1월에 그 추운 날 막내 딸 보러 가시다가 노상에서 쓰러지셨던 그 사건...세브란스병원 검진 결과 심장 속의 혈맥이 끊겨서 피가 새고 있는데...수술은 불가능하고...마침 일본에서 새로 도입된 시술기계, 곧 약물을 심장 속에 투입해서 혈액이 멈추면 살아나시는 것이고...그것이 제대로 치료되지 못하면 '각오'(?)하라는 주치의의 전갈이 있었다는 후문이었다.

마침 필리핀 사역자 '에스파닐리오'가 와 있는지라, 그와 함께 예배당 목양실 출입문을 고치는 중에 어머니의 위중하시다는 전갈을 받았다. 나는 지하실 한 모퉁이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렸다. 에스파닐리오 형제님을 출국시켜드리고, 그 길로 세브란스 중환자실로 달렸다. 마침 둘째 여식이랑 출장오셨다가 문병오신 PB 자매님이랑 셋이서 어머니 손을 잡아드린 채, 기도를 드렸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그 후 어머니는 11년을 연장 받으신 것이다.

예전의 일을 알아들으시는지...어머니는 끄덕이셨다. 정해진 면회 시간이 끝났다는 담당 간호원의 전갈이었다. 맛사지 해드린 부은 손발이 전보다는 많이 가라 앉아 있었다.

    '하나님, 저희 어머니 데려가지 마세요!!'

    '엄마, 또 올께...'


입실 보다는 퇴실하는 나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인생이 한번 왔다가 한번 감은 정해진 것이라.'

    '주님, 감사합니다. 역사하소서!!'


<2006년 11월 4일(토요일) 오후 5시 17분/ 불효자 셋째 재선 쓰다.>

<추신> 그리고나서 어머니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2006년 11월 13일이었다.


[세상이 이상타 혼돈 속에 빠져버렸구나!!]

종말의 때가 이르러서인지...2010년 들어와서 천하의 기후가 이토록 혼란스러운 때는 나의 일생 동안 거의 기억 속에서 살펴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12일 저 중남미 지역의 작은 나라 '아이티'가 지진 강도 7.2를 맞고는 20여만명이 넘는 애꿎은 인명들이 소리없이 죽어갔다. '지진무기'를 이용한 사탄 대적들의 마지막 발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는 2월 27일, 칠레에 진도 8.8의 강진이 발생하였다. 예상보다 피해는 적었으나, 그 이후로 지축은 본 자리에서 서쪽으로 30센티 정도 밀려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지구는 온통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 후로 연일 세계 곳곳에는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 이웃 일본에 진도 6.6 강진이 발생하였다. 이렇게 자주 지진들이 발생하다 보니...안전하다는 우리 한반도에도 언제 저 대적들이 독기를 품은 채 '지진무기'로 살인만행을 자행할런지...무서움이 몰려오고 있다.

우리네 사람들은 그러한 다가올 미래적 재앙/재난에 대하여 얼마만큼이나 대처를 준비하고 있는가? 무관심하지 않는 것이겠다...내가 젊어서 한 때 직간접으로 '유희'를 누렸던 장본인들이 하나씩 하나씩 죽어가고 있다. 지난 2월 23일에는 코미디언 배삼용 씨가 타계하였다. 3년간 병석에 누워있다가 사라졌다. 3월 11일에는 '무소유' 주창자 법정 스님이 입적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3월 14일)은 대중음악 작곡자 박춘석 씨가 타계하였다. 그는 평생을 음악과 혼인하였다 하고는 독신으로 지냈고, 16년간 뇌졸중 투병 생활하다가 타계하였다. 내가 젊었을 때 박춘석 씨의 곡들은 우리네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동시에 많은 가수들을 태동시켰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한국인의 애환을 노래하고 가슴을 적신 이 주옥같은 노래는 모두 한 작곡가 박춘석에게서 탄생하였다.

이렇듯 흘러가는 죽음을 그 누가 막는단 말인가? 다만 죽음 앞에 순응해야 할 뿐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해야 한다!!' <성경기초주제어풀이2/죽기 전에 네 창조자를 기억하라/자세히보기>. 불가에서는 입적 후에 열반을 통하여 '시방삼세'(十方三世)에서 피안의 세계 곧 극락정토에 이르게 되니 곧 '니르바나'  (열반/涅槃=피안/彼岸의 세계)라 가르치면서 성불(成佛)을 위한 수행을 앞세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 때문에' 대신 죄값을 값게 하시고 그 통나무 위에 못박히시고, 그 올리브나무 위에 달려 돌아가게 하셨다. 그리고는 그 죽음을 이겨내시려고, 죽으신 후에 삼일 낮과 삼일 밤 만에 부활하셨고, 사십일 간 지상에 계시다가 제자들에게 11회 나타나셨고, 그 후에 위로 들림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과 슬픔과 비통이...새생명과 기쁨이 넘치는 '그 왕국'에로 입성의 그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10:20Notwithstanding in this rejoice not, that the spirits are subject unto you; but rather rejoice, because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Luke 10:20, KJV)

    10:20그럼에도 그 영들이 너희를 향하여 복종하는 이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리니, 이는 너희 이름들이 하늘 안에 기록되었음이라. (누가복음 10:20, KJV화중광야역)



이 얼마나 파노라마 같은 비전적인 가르침인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허무적인 '색증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가르치고 있는 불경(열반경)과는 다르게, 성경은 한낱 흙덩이로 돌아가는 인간이 이 땅에 온 목적이 있으니, 죽음의 그 권세를 이겨내고, '그 왕국' 안으로 입성하면...거기에는 영원토록 생명수가 넘처흐르는 곳이라...오로지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토록 하나님 아버지가 계획해놓으신 '크로노스'인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도 베드로의 외침처럼 한낱 들풀에 불과한 인생인 것이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가 권면하듯이, '썩어지지 않는 씨로 다시 태어남'을 제시해주는 소망이 넘치는 비전을 제시해주기에...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성경을 성경대로 깨닫고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유일한 큰 선물'인 것이다:

    1:23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 1:24For all flesh is as grass, and all the glory of man as the flower of grass. The grass withereth, and the flower thereof falleth away: 1:25But the word of the Lord endureth for ever. And this is the word which by the gospel is preached unto you. (Luke 1:23-25, KJV)

    1: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에서 난 것이니, 곧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통하여 난 것이라. 1:24따라서 모든 살은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그 풀이 시들고, 그 꽃은 지지만, 1:25주님의 그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노라. 그리고 이것이 그 복음을 통하여 너희를 위하여 선포되어진 그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23-25, KJV화중광야역)


[멈춰버린 물레방아]

내가 젊었던 시절에 외국 팝송을 우리말로 번안하여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다. 가사 중에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영국 팝싱어 톰 존스가 부른 원곡 'Proud Mary'를 번안하여 조영남 씨가 부른 '물레방아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요 중에는 이 보다 물레방아가 간간히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 박재홍 씨가 부른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 우리에게 심오한 옛날의 정서를 풍겨줄 것이다. 1950년대 유행하였던 이 노래가 문득 떠오른다: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 <박재홍> (듣기)  <남백송> (듣기)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을...'  등등이다. 또한 전근대적(前近代的) 농촌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애정관계를 묘사한 '나도향'의 소설 '물레방아'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레방아는 오늘날 우리에게 낭만적인 노래가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었고, 더구나 청춘 남녀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장소를 만들어 주기 위해 한가롭게 돌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레방아는 전례의 농기구 일종으로 물의 힘을 이용, 물레처럼 생긴 바퀴를 돌려 보리와 쌀을 찧었고, 때로는 탈곡이나 제분에도 이용했으며, 그리고 발전(發電)에도 이용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지난 1960년대 이전만해도 우리나라 농촌지역에서 흔히들 볼 수 있던 물레방아는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바퀴를 돌리는 것과 드물게는 물이 바퀴 밑으로 흐르는 힘을 이용하는 밑방아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대중가요는 서양음악의 수입과 더불어 시작된다. 즉 선교사들에 의하여 찬송가를 중심으로 한 서양음악이 들어오자(1885), 서양의 노래들이 번안되어 불리기 시작하였다. 1885년 미국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선교사역과 교육사업(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을 시작하면서 찬송가의 보급과 더불어 ‘창가'(唱歌)라는 신식 노래가 등장하였다.

1900년대 초반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1945년 해방과 더불어 1948년 건국 이후 '고향초' '아내의 노래' '목장의 노래' 등을 보급, 새로운 한국가요의 맥락을 찾아갔다. 미국의 팝송과 재즈의 기법이 한국가요에 도입되던 시절에는 현인의 노래 '신라의 달밤'이 공전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 무렵에는 원시적인 레코드제작법에서도 새로운 가요가 많이 만들어졌다. '명동야곡' '고향만리' '울어라 은방울' '선죽교' '백팔염주' '저무는 충무로' '비내리는 고모령' '럭키 서울' 등이 그것이다. 이 때는 새 가요가 레코드보다 무대공연에서 더 많이 불리고 대중에게 애창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 6 ·25전쟁으로 유명한 가요인들이 희생되었고 납북되기도 하였다. '전우야 잘 자라'(박시춘 곡, 현인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하여 북진하는 국군과 더불어 전국에 널리 퍼졌고, 1 ·4후퇴 이후 실향민의 쓰라린 생활고의 현실은 '굳세어라 금순아' '슈샤인 보이' '이별의 부산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 '추억의 40계단' '비내리는 호남선'(박춘석 작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재호 작곡) 등에 표현되어 널리 애창되었다.

아무튼 나의 기억으로는 이 노래는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3-4학년 시절에 무척이나 유행되었고, 나 역시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그 당시에 나의 아버지께서는 직조공장을 하셨기에, 우리 집에는 직조공녀들이 많았다. 손과 발로서 인조견을 짜서 일본에다 수출하는 것이었다. 직조공녀 누나들이 가르쳐 주면서 함께 불렀던 기억들이...바이올린을 잘 키셨던 아버지...창가를 잘 부르셨던 어머니...이 오랜 추억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이러한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 언제 멈춰 버렸는지...멈춰 버린지 오래다. 왜 그랬을까...왜 그랬을까...<2010.3.15/늦은 저녁>


<Created/20100314> <Updated/201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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