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선목회자의 성경기초주제어풀이4] '십자가'인가 아니면 '그 나무'인가 [4]

이제는 <그 나무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


예수님을 모욕한 가장 비참한 장면이 성경에 나온다!!

빌라도가 명한 예수님의 죄패이다:

'이 사람은 유태인들의 왕 예수다' (마태복음 27:37)

또 하나는 자기 땅의 조롱(독언)이다: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다시 짓는다던 자여, 네 목숨이나 구하라. 만일 네가 하나님의 그 아들이거든, 그 장대로부터 내려와 보라.' (마태복음 27:40)

    1:14Not giving heed to Jewish fables, and commandments of men, that turn from the truth. (Titus 1:14, KJV)

    1:14유태인들의 우화들과, 그 진리로부터 돌아서는 사람들의 당부들에 귀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1:14, KJV화중광야역)


위 본문에서 유태인들의 우화들은 유태교의 외경과 위경에서 볼 수 있다. 사도 복음시대에 당시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교훈과 영지주의 사상을 가르쳤다('톰슨성경', 신약. 기독지혜사. p.349)

그러한 소산 중 하나가 바로 '사도신경'(사도신조)이다. 이 사도신경 본문에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나온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무슨 고난을 주었는가? 예수님을 고난당하게 한 장본인들은 바로 '그 유태인들'(The Jews)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유태인이 아니셨다.  예수님이 그 유태인이셨다면, 예수님도 뱀의 후손이셨다:

    23:33Ye serpents, ye generation of vipers, how can ye escape the damnation of hell? (Matthew 23:33, KJV)

    23:33너희 뱀들아, 너희 독사들의 세대야,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23:33, KJV화중광야역)


'유태인'(Jew)은 '종교적으로 묶어놓다'란 의미가 숨겨진 용어이다. 그들은 유태교 신봉자들이다. 성경기록들의 필사본 원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영어성경들 속에서 이 용어는 라틴어 '유다에우스'(Judaeus), 헬라어 '이우다이오스'(Ioudaios), 그리고 히브리어 '예후디'(Yehudi)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그 유태인들'은 나사로를 묶어두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묶음을 풀어놓으신 분이다. 종교의 행위 탯줄를 과감하게 끊어 놓으셨다(에스겔 16:1-5).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진리인 <요한복음 11장>을 다시 정독하시기 바란다:

죽은 나사로

돌이 가로막음

예수님이 그 돌을 치우심

(종교표상=부패와 죽음)

(유태교=주문과 의식)

(진리표상=생명의 회복)

[화중광야 성경주제어풀이 ] '부활' - 진리와 종교는 결코 연합될 수 없다 [4-2] - [정재선 목회자의 제5차 KJB 세미나 강해(1999) <보기>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그 유태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시작한다(요한복음 11:53). 그 종교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시작한다(요한복음 11:48). 사도 요한께서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1:11He came unto his own, and his own received him not. (John 1:11, KJV)

    1:11그 분이 자신의 것(창조)을 향하여 오셨는데, 그 분의 것들인 자들이 그 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 (요한복음 1:11, KJV화중광야역)


위 구절의 말씀은 어려운 해석중 하나이다. 그러나 성경풀이를 주석에 의존하다보면 OO주의, OO파가 파생된다. 성경풀이의 해답은 성경 속 안에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본절에서의 포인트는 '자신의 것'(his own)이다. 앞의 부분은  자기 본고향이요, 뒤 부분은  자기 백성들이 맞다. 기존 한글 KJV번역들은 양자를 자기 백성(한글킹제임스역/흠정역/권위역)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오역이다. 그런면에서는 <한글개역>의 자기 땅이 올바른 번역이다.

예수님은 몸으로는 계보상 '다윗의 그 아들이시요, 아브라함의 그 아들이시다.' (마태복음 1:1). 그리하여 실제적으로 다윗과 아브라함의 그 땅을 향하여 오셨다. 그 분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곳이기에 예수님이 몸으로 나신 그 땅, 곧 '자신의 것(unto his own)향하여' 오셨다. '자신의 것'(his own)이란 이렇게 풀어진다.

그런데 '자신의 것을 향하여(unto his own)' 이것은 무슨 말인가? 오늘날의 영어에서는 이 'unto'를 'to'로 편입시켜서 그 정확한 의미 부여가 희박해졌다.  본 용어 전치사 'unto'는 헬라원어 '에이스'(ειζ)의 영역이다.

공간의 이동의 최소단위가 바로 '점'(Point)이요, 점이 모여서 '선'(Line)을 이룬다고 배웠다. 이 선을 이룸은 점이 움직여야 한다. 이동해야 한다.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필자가 이미 접속사 'and'의 역할을 밝힌 바 있다. (자세히보기). 그것은 성경기록의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크로노스)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unto'는 한 이동 과정에서 '통로'(channel) 역할임을 아래 도표를 통해서 한 눈에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unto'는 '~한 대상을 향하여'(극히 드물지만 '~한 대상을 위하여')라고 번역해야 하는 것이다:


야콥의 손자요 족장 요셉의 두 아들 중 하나인 므낫세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는 랍비들이 지난 주 인도에 도착, 현지 거주하는 7천명의 므낫세 후손들을 이스라엘국가로 귀국시키려고 시도중이다. 이른 바 <잃어버린 열 지파>(lost tribe of Israel) 주제에 해당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현재도 유태인들은 야콥의 아들 요셉을 <족장>(patriarch)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쉬로몬 리스킨(SHLOMO RISKIN)은 <예루살렘포스트>(Jerusalem Post/19941223)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주 우리 하나님과,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그 하나님, 이삭의 그 하나님, 야콥의 그 하나님, OOO의 그 하나님...(Blessed art Thou, Lord our God, and God of our fathers,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the God of Jacob, and the God of ...)

    위 기도문은 아미다 기도문의 전반부인데, 야콥의 이름으로 끝난다. 어찌하여 족장의 계열이 이렇게 세 사람들로만 국한되어 있는가? 어찌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콥 그리고 요셉 이 네 사람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THE opening of the Amida prayer, quoted above, stops with Jacob's name. But why should the patriarchal line be limited to three? Why not four patriarchs: Abraham, Isaac, Jacob and Joseph?)

    결국은 요셉은 창세기에서 하나의 중심 역할을 한다. 그의 운명도 다른 세 족장들의 운명과 흡사하다. (After all, Joseph has a central role in the Genesis narrative, and his fate is similar to that of all three patriarchs.)

    아브라함 같이, 요셉은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믿음과 전통들을 적대의 환경 속에서 유지해 나가야만 했다. (Like Abraham, he lives among idolators and must maintain his faith and traditions within a hostile environment...)


위 기사 전문을 입수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아쉬워 하면서, 미루고자 한다. 필자는 1996년부터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하면서, 얼마나 성지 이스라엘의 땅을 밟고 싶었던가! 드디어 1999년 11월에 성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마침 <이사야>를 번역중이었다. 성지 현지에서 너무 감동을 받았고, 성경이 이토록 한치의 오류가 없음을 체험한 필자는 다녀와서 6개월간 필을 들지 못하였다. 온통 성지가 뇌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마찬 가지로 지금의 필자의 이러한 작은 바램도 앞으로 이루어지길 간구한다. 하나님께...더우기 <최초 한글성경 뿌리찾기>의 종착지인 스코틀랜드도 속히 방문케 해주시리라 믿는다. 샬롬.

성경은 앉아서 알고 묵상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자기 도취(자칭 의인)에 빠져서 울타리를 치고서 혼자서만 '천국가련다'하는 편협적인 촌심(寸心/심령과 다름)은 버려야 한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개신교, 카톨릭교, 유태교, 이슬람교를 살펴봐야 한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다보면, 절름발이식 이해 밖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본 <화중광야 칼럼들>을 읽는 분들은 생소한 용어들이라든지, 길고 긴 장문의 내용을 접하면서 힘들어 할 것이라 사료된다. 그러나 그러한 칼럼을 올린 필자는 모 신학대학에서 영어과목을 가르치던 중 1987년부터 '문서복음선교'를 시작한다. 그 해 12월 방학이 시작하여 의탁받은 <예수의 마지막 주간>(The Last Week/태광출판사 발행)을 번역하던 중에, 예수님의 허리가 로마 병정의 창에 찌름을 받으신 그 장면을 만나게 된다. 이 장면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소견들을 번역하던 중, 1988년 1월 어느 날 한 밤중에 '속사람이 뒤집어지는 내적 영험'을 하게 된다. 드디어 1991년에 모든 공직을 벗어 던지고는, 홀로 단신 복음문서전도사역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벌써 22년째이다.

이제 홈페이지에 올리게 될, 예수님의 <못박히심>(Nailing)과 <달리심>(Hanging)이 구분되기 까지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97년에 <마태복음 10:38>을 번역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신약성경이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기에 여러 학자들의 저술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십자가>라는 용어에 헬라어 두 가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스타우로스>(σταυροζ)와 <크쉴론>(ξυλον) 이 두 가지이다.

마태복음
10:38

1997년 번역원문

2005년 완전번역문

And he that taketh not his cross (스타우로스/σταυροζ/명사/고난과 죽음), and followeth after me, is not worthy of me.(KJV원문)

And he that taketh not his wood of suffering (자기의 고난의 장대), and followeth after me, is not worthy of me.(KJV화중광야개정시안)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고, 나를 따라오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리고 자기의 고난의 장대를 지지 아니하고, 나를 따라오는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1. <십자가>와 <그 나무> 용어의 혼돈을 풀다!!

8년이 지난 지금(2005년)에 와서 필자가 위와 같이 제안하는 데는 다음의 과정이 있음을 밝힌다. 신약을 번역하기 시작한 때는 1996년 12월 23일이었고, 번역을 전부 완료한 때는 1998년 4월 25일이었다. 그 사이 <십자가>에 관한 용어의 용례를 일일이 체크하였고, 그 후 구약을 번역하는 중에서도 이 용어의 용례를 보완해 나갔다. 그것을 정리하여서 화중광야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성경주제풀이>에다 올렸으니, 그 주제가 바로 <십자가인가 그 나무인가>이다. 우선 이 칼럼을 열어서 (프린트를 하면 더욱 좋다) 읽어보도록 권한다. 이해가 될 때까지 말이다.

2. 골고다의 올바른 위치가 밝혀지다!!

필자가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타> 사건을 중심으로<하나님의 카운트다운> 이라는 제하의 성경에세이를 작성해오던 중, 2002년 1월 1일 우연히 인터넷에서 마틴 교수님의 저서를 논평한 글을 접하게 된다. 지금까지 알려져 오고, 행해지고 있는 구예루살렘 북서쪽에 위치한 <묘지정원>(Garden Tomb)에 있는 골고다가 성경적으로 풀어봐도 제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 나무>(The Tree)에 달려 돌아가신 바로 그 자리는 올리브산(감람산) 남단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1999년 11월에 예루살렘을 순례해보았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성경을 번역해 오면서 평소 필자에게는 풀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그 통나무>(스타우로스/σταυροσ)의 규모와 크기였다. 성경기록들 어느 곳에서 분명 밝혀 질 것이다.

    둘째는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현장까지의 거리가 약 800미터로서 그 저주의 <그 통나무>를 메시고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21번 쓰러지셨다는 사실이었다. 그 중에서 둘째 비밀을 풀어준 책이 바로 마틴 교수님의 책이었다. 그 분은 이 사실을 풀려고 예루살렘을 30번 방문한 집념이 강한 교육학 교수님이셨다.


필자의 이러한 안타까움을 전해들은 제자의 도움으로 그 책이 2002년 1월 19일 입수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마틴 교수님은 2002년 1월 4일(현지시각) 심장마비를 일으켜 퇴원 후 쾌유되었는데, 그 후로 저술을 하시는 도중에 1월 17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는, 1월 25일 향년 70세로 오레곤주 포트랜드 소재 윌람미트 국립묘지에 영면하셨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많은 대화와 자료를 입수할 수 있을 던테...2월 27일 마틴 교수님의 저술을 정리하였다. (별도주제).

3. 올바르게 밝혀진 골고다 위치를 공개하게 되어 주님께 감사하였다!!

<골고다의 올바른 위치>는 2002년 3월 1일 작성한 것이다. 그 때만 해도 과연 이 자료를 공개하면, 얼마나 반응을 일으킬까? 망설임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3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주님 앞에 필자의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이 자료 곧 <골고다의 올바른 위치>를 밝힐 수 있어,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별다른 관심없이 영적으로 헤매이는 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별도주제).

4. 킹제임스 영어성경에서 필히 바뀌어야 할 용어 'CROSS'(십자가)!!
<자세히보기>

이제는 <그 나무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

필자는 <킹제임스성경번역>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두 차례 몸이 쓰러지는 연단과 인고를 겪었으며, 본 주제 '십자가' 주제풀이는 그 후 5년간 짬이 날 때마다 연구 정리한 성경주제이다. 이것을 하나로 집대성 요약한 것으로 진정 '그리스도의 그 씨'의 반열이 되신 <참십일조>에게만 공개해드리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솔직한 마음이다. 좁디 좁은 '생명의 그 문 안으로'(마태복음 7:14) 들어가려고 결심하신 분들에게만 읽혀지고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베어낸 에셀나무'에 못박히셨고(Nailed/죄와 죽음), '살아있는 올리브나무'에 달리셨다(Hanged/부활과 생명). 신약성경 헬라어원문에는 '십자가'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지체치 말고 바빌론 종교의 전통인 '십자가상'으로부터 빠져 나오자!! 더 늦기 전에...

    4:8Howbeit then, when ye knew not God, ye did service unto them which by nature are no gods. 4:9But now, after that ye have known God, or rather are known of God, how turn ye again to the weak and beggarly elements, whereunto ye desire again to be in bondage? 4:10Ye observe days, and months, and times, and years. 4:11I am afraid of you, lest I have bestowed upon you labour in vain. 4:12Brethren, I beseech you, be as I am; for I am as ye are: ye have not injured me at all. (Galatians 4:8-12, KJV)

    4:8그러나 그 때에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니, 본질적으로 신들이 아닌 그것들을 위하여 너희가 종노릇하였느니라. 4:9러나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 아니 하나님에게 알려졌는데, 어찌하여 너희가 그 약하고 천한 초등 가르침으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종노릇하기를 원하느냐? 4:10너희는 날들과, 달들과, 절기들과, 해들을 준행하는도다. 4:11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나는 두렵노라. 4:12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도 나와 같이 되라. 이는 나도 너희와 같이 되었으니, 곧 너희가 나를 전혀 해치지 않았음이라. (갈라디아서 4:8-12, KJV화중광야역)


1. 예수님은 <에셀나무>에 못박히셨다!!

2. 예수님은 <에셀나무>에 못박히신 후, <그 나무>와 함께 <올리브나무>에
달리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셨다!! '나 때문에...'


이제 필자는 4년 만에 <그 나무의 비밀>을 다음 칼럼에서 밝히고자 한다!!
샬롬!!



<Created/20050928> <Updated/20051003><20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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