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소선지서개관] 본 글은 필자가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하던 중에, 오역된 부분을 특별히 정리하여 풀어놓은 것을 최초로 공개하는 것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나서 개관
(The Outline Of The Book Of Jonah)


<나훔서>(Book Of Nahum) 같이 기록 시기가 없다. 그의 예언은 특별히 니느웨(NINEVEH)에 관한 것으로 이방인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스파냐서>(Book Of Zephaniah) 같이 유다의 왕들의 통치 안에 것만 기록되었다. 그의 예언은 특별히 남유다에 관한 것이었다.

 

1. <요나1:1>에 기록된 시기를 <열왕기하 14:25>와 비교하면, 여로보암 2세(Jeroboam II) 때와 웃시야(Uzziah) 통치 초기에 해당하므로, B.C. 690년경으로 본다.

2. 현대 비평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본서가 하나의 '우화와 신화의 결합'(combination of allegory and myth)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가 한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은 <열왕기하 14:25>에 의해서 확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큰 기적으로 알려진 본 예언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한 전형'(a type of Himself)임을 언급된 사실로 인하여, 여타의 예언서들과 같이 '한 높은 위치'에 놓여 있다.

3. <The Century Bible>은 '요나서의 역사에 대한 문자적 타당성은 그리스도의 이 언급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마태복음 12:40 주 참조). 그러나 주님께서 바로 다음 문장에서(마태복음 12:41) '스바의 여왕'(the Queen of Sheba)을 언급하신 것과, 이와 같이 <요나서>를 '문자적 타당성'(literal validity)의 동일한 수준으로 놓은 수준을 별개로 하더라도,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발설'(saying/레마 말씀)하신 그 분의 말씀들 가운데서 각각 모든 말씀이 그 아버지께서 전하도록 그 분께 주어진 사실에 의해서 볼 때, 질문은 모든 논쟁에서 벗어나게 된다.(주님의 증거/하단 참조).

그리스도의 이 모든 말씀들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자들은 하나님에게 반론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시'(Divine Revelation) 전반을 무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논란들에 사용되는 모든 환상적인 가정들은 한번에 없어지며, 이 결정적이고 결론적인 사실에 의해서 뒤집어지는 것이다. 이제라도 현대 비평가들은 그들 자신의 반대들에 대하여 그 해답들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애써 그들의 가정, 즉 어떤 단어들은 초기 성경기록들의 주제들에 의해 요구되었거나 필요치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런 단어들은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 책이 나중에 기록되었다는 이 증거들에 대해서 반론을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적대하는 한 마음만이 그러한 주장(제안/proposition)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증거의 법칙들'(the laws of evidence)을 알지 못하는 자들 만이 그런 가정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 <요나서>의 예언은 문자적 역사이다. 여기에 한 이중적 전형이 있는 것이다:

    ① 요나는 우리 주님의 죽으심(death)과 장사지내심(burial)과 부활하심(resurrection)의 한 전형이었다. <마태복음 12:40 참조>. 여기에서 '~와 같이'(as)와 '~도 똑같이'(so)는, 한 특정 기간 동안 '한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 있음이'(a man's being miraculously kept alive), 동일한 기간에 '다른 사람의 죽음과 장사지냄의 전형이 될 수 없음을'(no type of another's being dead and buried) 우리에게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 그 기간의 그 끝에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 같이, 요나도 그와 똑같이 기적적으로 '죽은자들로부터 일으켜져야'(raised from the dead) 했던 것이다(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안되었던 것이다). 요나의 기도는 그의 목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에 발설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그 기도의 말들은 그가 토해져 나와 살아 있기 까지는 기록되지 못했던 것이다. (요나 2:1-10).

    ② '요나스'(King James Bible 1655)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한 표적이 되었던 것 같이, 사람의 그 아들도 이 세대에게 그러하리라.'(As Jonas was a sign unto the Ninevites, so shall also the son of man be to this generation) (누가복음 11:30). 그 세대는 요나가 '니느웨인들'의 회개에 그랬던 것 같이, 우리 주님의 부활이 선포된 자들의 그 믿음과 회개에 슬퍼하고 분을 냈다.


이 두 전형들은 그 시작부터 그 끝을 알고 계시는 '그 한 분'(the One)에 의해서 역사 속에 감추어 졌다가, 예호바께서 '나의 말들을 그의 입 안에 두겠다'(I will put my words in his mouth).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적 대언'(biblical prophecy)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분'(Him)에 의해서 그와 같이 선포된 것이었다.

<요한복음>에서 7회에 걸쳐 우리 주님께서 그 약속의 성취를 증거하셨다:

    ① <요한복음 7:16> '나의 가르침은 나의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그 분의 것이라.'(My doctrine(teaching) is not Mine, but His that sent Me.)

    ② <요한복음 8:28> '나의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오신 대로, 내가 이런 말씀들을 전하는 줄 알리라.'(As My Father hath taught Me, I speak these things.)

    ③ <요한복음 8:46-47> '어찌하여 너희는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에게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나니, 그런데 너희가 그 말씀들을 듣지 못하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님이라.'(Why do ye not believe Me? He that is of God heareth God's words: ye therefore hear them not, because ye are not of God.)

    ④ <요한복음 12:49> '이는 내가 스스로 전해온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그 아버지, 곧 그 분이 내가 말할 것과, 내가 전해야 할 것을 내게 명하셨도다.'(I have not spoken of (or from) Myself; but the Father which sent Me, he gave me a commandment, what I should say, and what I should speak.)

    ⑤ <요한복음 14:10> '내가 너희를 향하여 전하는 그 말씀들은 내가 스스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거주하시는 그 아버지, 곧 그 분이 그 일들을 행하시는 것이라.'(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not of (from) Myself: but the Father that dwelleth in Me.)

    ⑥ <요한복음 14:24> '너희가 듣는 그 말은 나의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그 아버지의 말씀이니라.'(The word which ye hear is not Mine, but the Father's Which sent Me.)

    ⑦ <요한복음 17:8> '따라서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그 말씀들을 그들을 향하여 주었고,'(I have given unto them the words which Thou(the Father) gavest Me.)


5. <The Century Bible> (Jonah, Introduction, p.200)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주석가가 상어들에게 삼켜졌다가 산채로 토해내진 선원들의 의문 투성의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자체가 수치스런 일이다.'(It is humiliating for a commentator to collect doubtful stories of sailors swallowed up by sharks and vomited out alive).

이 말씀 속에는 진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산채로'(alive)라는 단어가 '부활'(resurrection)이라는 사상을(생각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것은 바로 <마태복음 12:40> 속에 있는 '~와 같이'(as)와 '~도 똑같이'(so)에 의해서 전달되어 가르침을 배웠다는 충분한 증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우리는 <신명기 18:18-19>에서 예호바께서 하신 말씀들, 즉 '나의 말들을 그의 입 안에 두겠다. 그리하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전하리라. 그가 나의 이름으로 전할 나의 말들을 귀담아 듣지아니하는 자는 누구라도, 내가 반드시(그 때가 이르면) 그에게 그것을 요구하겠다.'(I will put my words in His mouth, and He shall speak unto them all that I shall command Him.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whosoever will not hearken to My words which He shall speak in My name, I will require it of him.)

여기서 우리는 이 엄숙한 말씀들과 함께 '내가 반드시(그 때가 이르면) 그에게 그것을 요구하겠다.'(I will require of it him) 라는 질문을 남겨 놓는다.

6. 이상 개관 요약들은 <요나>가 생각이 없는 어린이가 한 '고집'(변덕/wayward)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man of God),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제물로(물론 잘못되었으나) 드림을 보여 줄 것이다. 그는 그 당시에 앗시리아가 큰 어려움들에 처해 있었음을 알았다.

그 때에 앗시리아 역사에는 18년간의 한 침묵이 있었고, 주변 민족들은 자기 자신들에 대한 확인을(앗시리아로부터의 독립을) 시작하고 있었다. <요나>는 단지 이스라엘을 고무시켜서 하나의 회복된 위치로 돌려놓는 사역을 위임받은 것이었다.(열왕기하 14:25-26). 그는 또한 니느웨(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예호바의 심판의 막대기'(Jehovah's  Rod Of Judgment)가 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잘 드러나 알려진 예호바의 성품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만일 그가 예호바의 선포를 전하면 과연 니느웨가 회개하여, 니느웨의 뒤엎어짐이 '피해서 가게될까'(averted) 두려웠던 것이다. 예호바의 말씀들을 참조 (요나 4:2). 그러나 만일 자기 민족을 위하여 그가 예호바의 선포를 전혀 전하지 않았다면, 니느웨는 뒤집어졌고, 이스라엘은 구원 받았을 것이다. 그는 실수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요나 4:4-11).

7. 본 <요나서>의 큰 교훈은 '자녀들과 가축에 대한 예호바의 보살피심'(Jehovah's care for children and cattle)이 아니라, 사람의 계획(계략)은 예호바의 목적을 '망가뜨리지'(frustrate) 못하고, 예호바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때가 이르러 성취된다는 것이다.

(2003.7.21 작성하다)

 
<Created/20101130> <Updated/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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