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풀이] 종말에 관한 예호바(YHVH) 하나님의 의도 ㅡ ①도적같이 오심=노아(노에)의 그 때처럼 아무도 모르게 다시 오신다!! ②공개적으로 오심=하늘로부터 구름들(증인들)과 함께 다시 오신다!!

성경 속에 계시된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의 '그 때' [1]

정리/ 정재선 목회자

◆<이장림, '1992년의 열풍'. 서울: 도서출판 광천, 1991> (화중광야 소장).

본 글은 마무리 성경번역 <요안계시록 3장>에서 '때/시기'(Time/Season)에 관하여 성경적인 견지에서의 풀이가 급한 고로 잠시 번역은 멈추고 '기초자료'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신초들의 마지막 소망은 '그 메시야'이신 '예슈아님'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다시오실 것인가에 고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예언인 본 주제야 말로...기록으로 남아있는 한, 수 많은 '가짜' 예언자들이 출현하여서 수 많은 신초들을 미혹시켜 '그 복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습니다.(마태오복음 24:3-14).

우리의 경우, '시한부종말론'의 극치에 의해 파생되었던 <1992년년의 열풍>(오른쪽 이미지 참조) 이라고 하는 '재림소동'이 불발로 끝난 이후부터는 <개신교>의 성장이 오히려 퇴보상태로 역효과를 맞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번역의 중대함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 이미지를 실은 것은 '역사적 진실'을 일깨우기 위함이지...저자 개인 및 그 단체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드립니다. 그리고 비성경적 내지는 반성경적인 용어들(예/'칠년대환난', '휴거' 등)은 거의가 '예수회 조작품'으로 보면 무난할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심도있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2012.5.25/오후)


'예슈아님의 비유'를 이해하려면, 우선적으로 그 비유를 전하시는 그 대상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예슈아님은 '너희들'과 '그들'로 구분하신다. '너희들'은 '제자들'이요, '그들'은 '무리들'이다.

자, 그러면, 예슈아님은 어떻게 '다시오신다'고 말씀하셨는가?? '헤 파루시아'(η παρουσια)는 예슈아님이 미래에 하늘로부터 '다시오심'을 나타낸다. 다음 본문은 예슈아님이 '다시오심'은 '노에(노아)의 그때'가 되었을 때처럼 '그때'에 성취될 것임을 직접 예언하신 것이다. 이 '노아의 그때'는 <마태오복음 24:14>에서 그 단서가 찾아진다:

    24:14And this gospel of the kingdom shall be preached in all the world for a witness unto all nations; and then shall the end come.

    14 THIS Good News of the Kingdom will be announced thruout the world as a witness to every nation and then the end will come.

    24:14그 왕국에 대한 이 복음(좋은 소식)은 그 세상 전체에 한 증언이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겠는데, 그제야 그 끝이 올 것이다.

    24:14και κηρυχθησεται τουτο το ευαγγελιον της βασιλειας εν ολη τη οικουμενη εις μαρτυριον πασιν τοις εθνεσιν και τοτε ηξει το τελος


'한 증언이 그 세상을 통하여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겠는데' 본 구절에서는 '그 세상'이다. 이는 이미 필자가 수 년전에 '그 세상의 네 가지 용례'를 풀어 놓았으니, 필히 참조해서 깨달아야 한다.  [성경기초주제어풀이 4] '그 세상'  (THE WORLD)의 네 가지 용례 <자세히보기>.


헬라원어로 들어간다:

    24:14και κηρυχθησεται τουτο το ευαγγελιον της βασιλειας εν ολη τη οικουμενη εις μαρτυριον πασιν τοις εθνεσιν και τοτε ηξει το τελος (Stephanes 1555 Greek Text).

위 본문을 영어로 번역한다:

    24:14And will be proclaimed this gospel pf the kingdom in all the inhabited earth for a testimony to all the nations, and then will come to the end. (Matthew 24:14, The Interlinear Hebrew Greek English Bible)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처럼 제대로 번역된 예는 드물다 하겠다. 이미 '그 세상의 네 가지 용례'에 풀어 놓았듯이, 헬라원어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η/G3625)='거주하는 곳'=헬라원어/오이케오(G3611)='~안에 거주하다' 현재수동태 분사여성형=헬라원어/오이코스(G3624)에서 유래='집' '하나님의 영적인 집으로서의 모임'을 의미한다. 공간이 아니다. 바로 '종말의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η)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는 자

죄가 거주하는 자

구절

본문

구절

본문

로마서 8:9 ①하나님의 영이 거주하는 자 로마서 7:17 ①죄가 거주하는 자
로마서 8:11 ②크리스투의 영이 거주하는 자 로마서 7:18 ②악한 것을 생각하는 자
코린토전서3:16 ③성령님이 거주하는 자 로마서 7:20 ③크리스투의 영이 없는 자
코린토전서7:12 ④신랑과 함께 사는 자    
코린토전서7:13

⑤신부와 함께 사는 자

   
티모테우스6:6 ⑥빛이 거주하는 자    


여기에서 '그 세상' 곧 '테 오이쿠메네'(τη οικουμενη)는 '종말의 대상'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종말의 때에는 '두 가지 대상'이 중심을 이루는 테마이기도 한 것이다. 예슈아님이 전하시는 종말의 때의 징조들과 사건들 중에는 ①'하나님의 영이 거주하는 자'는 곧 '너희들'에게 전해주시는 메시지가 있음이요, ②'죄가 거주하는 자' 곧 '무리들'에게 전해주시는 메시지 이 두 가지로 대별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그래야만, 성경풀이에서 혼돈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실존하는 '그 말씀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서...구미(학설)에만 당기는 것들만 떼다가 뒤죽박죽 해놓으니...크리스투교 2000년 역사상 단 한번도 성경적인 '종말주제'가 풀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을 비유들로서 전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들을 전해주시는 그 대상이 '너희들' 곧 '제자들'이냐 아니면 '그들' 곧 '무리들'이냐에 따라서, '다시오심'(헤 파시아)는 또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

①도적같이 오심 ㅡ 구원의 표상이다. 노아(노에)의 그 때처럼 아무도 모르게 다시오신다!! 잠든 자는 도적이 언제 왔다가 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깨어 있는 자는 도적이 다녀간 그 때를 알게 된다. 바로 <열 처녀의 비유>이다. 이 종말의 때에는 '노아' 곧 '잃은자'인 '참십일조'를 찾으신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다만, 노에(노아)가 '그 방주'를 만들어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그의 여덟명의 가족이 '그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도적같이 오심의 대표적인 구절이다. 단, 이 도적같이 오심의 '그 때 '(그 시각)은 세상 모두(노아 가족 포함)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노아 가족만이 건짐(구원)을 받았다.

②공개적으로 오심 ㅡ 심판의 표상이다. 하늘로부터 '구름들과 함께' 다시 오신다!! '증인들'과 함께 오신다. '구름타고 오심'은 '엉터리 번역'의 소산이다. 이 때의 다시오심은 눈에 보이게 이루어질 것이다 (요안계시록 1:7). 그러기에 예슈아님의 다시오심의 '그 때는 모르게' 오신다. 그 대상이 '그들' 곧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왠 말인가!! 기쁨과 환희 대신에, '슬피우는 통곡'만이 남는다. 자신의 교만한 겸손감에 빠져, 떨어져나간(네필림)이 되어 버린 종교인이기 때문이다. 진리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4:36But of that day and hour knoweth no man, no, not the angels of heaven, but my Father only. 24:37But as the days of Noe were, so shall also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be. 24:38For as in the days that were before the flood they were eating and drinking, marrying and giving in marriage, until the day that Noe entered into the ark, 24:39And knew not until the flood came, and took them all away; so shall also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be. 24:40Then shall two be in the fiel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24:41Two women shall be grinding at the mill;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Matthew 24:36-41, King James Version)

    24:36그러나 그 날이나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 안에 있는 그 사자들(천사들)도 결코 모르고, 오직 그 아버지만 아시도다. 24:37그 사람의 아들의 그 오는 것에는, 노에(노아)의 그 때 안에서와 같이 똑같게 되겠다. 24:38그 홍수가 있기 전에, 노에(노아)가 그 방주 속으로 들어가는 그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있었고 마시고 있었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었고, 24:39그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갈 때까지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그 사람의 아들의 오는 것도 그렇게 되겠도다. 24:40그 때에 두 사람이 그 밭 안에 있게 되겠다, 한 사람은 취해질 것이요, 다른 한 사람은 뒤에 남겨지겠도다. 24:41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으면, 한 사람은 취해질 것이요, 다른 한 사람은 뒤에 남겨지겠도다. (마태오복음 24:36-41, 예슈아의유언, 화중광야역)



오로지 '그 날이나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 안에 있는 그 사자들(천사들)도 결코 모르고, 오직 그 아버지만 아시도다.'에서 노아 처럼, 예호바 하나님의 당부를 그대로 순종, 준행하였던 노아처럼, '의인'을 찾으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 구원의 '그 때와 그 날'인 것이다. 이는 바로 <크로노스> 안에서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이루어진 '구원의 파노라마'(The Redemptive Plan)이므로,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 불가항력의 영역인 것이다. 이것은 '노아 같은 의인'에게만 허락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죄인'인 인간은 오로지 '예슈아님과의 신비적 연합'을 통해서만이 '의인'이 될 수 있음이니, 오직 '선택적 의지'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칫 교만감에 빠지면, '슬피울고 이를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 것임을 깨우쳐주시는 비유들인 것이다. 이렇게 비유들로 전하시는 목적이 있다. 예슈아님이 자신의 제자들인 '너희들'에게는 '하나님의 그 왕국의 그 비밀을 깨닫도록 허락되었다'고 하신 반면, 그 동일한 비유들을 동시에 전해주어도, 다시 말해서 '그들'인 '무리들'에게는 '보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위함이다'라고 분명히 선언하신다. (마태오복음 13:10-13; 이사야 6:9-10). 이것이 성경풀이의 '역설'인 것이다. 어느 구절에 가서는 '안다'고 했다가, 또 어느 구절에서는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전해지는 그 대상들 부터 구분해야 알게 되는 것이 성경기록의 묘미(妙味)임을 감히 간증하는 바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간다:

    3:10네가 나의 말을 끈질게도 준행해 왔기 때문에, 그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온 거주하는 세상에로 다가오고 있는 시련의 그 때로부터 내가 너를 지켜주겠도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본문은 '온 거주하는 세상'(테스 오이쿠메네스/της οικουμενης )는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는 자'인 것이다. 이러한 대상에게는 다가오고 있는 힘든 '시련의 때'에도 지켜주시겠다는 예호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이 약속은 이미 예슈아님이 예언하신 말씀이다:

    24:22And except those days should be shortened, there should no flesh be saved: but for the elect's sake those days shall be shortened. (Matthew 24:22, King James Version)

    24:22만일에 시련의 그 날들을 위하여 끝맺어짐이 없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끝맺어지겠도다. (마태오복음 24:22, 예슈아의유언, 화중광야역)


<마태오복음 24장>은 <다니엘 12장>이 예언한 사건들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다니엘의 예언처럼, <마태오 24장>의 사건들은 '1335일' 후에 완전히 끝맺어질 것이라고 풀이해 왔다. 이것은 <다니엘 12:7>의 '한 때 두 때 반 때'로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파생된 계산이었다. 여기서부터 '예슈아 그 메시야'의 '그 다시오심'은 엄청난 괴리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 계산법이 그대로 <요안계시록 12:14>에서도 '한 때 두 때 반 때'로 번역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3년반'과 '1335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엄청난 '오류'를 범한 것이니...<반성경적 풀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깊이 연구하여서 <요안계시록 12장> 마무리 번역에서 밝혀낼 것이다.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은 오리지널 <셉투아진트>(Septuagint) 곧 <70인역>(LXX)이 입수된다면야...그런데 그 오리지널 역본들은 로마 황제들에 의해서 불살라졌다고 한다. 몇권의 오리지널 필사본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그 진본 곧 '코이네헬라어' 원본은 지금 로마 바티칸의 <지하서고> 안에 숨겨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행히 그 원본을 중심으로 해서 필사 혹은 인쇄되어 발간된 일부 사본들이 이 세상 어느 곳인가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에...예호바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으로 반드시 밝혀질 때가 오리라 믿는 것이다. <한 때 두 때 반 때>가 아니라 <한 때 여러 때 반 때>로 번역되어야 하는데...그 성경적인 근거를 입수하기가 이토록 어렵다.

아무튼 '때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먼저 밝혀내야 한다. 따라서 <다니엘 9:27> 속에는 '마지막 7년'이란 말이 없다. 이 '칠년 대환난'은 크리스두교 시발 이후로 여러 학자들이 특히 16-17세기에 로마카톨릭교의 '교황'이 바로 '적크리스투'임을 입증하는 '청교도들'이 밝혀낸 자료들을 희석시키려고, '제롬'(Jerome)을 불러들여서, 성경을 완전히 변질 번역시켰으니, 이것이 바로 <라틴불가따역>(Latin Vulgate)인 것이다. 한편, 예수회는 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성경 어느 기록들 속에도 없는 이상한 '교리'(학설)을 조작하였으니, 이를 받아들인 '자유주의 신학'을 통하여 한국에도 직수입되었던 것이니...이것이 바로 20여년전에 이 땅을 달구어 놓았었던 이른바 불발로 막을 내렸던 <1992년 10월의 열풍>이라고 하였던 <시한부종말론>이었던 것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칠년대환난의 정체>를 밝혀낼 것이다.

[성경에 계시된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

<신언약 성경> 속에는 '그 세상의 그 끝'과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계시록이 기록되어 있다:

1. 공관복음서의 소계시록 (마태오복음 24:3-42; 마르코복음 13:3-33; 루카스복음 21:7-36)

<마태오복음 24장>을 중심으로 예슈아님이 공생애 중에 '제자들'에게 '그 세상의 그 끝'과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의 그 내용과 그 순서를 계시해주셨다.

2. 성도 파울로스(파울/바울) 서신의 계시록

성도 파울로스(바울)이 회심 후, 그분의 서신서들 여러 곳에다 '그 세상의 그 끝'과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에 관하여 기록하셨다.

3. 성도 페트로스(베드로) 서신의 계시록

성도 페트로스(베드로)의 서신들 속에도 짧으나마 '그 세상의 그 끝'과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에 관하여 기록하셨다.

4. 성도 요안이 파트모스(밧모) 섬에서 받은 계시록

지금 필자가 마무리 번역 중인 <요안계시록>이다.

이 네가지 계시들은 '한분이신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그 특징들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지만, '그 내용'에 있서서는 일치한다. 예슈아님의 '다시오심'의 순서도 일치한다.

이것을 떼어서, 아니 뜯어다가 토막을 내어 제멋대로 연구하다 보니, 학설은 수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슈아님이 다시 오실때까지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은 학설이 아닌 것이다.

크리스투교(그리스도교) 2000년 동안 이러한 사실을 눈감아 왔기 때문에 '그 세상의 그 끝'과 '예슈아 크리스투의 다시오심'에 관하여 숱한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1992년 10월 28일> 전후로 <시한부종말론>에 사로잡혀 영적으로 훼파당하였던 쓰라린 경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영적 혼돈'을 일으킨 배후에는 '폴리탄'(Paul Lee Tan)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베트남계 출신의 미국인으로 본업은 화가이다.

<Paul Lee Tan, A Pictorial Guide To Bible Prophecy, Texas: Bible Communications Inc., 1991, Cover & p.77> (화중광야 소장).
 
 
<Created/20120523> <Updated/201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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