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선목회자의 성경기초주제어풀이4] '십자가' 인가 아니면 '그 나무' 인가? [1]

십자가의 진실은 무엇인가?

글/ 정재선 목회자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물려받은 한 가지 교회의 전통은 '십자가'(Cross)와  '십자가에 못박다'(Crucify) 용어의 채용이었다. 그런데 이 용어들은 신약성경의 헬라원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훗날 상고해 보니, 이 용어들은  헬라원어 명사 <스타우로스>(σταυροζ)와 동사 <스타우로오>(σταυροω)의 오역이었음이 밝혀졌다. Vine의 사전 Expository Dictionary of New Testament Words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STAUROS(σταυροζ) denotes, primarily, an upright pole or stake...Both the noun and the verb stauroo, to fasten to a stake or pole, are originally to be distinguished from the ecclesiastical form of a two-beamed cross. The shape of the latter had its origin in ancient Chaldea (Babylon), and was used as the symbol of the god Tammuz (being in the shape of the mystic Tau, the initial of his name)...By the middle of the 3rd century A.D. the churches had either departed from, certain doctrines of the Christian faith. In order to increase the pretige of the apostate ecclesiastical system pagans were received into the churches apart from regeneration by faith, and were permitted largely to retain their pagan signs and symbols. Hence the Tau or T, in its most frequent form, with the cross piece lowered, was adopted...(p.256-257).

    '두 개의 막대로 된 십자가 모양은 고대 칼대아에서 기원한 것이며,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탐무스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이는 탐무스의 첫 글자인 신비한 글자 타우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주후 제 3세기 중엽에, 여러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어떤 교리를 버렸거나 곡해했다. 배도한 교회 제도의 위신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이교도들을 믿음의 갱신 없이도 교회에 받아들였으며, 이교도들의 표시와 상징물들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게 하였다. 그래서 가장 흔한 형태의 타우(Tau) 혹은 티(T)에서 가로 선을 낮춘 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W. E. 바인 편, 신약용어 주석사전, An Expository Dictionary of New Testament Words, 1962, p.256)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의 '두 바빌론'(The Two Babylons)에는 십자가의 기원이 언급되어 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정체를 명약하게 제시한 것은 바론 포르첼리(Baron Porcelli)의 'The Cross: Its Origin And Significance'(십자가 형상의 역사와 비밀, 그리고 그 사용)일 것이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바이블뉴스, 1992. 6월호, p.10-32):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2천년 전에 종교적인 상징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그리고 유럽에 존재했었다.

그러나 필자는 6년간 <킹제임스성경>(1655년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십자가'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 용어를 버리기에 이른 것이다. 처음에는 거북스럽고 어색해 보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이 용어를 사용함이 이상타 할 정도로 성경에로 다가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용어가 기독교 안팎으로 범람하고 있어, 이 작은 글이 마치 계란 한 개로 저 엄청난 커다란 체제/조직에다 던져지는 것 같지만, 오히려 기쁨이 넘침은 그 거구의 체제에 계란의 흔적이 남는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 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서, '십자가'가 이방종교의 산물로서 기독교 안으로 스며들어 온 증거들이 넘칠 정도이다. 그러한 방향에다 필자는 이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이 글을 올리는 주 목적은 '왜 십자가 용어를 사용해서는 비성경적인가?'에다 초점을 두고 진행할 것이다. 앞으로 몇 차례 올려질지는 지금으로서 확언하기가 힘들다. 길어야 5회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본문을 전개하기에 앞서, 서론적 위치에서 성경 예언 중에 '황폐함의 그 가증함'(The Abomination Of Desolation)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풀어본다:

24:15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mind it. 24:16Then let those in Judea, flee unto the mountains: (Matthew 24:15-16, 휘스톤역본)

24:15그러므로 너희가 그 선지자 다니엘을 통하여 전해진, 황폐함의 그 가증함이 그 거룩한 곳 안에 선 것을 보게 될터이니, 읽는 자는 그것을 유념하라. 24:16그 때엔 유대아 안에 있는 자들로 그 산들을 향하여 도피토록 하라. (마태복음 24:15-16, 휘스톤역본 화중광야역)

위 본문 <마태복음 24:15-16>말씀은 예수님이 손수 예언하셨으며, 아직도 미완료 상태로서 마지막 때가 이르면 성취되고야 말 것이요, '황폐함의 그 가증함'이 범람하는 시대이니 이를 대비하라는 말씀이다!!

위 본문 중에서 '황폐함의 그 가증함'이란 <다니엘 8:13; 9:27; 11:31; 12:11>과 연관된다:

    12:11And from the time that the daily sacrifice shall be taken away, and the abomination that maketh desolate set up, there shall be a thousand two hundred and ninety days. (Daniel 12:11, KJV)

    12:11그리고 그 매일 희생제가 없어질 것이고, 황폐케하는 그 가증함이 세워질 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이 될 것이라. (다니엘 12:11, KJV화중광야역)

특히, <다니엘 9:27>은 미완료된 마지막 예언인 것이다:

    9:27And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and in the midst of the week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

    9:27그리고 그가(그 통치자) 그 많은 사람들과 한 주간 동안 그(한) 언약을 확정할 것이라. 그리고 그 주간의 절반에 그가 그 희생제와 그 예물을 금지시킬 것이요, 가증함들의 날개를 편채, 그가 그것을 황폐케하리니, 곧 소진될 때까지 할 것이요, 그 작정된 것이 그 황폐케 한 자 위에 쏟아부어지리라. (다니엘 9:27, KJV화중광야역)

본 구절은 <마태복음 24:15>과 직결된다. 우리 주님은 '그 가증함들'이 '거룩한 곳 안에' 곧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성전 안에 서게 될 것이라 예언하셨다. 이것은 작은 뿔의 전형인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의 하나인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예루살렘 정복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소는 더렵혔으나, 그것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는 '그 작은 뿔'의 예표는 될지라도, 이 예언의 성취자는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 가증함'(The Abomination)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상'(idol)에다 예호바(JEHOVAH)의 이름을 붙여 '신격화'시킴으로써, 예호바께서 가장 증오하시는 존재 그 자체를 '가증함'이라 일컫는다. 예호바가 계셔야 할 그 자리에 '우상'이 예호바의 가면을 쓴 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용어는 히브리원어 '쉭쿠즈'(H8251)로서 '가증한 것' '우상'으로서, 동사 '샤카츠'(H8262)로서 '몹시 싫어하다, 더럽히다'에서 유래되었다.

다음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다 (이사야 44:9-20) (톰슨성경, 구약, 기독지혜사, p.1020-1021).

우상을 만드는 자들이 우상을 만들 단단한 재료를 확보하려고 백향목, 삼나무 혹은 상수리나무를 준비하여 심고 기른다(이사야 44:14).

사람이 가꾸어 성장한 나무를 땔감(火木/한글개역)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땔감용 나무로 우상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이사야 44:15).

나무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하나의 복주심이요,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며, 희생제물을 요리하는데 쓰도록 허락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무생물을 깎아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이사야 44:16).

이 우상에 완전히 넋이 빠진 우상숭배자들은 나무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만든 후에, 그 만든 우상 앞에 경외심을 품고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자기의 소원을 기원하면서, 온갖 충성과 정성을 바쳤으니, 이 얼마나 가증함의 극치인가?(이사야 44:17).

우상숭배자들의 눈이 회반죽을 바른 것처럼 어두워, 자신들의 이같은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무를 가지고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간구함으로 하나님 앞에 크나 큰 죄악을 범하였던 것이다(이사야 44:18):

    44:19And none considereth in his heart, neither is there knowledge nor understanding to say, I have burned part of it in the fire; yea, also I have baked bread upon the coals thereof; I have roasted flesh, and eaten it: and shall I make the residue thereof an abomination? shall I fall down to the stock of a tree? 44:20He feedeth on ashes: a deceived heart hath turned him aside, that he cannot deliver his soul, nor say, Is there not a lie in my right hand? (Isaiah 44:19-20, KJV)

    44:19'그리고 그의(우상의) 마음 속에는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지식이나 명철도 없으므로. 내가 그 일부를 불로 태웠으니, 실로, 내가 그것의 숯들 위에 빵을 구웠고, 내가 고기를 구웠고, 그것을 먹어왔도다. 그리고 내가 그것의 나머지로 한 가지 가증함을 만들 것이냐? 내가 한 나무의 토막에 엎드릴 것이냐?'고 말도 못하는도다. 44:20그는 재들을 먹고 살 것이니, 한 가지 미혹된 마음이 그를 벗어나게 해 왔으니, 그는 자기의 혼도 구원할 수 없으며, '나의 오른 손 안에 하나의 거짓이 있지 않으냐?'고 말도 못하는도다. (이사야 44:19-20, KJV화중광야역)

그리고 우상숭배자들은 그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명철함도 없기 때문에, 그들의 어리석음은 극치를 이루었다(이사야 44:19).

인간이 하나님의 그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였고 가르치는데,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을 섬길 때 '영적 만족'을 누림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백성들(로마서 1:21-23. 에베소서 4:17)은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재를 먹은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만족한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줄 모른다. (이사야 44:20).

이상은 우상숭배로 인한 우상숭배자들에게 내려질 형벌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영적 이스라엘' 곧 '참십일조'에게는 우상숭배를 버리면, 죄의 사하심과 더불어 구속의 은총이 내리게 된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 중 하나의 주제인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 피흘리심으로 모든 희생제가 마침이 되었는데도(히브리서 9:12), 아직도 '죽은 행실들'(히브리서 9:14)로부터 벗어나지 못함이 어찌 가증하다 하지 않겠는가!!

    9:11But Christ being come an high priest of good things to come, by a greater and more perfect tabernacle, not made with hands, that is to say, not of this building;

    9:11그러나 그리스도는 장차 임할 좋은 일들의 한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들로 짓지 아니한, 말하자면 이 창조(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더욱 크고 더욱 완전한 하나의 성막을 통하여 오셨으니,

    9:12Neither by the blood of goats and calves, but by his own blood he entered in once into the holy place, having obtained eternal redemption for us.

    9:12염소들과 송아지들의 그 피를 통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피를 통하여 단 한번 그 거룩한 곳(그 성소) 안으로 들어가셨고,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대속(代贖)을 이루어 놓으셨도다.

    9:13For if the blood of bulls and of goats, and the ashes of an heifer sprinkling the unclean, sanctifieth to the purifying of the flesh:

    9:13따라서 부정한 자에게 뿌려지는 수소들과 염소들의 그 피와, 한 암송아지의 그 재들도 그 살을 정결케하여 거룩케 하거늘,

    9:14How much more sha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without spot to God, purge your conscience from dead works to serve the living God? (Hebrews 9:11-14, KJV)

    9:14하물며 그 영원하신 영님(성령님)을 통하여 자신을 흠없이 하나님께 드려지신 그리스도의 그 피가, 어찌 죽은 행실들로부터 너의 양심을 정결케 하여,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겠느냐? (히브리서 9:11-14, KJV화중광야역)

예수님의 그 피가 구약의 개념으로 죄나 씻어주는 피가 아니라, 새 언약/새 유언을 위해 흘려지셨다(히브리서 9:15).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이 살리셨다(에베소서 2:1-10).

율법으로 살/육에 죄를 정하사 살/육을 찢으셨고, 율법에 대하여 죽으셨으므로 죄 자체를 멸하신 것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다.

그것이 '그 나무'에 달리사 죽으신 대속의 능력이다. 그 진리를 알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 고난의 죽음'을 체험할 때, 죄없이 함을 받고 영존하는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그 왕국이 되고, 죄와 상관없이 두번째로 나타나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리에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그 피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홍해건넘), 새 언약/유언의 그 피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주하며, 내 마음판에 새겨지는 그 말씀을 통해, 죄 없이함을 받고(요단건넘),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그 왕국에 입성하게 된다.

그것이 성령님으로 깨달아져서 완전히 죄에 매인 행위의 탯줄이 끊어져서(가정예배 가이드12/☞보기), 내 속에서 하나님의 그 왕국이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주하면서 주님과 한 몸을 이루는 '신비적 연합'(THE MYSTICAL UNION)인 것이다. (요한복음 17:20-23).

내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죽으셨고, 내가 받을 심판은 예수님이 다 받으셨다. 여기서 그치면, 정말로 '그 고난과 죽음의 나무'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보완 작업중...]


[부록1] 'Coexist'(공존/共存) 속의 디자인 '가증함의 십자가'!!

우리 일상 삶 속에서 항상 접하는 낯익은 종교 및 이념/철학의 심볼들 7가지를 아래와 같이 조합하였더니, 'Coexist' 곧 '공존'이라는 의미가 된다. 본 심볼을 다루는 디자인계에서는 갈등들(소유권)이 그치지 않는 모양이다.

필자는 언뜻 보기에 어떠한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자기들 근본이
'하나임'(ONENESS) 곧 '뉴월드오더 아젠다'인 '종교간의 일치 내지 공존'을 내세우는 보이지 않는 비밀세력의 작품인 것 같아서 좌측으로부터 하나씩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 적신월(赤新月/Crescent Moon And Star)
페르샤 왕권의 상징으로 출발하여, 오늘날에는 이슬람교의 신앙 및 무슬림의 형제애를 상징한다. <About.com>. 지난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납되었다가, 이슬람권의 적십자사인 '가즈니' 소재 '적신월사'를 통해서 우리 피납인들이 풀려나던 그 현장을 잊지 못할 것이다.

[2] 평화(平和/Peace)
평화 심볼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민간단체 주도의 시위 현장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 심볼은 핵군축운동의 일환으로 1958년에 런던 아티스트인 제럴드 홀톰(Gerald Holtom)에 의해서 창안되었다. 반핵운동에 사용된 후로는 평화 심볼로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비둘기보다 그리기가 간편하다는 설도 있다. <link>. 까마귀 발톱 모양은 '부서진 십자가'(Broken Cross)로도 불린다.

[3] 남녀(男女/Male And Female)
위키피디어 백과사전에 의하면, 남자심볼(화살표)은 화성(火星)에 대한 천문학적 심볼에서 유래되었다. 십자가형의 여자 심볼은 비너스의 심볼에서 유래되었다. 양자가 함께 사용되면, 이성(異性) 혹은 트랜스젠더(성전환)을 의미한다. 한편, 최근에는 남자와 여자 간의 일치(하나됨)를 의미할 때 곧잘 사용되기도 한다. <gender symbols>.

[4] 다윗의 별(Star Of David)
다윗의 방패(Shield of David)로도 알려졌다. 이 심볼은 주후 1000년 이후부터 유태교와 유태교 공동체를 상징하는데 사용되어 오고 있다. 이스라엘국가의 국기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안티-이스라엘 관련 분야에도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5] 원 속의 별(A Star Within A Circle)
'i'자 위에 별 한 개가 원 안에 있다. 이것은 5각형 별모양이다. <About.com>. 원 안의 5각형 별은 가장 보편적인 이교 심볼로서, 개인 자신을 하나의 이교도 혹은 마녀 위카의 신봉자(Wiccan)임을 나타낸다. 다섯 점은 네 가지 요소, 즉 '흙, 공기, 물, 불' 외에 '영'을 나타내며, 원이 그것들을 모두 연결시킨다. 원이 제외된 경우를 대개 5각별이라 불린다.

[6] 음양(陰陽/Yin And Yang)
'S'자는 중국의 도교와 신유교 철학인 음양의 사상을 나타내는 태극도(太極圖/Taijitu)를 채용하였다. 음양은 양자가 서로 상극이나 자연 속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상생력이다. 음은 그림자, 어둠 그리고 여성과 연관되어 있는 반면, 양은 빛과 남성과 연관된다. <yin and yang>.

[7] 십자가(十字架/Cross)
이 마지막 심볼은 필자가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루려는 십자가 형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기독교와 예수님의 십자가죽음과 연관되어 오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십자가 형상이 비성경적이라는 진실을 아는 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Created/20090204><Updated/200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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