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자의 의무 ㅡ '그 성경기록들을 상고(祥考)하라'(요한복음 5:39)]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 가사의 주인공이신  존 뉴톤(John Newton)과 '회심'의 아이콘이신 존 웨슬리(John Wesley) 두 목회자님과 함께 18세기 영국이 낳은 복음의 3대 거성이신 조지 화잇필드(George Whitefield) 목회자님의 설교를, 본 자료에 들어가시기 전에 꼬옥 한번 읽어보시도록 권해드립니다. [복음선교문서 컬렉션4]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 <자세히보기>.

이미 알려드린 바 같이, 성경 속에 감추어진 '십일조'의 진리를 펼칩니다. 우선 10년만에 이 자료를 공개하게 된데 대해 예호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어려웠던 역경을 거쳐 갖은 '공격'을 이겨낸 것이 오늘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드러냄과 모든 영광을 그분에게 돌려드립니다. 성경은 <창세기1:1>로부터 <요한계시록 22:21> 끝까지 예슈아님을 시작으로 해서 예슈아님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중에 감추어져서 드러나진 않은 주제어 중 하나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이 '십일조'를 아래와 같이 도식화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6년간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하였고, 그 로중(路中)에서 무시로 성령님이 내리시는 '그 깨달음'을 흘려 버리지 아니하고, '그 말씀의 바구니' 안에 차곡차곡 담아두었다가, 필요시에 꺼내어 펼쳐가면서 정리한 열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는 <창세기>부터 우선 발행하고자 <한글번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귀한 '소산'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인용되는 '성구'는 이미 저희 <화중광야>가 발행해서 무료로 배포중인
<창세기한글번역> (무료배포 자세히보기)을 곁에 두시고, 본 자료를 '살피고 상고하고 연구하면'(요한복음 5:39) 퍽이나 이해가 더 잘 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부터 필자는 이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의 진리'를 펼쳐보일 것입니다. 샬롬. (2011.9.11/밤)

이제는 성경번역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필히 펼쳐져야 할 주제...성경기록들 속에서 가장 비중이 넓고 막중한 주제는 바로 <십일조>임을 깨달았습니다. 본 <십일조> 주제는 2011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하다가...중간에 '한민족(桓民族)의 대파노라마'인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곧 <명성태황후 어진>이 전무함에 비탄을 느낀 나머지...그 주제를 필적(筆跡)하느라...이렇게 늦어졌습니다. <명성태황후 어진>은 밝혀지고 맙니다. '사탄의 비밀결사'가 아무리 갖은 모략으로 숨겨놓았어도...예호바 하나님의 <삼파람>(동풍) 한 방이면 밝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875년부터 왜구(倭寇)의 강화도(江華島) 강제조약을 기점으로 침범하기 시작한(프리메이슨이 배후에서) 한반도의 강점(국토강점 및 창씨개명에 의한 한민족의 씨 말살)에 의한 시나리오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공산주의(북한/중공/소련)와 사회주의(일본) 틈바구니에서도 소멸되지 아니하고 오늘 이 시간까지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요인은 '대륙'(大陸)이기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땅이 넓다해서 '대륙'이 아닙니다. 우주적 영역의 보편성을 최대로 표현하고 있는 민족은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아도, 우리 '한민족' 밖에 없습니다. '태극기/무궁화/동해/백두산/태백산맥/한라산' 등등의 개념은 그 어느 민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성경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류'라 하는 물결이 어느 연예기획사(전에는 '프로모션'이라 칭함)에서 만들어진 '흥행성 쇼'와는 전혀 맞지도 않습니다. 내용도 없는 말초 신경적인 자극성의 '용어 몇마디'를 후쿠송 형식으로 반복시켜 시청자들에게 주입시키는(마인드컨트롤) 그런 노래는 참다운 의미에서의 한류가 아닌 것입니다. 이미 우리 선조 제위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교통하고 있었음을 '역사적 진실'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한류'를 시기 질투한 바다 건너 왜구가 '생트집'(동해ㅡ>일본해/독도ㅡ>다케시마)을 부리면서 훼방해 오고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다이치) 근해에서의 <핵누출>은 1년 2개월이 지난 오늘에는 엄청난 댓가(피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1945년 8월의 예수회 작품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두 원폭 보다도 엄청난 위력을 지닌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2의 체르노빌'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시대적 물결을 감안하여 저들(왜구)에게는 <밝은 태양>은 기울어 가고(경제 후퇴가 입증) 그 자리에 <검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고 '비유'로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놓고 판단해보니...'아!! 예호바 하나님이 아직 우리 한민족을 버리신 게 아니구나!!'하는 강한 신념으로 이렇게 먹지도 쓰지도 놀러가지도 못하고(아들의 한 마디)...필적(筆跡) 중에 깜빡 의자 그 자리에서 잠들기도 하고...하루 잠 자봐야 고작 서너시간...이런 상황하에서도...필자의 속사람은 계속 위로해 주고 있기에...이 글이 가능한 것입니다!! 미국을 볼까요?? 지난 5월 14일자 'Newsweek'는 21일자 발매 잡지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을 실었습니다. 그 하단에 'The First Gay President'리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동안 떠돌던 루머의 실체가 입증된 것입니다. 무척 창피스런 '위신'이 아니겠습니까!! 완전하고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인간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계획을 세우고 틀을 짜고 해놓아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예호바이십니다!! 이제는 한반도 이 땅 안에서의 '이념전쟁' 해결만이 남아 있습니다. 2012년 12월의 대선은 그래서 '민족사적 대전환기'라고 믿어집니다. 지금 정치계가 돌아가는 판도를 놓고 보니, 소위 '보수'와 '진보'의 양대 이념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정리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칭 '보수'라 칭하던 당무리는 이미 '새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보수'라는 이념의 가치는 '정직과 정의'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반면에, '진보'라 칭하는 당무리는 오리무중인 것 같다고 판단됩니다. 툭하면 모여들었다가 빠져나가 간판을 내걸던 옛날 식으로는 안 됩니다. 민초들이 그만큼 깨달은 것입니다. 지난 4월 11일, 총선을 통해서 자리를 얻어 볼려고 '통합'이라는 '막장수'를 써서 일부 목표를 달성했는가 싶었지만...결국에는 '색깔론' 곧 '이념투쟁'의 정체가 하나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중입니다. '진보'라는 이념의 가치는 '대중'에게 그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소위 '풀뿌리'라는 이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한반도 안에서 '진보'가 자리매김을 할려면,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곧 '주사파'(마르크스주의도 아니요 레닌주의도 아닌 짬빵에다 김일성 개인주의가 혼합된 일종의 괴물주의=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님의 증언)와 완전히 결별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주사파들(종북세력들/예전 용어로는 빨갱이들/북괴 간첩들)을 이루는 핵심 멤버들이 '386세대'요, 이들이 바로 1980년대에 필자를 빈강의실만 지키도록 만들었던 '꼴통들'입니다. 결국은 중년이 되어서도 '트러블 메어커들' 밖에 안되었습니다. 이런 괴물들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이요...아직도 예호바하나님이 이 '한민족'을 사랑하심이니...우리 모두 기도해야 합니다!! 샬롬!!  <2012.5.19/오후>

<앞 페이지에서 계속됩> <자세히보기>


[본문 ㅡ 창세기 제14장 14-20절]

    14:14그리고 아브람이 그의 혈육이 사로잡혀 갔음을 듣고는, 그는 자기 집 안에서 태어나서 훈련받은 종 삼백십팔 명을 무장시켰고, 그들을 단에 까지 쫓아갔다.

    14:15그리고 아브람, 곧 그와 그의 종들은 밤을 틈타 그들을 대적하여 나누어, 그들을 쳤고, 다메섹 왼쪽에 위치한 호바까지 그들을 쫓아갔다.

    14:16그리고 그는 모든 재물을 되찾아 왔고, 그의 혈육 롯과, 그의 재물과, 여자들과, 사람들도 되찾아 왔다.

    14:17그리고 소돔의 왕이 (그가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했던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온 후에) 왕의 골짜기인 사웨 골짜기로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

    14:18그리고 살렘의 왕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 그 분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셨다.

    14:19그리고 그 분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하늘과 땅의 소유자이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게서 아브람이 복을 받을지어다.

    14:20그리고 네 대적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할지어다.' 하셨다. 그리하여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키세덱에게 드렸다.



이어서 믿음의 성경적 정의를 알아보자:

    그런고로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에 대한 그 기초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그 증거임으로 (히브리서 11:1)

이에 대한 풀이는 필자의 <제1차 킹제임스성경 세미나>(1998.1.2-13)에서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우선 이 구절을 간략하게 풀기 이전에 주의할 것이 있다. 오랜 전통과 관행에 익숙되어 온 한국인 크리스투인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새롭게 풀이해서 성경적으로 정리해 나가려 하는 대신에, 아주 판에 박혀 있는 해설이 전부인양, 새로운 변화에 우선 부정하는 자세가 강한데, 이런 자세부터 고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1>의 믿음에 대한 정의는 이렇게 풀 수 있다. 우선 다음과 같이 비교된다:


1. 소망하는 것들(things hoped for)=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바이다.

2. 그 기초(the substance)=실상, 실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굳건히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확신함(confidence)의 '기초'(foundation)이다.

3. 보이지 않는 것들(things not seen)=비록 우리가 이미 가시화된 '그 약속들'(히브리서 6:12)을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약속들을 반드시 이루신다.

4. 그 증거(the evidence)='책망'으로 번역하는 예도 있는데, 이것은 변질된 헬라어 알란드판이 원어 'ελεγχοζ'(증거)를 'ελεγμοζ'(책망)으로 바꾼데서 비롯된 것이니, 혼돈없길 바란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인 '그 약속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내적으로 확신'(inner conviction)하는, 곧 확증(certainty)이다.


전통과 관행에 익슥되어 온 한국인 크리스투인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새롭게 풀이해서 성경적으로 정리해 나가려 하는 대신에, 아주 판에 박혀있는 해설이 전부인양, 새로운 변화에 우선 부정하는 자세가 강한데, 이런 자세부터 고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았다고 생각된다.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자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확실하게 선언한다 (사무엘상 15:22):

    주님이 자기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 만큼, 번제들과 희생제들을 크게 기뻐하시겠습니까? 보소서, 순종하는 것이 희생제 보다 낫고, 귀담아 듣는 것이 수양들의 기름 보다 낫습니다.


자, 본론 주제를 풀기 위해서 이렇듯 예가 길어졌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향하는 도중에 살렘의 왕 멜키세덱을 만났을 때, 자기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키세덱에게 드렸고, 멜키세덱은 그것을 기뻐 받아들였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다. 왜 아브라함은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는가? 복을 받으려고? 그게 아니다. 그 해답은 <히브리서 7:7>이다. 본 주제를 오래 갈급해오던 필자가 드디어 그 해답을 찾은 것이다.
이에 대한 풀이는 본 주제 다음에 2부에서 풀어보기로 한다.

이상의 주제를 요약한다. 아브라함의 십일조 속에 숨겨진 비밀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완전히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감춰두신 비밀이었고, <구언약>에서는 레위인들의 희생제사와 생활 수단으로서의 그림자인 모형으로만 실행되어 오다가, <신언약>에 들어와서야 주님이 택하사 부름받은 자들인 참회중(모임)에게 열린 것이다(베드로 1:12). 특히 율법의 더 중요한 주제들인 '공의, 긍휼, 믿음'은 복음을 통하지 아니하고서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슈아님을 통해야 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은혜적 십일조에 대한 예표로서, 그것은 율법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며, 복음을 통해야 비로소 성취되는 것이니, 사도 파울로스(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크리스투께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며'(로마서 10:4), '율법의 성취가 곧 사랑이다'(로마서 13:10 라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사랑은 바로 예슈아님 자신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율법에 의한 행위, 즉 오늘날 '종교적 교회'의 행위(십일조를 물질(돈)로 해석)는 반드시 화를 받아, 심판에 이를 것임을 경고하신 것이지, 예슈아님 자신이 율법적 십일조를 인정하신 것이라 하는 그 자체가 '화'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심판은 '하나님의 그 집'에서 시작된다 (베드로전서 4:16-17):

    그런데 만일 누가 한 크리스투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그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하나님의 그 집에서 심판을 시작해야 할 때가 이르렀음이다. 그리고 만일 그 심판이 우리에게서부터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그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자들의 결말은 어찌되겠느냐?


야코브(야콥)은 주님이 서약하신 이상의 조건들(창세기 28:13-15절)이 성취, 즉 먼저 '하나님의 그 집' (창조자의그  집)이 이루어진 후에야, 반드시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성경에서 최초 기록됨). <신언약>에 와서는 이 '하나님의 그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게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문제는 구원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마지막 심판을 그저 넘겨져 버리는 식으로 가르쳐 오니까, 종교적 의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이 아니다.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이 심판을 비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간절히 권면하는 것은, 일단 구원받았으면 만사 형통하다는 '복음파' 내지는 '구원파'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 보다 '더 나은 한 소망'(a better hope)으로 인하여(히브리서 7:19), <십일조>인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크리스투의 영원한 제사장 직분이며, 이 직분은 부활의 생명과 승천의 영광 안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자기 보좌 위에 한 제사장이 될 것이다(스카랴 6:13).


(6) <히브리서 7:22-28> ㅡ 율법적인 제사장이 폐해진 것은 죽음으로 인하여 살아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예슈아님은 항상 살아계시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한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가지신 것이다.

그래서 예슈아님은 '더 나은 한 유언의 한 보증'(a surety of a better testament)이 되시어(22절), '자기를 통하여'(완전한 십일조가 되어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분이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인 것이다(25절). 율법은 연약한 사람들을 대제사장들로 세우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맹세는 영원 무궁토록 완전해진 그 분의 아들을 세우심이다. 이 분은 자신을 '단 한번' 드리심으로 완전한 대제사장이요,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음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경고가 있다. 소위 복음파(구원파)들이 주장하는 '단번 속죄'이다. 기존의 개역 성경의 '단번'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교리이다. 이들은 이 교리를 통해서 구원을 부르짖는다. 한 가지 빠진 것은, 율법을 내세우고, 복음을 내세우면서 예슈아 크리스투를 통한 '단번 속죄'로 더 이상 죄사함 받을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교리에 커다란 보이지 않는 '암적인 요인'이 들어 있으니, 바로 멜키세덱을 제대로 풀지 아니하고(못하는 것인지??) 전하는 절름발이식 복음론이요, 구원론임을 주목하기 바란다. 멜키세덱을 논의하면, 반드시 십일조가 언급되기 마련인데, 이 십일조는 율법적이 아니라, 유다 지파로부터 오신 '그 메시야'이신 '은혜적 십일조이신 바로 예슈아 크리스투이신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한다. 레위인들이 드린 십일조가 결국은 아브라함의 인격을 통해서 레위 자신도 멜키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이다(히브리서 7:9).

따라서 여기에는 물질이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하나님이 이 '십일조'이신 예슈아 크리스투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번'이 아니라 '단 한번'(once)으로 번역해야 옳은 것이다. 그리고 '단번 속죄'가 아니라 '영원한 속죄'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오직 진리의 그 말씀을 올바르게 우리 말로 옮기는 사역에 전력해오고 있다. 그래서 오직 한 길에만 전념하면서 이 고난의 외로운 길을 가고 있다.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물질의 부족이다. 많은 부족이다. 소위 성경에도 없는 '자비량' 목회 및 선교를 실행해오면서 숱한 사건들을 겪어 보았고, 수 많은 사람들과도 교제도 해 보았다. 그것은 1996년부터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해오면서, 드디어 2000년 가을에 성령님은 내게 죽을 각오로 오늘의 이 외로운 길로 가도록 이끌어 주셨다. 바로 성경 말씀 속에서 들려주신 말씀이었다. 그 때의 느낌을 기록해둔 기억이 난다. 후에 밝히기로 한다. 성경에는 '자비량' 전도 내지 선교가 없다. 사도 '파울로스'(바울)를 내세운다. 이것 역시 자기 인수적 해석이었다. 오직 한 길 뿐이다. 단, 각각 은사가 다른 교우인 지체가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갈 뿐이다(로마서 12:3-13).

    12:3내게 주신 그 은혜로 인하여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니, 자신을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그 분량대로 진지하게 생각하라.

    12:4우리가 한 몸 안에 많은 지체들을 가졌으되, 모든 지체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12:5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나 크리스투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각 사람이 서로의 지체가 된다.

    12:6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은혜에 따라 각기 가진 은사들이 다르니, 예언이면, 우리가 믿음의 분량대로 예언하고,

    12:7그리고 섬김이면,섬기는 일로, 그리고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12:8그리고 권면하는 자는 권면하는 일로, 나누어주는 자는 관대하게 주고, 지도하는 자는 부지런하게 지도하고, 긍휼을 베푸는 자는 기쁜 마음으로 할 것이다.

    12:9사랑에 가식이 없게 하라.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과 연합하라.

    12:10형제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사랑하며,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말며,

    12:11일에는 게으르지 말고,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라.

    12:12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꾸준히 기도에 힘쓰며,

    12:13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


그러기에 필자는 계속 필을 잡아야 한다. 요즘 정리하는 '십일조'를 좀 더 풀어보고 싶었다. '왜 아브라함은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는가?' 이 주제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즈음, 동역자 자매님이 그 어려운 형편에서 구입해주신 자료(캐나다에서 구입) 중 1655년에 영국의 저명한 학자 윌리암 구즈(William Gouge)가 풀어놓은 <히브리서> 강해를 살펴보았다. '앗!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니!!!' 이에 대한 주제 풀이는 다음 기회로 넘긴다. 할렐루야!!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2002.8.6/밖에 장대비기 쏟아지는 오후> <2002.8.7/밖에 장대비기 쏟아지는 새벽> <2002.8.9/장대비기 그친 밤새도록> <2002.8.12/아침에 정리 완성하다>


[부록]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이 때, 흔들임이 없기를 주님께 부탁한다. 자칫하면 실족하기 쉽상인 오늘의 세태이다. 2002년 8월 8일, 밤 9시 뉴스를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9일, 밤 1시가 넘고 있었다. 동역자 박준형 전도사님으로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여럿이서 함께 손을 잡고 나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개 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오늘도 하루종일 컴 앞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려서 기분이 좋습니다. 벽같은 장애물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담쟁이를 보면서...우리 앞에 놓여 있는...참으로 답답하기도 합니다. 왜 이리 벽이 많은지요...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건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2002.8.8/박준형 올림>


[답신] 그간 엄청난 폭염에 온 몸이 땀띠가 나고 짜증이 날 정도로 힘든 하루 하루였습니다. 오늘까지 5일째 내리는 비로 인하여 잠시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간이 전도사님의 연락주심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자료는 만나면 드릴께요. <십일조> 해답이 거의 열린 것 같습니다. 요즘 정리한 것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브라함의 십일조 속에 숨겨진 비밀
    2. 성경에서 십일조의 계획 및 출발
    3. 성경에서 최초로 맹세한 야코브(야콥)의 십일조 근거


참으로 은혜가 넘칩니다. 이 기쁨을 전도사님이랑 함께 나누길 고대합니다. 특히 이번 정리 과정에서 <마태복음 23:23>이 해결됨이 큰 성과였습니다. 오늘도 '샬롬'을 전합니다. <2002.8.8/목회자 정재선>

 
<Created/20110911> <Updated/201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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