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보의 세월따라 노래따라] 역사의 아이러니...사도세자께서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셨다면...우리의 역사 역시 달라졌을 것이라!!

'사도세자' (思悼世子)

금이야 옥이야 태자로 봉한 몸이
뒤주안에 죽는구나 불쌍한 사도세자
꽃피는 청춘도 영화도 버리시고
흐느끼며 가실때엔 밤새들도 울었소

궁성은 풍악과 가무로 즐거운 밤
뒤주안이 웬말이오 야속한 사도세자
황금의 왕관도 당금도 버리시고
억울하게 가실때엔 가야금도 울었소

◆작사/ 김문응(金文應) 작편곡/ 나화랑(羅花郞) 노래/ 도미(都美) <듣기>

우리에게 '청포도사랑'으로 잘 알려졌던 가수 '도미' 씨가 불러...우리의 애환을 함께 해주었던 영화의 주제가이다. 필자가 소년시절(초등 4년) 어머니와 함께 자주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이 영화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떠오른다. 깊은 밤 몰래 '장헌세자'(죽은 후에 사도세자)의 충신들이 뒤주 나무판에 박혀있는 왕솔을 톡톡쳐대니 구멍이 난다. 그 속에다 먹거리('생쌀'로 기억남)를 넣어주는 장면에...관람객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말이다. 혹여 '다시 살아나지 않으실까??' 하고 말이다. 결국에 '사도세자'(이선)는 권력 다툼 사이에서 7일후에 희생양이 되셨으며(1762년 28세), 그분의 아들 정조(이산)도 의문의 죽임(?)을 당하신다. '사도세자'의 증손자이신 '철종'(이변)의 후사의 단절로 인하여...조선국은 종언(終焉)을 고한 것이며, 여기까지로 '정사'((正史)로 보고...대원군(興善大元王)의 등장(1863)부터 대한제국(1910)이 멸망하기 까지는 조선역사의 '정사'(正史)로 보지 않는 시각도 다분하다. 이러한 '한민족'(桓民族)의 비극의 역사의 배후에는 중국대륙과 일본열도를 거쳐서 뻗어 온 '마귀의 손'(용병들)이 있었음을 필자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밝혀 볼 것이다!! 이 용병술은 지금 저 중동 땅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이제 머지 않아서 이 땅 위에도 재현될 것이다. 깨어서 기도하셔야 할 때이다!!

<1956년에 개봉한 영화 사도세자ㅡ감독: 안종화/배우: 황해남, 변일영, 윤인자>. 영조는 한때 사도세자로 하여금 대리섭정케 하였으나, 세자는 정사를 열심히 하지 아니한다. 그와 같은 세자의 몸가짐은 곧 당쟁에 이용되고 마침내 영조는 세자를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두어 굶어 죽인다. 그러나 영조는 훗날 세자가 당쟁에 희생자임음을 알았고 자신의 가혹했던 처사를 후회하며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린다.

◆'사도세자' (김중희 편극) 동아방송(DBS) 1967.11.24 방송 <듣기>

<Created/20110308> <Updated/20110308>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