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정동윤 연주]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2004 편곡연주 - DVDTech수록)

 


[성경신자의 의무 ㅡ '그 성경기록들을 상고(祥考)하라'(요한복음 5:39)]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 가사의 주인공이신 존 뉴톤(John Newton)과 '회심'의 아이콘이신 존 웨슬리(John Wesley) 두 목회자님과 함께 18세기 영국이 낳은 복음의 3대 거성이신 조지 화잇필드(George Whitefield) 목회자님의 설교를, 본 자료에 들어가시기 전에 꼬옥 한번 읽어보시도록 권해드립니다. [복음선교문서 컬렉션4]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 <자세히보기>.

이미 알려드린 바 같이, <성경 속에 감추어진 십일조의 진리>를 펼칩니다. 우선 10년만에 이 자료를 공개하게 된데 대해 예호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어려웠던 역경을 거쳐 갖은 '공격'을 이겨낸 것이 오늘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드러냄과 모든 영광을 그분에게 돌려드립니다. 성경은 <창세기1:1>로부터 <요한계시록 22:21> 끝까지 예슈아님을 시작으로 해서 예슈아님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중에 감추어져서 드러나진 않은 주제어 중하나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이 '십일조'를 아래와 같이 도식화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6년간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하였고, 그 로중(路中)에서 무시로 성령님이 내리시는 '그 깨달음'을 흘려 버리지 아니하고, '그 말씀의 바구니' 안에 차곡차곡 담아두었다가, 필요시에 꺼내어 펼쳐가면서 정리한 열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는 <창세기>부터 우선 발행하고자 <한글번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귀한 '소산'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인용되는 '성구'는 이미 저희 <화중광야>가 발행한 <창세기한글번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히보기>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부터 필자는 이 '하님의 것'인 '십일조의 진리'를 펼쳐보일 것입니다. 샬롬. (2011.9.11/밤)

[본문 ㅡ 창세기 제14장 14-20절]

    14:14그리고 아브람이 그의 혈육이 사로잡혀 갔음을 듣고는, 그는 자기 집 안에서 태어나서 훈련받은 종 삼백십팔 명을 무장시켰고, 그들을 단에 까지 쫓아갔다.

    14:15그리고 아브람, 곧 그와 그의 종들은 밤을 틈타 그들을 대적하여 나누어, 그들을 쳤고, 다메섹 왼쪽에 위치한 호바까지 그들을 쫓아갔다.

    14:16그리고 그는 모든 재물을 되찾아 왔고, 그의 혈육 롯과, 그의 재물과, 여자들과, 사람들도 되찾아 왔다.

    14:17그리고 소돔의 왕이 (그가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했던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온 후에) 왕의 골짜기인 사웨 골짜기로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

    14:18그리고 살렘의 왕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 그 분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셨다.

    14:19그리고 그 분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하늘과 땅의 소유자이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게서 아브람이 복을 받을지어다.

    14:20그리고 네 대적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할지어다.' 하셨다. 그리하여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키세덱에게 드렸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아브라함이 앗수아인(앗시리아인)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이기고, 소돔인 소돔인 사로잡힌 자들을 구출하였으며, 적군이 취했던 전리품을 뒤찾은 본 <창세기 14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유대고대사' 제1권 제10장, 도서출판 달산, 1991, p.87-89>.

1) 아브라함은 그의 혈육 롯(아브라함의 큰 형 하란의 아들)을 포함하여 앗수르인들에게 사로잡혀갔던 소돔 사람들을 모두 구하여 영예롭게 귀환하였다. 그러자 소돔 왕은 '왕의 평원'(royal plain)이라 불리우는 곳에서 아브라함을 맞이하여 접대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솔리마'(Solyma=살렘의 헬라아식 표기:역주)의 왕 멜키세덱(Melchi멜키세덱)으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멜키세덱이라는 이름은 '의로운 왕'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칭호를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모든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었다. 솔리마는 후에 '히에로솔리마'(Hierosolyma=에루살렘의 헬라어 표기:역주)로 불렀다. 이 멜키세덱은 아브라함의 부대를 후하게 대접하고 그들이 쓸 것을 풍성하게 주었다. 잔치가 흥겹게 벌어지고 잇을 때 멜키세덱은 아브라함을 칭찬하고, 적군들을 이기게 해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키세덱에게 주었고, 그는 그것을 선물로 받았다.

2) 이상은 '요세푸스'가 역사적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신앙의 범위 안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는, 성경에서 십일조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한다고 공인하고 있다. 자, 이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조건하에서, 이 단계에서 성경에서 가장 신비롭고 장엄한 사건 하나가 생긴다:

    14:18그리고 살렘의 왕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 그 분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셨다.

    14:19그리고 그 분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하늘과 땅의 소유자이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게서 아브람이 복을 받을지어다.

    14:20그리고 네 대적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할지어다.' 하셨다. 그리하여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키세덱에게 드렸다. (창세기 14:18-20)

갑자기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 곧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란 분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게서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 것이고, 그의 대적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할지라' 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다. 십일조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그리하여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키세덱에게 드렸다.'

3)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아브라함의 이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 되는듯 하다가, <구언약> 어느 곳에서도 언급이 없다. 그러다가 <신언약> <히브리서>에 이르러 다시 이 사건이 언급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이다:

    7:1따라서 살렘의 왕이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이 멜키세덱은, 왕들의 쳐죽임으로부터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셨고, 그에게 복을 주셨고,

    7:2아브라함도 그 분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 그 분을 번역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시요, 그 다음은 살렘의 왕이시니, 곧 화평의 왕이시다.

    7:3아버지도 없으시고, 어머니도 없으시고, 계보도 없으시고, 날들의 시작도 없으시고, 생명의 끝도 없으시고, 다만 하나님의 그 아들과 같이 되시어, 계속해서 한 제사장으로 살아가신다.

    7:4이제 이 분이 얼마나 높으신지를 생각하여 보라. 심지어 족장 아브라함도 그 분을 위하여 그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드렸다. (히브리서 7:1-4)

본문은 <1-4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7장> 전체를 심독(沈讀)하자. 그리하면 십일조에 대한 참의도가 발견된다:

(1) <히브리서 7:5-6> ㅡ 어찌하여 레위인들은 율법에 따라 자기 형제들에게서 십일조를 받도록 되어 있는가(5절)? 그리고 레위인들의 계보에 들지 아니한 멜키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아들였고, 그에게 복을 주었다(6절).

'십분의 일을 받아들이는 레위 제사장의 권리는 특별 성문법으로 제공된 하나의 합법적 권리(a legal right)에 불과하므로, 자기 형제들에게 '내적 우월성'(intrinsic superiority)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나 멜키세덱은 합법적인 권리는 없지만, 하나의 자원하는 선물로서 아브라함에게 받아들인 것은,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의 '인격의 크심'(personal greatness)을 인정함을 나타낸 것이다.'
(Vincent, Word Studies in the New Testament, p.458.)

(2) <히브리서 7:8-10> ㅡ 레위인들은 죽는 사람들이 십분의 일을 받지만, 즉 레위인들은 때가 차면 죽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뒤를 계승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멜키세덱은 항상 살아계시기 때문에(7:3) 죽지 아니하시고, 그 분의 직분이 다른 이에게 양도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의 인격을 통해서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이다. 이는 멜키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유대인의 율법과 규례와 제사장 직분은 아브라함 안에서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히브리서 7:11> ㅡ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7:11그러므로 만일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분을 통하여 완전함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면, (이는 그 직분 아래서 백성이 율법을 받았음이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열을 따라 부르심을 받지 아니하고, 멜키세덱의 반열을 따라 또 다른 제사장이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히브리서 7:11)

'만일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분을 통하여 완전함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면,' 구태여 '멜키세덱의 반열을 따라 또 다른 제사장이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여기서 '완전함'(perfection)이란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에 완전한 교제를 이룸을 말한다(비교.누가복음 1:45. 참조. 히브리서 9:9; 10:1). '또 다른 제사장' (another priest)은 본질적으로 속성이 다른 제사장을 의미한다(참조. 마태복음 6:24=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음).

(4) <히브리서 7:12-17> ㅡ  따라서 제사장 직분이 바뀌었으면 율법도 바뀌어야 하는데, 이 멜키세덱께서는 제단을 섬기는 율법에 속하지 아니하시므로, 제단을 섬기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슈아님이 나신 것은 유다 지파이기 때문에, 모세도 율법으로 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한 육체에 관련된 계명의 율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한 끝없는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것이었다(16절). 멜키세덱의 반열에 따라 영원히 한 제사장인 것이다(17절).'

    110:4주님이 맹세하셨으니, 후회하지 아니 하실 것이다. '너는 멜키세덱의 반열에 따른 한 영원한 제상이다.' 하셨다. (시편 110:4)

본절에서 '너'는 다윗의 아들 즉 주님을 의미한다. 영원한 제사장인 통치자가 앞으로 오실 '그 메시야'임을 상징하고 있다.

(5) <히브리서 7:18-21> ㅡ 결국 율법은 폐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율법에 의한 제사도, 그에 따른 십일조 드림도 폐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라키> 사건인 것이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행위들 때문에 꾸짖음을 받았다:

    1:7너희가 내 제단 위에 더럽혀진 빵을 가까이 가지고 오고, 그리고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더럽혔습니까?' 하면서도, 너희는 말하기를, '주님의 상은 멸시할만 하는도다.' 한다.

    1:8그리고 만일 너희가 희생물로 눈먼 것을 가까이 가져오면, 그것은 사악함이 아니냐? 그리고 만일 너희가 저는 것과 병든 것을 가까이 가져오면, 그것은 사악함이 아니냐? 제발 그런 것은 네 총독에게 가까이 가져가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곱게 보아주겠느냐? 만군의 주가 말한다.

    1:9그리고 제발 내가 너희에게 청하노니,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실 하나님을 간구하라. 이것이 너희 손들에서 나왔으니, 그 분이 너희를 곱게 보아주겠느냐? 만군의 주가 말한다.

    1:10너희 중에 문들을 헛되이 닫아 줄 자가 누구이냐? 너희가 내 제단에 헛되이 불을 밝히지 말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 안에 기뻐하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너희 손에 한 헌물도 열납하지 아니할 것이다. (말라키 1:7-10)

'따라서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그의 입으로부터 율법을 찾아 구해야 할 것이니, 이는 그가 만군의 주의 그사자임이라. 그런데 너희는 그 길에서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너희는 많은 자를 율법 안에 넘어지게 하였으며, 그리고 너희는 레위의 그 언약을 망쳐 놓았다.' (말라키 2:7).

'그리고 너희가 이런 일들을 행하였으니, 곧 눈물들과 울음과 통곡으로 주님의 그 제단을 가렸도다. 그러므로 그 분이 더 이상 그 헌물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 안에 선한 뜻으로 받지도 아니하신다.' (말라키 2:13).

이처럼 악한 윤리 상황(이혼, 간음) 때문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셨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말들 때문에 꾸짖음을 받았다:

    2:17너희는 너희 말들로 주님을 지치게 해왔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을 지치게 해왔습니까?' 한다. 너희가 말할 때, '사악함을 행하는 모든 자는 주님의 목전에 선하고, 주님이 그들 안에 기뻐하신다.' 하거나, '심판의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한다. (말라키 2:17).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변질되어 버린 행위들과 말들로 인하여 제사 받으시길 거부하시면서, 새로운 언약, 즉 '일방 언약'에 대한 예언을 전하신다:

    3:1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낼 것이니, 그리하면 그가 내 앞에 그 길을 예비할 것이다. (말라키 3:1).

밥팀례자(밥티스트) 요한의 등장을 예언하신 것이다. 그의 등장은 곧 새로운 언약에로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쌍방언약'으로부터 '일방언약'에로의 가교 역할인 것이다. <구언약>의 제사가 주제인 율법이 마침이 되고(마태복음 11:9-13), <신언약>의 구원이 주제인 복음이 열리는 예표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라기 3장>에서는 계속해서 '십일조'에 대하여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단판이 벌어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하시면서, 그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언제 자기들이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였냐고 항변한다.
(이에 대한 상세한 풀이는 필자의 [제4차 킹제임스성경 세미나=십일조?] (1998.8.14-8.15)를 반드시 참조하시기 바란다).

여기서 하나님이 분명히 밝히심이 있다:

    3:3그리고 그가 한 은을 정련하는 자요, 정결케 하는 자 같이 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레위의 아들들을 정결케 할 것이고, 그들을 금과 은 같이 정련할 것이니, 그들로 주님을 위하여 의 안에 한 헌물을 가까이 가지고 오게 하실 것이다. 3:4그때서야 유다와 예루살렘의 그 헌물이, 지난 날들과 앞선 날들 안에 처럼, 주님를 위하여 열납될 것이다. (말라키 3:3-4)

여기서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직결된 '헌물'을 언급하고 있다. 이 헌물은 하나의 선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슈아님은 이렇게 책망하신다:

    23:23위선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를 향하여 화 있을 것이다. 이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분의 일은 드리라 하면서도, 공의, 긍휼과, 믿음과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들은 빠뜨렸 왔음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행했어야겠지만,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23:23)

아주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신언약>의 유일한 예슈아님의 십일조 증거하심이라 하면서, '종교 교회'가 곧잘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말씀의 대상을 보아야 한다. 바로 위선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8가지 화(禍)>의 대상인 것이다. <8가지 복(福)>의 대상인 '하늘들 안에서 예슈아님과 함께 하는 자들인 제자들'(마태복음 5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14] 8복과 8화 - 8복은 '참십일조'의 것 <자세히보기>.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25] 8복과 8화 - 8화는 '위선자들'(가짜 십일조)의 것 <자세히보기>.

지금 이들은 여전히 율법에 매여서 '율법적 십일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율법적 십일조의 중요한 주제는 가시적인 물질에 의한 '십일조'가 아니다.

<신언약>에 와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구언약>의 십일조에 해당되는 '십일세'를 세분하여 거둬들였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 역할을 하던 레위지파인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구언약>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네필림의 후예들'인 것이다. <구언약>에서는 거구의 가시적 모습으로 보였지만, <신언약>에 와서는 거대한 행위가 네필림과 동일한 의미로서, 사사건건 예슈아님을 대적하는 율법자들로 대변된다. '영적인 네필림'이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예슈아님 당시는 아직도 <구언약>의 언저리에 있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연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물질의 '십일세'를 거둬드림은 '어쩔 수 없는 그들의 행위였지만'(these ought ye to have done), 율법적 십일조의 주제인 공의, 긍휼, 믿음의 실행을 행하지 않음을 책망하신 것이다. 예슈아님이 그들의 십일조 행위를 인정하신 말씀이 절대 아니다.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풀면 커다란 화를 면키 어렵다. 지금 예슈아님은 <말라키 3:3-4>의 말씀을 주목하고 계신 것이다:

    3:3그들로 주님을 위하여 의 안에 한 헌물을 가까이 가지고 오게 하실 것이다. 3:4그때서야 유다와 예루살렘의 그 헌물이, 지난 날들과 앞선 날들 안에 처럼, 주님를 위하여 열납될 것이다. (말라키 3:3-4)

'율법적 십일조'의 참뜻은, 공의, 긍휼, 믿음을 이루는 것이다. 위 본문에서도 <구언약>을 접으시면서, 그토록 수 많은 역사하심 안에서 광야 땅 안에서는 '성막' 제사를 통하여, 약속의 그 땅 카나안의 땅 안에서는 '성전'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첫 태생'과 '첫 열매'인 소위 '십일조'와, 레위인들이 받은 '십일조'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원하신 바대로 성취되었다면,  <신언약>이라고 하는 '새 언약'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율법 안에서 '십일조'가등장함은, 제아무리 율법의 공로를 들여도 '의'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레위기 18:5). 그러나 율법을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는 자가 없으므로, 오히려 율법으로 인하여 사람은 정죄되고 저주받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3:21-22).

여기서 <로마서 10장>을 읽어보자:

<로마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히 열망했다(1절).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의를 행함으로써 얻으려 했다(2-4절).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모든 기회를 주셨으나, 그들은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14-21절). 그래서 크리스투가 오셔서 바로 이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이다(4절):

    10:4따라서 크리스투가 믿는 자 모두에게 의에 관하여 그 율법의 그 마침이다. (로마서 10:4)

바울은 이처럼 율법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음과 복음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톰슨성경', 기독지혜사, 1987, p.신언약 253).

<로마서 11장>을 읽어보자.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실족과 이방인의 구원을 펼친다. 그 유명한 '참 올리브나무와 야생 올리브나무' 비유가 전개되는 곳이다.(17-19절).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지 못한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자긍하며, 교만과 완악. 곧 높은 마음이다.(20절). 하나님은 이미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 7,000인을 남겨 두셨다고 하신다.(4절). 숫자적 의미가 아니다. 그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바알 우상에게 숭배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낮아지고 순종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고 하신 것이다:

    7:21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그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노니, 너희 희생제에 너희 번제물을 얹고, 고기를 먹으라.

    7:22이는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의 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그 날에 번제나 희생제에 관하여 그들에게 전하지도 않았고, 명하지도 아니하였으며,

    7:23오직 이것만을 내가 명하여, 말하기를,' 내 음성에 복종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길들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잘 될 것이다.' 하였으나,

    7:24그들이 귀담아 듣지 아니하였고, 그리고 귀를 귀울이지 아니하였고, 오직 그들의 악한 마음의 계락들과 완고함대로 행하여, 뒤로 가고 앞으로 가지 않았다. (예레미야 7:21-24).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애굽)의 종노릇에서 구해 내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라는 의도에서였다. (창세기 26:5=아래 '미니풀이' 참조):

    26:5이는 아브라함이 나의 말에 순종하였고, 나의 준행, 나의 계명들, 나의 규례들과, 나의 법들을 지켰음이다. (창세기 26:5)

    [창세기 26:5 미니풀이]  ①'나의 말'(my voice)=듣고 믿기 위함(로마서 10:17),  ②'나의 준행'(my charge)=준수하기 위함, ③'나의 계명들'(my commandments)=순종하기 위함, ④'나의 규례들'(my statutes)=알아듣고 깨닫기 위함, ⑤'나의 법들'(my laws)=가르쳐 따르기 위함. 여기서 '나의'(my)가 5회 인용됨은 서약을 이룰 것임을 주님이 강조하시는 '은혜' 의미를 지니고 있음 (요한복음 1:17 참조)='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긴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슈아 크리스투를 통하여 온 것이 때문이다.' ①모세의 시대에 은혜가 있었음 (출애굽기 34:6-7). 따라서 율법 자체가 진리의 표출이었음. ②그러나 예슈아 크리스투께서 오시자, 그분 자신(Himself)이 '그 진리'(the Truth), 즉 진리의 의인화(personification)이었고(요한복음 14:6), ③예슈아님의 삶과 죽음은 은혜의 최고의 표출이었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언약을 맺으신 가장 주요한 원인은 '순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순종을 원하셨는가? 하나님의 그 말씀(음성)을 듣고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통해서 난다. (로마서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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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20110911> <Updated/201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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