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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넘버] 제임스 스트롱(James Strong)이 창안한 일종의 성경색인도구이다. 킹제임스성경 영어용어의 어원 및 정의를 알아보도록, 숫자코드화 시킨 원어 히브리어(H/1-8674)와 헬라어(G/1-5624) 용어에 접근시켜주는 편리하고 필수적인 성경연구도구이다. 원제는 '스트롱 성구대사전'(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이며, 약칭 '스트롱 콘코던스' 혹은 '스트롱넘버' 라고 부른다.

[정재선목회자의 그말씀 에세이 2] 나는 킹제임스성경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글/ 정재선 목회자

[제1부에서 계속/자세히보기]

그렇다면 과연 번역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로버트 J. 살젠트 목회자는 그의 저서 『Landmarks of English Bible: Manuscript Evidence』에서 '번역'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어떤 언어를 다른 언어에로 표현하는 행위'(act of rendering something into another language)라고 정의하고 있다(p.183). 그리고 그는 번역에는 다음의 6가지 방법이 있음을 열거한다:

1. 음역(Transliteration): 단어들을 실제 소리나는 대로 옮기는 것이다.

<예> 밥팀례(baptism)=밥티스마(βαπτισμα) / 천사(angel)=앙겔로스(αγγελοζ)

2. 직역(Literal Translation=Word for Word Translation): 의역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자구 하나하나를 어법에 따라 원래의 순서대로 충실하게 옮기는 방법이다.

<예> <요한복음 3장16절>: 'So for loved the God the world that the son his the only begotten he gave, that everyone who believes on him not may perish but may have life eternal.' 이것은 번역의 정확성은 있으나, 읽기가 어렵고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수 있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3. 역동번역(Dynamic Translation): 이것은 단어 자체에 그다지 관계없이, 의미나 느낌 혹은 인상을 위주로 옮기는 번역 방법으로 내용의 전달에 초점을 맞춘다.

<예> <요한복음 3장16절>: 'For God loved the world so much that he gave his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not die but have eternal life.'(TEB=Today's English Bible)

4. 형식번역(Formal Translation): 'formal'이란 용어는 '형식주의의'(formalistic) 혹은 '고정된'(rigid)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번역의 고전방법(classical method)으로서,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들(words), 의미(sense), 문체(style)와 강조(emphasis)를 정확하게 번역될 뿐만 아니라, 영어의 어법이 적합한 형식을 갖추어짐으로서, 정확하고 읽기 쉬운 것이다. 바로 <킹제임스성경 역본>이 지니고 있는 특징인 것이다.

<예> <요한복음 3장16절>: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h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성경의 원문으로부터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1) 어떤 헬라어들은 영어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2) 어떤 헬라어들은 문장 내에서 다른 단어들과 견주어서 다른 영어를 사용하여 번역될 수 있다.

3) 헬라어 통사(通詞=Syntax)는 '이중 부정'을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러한 것을 직역하게 되면, 고의적으로 영어의 의미가 바뀌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 <마가복음12장14절> '...그리고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아니하심을(and carest for no one)...' 인데, 직역하면, 사실상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아니하심이 아님을(don't care for no one)...'이 되어 '이중 부정' 곧 긍정이 되어버린다.

4) 어떤 헬라어 동사들은 영어 문법에서 사용되는 것 보다 '부정과거분사'(aorist participle)이라고 하는 시제가 하나가 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동사의 '법'(mood)에도 차이가 있다.

5) 헬라어 명사(noun)는 영어 보다는 다른 '성'(性=gender)을 사용한다. '영'(Sprit)의 경우, 헬라어에서는 중성인데 반하여, 영어에서는 남성이다.

6) 특히 히브리어 중에서 '시형'(詩形=poetic forms)이 영어의 경우와는 매우 다르다. 히브리어 시는 '대구법'(對句法=parallelisms)을 사용하는 반면, 영시는 '운율적'(韻律的=metrical)이다.

5. 의역(Paraphrase=Free Translation): 단어보다는 의미에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역동번역과 유사하다. 단순히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가지고 번역자가 이해한대로 고쳐 쓰는 것이다. 이 번역에 대표적인 성경이 소위 '리빙바이블'(LB/Living Bible)이다.

6. 주석(Commentary): 필사본의 본문들에 대한 설명 혹은 해석이다. 본문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성경 본문을 증보시킨 것이다.

(박노찬, '현대 영어성경 번역본의 신학적 입장 및 번역위원에 관한 연구', 침신대학원 석사학위논문도 참조)


필자의 번역에 대한 이론적 배경

1. 일반적 배경 - 여러 분야의 번역을 훈련시키신 주님의 예비 놀라울 뿐!!

고2때 특활 '영어반'(김용하 선생님)의 반장인 필자가 영어를 녹음중이다(하단 가장 오른쪽)

필자가 영어번역에 직접 관심을 둔 것은 공주영명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이었다. 영어를 가르치셨던 김용하 선생님(오른쪽사진)은 필자의 영어 재능을 발견하시어 개별적으로 지도해 주셨다. 특히 이솝우화 번역를 많이 지도해 주셨고, 졸업후에도 후배들에게 필자의 영어 해석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전해 주셨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리고 필자는 1967년에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 그 해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친 후, 학과장이신 이가형(李佳炯) 교수님(사진 왼쪽 두 번째/한국 추리작가협회 창립 /한국 영어영문학회장 역임/2001년 80세로 작고하심)께서 연구실로 부르셨다. 그 분도 필자의 번역 재능을 발견하셨다. 번역 습작으로서 작가 존 피츠제랄드(John D. Fitzerald)의 소설 『하숙치는 어머니』(Mama's Boarding House)를 건네 주셨다. 스승 이가형 교수님은 도쿄대학 문학부에서 수학하셨다. 전남대 조교수, 중앙대 교수, 국민대 대학원장을 역임하셨다. 말로의 '희망'을 번역하여 '한국펜클럽 번역문학상'을 수상하셨다. 지으신 책으로 '미국문학사', '미스터리문학의 세계', 옮긴 책으로 말로의 '왕도'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루소의 '사회계약론', 런던의'야생이 부르는 소리', 해미트의 '피의 수확' 등이 있다. 1975년 2학기때 중앙대를 떠나시어, 국민대로 가실 때였다. 그 당시 '한국영어영문학회장'(그 당시 신문로에 학회사무실 있었음)도 맡고 계셨을 때, 필자보고 함께 가서 학회 일 좀 도와달라 하실 때, 필자는 정중하게 사양했었던 일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한국추리문학의 산실을 마련하신 필자의 스승 이가형 교수님(왼쪽 두번째)

한편, 필자는 전공과목인 '영미단편소설'에 무척 흥미를 갖게 되었다. 교재는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였다. 여기서 헤밍웨이는 영어성경 <킹제임스성경>에서 유일한 문체인 접속사 'and'를 차용하여, 그의 독특한 기법을 살렸다고 金秉喆(제1부에서 언급/ 한국 헤밍웨이 연구의 대가) 교수님은 강조하셨다.

특히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야구 다저스팀의 선수 디마지오가 발목에 심한 통증을 이겨내면서 싸우는 정신, 그리고 주인공 노인이 돌고래와 사투하면서 손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흐르는 중에도, 디마지오의 발목 통증을 연상해가면서 싸우는 모습과 그의 불굴의 정신, 소위 '스토이시슴'(Stoicism/본래는 그리스 철학자 제노가 주창한 금욕주의이나, 본 작품 속에서는 강인한 인내력을 표방함)에 필자는 매료되고 말았다.

마침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니, 입영통지서가 나왔다. 아버지는 연기해서 ROTC 장교로 가라고 하셨지만, 필자는 극구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군에 입대하였다. 그 때 몸무게 48kg이었다. 체중이 너무 모자랐던 필자에게 헤밍웨이의 '스토이시슴'은 아주 강인한 정신적 활력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군대에서 점점 건강이 회복되었다.

월남 백마부대 포병사령부 사령관실(권영각/강윤종 장군) 통역병 시절의 필자(1971).

그러다가 1970년 7월에 월남전쟁에 자원하게 되었다. 2002년 12월에 방영한  KBS 일요스페셜-베트남수교 10주년기획 - 안정효 씨의 리포트  '변혁의 땅 베트남: 통일의 열차를 타다'에서 닌호아 소재 이 자리의 막사들이 다 철수되었고, 일반 평지로 황량하게 남아 있음을 보고는 아쉬움이 교차하기도 하였다.

한편, 필자는 군복무
제대와 함께 복학한다. 3학년 2학기 헤밍웨이의 유명한 대작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강독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도 김병철(金秉喆) 교수님은 필자에게 소설을 택하면, 자기 번역 후계자로 고려해보시겠다고 권면하신다. 필자는 그것을 정중히 사양하였고, 영미시를 선택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한다. 영미시는 필자를 매료시킨 과목이었다. 영미시가 퍽 좋았다. 3학년 재학 중에 번역해 놓은 롱펠로우(Wadswoth Longfellow)의 서사시에반젤린』(Evangelin)이 당시 문고판으로 유명하던 출판사 삼중당(三中堂)의 문고총서의 하나로 출판된다. 아직 학생의 신분이라서 필자의 이름으로는 출판되지 못하였고, 지도교수이신 최창호(崔昌鎬) 교수님 이름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그 후, 중앙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한 필자에게 1학년을 마친 12월에, 집 안에 커다란 불행이 엄습하였다. 필자가 파월되던 1970년 7월에 아버지께서 숙환으로 돌아가셨고, 6년 후인 1975년 12월에 어머니가 쓰러지신 것이다. 마련해 둔 1976년 2학년 전기 등록금까지 어머니 치료비로 다 들어가버렸다. 이 때 등록을 못한 딱한 사정을 아신 도서관학과(현재 문헌정보학과) 정필모 교수님(중앙대 부총장 역임)이 필자를 도서관학과 조교로 픽업해 가셨고, 그 분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그 해 후기에 대학원 도서관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이 때 재학 중에 국립중앙도서관보, 국회도서관보와 도서관협회보,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정보협회보에, 필자가 번역한 글들이 실려 도서관학계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그 당시 필자가 발표한 것은 21세기를 내다보는 '도서관의 자동화 시스템'(System Approach to Library)에 관한 논문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부터 필자는 불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마침 한국불교신도회장이었던 이후락 씨가 물러나고, 그 후임에 필자의 선배이시자 스승이신 김구산/金龜山 교수님이 회장직에 오르셨고(현재 태고종 부설 '동방불교대학' 김법암/金法岩 교수), 그 분의 강력한 후원으로 인도어라고 하는 범어, 곧 산스크리트어(Sanscrit)를 배워가면서, 힌두교의 경전인 '바가바드기타' (Baghavad Gita=聖바가의 노래)를 번역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 분의 추천으로 번역한 헤르만 헷세(Herman Hesse)의 『태자 싯달다』(Siddhartha)가 1984년에 도서출판 홍법원(弘法院)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불경 '법화경'(法華經=妙法蓮華經약칭)을 신원경(申圓鏡) 법사님(李法華 스님 제자)에게서 배우게 된다. 아울러 이 때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을 번역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현재 도서출판 김영사의 대표 박은주(朴恩珠)씨(당시 편집국장)의 후원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런 일이 있기 이전에 대학 후배 곽인호 씨가 한맥(韓脈)이란 출판사를 세웠고, 필자는 미국의 소설가 토마스 플레밍(Thomas Fleming)의 소설 장교부인들』(Officers' Wives)을 번역하였다. 이 번역소설이 장안을 강타하게 될 줄이야! 소설 배경이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이라서, 우리의 정서에 맞아 떨어졌고, 우리 육군사관학교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잘 나가는 번역작가로는 정성호 씨(고려대 영문과), 안정효 씨(서강대 영문과)로 기억이 떠오른다. 필자도 계속 번역을 하였더라면, 아마 지금쯤 사회 명사로 지목받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지방 목원대학교에 내려와서, 최초로 신학서적을 번역하게 되었으니, 1985년에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의당신의 교회는 성장할 수 있다』(Your Church Can Grow)였다. 이것은 신학과 K 목사님의 의뢰를 받고서 착수한 것이었다. 이 번역을 계기로 하여 필자는 기독교 관련 서적 번역에 전념하게 된다. 아울러 K 목사님의 인도로 고교 졸업후 떠났던 신앙생활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성경번역을 위하여 주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분기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한성신학대학 김찬영(金贊永) 학장님의 부탁을 받고는 포스터(R. C. Foster)의 『예수의 마지막 주간』(The Last Week)을 번역하게 되었으니, 1986년 12월에 착수하여 1987년 2월에 탈고하게 된다. 이 책을 번역하는 중, 1987년 1월 어느 날 밤에, 필자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거듭나게 되는 큰 체험을 하게 된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주님이 로마 병사 '가시우스 사시우스'의 창에 찔리신 장면이었다. 이 찔림에 관한 여러 학설을 번역하는 중이었는데, 그 장면이 바로 필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이 물과 피를 흘리셨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갑자기 예고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제할 수 없어 베란다로 나왔다. 그 차갑게 흘러내리는 두 줄기의 눈물은 필자의 온 몸을 적셔내려 갔다. 한 겨울 매섭게 불어대는 쌀쌀한 바람은 필자의 볼가를 세게 때리고 있었고, 베란다 건너편 산 자락 위 밤하늘은 별무리가 흩뿌려지고 있는 그런 깊은 밤이었다. 할렐루야!


2. 신학적 위치

김영환 교수님은 원어로 사경회를 하셨다.(울산 흰돌교회/1992)

필자의 성경번역에 대한 신학적 배경은 '한국기독교신학원'에 재학 중에 원어강의를 맡았던 김영환 교수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성경의 권위>를 다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가르쳐 주셨다:

1. 저자의 권위: 1)성부의 권위 2)성자의 권위 3)성령의 권위

2. 기록의 권위: 1)원본의 권위 2)사본의 권위 3)편집의 권위

3. 번역의 권위: 1)교육의 권위 2)해석의 권위 3)번역의 권위

그리고 김 교수님은 '번역의 권위'(다니엘 5:25-28.스파냐 3:9. 스카랴 8:20-23.마태복음 28:19. 누가복음 24:47. 사도행전 1:8;2:4. 고린도전서 12:10-11)를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 성경의 번역은 그 내용과 표현방법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영의 감화감동에 의해서만 준비되고 완성된다. 여기에 번역의 권위가 있다.

2) 성경번역은 계속적인 분열이 아니라, 한 하나님 안에서의 연합과 일치를 목적으로 한다.

3)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각국어, 각 민족어의 성경번역만은 서로 모순없이 일치한다. 또한 한가지 언어권내의 여러 가지 번역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서로 모순없이 일치할 것이다.

4) 어떠한 번역자도 번역시에 임의로 인간적인, 인위적인 방법으로 성경의 내용과 표현방법에 대하여 수정가감을 할 수 없다. 번역자는 성경의 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5) 성경번역에 있어서 오역은 있을 수 없으며, 이러한 인간 자신의 과오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마땅히 그 오역의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고유명사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임의로 변조한 것도 인간이 마땅히 책임 져야 할 과오다.

6)성경의 번역은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화감동을 통하여 값없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이므로, 특정 인간이나, 특정 단체의 이익 추구를 위한 대상이나 방법이 될 수 없다.

7) 성경번역자의 문화적, 사회적, 사상적, 정치적 등의 환경이나, 신학적 교리 및 언어학적 지식 등이 성경번역에 대하여 반성경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8) 성경의 난해한 부분에 대하여 번역자는 사사로히 개인적인 사건을 임의로 반영할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문제점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공개하여 밝혀야 한다.

9) 성경번역자의 히브리어, 아람어, 코이네 헬라어 및 해당 번역어 등의 언어학적 지식은 번역에 있어서 필요 조건 중의 한 가지는 될 수 있으나,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 성경번역은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인쇄만이 아니라, 점자, 녹음테이프, 마이크로필름, 레코드음반, 카세트, 컴퓨터 프로그램 등으로도 준비해야 한다.

11) 전 세계의 과거, 현재의 모든 각국어 성경번역을 조직적으로, 계통적으로 조사, 수집, 비교, 분석하기 위한 연구기관과 협력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한성신학대학(현재 한민대학) 재직시 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기독교와 신학에 관한 각양 분야를 두루 섭렵하게 되었고, 1987년에는 '비둘기선교단'을 세워, 자비량으로 문서복음선교에 전력하게 된다. 이것이 후에 성경을 번역함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 준다. 1992년까지 지속되었던 이 문서복음선교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이제서야 인터넷이라고 하는 새 시대의 미디어를 통해서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된 것이다. 공백 10여년은 필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연단의 시간이었으며, 타인들에게는 마치 은둔의 생활 같이 보여졌을지 모르나, 필자 자신에게는 인고(忍苦)의 시간이었다.

이상 얼핏 보면, 필자의 30년간 좌충우돌식 걸어온 번역의 길! 그러나 그것이 밑거름되어 마지막 영어성경 연구에 심혈을 다 할 것이다. 한 가지 한국인에게 권면한다. 우리는 너무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교파와 교리에 편협되어 있다. 막상 외국에 나가서 <킹제임스성경>을 나누다 보면, 밤이 다 가는 줄 모르고 상고하게 된다. <킹제임스성경>을 논하면 색안경 끼고 쳐다보는 졸렬한 현대판 바리새인들! 유독 우리 나라가 안고 있는 '영적 병'(?)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는 측들도 서로 아전인수식으로 갑론을박에 허송세월 보내지들 말고, 서로 아끼고 포용하는 자세가 절실할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필자가 교제를 나누었던 <안티오크>의 박만수 형제님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의 정동수 교수님간의 오해와 갈등은 속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강하다. 예전에 함께 교제하였던 서울 자양동 시절이 그립다.

1994년 이 땅에 첫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나온 이래,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냉철하게 판단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성경번역을 '개인이 했느니...공동으로 했느니...' 부질없는 에너지 낭비인 것이다. 그러한 질문을 하기에 앞서, 본인이 직접 성경을 번역해보길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그리고 나서 물어보라. 마틴 루터는 누구랑 성경을 번역했는가?. 윌리암 틴데일은 누구랑 번역했는가? <킹제임스성경>은 공동으로 번역했으니, 그것의 번역도 반드시 공동으로 번역해야 한단 말인가? <킹제임스성경> 저본들을 추적해 올라가보면, 개인역에서 출발한 것이다. 원래가 하나님의 자필 원본으로부터 필사본이 등장한 것도 소페림(구약 서기관) 개인의 필사에 의한 것이 아닌가! 너무 옹졸하게 비판만 말고, 대아적인 식견과 아량으로 멀리 내다 보자.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 온 지도 130여년이 흘렀다. 참으로 부끄럽다. 세계 곳곳에 내 놓을 수 있을 만한 '성경연구소' 하나가 제대로 없는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지나친 '에피'(επι) 성령님에만 의존하지 말고(외적 확장), '엔'(εν) 성령님이신 '엔 크리스토스'(εν χριστοζ=in Christ) 곧 '성경말씀 속으로' 돌아가자!(내적 확신). '주님은 지금도 오고 계신다'(The LORD Is Coming). 할렐루야!!!(요한계시록 22:20).

이 세상에서 가장 신중하고, 가장 정확하게 옮겨야 할 것이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떠한 잡다한 교리, 이론도 배제한다. 바로 <하나님의 그 말씀>인 『성경』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끝으로 필자의 번역 경험이론을 다음 한 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모든 영어 단어는 한 문장 안에서 한 가지 의미만 지닌다.'
(Every English word has only one meaning in one sentence.)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주님을 찬송하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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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20021201> <Modified/20050318> <Updated/200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