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곡> '山은 오를수록 높으이 江은 건널수록 깊으이'
작곡/ 정재선 ㅡ 채보/ 안연숙 ㅡ 편곡ㆍ연주/ 정동윤


[Dembo's Unforgettable Essay] [5] '신자유주의 ㅡ 자유민주주의'로 가면을 쓴 '프리메이슨'의 집요한 한반도 점령을 막아내야 한다!!

글/ 정재선 목회자


어제는 긴장과 숨가쁜 정정(政情)이 위기로 감도는 하루였다!! 그렇게 '몰래!! 몰래!!' 처리하면 끝날 줄 알았던가?? '서울경제' 인터넷판은 '박정희도 경악할 일이 한국에 벌어졌다'고 보도하였다. <자세히보기>.

비록 오늘 오후 4시를 기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조인이 연기되었다고 전해졌다. <한겨레/자세히보기>.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끝난 상태가 아니다!! 다만 조금 미뤄졌을 뿐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태를 보면서...마치 1905년 '을사늑약'의 재판(再判)이 벌어지는가 싶어 무척이나 긴장하게 되었다!! '을사늑약'이 국제법상 격식을 갖추지 아니하였고...강제 조인의 형식을 갖추었기에...'무효화'를 부르짖었지만...일제는 일단 그것을(가짜 조약) 미끼로 하여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해가면서 한반도 점령에로 박차를 가하였고, 급기야는 1910년 8월 29일에 '한일병탄'이라고 하는 '한민족'(桓民族)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오명을 남기고 만 것이다. 조작이건 강제이건 '발효'되면 '조약'이나 '협정'이란...그것으로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다. 훗날에 이르러 그러한 역사의 잔영은 완전히 치유받지 못한다. 이것이 예호바 하나님이 허락하신 '카이로스' 곧 인간에게 주어진 흘러가는 역사시간의 단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기에 10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한반도 안에는 아직도 그 때 일제의 병탄과 통감의 상처 투성의 잔영들이 곳곳에 널려져 있는 것이다.

For whether is greater, he that sitteth at meat, or he that serveth? is not he that sitteth at meat? but I am among you as he that serveth. (Luke 22:27, King James Version)

식탁에 앉아있는 자와 시중드는 자 가운데 중에서 누가 더 크더냐? 식탁에 앉아있는 자가 아니더냐? 그러나 나는 시중드는 자로서 너희 가운데 있다. (루카스복음 22:27, 킹제임스 화중광야역)


그 동안 많은 전문가들(학자/지식인)이 이에 관한 저서들을 발표해 왔지만...속시원한 해답을 주는 저서는 그리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 글을 계속해서 정리하는 중에...방금 이런 책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2004년에 발행된 한글 번역서이다. 서명은 <제국의 시선>이다.

◆입수중...크리스투의 가르침에서 발원된 '민본주의'(民本主義)는 제국주의 '킬러'였기에...

이 책의 저자요 일본의 대동아전쟁 전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이며,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기수였던 '요시노 사쿠조'가 과연 보편적 가치 위에서 조선의 독립을 생각하였는가??

이 책의 '시놉시스'는
'서구의 중압 속에서 근대 민족통일국가로 출범한 일본이 가진 첫번째 대외적 관심사는 ‘조선문제’였다. 중국의 영향력 밑에 있는 조선을 어떻게 하면 일본의 지배권에 편입시키고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서구의 중압 속에서'라는 표현 대신에 '대영제국'(영국)의 압박 속에서'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한결 '역사적 진실'에 부합되는 것일턴데...이토록 역사가들은 '그 진수'를 살짝 비켜나가 버린다. 어찌해서 그들은 한결같이 '비밀결사'의 종주국인 '영국'의 실체를 밝혀내지 않는가?? 아니면 밝혀내지 못하는 것인가??

이 책 역시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면...이 책 역시 필자의 견지에서는 한낱 '종이'에 불과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물론 조선에 대한 일본의 이러한 야심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 문제는 이미 '도쿠가와' 막부 말기부터 논의돼 왔었다. 그러나 ‘정한(征韓)’이라는 문제를 구체적 정책으로 실천하려 한 것은 '메이지유신'과 더불어 들어선 새로운 체제였다. '죠슈5걸'을 매수하였고, 그들을 런던으로 유인해서 그들에게 '세뇌'시킨 것은 이미 필자가 여러 글을 통해서 밝혀낸 바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착수된 '메이지유신'의 핵심은 바로 '한국의 찬탈'이었음을 제시해준다 하니...(또 한번 믿어 보고서)...이 책을 입수 중에 있다.

참고로,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デモクラシー /Taisho Democracy)는, 일본의 유명한
정치학자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1878-1933)가 1905년 '러일전쟁'을 관망하던 중에...'민본주의'(民本主義)를 기반으로 '정당정치체제 성립'을 태동시킨 이론이다. 한 마디로, '제국주의에 반기를 든 하나의 이념적 이단아'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배 정책이 노골적으로 수행되던 1916년에 '나 개인의 생각으로는 이민족 통치의 이상은 그 민족의 독립을 존중하고, 또한 그 독립의 완성에 의해 결국은 정치적 자치를 제공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데 있다고 본다.'고 말하였다. 이에 당시 조선총독부 중추원 서기관 '고마쓰 미도리'는 잡지 <중앙공론>에 '조선 통치의 진상-요시노 박사의 비판에 답한다'는 글을 실었다. 한국인에게는 독립국가의 역사가 없으며, 중국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병탄(병합)에 의해 일개 상점 주인의 입장에서 일약 부호의 양자가 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토록 앞에서 별이별 '공론'을 내세워 가면서 '깁론을박' 해봤자, 몸체(몸통)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애당초 초기부터 '그 몸통'인 '대영제국'(영국)의 시나리오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더라면...그토록 수 많은 살생과 파괴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임을 밝혀두는 것이다.


<이미지제공/'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기념관>. 위 사진은 1897년(明治30년) '부젤 ' 여선교사(미국 연합크리스투교회 파송)가 주도하는 성경공부 학생들이다. <뒷줄 왼쪽부터> 伊藤宅治、守屋孝蔵、木幡富治、土井亀之助、栗原基. <중간줄 왼쪽부터> 内ヶ崎作三郎、井上元成、ブゼル先生(부젤 선생)、吉野作造(요시노 사쿠조)、中島祐、小西重直. <앞줄 왼쪽부터> 渡邊幸次郎、島地雷夢、平塚(長塚?)廣義、神谷健夫. '부젤' 여선교사 바로 오른쪽이 '요시노 사쿠조' 중학생이다.

'요시노 사쿠조'의 일본 '메이지제국'의 '반정한론'(反征韓論)은 바로 이러한 성경공부와 여선교사의 가르침을 통해서 발아된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면 별도의 주제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이와 동일한 시대에 광녀 한국에서는 이러한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정책에 반기를 든 인물이 태동되지 못하였을까?? 오히려 '개화'를 빌미로 하는 일본의 공작에 사로잡힌 일부 청년들이 조국의 '정권'을 무너뜨히려는 역모(갑신정변)를 꾀한 것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역사적 진실'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하기에 이른다...

필자가 누누이 밝혔듯이, 일제의 한국 침탈은 전적으로 '자의'가 아니라, '타의'(예수회/바티칸의 속국 영국)에 의한 '원숭이식' 침공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의 천황도 '꼭두각시(더블/가짜)였다는 설(??)'이 타당성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100여년전의 한반도 안에서 벌어진 '무단정치'의 잔영은 일본의 상전인 영국의 허락이 없이는...더 나아가서는 영국 역시 상전인 바티칸의 승인이 없이는...일본의 '독자적인 처리'(강제징집자/위안부 보상 등등)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우리 한민족은 민족적인 자존의 기반 위에서...그러한 '꼼수들'(??)에 속지 않도록 긴장과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지난 100여년전의 한반도 안에서 자행된 '천인공로할' 악행을 도금해 버리는 식(덮어 버리는, 뭉개버리는 식)의 비열한 작태들(시군 통폐합/ 새 집주소 바꾸기/ 자동차 번호 미국식으로 바꾸기 등등)이 집요하게 공작되어 온 것이 오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저들에게 어떠한 진정한 '용서'를 구하기엔 불가능한 상태이며...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한민족'(桓民族)이 예견치 못했던 '꼼수들'이 벌어질 것임을 경계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은 그 때와는 다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빚을 청산했다고 지금까지 '억지'를 부려오고 있는 것이다. 과연 1965년의 '한일협정'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한일협정'은 독도 문제를 유보하는 등 일본과의 과거사를 명확하게 청산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일국교 정상화의 빛과 그늘/자세히보기>.

필자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아아!! 역시 그랬었구나!!' 하고 아예 말을 잇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래 사진은 박정희 장군이 <5.16 군사쿠테타>를 일으킨 후 3년간 군정을 치룬 후 민정 이양 후 첫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1964년 12월 6일부터 10일간 서독을 국빈 방문한 내용이다. 귀국 길에 이동원(李東元) 외무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영국, 이탈리아, 바티칸, 인도, 말레지아, 타이완, 그리고 필리핀 등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게 된다.

아래 사진은 1964년 12월 19일(현지시간) 이동원 외무장관이 바티칸으로 교황 '바오로 6세'를 알현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였다는 신문기사이다. 필자는 이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1961년대 초반부터 1965년까지는 '가뭄'도 심하였고, 가난 속에 찌든 삶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맘 때면 '보리고개'라고 해서 '쌀밥'은 아예 생각도 못하였고, '보리밥' 그것도 '눌른보리밥'도 감지덕분한 때였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는지...모른다. 앞의 두 정권(제1공화국/제2공화국)의 정치인들이 워낙 정치를 잘 한(??) 덕분에...말이다...

<이미지설명> <오른쪽> 1964년 12월 19일(현지시간) '이동원 외무장관이 교황 바오로 6세의 서가를 방문,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 자리에서 이 외무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를 교황에게 전달하였다. (경향신문/1964. 12.21 발행). <왼쪽> '이동원 외무장관'의 저서에 실린 사진들이다. <李東元 저, 崔雲祥 역, '韓日條約締結秘話', 東京:圖書印刷, 1997> (화중광야 소장). <아래쪽> '휘호하시는 박정희 대통령' <송효빈, '가까이서 본 박정희 대통령', 서울:휘문출판사, 1977, p.108> (화중광야 소장)


그런데...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신 분이 있다. 그분은 필자의 모교 중앙대학교 교수 출신이셨다.
바로 백영훈'(白永勳)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이시다. (위 이미지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 중간에서 통역중이신 분). 그분의 서독 광부와 간호사의 역경 증언을 듣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필자가 그분을 직접 뵌 것은 모교 기획실에 근무할 때(1978-1980)였다. 그 때는 '안성캠퍼스' 조성 작업에 건축공학과의 '박홍' 교수님과 디자인학과의 '신용태' 교수님...그리고 사진학과의 'OOO'(갑자기 이름이 기억 안남) 교수님들과 팀웍을 이루어 머리를 맞대고 추진중이었다. 안성캠퍼스 조경의 기본 골격은 일본의 '스쿠바대학교'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였다. 에너지절약을 내다보고 한 중앙집중식 건물 구조였다. 필자의 직속 'Y' 기획과장님과, 'H' 교수님, 'L' 교수님도 같은 모임의 회원이셨다. 그리고 이동원(李東元) 장관님도 같은 모임의 회원이셨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젊은 나이에 이 분들이 나누시는 담소들을 통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의 동태를 나름대로 정확하게(100%는 아니겠지만) 알게 되었다!!

'제2공화국'의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방문을 비판하셨다: '박대통령 서독방문은 인기정책' (동아일보/1964.12.17 발행). 아울러 오늘날에도 그와 유사하게 부정적으로 비평하는 글도 가끔 만나게 된다. 그러한 비판을 가지고 논하고자 함이 아닌 것이다. 그 당시 서독으로 '광부'나 '간호사'로 가는 일은 퍽이나 선호도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만치 살아가기가 힘든 때라서...

지금에 와서 위 이미지 중 <왼쪽 상단>의 이미지에서 '이동원 장관과 교황'과 함께 찍은 이 사진이 무척이나 껄끄럽게 느껴졌다: '아, 그 때 60여년전에도 바티칸이 있었구나...5.16군사쿠테타가 그냥 성공한 것이 아니었구나...무언가 일반 민초들은 알 수 없는 '백업'이 있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필자 개인의 착각일 수도 있음)...어찌해서 '한반도'는 이리도 조용할 날이 없었구나...' 물론 서독을 방문 중인 박정희 대통령이 이동원(李東元) 외무장관을 통해서 '특사자격'으로 바티칸을 방문하도록 하였겠지만...그 전해진 '서신'의 내용은 아무도(혹여 이 외무장관은 알았을까??) 몰랐을 것이다...그리고 그 친필 서신은 바티칸 '지하서고' 안에 고스란히 보관 중(??)일 것이다.

그 후로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높이 들으셨고...'한민족'(桓民族)의 장래는 외세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나서 '자립'(강한 국가건설=핵무장)해야 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것임을 절감하셨을 것이고...그 결과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10월 유신의 보상인 암살의 탄흔을 맞으신 것(??)' 이라고 필자 나름대로 조용히 진단해 보았다!!

한편, 2011년 3월 27일(일요일) 조지 부시(전 미 대통령)가 왜 비밀리에 청와대를 다녀갔는가?? 무슨 공작을 지시하였는가?? 이 기사는 공식으로 공개된 것이 아니었고...어느 포털에서 올린 짧은 내용을 지금에 기억을 되살려 본 것이다!! 필자는 '조지 부시' 이 자를 경계하라고 권하는 바이다!! ㅡ 이 자가 집권 중에 한국에는 '네오콘'(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도입이 적극 추진되었고...이로써 오늘의 한국 학교교육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하단 자료를 필독하시기 바란다!! 거기에다 'UN 아젠다 21' 곧 '무한경쟁'과 '다문화주의'까지 합세하여 '한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키는데 '올인'해 오고 있다. 그 조직의 수장이 바로 한국 정부 관료출신이다. 왜 그를 그 자리에 앉혀 놓았는가!! 뻔하지 않는가...나 같으면 더 늦기 전에...내려 온다!!...'한민족의 정기'는 그 어느 누구도...그 어떤 조직도...굴복시키지 못한다...'역사적 진실' 속에 잠겨져 있는 기록들을 살펴보아라...얼마나 긍지가 넘치는 민족인지...를...섣불리...외인들의 '꼼수'에 무조건 '오케이'하다간..그러한 지도자는 만고의 반역자로 낙인찍혀 버릴 것이다...

앞으로 남아있는 2012년 반년은 앞을 에측하기 힘들 정도로 '안개정국'으로 몰아세울 것이다. 금방이라도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위장전술'(False Flag)을 펴가면서...'꿩이 아니면 닭'이란 말이 있듯이...기득권측은 '제3의 인물'을 내세우려고...사전에 모든 공작을 완료한 것으로 판단된다. 바로 'NGO 집단'이 내세우는 이 대선후보가 다시 한번 '스마트폰(트위터)의 영웅'으로 드러날 것이니...이처럼 '자격미달'에다 '제조되어지는'(manufacturing) 곧 '꼭두각시'가 두 번 다시는 이 땅에서 발을 디디고 정치를 못하도록 '대각성운동' 곧 <2012 대칸족이여 일어나라!!>라고 하는 '영적 각성운동'을 펼쳐야 할 때가 이른 것이다. 아울러 진정으로 '한민족'(桓民族)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제2의 박정희' 같은 지도자는 언제 등장하려나...택시를 타고 기사님들과 대화해보면...이러한 공통점이 소리없이 맴돌고 있는 오늘날의 '민심'이라고 자인하련다...지난 두 달 여동안 타들어가는 이 강토의 대지가...모처럼 오늘 빗물을 머금고 있다...샬롬!! (2012.6.30/6월이 가는 밤에)

 
 
<Created/20120630> <Updated/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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