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보의 세월따라 노래따라] 두 번 다시 우리 한민족 앞에 이런 비극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가는 봄 오는 봄' (1958) - '그리움은 가슴마다' (1967)

글/ 정재선 목회자

영화 '가는 봄 오는 봄'은 1958년(1959년) 권영순 감독의 작품으로, '한국형 뮤지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제작과 음악은 작곡가 박시춘 선생이 맡았고, 각본은 최금동이 썼다. 문정숙과 전계현(아역/전영선)이 전쟁 때문에 헤어진 모녀로 등장하고, 최무룡, 이대엽, 허장강 등 당대를 풍미한 톱스타들이 연기와 노래를 선보인다. 1959년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흥행에 대성공하고, 그로부터 7년 후 컬러로 리메이크 한 작품이 그 유명한 '그리움은 가슴마다'이다. 김지미와 윤정희가 바통을 이어받은 리메이크작 역시,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는데, 50년대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장르였던 뮤지컬이자, 아주 잘 만든 상업영화 '가는 봄 오는 봄'은 현재 필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엄마'를 불러대면서...트럭 뒤를 쫓아가는 '옥이'(전영선)의 모습이 지금도 필자의 눈 앞에 아른 거린다...초등학교 6학년이었나 보다.

 

1.비둘기가 울던 그 밤에 눈보라가 치는 그 밤에/ 어린 몸 갈 곳 없어 낯선 거리 헤매이네/ 꽃집마다 찾아봐도 목 메이게 불러봐도/ 차거운 별빛만이 홀로 새우네 울면서 새우네

2.하늘마저 울던 그 날에 어머님을 이별을 하고/ 원한의 십년세월 눈물 속에 흘러갔네/ 나무에게 물어봐도 돌부리에 물어봐도/ 어머님 계신 곳은 알 수 없어라 찾을 길 없어라

3. 그리워라 어머님이여 꿈에 젖은 그 사랑이여(최숙자)/ 옥이야 내 딸이여 다시 한번 안겨다오(백설희)/ 목이 맺쳐 불러보는 한이 많은 옛노래여/ 어두운 눈물이여 멀리 가거라 내일을 위하여

▲'가는봄 오는봄' (1958) 포스터

 

'가는 봄 오는 봄' 가사


[미니시놉시스] 문정숙은 꽃집을 운영하면서 어린 딸과(아역/전영선 분)살아 가는데 갑자기 6.25가 발발하였다. 그 때 어린 딸은 유치원에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고, 한편 문정숙은 딸을 찾으러 갔으나 길이 어긋나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딸은 울면서 어머니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마침 지나가던 피난차 위의 엄마 모습을 보고 필사적으로 달려가자, 마음좋은 어떤 피난민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 딸을 안고 차에 오른다. 이렇게 해서 모녀의 이별은 시작되고 딸은 음악을 하는 두 청년, 기타리스트 최무룡, 아코디언 이대엽과 같이 생활하면서 겨우 살아 나간다. 꿈에도 잊지못할 엄마를 찾으러 꽃집마다 헤메어 보지만 찾지 못한채 세월만 흐른다.

[50년전 이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여울져 오는 사연은...] 집으로 돌아온 딸(전영선)은 울면서 어머니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마침 지나가던 피난차 위의 엄마 모습을 보고 필사적으로 달려가자...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음...주제음악 '가는봄 오는봄'이 흘러나오면서...50-60년대 영화 아역 스타의 일인자였던 전영선(가수 나애심이 친고모)...'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로 유명해진 전영선은, 6.25 참전 실제 인물인 상이용사 김기인 대령의 부부의 실화와 부산 피난시절의 생생한 기록이 담긴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으로 제12회 백림(베르린)영화제 아동특별 연기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그 당시 전영선 8세 모습/현재 57세?/ 미국에서 거주중이란다).

어느덧 딸은 장성하여 가수가 되었고, 어머니는 그 사이에 남의 아내가 되었다. 어머니는 인기가 급상승하는 딸의 노래를 듣지만, 그 노래가 자기딸의 노래인 줄은 모른다. 딸이 라디오 공개방송에 출현하던 날, 라디오를 듣던 어머니는 딸과 아나운서의 대화에서 그녀가 자신의 딸임을 알고 방송국으로 달려가 딸과의 감격적인 재회를 나누게 된다.

'가는봄 오는봄'은 1959년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서, 작사는 반야월 선생이, 그리고 작곡은 박시춘 선생이, 노래는 백설희와 최숙자가 불렀다. 백설희는 어머니로서, 최숙자는 딸로서 노래한다. 영화의 뒷 부분에서 모녀가 만나 부르는 3절은 최숙자가 첫째 소절,
'그리워라 어머님이여 꿈에 젖은 내사랑이여'하고 부르면 뒤를 받아서 둘째 소절은 백설희가 '옥이야 내딸이여 다시 한번 안겨다오', 다음 셋째, 넷째 소절은 두 사람의 중창 순서로 이어져 '목이 맺쳐 불러보는...내일을 위하여'로 끝을 맺는다.


[그리움은 가슴마다 - 가는봄 오는 봄 리메이크] 박춘석 작곡/ 감독: 장일호/ 주연: 김지미/윤정희/남진/이대엽/ 1967년 작품!!

먼 옛날...1967년도에 이 영화가 나왔을 때...눈과 귀를 의심할만한, 파격적인 영화제작의 발전을 느꼈던 영화이다. 필자가 이 영화를 본 것은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12월 어느 비 오는 날 밤이었다.

6.25사변으로 인하여, 어쩔수없이 헤어져버린 모녀의 슬픈 행로와 감격의 재상봉이 주 스토리라인이다. 당시로서는 아주 빠른 템포의 스토리 전개와 자연스런 코믹성과 가슴솟구치는 슬픔을 혼합시켜 세미뮤지칼 형식으로 꾸며진...높은 완성도의 오락영화로서의 자리매김을 톡톡히 했던 영화였다.

1959년도에 나왔던 '가는봄 오는봄'의 리메이크 작품이었던 '그리움은 가슴마다'는, 8년의 세월이 지난만큼 이전 작품보다 훨씬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하였었는데, 김지미의 딸로 나오는 '윤정희'의 모습은 아직도 신인의 이미지를 벗지 못한 신선한 모습이었고, 가수 '남진'의 군입대전 젊디젊은 시절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이리도 흘렀구려...

 

그리움은 가슴마다 / 이미자

애타도록 보고파도 찾을 길 없네/오늘도 그려보는 그리운 얼굴/그리움만 쌓이는데/밤하늘에 잔별같은 수 많은 사연/꽃은 피고 지고 세월이 가도/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오네

꿈속에도 헤맸지만 만날 길 없네/바람 부는 신작로에 흩어진 낙엽/서러움만 쌓이는데/밤이슬에 젖어드는 서글픈 가슴//꽃이 다시 피는 새봄이 와도/그리움은 가슴마다 메아리치네

그리움은 가슴마다 / 남진

애타도록 보고파도 만날 길 없네/오늘도 그려보는 보고픈 얼굴/그리움만 쌓이는데/밤하늘에 잔별같이 수많은 사연/꽃은 피고 지고 세월이 가도/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오네

꿈속에도 헤맸지만 찾을 길 없네/바람 부는 신작로에 흩어진 낙엽/서러움만 더하는데/밤이슬에 젖어드는 서글픈 가슴/꽃은 다시 피는 새봄이 와도/그리움은 가슴마다 메아리치네

'그리움은 가슴마다' (1967) 화중광야 영상캡쳐

 

'그리움은 가슴마다' 가사


[미니시놉시스] 허진(남진)은 북악산에서 음독자살을 시도한 한 처녀(윤정희)를 구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한다. 그녀가 퇴원하자 진은 함께 자취하는 친구(이대엽)와 함께 자신의 방에서 그녀를 돌본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않던 그녀는 그들과 점차 가까워지면서 그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정옥이란 이름의 그녀의 노래실력을 안 허진과 그 친구는 그들의 술집 공연 아르바이트에 옥이를 동참시킨다. 한편, 한국전쟁 중 헤어진 그녀의 어머니 나애주(김지미)는 술집 마담으로 살아가고 있다. 태평양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남편 정철(박병호)를 잃고 나서, 딸 옥이를 친정아버지와 함께 키우며 살아가던 중, 과거 학교시절 은사이자 당시 악단을 운영하고 있던 박선생(허장강)의 설득으로 가수가 되었던 그녀는 순회공연 중 만난 한국전쟁으로 딸과도 이별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전히 그녀와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박선생은 그녀에게 가수로 복귀할 것을 종용하고, 그녀 또한 오랜 거절 끝에 이를 허락한다. 그러던 중 박선생은 정옥이 자살을 시도했던 날 택시에 흘리고 내렸던 유서를 옥이 생각을 떠올리며 애주에게 우연히 전해준다. 이를 읽은 애주는 옥이의 유서라고 확신하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한편, 허진과 옥이의 노래는 입소문으로 장안의 유명세를 타게 되고, 옥이 취입한 레코드가 날개 돋힌 듯이 팔려 나간다. 어머니는 그 딸의 노래를 듣지만, 그 노래가 미처 자기 딸의 노래인 줄은 모른다. 진과 그의 친구는 옥이를 위해서 그녀를 박 선생의 회사에서 주최하는 신인가수선발대회에 출전시킨다. 옥이를 찾아서 술집들을 헤매던 애주는 그녀가 초대가수로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신인가수 선발대회 중계를 라디오로 듣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의 노래인 '잘살아보세'와 '그리움은 가슴마다'를 부르는 정옥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모녀는 대회장에서 극적으로 상봉하고, 대회장은 눈물바다가 된다. 그리고 모녀가 함께 '그리움은 가슴마다'를 부르며 상봉을 자축한다.




▲우리 한민족 비극의 자화상...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


[부록] 잊혀져 가는 6.25동란의 상처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냉전을 계속해 온 동서의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간의 충돌은 극동의 한반도 에서 6.25 전쟁은 그 규모나 결과만으로 우리 역사 이래 가장 큰 전란이다. 전쟁이 끝난지 50년이 지난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전쟁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더욱 미국조차도 한국 전쟁을 잊어가고 있을 것이다.

미군 철수와 반미 시위를 일삼는 배은 망덕한 국민들을 언제까지 우방국이라 짝사랑을 하겠는가? 파괴로 잿더미가 되었던 서울의 거리는 지금 초고속 빌딩이 들어섰고 수많은 젊은이 들이 촛불을 들고 미국놈 퇴거를 주장하는데도...흘린 피는 씻겼는가? 아니면 말라 붙어 버렸을까? 결코 아닐것이다. 희생의 댓가는 제쳐 두고라도 상처는 너무 깊다.

밝혀진 인명 피해만 해도 여기 적힌 대로다:


국군 전사- 141,011명/ 국군 전상- 717,083명/ 유엔군 전사- 36,772명/ 민간인 사망- 244,763명/ 피학살- 128,936명/ 부상- 229,625명/ 피납치-84,532명/ 행방불명-363,212명/ 전쟁고아-59,000명/ 인민군전사-294,931명/ 중공군 전사-184,128명/ 월남 피난민-618,000명.

전쟁의 상처가 가셨다고 생각하며 평화를 구가하고 전쟁이 터지고 압록, 두만, 양강의 한만 국경선 까지 진격한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국토 통일은 가능 했을 것이다. 인류의 정의를 내세우고 참전한 유엔군의 승리는 틀림없는 통일을 가능케 했을것이다.

<Created/20080625> <Updated/20080627><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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